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2 Bellum Hannibalicum
한니발 전쟁
아프리카 북부 카르타고에서 태어나 당시 카르타고의 속주인 스페인에 아버지를 따라 정착해 성장한 한니발(B.C.247-183) 그는 스스로 알렉산더대왕과 에페이로스의 왕 피로스 두 사람 다음으로 뛰어난 명장이며 만일 자마 전투에서 승리 했다면 알렉산드로스를 능가하였을 거라고 스스로 자평하였다.
이러한 사실에 걸맞게 당시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험준한 알프스산맥을 그 것도 눈 쌓인 한 겨울에 코끼리 떼까지 몰고 넘어 이딸리아북부로 침공하여 로마를 끼고 동쪽으로 돌아 이딸리아 남부를 자기 수중에 넣고 16 년간을 적지에서 주둔하며 칸나 전투회전을 비롯하여 수 많은 싸움에서 연승을 거둔 대단한 인물이다.
로마 사가들도 2차 포에니전쟁 이라고도 하지만 그냥 한니발전쟁이라고 할 정도로 그의 비중이 컸다.
한니발의 전쟁 수행능력이나 지략에 대해서 그리고 전쟁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워낙 방대하여 대강 정리하기도 어려우나 여기서 한 가지 고대 로마가 이런 한니발의 공격에도 살아 남은 이유는 로마의 정치와 외교 방식에 뛰어난 장점이 있었기 때문인데 일단 크게 둘로 나눠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국내 문제로 정치에서 과두 정치체제를 채택하여 일인지배에 의한 한 사람에게 힘이 몰려서 독제정치로 흐르는걸 극력 막았으며 이로써 좀 복잡하고 비효율적이긴 해도 2 인의 집정관을 선출하여 임기를 1 년으로 못 박은점, 원로원의 조언기능 그리고 평민의 민회에서 선출한 호민관 선출제도등 한마디고 권력을 분산하여 견제기능을 갖춘 국가조직의 정비였다.
즉 뛰어난 군주나 왕이 효율적으로 정사를 돌보면 더 할 나위가 없지만 그런 군주가 항상 나온다는 법도 없고 또 처음엔 훌륭한 군주도 사람인 이상 세월이 흐르면서 달라질 수도 있으므로 아예 이런 문제를 다소의 비효율을 감수하고 다수의 머리에 의지한다는 발상은 대단히 뛰어난 점이었다.
그러면서도 이런 제도의 단점을 보완키 위해 로마가 위급시에는 임기 6개월의 독제관(딕타토르:후에 독재자의 어원 dictator)을 선출하여 전권을 준다든가 임지에 나간 집정관은 많은 자율권을 갖게 하는 방편을 마련한 점도 뛰어난 제도라고 본다.
다음으로 귀족과 평민에 대한 차별을 서서히 타파하여 평민이나 심지어 노예도 능력있고 재산을 모아 얼마간의 세월이 흐르면 시민으로 인정되는 제도는 결국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결집력 향상에 도움을 주었고 당시 인구가 모자란 시기에 로마시민병 육성에 일조하였다.
둘째 외교문제와 대외문제에 대해서도 로마는 한 마디로 "온건한 제국주의" 로 표현되는 유연한 대외 정책을 펴 지중해 패권을 장악하였다.
정벌대상이나 파병에도 원로원의 의견이나 민회의 결정에 따랐으며 전쟁으로 평정한 지역도 그 곳 주민들의 생활에 큰 불편이나 원성이 적도록 배려하였으며 주민의 수준이나 지역특성을 살려 로마 연합지역, 로마 속주지역, 로마 산하자치지역 그리고 동맹관계지역으로 나누어 지역 특성에 맞게 적절하게 관리하였다.
로마는 정벌 후에도 대부분 관대한 처사로 대했으나 워낙 숙적인 관계에 끝까지 버틴 카르타고를 비롯하여 몇 몇 지역은 아예 불씨를 잠재우기 위해 도시 전체를 파괴하고 주민은 노예로 삼아 로마로 끌고 왔으며 더 이상 풀도 자라지 못하도록 땅을 갈아 엎고 소금까지 땅에 뿌리는 가혹한 처리를 한 경우도 있기는 하다.
1차 포에니 전쟁은 카르타고가 당시 그리스 영향에 있는 시칠리아를 침공한 전쟁이고 2차 포에니 전쟁은 카르타고의 스페인 총독 한니발이 이딸리아를 유린한 전쟁이며 3 차 포에니 전쟁은 로마의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가 대규모 병선단에 병사들을 싣고 지중해를 건너 아프리카에 도착하여 자마 전투에서 한니발에게 대승하고 농성 중이던 카르타고를 점령하여 카르타고 지명을 지도에서 지웠다.
이 전쟁 승리로 그리스의 식민도시였고 카르타고의 영역인 풍부한 농산물 생산지 시칠리아를 이딸리아 영향에 두었으며 개선장군 스키피오는 아프리카를 재패했다는 별칭 아프리카누스를 부여 받았으나 자마 전투의 패장인 일세를 풍미하던 용장 한니발은 조국을 떠나 망명하는 신세가 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스의 아르키메데스가 바로 시칠리아 출생이며 당시 시칠리아는 그리스의 식민 개척 지역이였기 때문에 그를 그리스 사람으로 알고 있지만 엄밀하게는 그리스인이라고 하기 곤란하다.
어쨌튼 포에니 전쟁 중에 로마군이 시칠리아를 공격하여 점령하여 실험에 열중하고 있는 아르키메데스를 로마 병사들이 알아 보지 않고 살해하였다.
나중에 이를 알고 로마 정치가들이 참으로 안타까워 했다고 한다.
제 2권의 대부분은 한니발의 로마 원정을 다루어 어느 면에선 좀 지루한 편이지만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를 위시한 로마의 이름난 장군들도 나타나고 당시 로마의 지형을 잘 알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2권에서 자주 나오는 시칠리아(영: 시실리아) 를 우리들은 이딸리아의 큰 섬 정도와 마피아 근거지로만 알고 있으나 시실리안들의 기질이 이딸리아 본토민과 다르며 대부분 농토가 많아 농민 출신이고 처음에 그리스와 카르타고 지배를 받은 역사적 배경으로 자연히 본토민에 차별을 받아 생활 수준도 낮아 많은 사람들이 미국에 이민을 갔다고 한다.
결국 미국 이민자들 중에 악명 높은 마피아들의 조상이 거의 시칠리안이고 그래서 영화 대부에도 2 대 마이클이 잠시 피신하여 시칠리아에서 평화스럽게 지내는 모습이 나오기도 한다.
사실 마피아는 그 역사가 오래되고 그 어원도 불분명하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중세시대 지주로부터 소작농들이 대항하기 위해 조직한 비밀 결사체라는 설도 있고 근대에 들어서 1940년대 코사 노스트라 조직이 시칠리아에 비밀 조직되어 활약하기 시작한게 그 시발로 보기도 하여 시칠리아의 작은 도시 코를레오네가 마피아의 정신적 고향이라고도 한다.
이딸리아에서도 마피아의 폐해가 극심하여 정부 차원으로 강력하게 단속하였고 특히 1975년 이후 미국 전역에 24개파 패밀리가 그리고 뉴욕에 5대 패밀리가 암약하여 그 위세를 떨치기도 했으나 미국 정부의 강력한 제재로 지금은 많은 조직이 와해되고 지금은 단지 러시아 마피아가 가장 활발한 조직으로 알려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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