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단 한 번
때론 아프게, 때론 불꽃같이
셈 터
장영희 지음
2004.
나는 어제 도서관 개가식 서가에 꽂힌 평소에 잘 보지 않던 월간지 신동아 3호를 집어 뒷부분에 실린 서강대 영문과 장영희 교수의 글 "나의 삶, 나의 아버지" 를 읽었다.
중학교 때 배운 영어 수업과 연관하여 그 당시 영어 교과서 저자가 대부분 장왕록씨였는데 장영희교수는 서울대 교수였던 장왕록씨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집에서 구독하는 신문 칼럼과 또 다른 신문에서 가끔 장영희 교수의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오늘 그의 글을 읽어 보니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아 지체부자유자로 아버지가 서울대 교수였지만 서울대에서 입학응시 자격도 주지 않아 할 수 없이 서강대 영문과를 다니고 졸업 후 뉴욕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후에 모교 교수로 임명되었다고 한다.
거의 4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장왕록교수의 이름을 보는 순간 전혀 낯설지 않고 당시의 교과서 책 표지가 눈에 선연하게 들어 오는 느낌이 들어 신기함과 장왕록교수의 딸이 장영희, 그리고 씩씩한 글솜씨를 자랑하는 여교수 이런 생각을 하니 한 순간에 머리가 밝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 여성들 중에 남성보다 뛰어난 실력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경쟁에서 밀려나고 아니 경쟁자체에 참여시켜주지도 않는 이런 불합리한 여건에서도 끈질긴 노력과 성실성으로 자신의 입지를 굳힌 강금실 법무장관, 추미애 의원, 김명자 전 환경부장관, 전여옥 기자 등과 함께 장영희 교수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더구나 우리나라와 같이 신체장애자에 비우호적인 상황에서 힘든 교수직을 해나가며 수 많은 번역서를 낸 장영희 교수에게 힘찬 찬사의 박수를 보낸다.
나는 우선 서강대 장교수에게 장왕록 교수에 대한 지금도 생생한 중학교시절의 기억을 전하는 간단한 편지를 써 보냈다. 그리고 장교수 소개문을 보니 1981년에 이미 한국번역문학상을 수상하였고 수상집 " 내 생애 단 한 번"도 2000년도에 출판되어 2001년에 올해의 작가상을 받기도 하여 먼저 이 수상집을 구하여 읽어 보았다.
대부분의 수상집은 자기 신상 주변잡기로 이 책도 그런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은 내용이었다. 그러나 다른 책과 다른 점은 그간 장교수가 겪어야 했던 신체장애자로써 험난했던 경험들을 여기저기에 펼쳐 놓았다.
자칫 동정심을 유발시키는 감상적 문체로 흐르거나 하소연으로 치우칠 수 있는 주제임에도 저자는 시종일관 밝고 즐겁게 마치 3인칭 문장처럼 어두운 기억들을 경쾌하고 상큼하게 표현하였다.
특히, " 나의 목발" 부분은 나무목발을 미국에서 11달러에 주고 산 과정과 22년이란 긴 기간을 몸의 일부로 함께했다가 주변의 강력한 권고로 튼튼하고 모양도 뛰어난 알미늄 발(?)로 바꾼 이야기다.
이 책에서 이런 종류의 내용 중에서 단연 압권에 속하는데 목발을 영어로 Crutch 라고 하며 '정신적 지주'라는 의미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연애 편지" 장교수는 제자로부터 어느날 연애편지를 받아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하며 연애편지에 대한 재미 있는 얘기를 하였다.
어떤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연애편지를 써보라고 했더니 다들 생경스러워 하더니 막상 분위기 넘치는 음악을 들려주었더니 모두들 눈을 지그시 감고 진지한 모습으로 편지를 쓰기 시작 하였다고 한다. 연애편지란 사랑의 마음을 전하는 방법이며 사랑 자체는 순수성, 단순성, 원초적인 본능이기 때문에 명망 있는 정치인이나 영웅, 미문을 구사하는 작가들이나 모두 그들의 연애편지를 읽어 보면 일반 학생들이 쓴 연애편지나 대동소이하다 하며 그 실례를 들었다.
나폴레옹이 그의 애인 조세핀에게 보낸 편지를 필두로 아일랜드의 문인 제임스 조이스가 노라 바너클에게 보낸 편지, 그리고 주홍글씨로 알려지 너세니얼 호돈이 소피아 피바디에게, 프란츠 카프카가 펠리스 바워에게,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연상여인 샤를로테 폰 슈타인 여사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분을 영문과 학생들의 편지와 대비시켜 이를 밝히고 있다.
퍽 흥미 있는 내용이었다.
