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머뭇거리지 말고 시작해>를 읽고...1

깃또리 2006. 5. 20.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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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뭇거리지 말고 시작해>를 읽고...-1

-나를 움직인 한마디

공선옥, 곽재구, 박재동, 안도현외

샘터

2006.05.21.

 

 

 국내에 잘 알려진 문화계 인사를 비롯하여 어느 한 분야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는 50 여명 가까운 인물들을 움직인 한마디를 모은 작은 책이다.

 책 겉표지 디자인도 마음에 들었고 삽화도 곳곳에 곁들여 가벼운 기분으로 읽을 수 있는 내용이지만 어느 분야에 일가를 이룬 남보다 한 발 앞서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글이어서 책을 읽다가 몇 번이나 책장을 덮고 자신을 뒤돌아 보는 기회를 주는 좋은 책이었다.

 

 여러 사람들 중에서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몇 사람의 내용을 골라 적어 본다.

 

"배울 것이 남아 다시 태어난다."  -임영태:소설가

 한동안 좌절로 방황하던 시기에 티벳 밀교에 관련한 윤회사상을 설명하는 책에서 인간이 계속 태어나는 이유는 "배울 것이 남아 있어 다시 태어난다."라는 구절을 읽고 그 이후부터 윤회주의자가 되었다 한다.

 나도 언젠가 교육철학에 관한 책에서 크리크란 학자가 인간은 "교육적 동물( Homo Edutude)"이라고 정의 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배울 것이 남아 다시 태어난다는 말도 실상 비슷한 의미를 지녔다고 생각하며 깊이 음미해 볼 구절이었다.

 

"우주에서 바라다보라." -강인선: 만화창작과 교수

 어릴적 분하고 괴로운 일이 있을 때 물리 선생님이었던 아버지가 <우주의 역사>라는 원색 도감을 펼쳐 놓고 "우주의 나이로 보면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스치듯 지나가는 찰나에 불과한 거다."라고 말하면서 하찮고 하찮은 일에 괴로워 말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데 어렵고 힘들 때 항상 당시의 기억을 되살려 용기를 얻는다 한다.

 틀림없이 맞는 말이다 우리의 삶은 너무도 짧고 짧아 후회하고 분하게 생각할 시간이 없다 지나간 과거에 집착하기 보다 현재와 미래를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나를 기관단총처럼 써먹게." -안도현: 소설가

 노만 베쑨이란 사람은 캐나다 의사로 스페인의 반제국주의 투쟁과 중국의 신민주주의 혁명을 돕는 일에 자신을 바친 국경을 뛰어 넘는 열혈행동주의자로 결국 부상병을 치료하다 패혈증으로 마흔아홉 나이에 죽었다 한다. <연어>로 잘 알려진 작가 안도현은 한 때 해직교사로 힘든 시절을 보냈다 한다. 그의 책에 나오는 말이 바로 "나를 기관단총처럼 써먹어라."였다 한다. 당시 그는 <닥터 노만 베쑨>에 나오는 이 한마디에 깊은 감명을 받아 다시 일어서는 용기와 의욕을 가졌으며 지금도 어려운 일에 부딪치면 아직도 이 글귀를 생각해 내고 마음을 가다듬는다고 한다.

 

"큰 열매를 맺는 꽃은 천천히 핀다." -이순원: 소설가

 강릉 출신인 작가는 초등학교 시절 백일장에 번번이 떨어졌는데 어린 제자에게 이 한마디를 들려준 선생님의 말에 다시 용기를 얻어 10년 동안 신춘문예에 낙방을 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아 결국 늦은 나이에 등단하여 지금은 <압구정동에는 비상구가 없다><은비령>등의 소설로 인기 작가가 되었다 한다.

믿음에 대한 신념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나타내는 부분이다.

 

"천천히, 그러나 끊임없이" - 마종기: 의사, 시인

 마종기의 책이나 시를 읽은 적은 없지만 이름을 많이 보았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마종기의 글을 읽고 퍽 놀랐다. 차라리 그의 글 일부를 그대로 옮겨 보는 것이 그와 그의 삶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의대를 졸업하고 군의관 생활을 끝내자마자 나는 의사 수련을 위해 고국을 떠났다. 5년간의 수련 과정을 무사히 끝내고 전문의 시험에 합격한 후 내가 존경하던 교수님을 따라 작은 의과 대학의 조교수로 부임했다. 나는 그 2년째부터 의대생들의 인기 교수 명단에 오르기 시작했다. 월급은 그저 그랬지만 내 논문도 전공 학회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나는 낮에는 의대 학생들과 환자들 사이에서 바뻣고 밤에는 실험실의 개들과 흰 쥐들 사이에서 바빴다.

 어떻게 세월이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바쁜 생활을 하다가 미국에 온 지 꼭 10년이 되는 해에 나는 의대 졸업식장에서 졸업반 학생들이 뽑는 '이 해의 최고 교수'로 선정되어 '황금 사과'라고 불리우는 상을 받게 되었다.(중략)

 

 그 사흘째 밤 저녁을 먹고 모텔로 돌아온 나는 침대에 혼자 누워 들고 온 책 중에 하나를 생각 없이 펼쳐 들고 읽기 시작했다. 화가 반 고흐의 동생 테오 등에게 쓴 편지들을 모은 책이었다. 조그만 문고판의 제목은 <반 고흐의 편지>였던 것 같다.

