로마인 이야기-1 Res gestae populi Romani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오노 나나미가 지은 "로마인 이야기" 에 대한 각계각층 독자들의 호평과 인기를 익히 들었고 전체적인 내용은 대강 알고있었으나 워낙 여러가지에 호기심이 많은 탓에 좀 긴 호흡이 필요한 책을 읽는게 시간이 아까워 다른 책을 보느라 차일피일 미루다 늦어졌으나 이제 시간이 있어 손에 들게 되었는데 역시 시오노 나나미의 해박한 지식의 집대성이라는 것과 대단한 입담을 가진 작가임에 의심이 없고 번역도 잘 되었다.
작가 시오노 나나미에 대해 1937년 도쿄 출생으로 올해 67세인 작가는 도쿄대학 입학시험에 낙방하여 그리스, 로마사를 가르치는 교수가 있는 가쿠슈인(學習院)에 입학하여 서양철학을 공부하였다. 고교시절에 호머의 "일리아드"를 읽고 심취하여 각별하게 로마역사에 관심이 있었고 졸업 후인 1964년 24살의 나이로 드디어 이딸리아로 건너가 일체의 정규학교는 다니지 않고 답사와 독학으로 로마사를 공부하고 연구하여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쓰게 된 동기의 인물인 "체사레 보르자"의 일대기를 그린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 을 써 1970년 "마이니찌 출판문학상"을 수상하여 문명을 날리기 시작하였다. 30년 넘는 이딸리아 거주기간 동안 초기작 "르네상스의 여인들" 을 필두로 "바다의 도시"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등 30여권의 저서를 냈고 로마사의 총정리격인 "로마인 이야기"를 1964년 부터 일년에 한 권씩 총 15권을 2006년까지 펴내는것을 목표로 써오고 있으며 현재 국내에 11권까지 출판되었다. 시오노 나나미의 모든 책은 일본 출판시장에서 성공을 거두었고 국내에도 많은 독자를 거느리고 있다. 본인은 역사가라기 보다 작가이며 그러기 때문에 철저한 역사적 고증도 필요하지만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있는 부분에 대해 자유로운 해석을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로마인 이야기에 작가의 목소리가 유난히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으나 크게 거슬리지 않는 이유는 발로 역사의 현장을 직접 답사하고 오랜 기간 연구한 노력의 결과때문이라고 본다. 책의 곳곳에 ".......했을 것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는 등의 작가의 어림짐작이 더욱 이 책의 흥미를 높인다고 볼 수 있다.
1998년 고려대학교와 동아일보사의 초청으로 한국에 방문하여 "인문학적 소양을 길러라" "선택적 대안을 가져라" 등의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 주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하였다.
1권의 부제로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Roma was not built a day. Roma non uno die aedificata est. "
로마의 건국은 전설로는 기원전 753 년 이리의 젖을 먹고 자란 로물루스가 테베레 강 주변 일곱 언덕에 세웠다고 알려져있고 로물루스를 필두로 7 명의 왕이 재위하다 기원전 509년 왕정이 폐지되고 공화정으로 바뀌어 부침을 거듭하다 기원전 270 년 여러 부족으로 이루어진 이딸리아 반도를 통일하였다. 제 1권은 500 년간의 로마 고대사의 초반부를 기술하고 있는데 풍부한 평설과 에피소드와 함께 유려한 문체로 읽는 사람이 한 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단숨에 읽도록 재미있게 썼다.
나는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의외로 로마 이야기 보다 기원전 461 년 한창 나이 30세로 그리스의 패권도시국가 아테네의 최고 우두머리인 국가 전략관 의장으로 일한 귀족출신 정치가 "페리클레스" 의 연설에 주목하였다. 2천년이 지난 내용인데도 지금 읽어도 우리가 귀 담아 듣고 경청할 내용으로 전혀 손색이 없으며 한구절 한구절 가슴을 울리는 페리클레스의 웅변을 그와 동시대의 역사가 투키디데스를 통하여 들어본다.