확실히 교수를 직업으로 그리고 문학을 가르키는 장교수의 분석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 A+ 마음" 에서는 제자의 성적을 평가하면서 A- , B+ 사이에서 결정을 미루다 마침 그 학생이 추운 겨울 길바닥에 앉아 싸구려 물건을 파는 노인에게서 부채를 두개 사는 광경을 우연히 뒤에서 보고 그 착한 마음씨에 감동되어 A+를 주었다는 이야기는 불타는 도전정신과 악바리 기질 뒤에 숨은 장교수의 따뜻한 마음씨를 읽을 수 있었다.
"사랑합니다" '사랑하다'와 '살다'는 원래 어원이 같은 뿌리라고 한다. 그리고 영어의 Live와 Love 는 철자하나만 다르며 아직 장교수도 사랑한다는 말을 용기가 부족하여 자주 하지 못한다 한다. 그러나 앞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고 싶다고 토로하였다.
또 한가지 우리말에서 남/나 사이는 받침 하나 차이이고, 남/님 은 획하나, 나/너 는 획을 옮겨서, 남/놈 도 하나 차이인데 그 차이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는 내용을 적었는데 아주 재미 있는 부분이었다.
며칠전에 나는 아침에 자살의 위기에서 재기한 사람의 이야기를 티비에서 보았는데 "자살"과 "살자"는 사실 단지 글자를 앞뒤 바꾸어 보면 되는데 이렇듯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귀한 생명을 자살로 마감할게 아니라 죽을 용기로 산다면 훨씬 인생을 값있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미안합니다." 부분은 바로 신동아에 나와 있던 똑 같은 내용인데 그러고 보니 책은 2000년 출판되었고 잡지는 2004년인데 같은 내용을 다시 월간지에 싣는건 어딘지 속이는 느낌이 들기도 하나 내가 감동을 받은 내용이니 두번 읽는게 조금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평소 장교수는 자존심 때문인지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를 자주 하지 않는가 한다. 특히 미안합니다는 먼저 잘못을 했을 경우에 해야 하는 말같은 늬앙스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사실 나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장교수는 아버지 장왕록교수와 부녀지간으로 길고 긴 유대기간을 회상하며 아버지가 갑자기 수영중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시고 그 사망일 꼭 10일전에 꾼 꿈 이야기를 하면서 그나마 그 꿈 때문에 10일간 아버지에게 고분고분하게 대했으며 이제 떠나간 아버지를 그리며 수도 없이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를 되뇌고 있다고 한다.
사실 이 I am sorry. 미안합니다. 라는 제목으로 The Korean Times 에 글을 실었고 장왕록 교수는 딸의 글이 대견스럽고 자랑스러워 장교수의 글은 항상 스크렙하며 보았다고 한다.
" 이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한마디" 장영희교수는 40대 중반인데도(책을 쓸 당시) 이 글에서보면 죽음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세계 유명인사들의 유언집을 영문판으로 가지고 있다거나 이런 사람들이 죽기 직전에 내 밷은 짧은 한마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장교수는 만일 죽는다면 본인은 어떤 멋진 말을 남길까하는 보통 사람과 다른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다.
책에서는 몇 사람들의 마지막 말을 인용하기도 하고 또 몇 사람의 마지막 말을 일부 바꿔보거나 응용하여 새롭게 하는등 장교수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지금 살아 있는 누구에게나 사랑하는 사람이나 사랑하지는 않아도 가까이 보고 지내던 사람이 갑자기 불귀의 객이 되는 경우를 맞아 삶의 허무함을 느끼게 되고 죽음에 대해 의미를 되새겨 보기도 하는데 장교수의 글에서도 아버지를 비롯하여 주변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결국 죽음을 가까이 느끼는 사람은 사실 바꾸어 보면 하루하루의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 그러나 사랑은 남는것" 이란 글에서도 미국인 영매에 대한 얘기로 역시 죽음과 관련된 흥미 있는 내용이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눈에 띄는 몇 가지 수정할 사항을 적어본다.
p.18 텔레비젼 프로- 텔레비젼 프로그램
p. 29 성프란체스코- 성 프란체스코
p. 29 자동차를 굴리는- 자동차를 소유한, 또는 자동차를 갖은
p. 슈베르트의 숭어- 슈베르트의 송어
p. 십장(일본 용어) - 반장
이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200페이지 조금 넘는 두시간이면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장영희 교수의 수상집 < 내 생애 단 한 번> 의 일독을 권합니다.-끝
'독서 후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금술사 Alchemist"를 읽고... (0) | 2004.07.12 |
---|---|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을 읽고. (0) | 2004.07.08 |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0) | 2004.06.26 |
가평에서 본 금낭화꽃... (0) | 2004.06.13 |
수백당에서 본 돈나물꽃... (0) | 2004.06.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