- "우리의 정치체제는 다른 나라의 제도를 흉내낸 것이 아니다. 남의 이상을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로 하여금 우리의 모범을 배우게 하는 것이다. 소수의 독점을 배격하고 다수의 참여를 수호하는 정치체제, 그 이름을 민주정치라고 부른다. 이 정치체제에 있어서는 모든 시민이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 공적생활에 봉사하므로써 주어지는 명예도 세인이 인정하는 그 사람의 능력과 업적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고, 출신가문이나 성장과정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설령 빈곤 속에서 입신했더라도, 나라에 유익한 능력을 가졌다면 가난하다는 이유 때문에 그 길이 막히는 일은 없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자유로이 공사에 이바지할 길을 가졌으며, 또 사적인 생활에서도 나날이 완벽한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의심이나 질투가 소용돌이치는 것까지도 자유라고 말할 만큼 완벽하다. ........ 그러면서도 나날의 수고를 잊게 해주는 교양과 오락을 만끽하고, 경기와 제전을 해마다 정해진 날에 개최하고, 주거도 쾌적하게 정돈하는 것이 중요함을 잊지 않는다........ 자녀 교육에 있어서도 상호간의 간격은 크다. 그들(스파르타인을 말함)은 어릴 적부터 엄격한 훈련을 실시하여 용기를 함양하기에 힘쓰지만, 우리는 자유의 기풍 속에서 자라면서도 위기가 닥쳤을 때는 물러나는 일이 없다. 우리는 시련을 대할 때에도 그들처럼 비인간적인 엄격한 훈련을 받은 뒤의 예정된 결과로써 대하지 않는다. 우리 개개인이 가진 능력을 바탕으로 한 결단력으로 시련을 대한다. 우리가 발휘하는 용기는 관습에 얽매이고 법률에 규정되었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아테네 시민 개개인이 일상 생활을 할 때 갖고 있는 각자의 행동 원칙에서 생겨난다....... 우리는 질박함 속에서 미를 사랑하며, 탐닉함이 없이 지를 존중한다. 우리는 부를 추구하지만, 이것은 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함일 뿐, 어리석게도 부를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다. 또한, 일신의 가난을 인정함을 수치로 여기지 않지만, 빈곤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함은 깊이 부끄러워한다. 우리는 사적인 이익을 존중하지만, 그것은 공적 이익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함이다. 사적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에서 발휘되는 능력은 공적 사업에도 응용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곳 아테네에서는 정치에 무관심한 시민은 조용함을 즐기는 자로 여겨지지 않고, 시민으로서 무의미한 인간으로 간주된다......... 종합해서 말하면, 우리 아테네는 모든 면에서 그리스의 학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아테네의 시민이라는 명예와 경험과 자질의 종합체로서, 하나의 완성된 인격을 가지게 된다. 이것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사실을 바탕으로 한 진실이라는 증거로, 우리의 이런 사고 방식과 생활 방식으로 구축된 국력이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
로마의 황제들은 시민들을 위해 공공 사업을 벌이는걸 관례화 하였는데 특히 제국을 다스리기 위해서 길을 건설하고 수도시설을 정비하는 일에 깊은 관심을 가져 지금 사용하는 이딸리아 고속도로들이 그 당시의 길을 조금 손보아 쓰고 있다고 한다. 로마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길이 나 있는데 특히 남쪽으로 곧장 나있는 아피아 가도는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래 된 길로 로마시대엔 가장 중요한 가도라 하여 "가도의 여왕" 이라 했다 한다.
내가 이딸리아에 두 번째 갔을 때 로마에서 나폴리를 가기 위해 남쪽으로 이 길을 따라 내려 갔는데 해를 계속 보고 간다고 하여 현지 안내인은 이 길을 "태양의 가도"라고도 한다 라고 알여주었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풍경은 도로 주변에 광활하게 펼쳐진 해바라기 평원이었다. 오래 전에 보았던 소피아 로렌이 주연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상연된 영화 "해바라기 Sunflower" 가 원래 러시아 배경이었으나 촬영 당시는 쏘련이 공산 국가로 폐쇄주의를 고수하여 유럽에서 로케이션을 하였고 해바라기가 나오는 장면은 이딸리아라는걸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드넓은 벌판에 끝간데 없이 해바라기 밭이 펼쳐 있어 반가웠었다. 또 오래 전에 보았던 영화인데도 기억에 남는 장면은 소피아 로렌과 애인이 해변 백사장에서 뒹굴며 키스하다가 소피아 로렌의 귀걸이를 목에 삼켜서 당황하는 남자의 어쩔줄 모르던 장면이 잊혀지지 않는다. 해바라기는 특히 반 고흐가 좋아해서 여러점을 유화로 남겼으며 그의 해바라기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활기찬 생명력을 느끼게 된다. 이 영화에서 소피아 로렌이 멀리 찾아간 애인이 이미 다른 여인을 만나 가족을 꾸며 단란하게 살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옛 애인을 남겨두고 기차를 타고 홀로 돌아오는 길에 차창 밖 바람에 흔들리는 수많은 해바라기 화면이 인상 깊었는데 이십년도 더 된 지금도 무수히 흔들리는 해바리기의 모습이 생생하게 눈에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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