 엉뚱하게도 나는 반 고흐가 나 만큼 불쌍하구나 하는 기분으로 책을 읽어 나가다가 갑자기 한 곳에서 읽기를 멈추었다. 멈춤과 동시에 누가 내 머리를 아프게 때리는 것 같았다. 나는 막 읽은 구절을 다시읽어 보았다.

"천천히, 그러나 끊임없이."

 

 결국 마종기씨는 의사로써 최선을 다해 훌륭한 의사이면서 꾸준히 시와 산문을 써 작가로써도 손색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누구나 평생 꾸준히 한다면 어떤 것일지라도 자신의 희망을 이룰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긴 이야기 였다. 특히 나도 오래 전에 읽었던 <반 고흐의 편지>에 대한 책 이야기가 나와 반가웠다. 

 

 "크나큰 절망이 결의로 변해 간다." -김명곤: 영화 배우, 전 국립극장 극장장,  현 문화공보부 장관

 영화 <서편제>의 주연배우로 일반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여 국립극장 극장장에 취임하여 행정가로도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였고 올해엔 일약 장관에 발탁된 특이한 경험을 지닌 인물이다.

 배우 출신답게 그는 스웨덴의 세계적 영화감독인 잉마르 베리만의 일기에서 한 예술가가 고통과 좌절에서 결국 얻어낸 의미심장한 한 구절을 항상 삶의 지표로 삼고 있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항상 좋은 일만 이루어지는게 아니다 내리막 길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듯 우리 인생길에도 힘에 부치는 언덕길을 올라야 할 때가 있다. 절망이 밀려 올 때 어떤 결의로 힘든 세상을 헤쳐나가느냐가 중요한 일이며 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일이다.

 

"얼른 와, 기가리고 있을게" -곽재구: 시인 

 나는 곽재구의 시도 좋아하지만 그가 쓴 예술가들의 자취를 더듬어 쓴 <예술기행>을 무척 인상 깊게 읽었으며 <포구기행>도 좋아하는 책이었다. 그러나 그가 살아온 과정이나 가족사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그가 소년시절에 먼 친척 집에서 더부살이와 집단시설에서 혹독한 원장 밑에서 고통을 받다 도망치기도 하고 생면부지의 집에서 꼴 머슴까지 3년간 살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런 떠돌이 생활에서 자연히 그는 따뜻한 가족 사랑이 그리웠고 밤마다 한 소녀의 "얼른 와, 기다리고 있을게."라는 말을 듣는 꿈을 꾸웠고 첫키스를 하였으며 몽정을 하였다고 한다.

 

 언제부터인가 더 이상 그 애의 꿈을 꾸지 않지만 그 무렵부터 그의 생에서 사막지대가 펼쳐지고 있었는지 모른다고 한다.

 한 인간에게 가족의 의미와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꽃은 단지 스스로 필 뿐이야." -전진삼: 건축비평가, 건축과 교수

 건축설계사무소 <공간>은 우리나라 건축계에서 김중업씨와 함께 한동안  두 기둥으로 불리웠던 김수근씨의 사무실 이름이다.

 나는 1984년에서 1986년까지 그 사무소에서 설계한 건물을 시공하게 되어 원서동에 있는 한국 10대 현대건물의 하나라는 공간사옥에 방문하기도 하고 설계 담당자도 만날 기회가 있었으며 1986년 암으로 타계한 김수근씨의 서울대학교에 차려진 빈소를 들러 조문하기도 하였다.

 전진삼씨는 바로 공간 사무실에서 발간하던 종합예술지 <공간>의 발행인으로 일하면서 건축가 장세양씨에 대한 이야기를 적고 있다. 나도 장세양씨를 몇 번 만나기도 하였는데 결국 술을 좋아하던  그도 40을 조금 넘긴 나이에 일찍 세상을 떠났다.

  장세양씨가 전진삼씨에게 한 말이 "밤세워 꽃은 피고, 아침에 일어나 처음 그 꽃을 발견한 사람은 읊조리겠지. '아, 아! 나를 위해 피어난 꽃이여! 아름다워라.' 그건 착각이야. 꽃은 누구를 위해 피는 것이 아니라 오롯이 꽃이란 놈의 자기 리듬을 타고 피어날 뿐이야."라고 했다 한다.

 

 결국 장세양씨가 한 말은 당시 전진삼씨와 공간지 편집 방향에 대한 이견에서 나온 이야기지만 사실 이 말은 꼭 이런 경우에만 해당되는 말이라기 보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은 시기가 도래하면 이루어지고 억지로 되는 일은 없다고 하는 말과도 맥을 같이 한다.

 

"머뭇거리지 말고 시작해"-이희재:만화가

수영을 잘하기 전에는 수영장에 들어가지 않겠다거나 배신이 두려워 친구를 사귀지 않겠으며 이별이 두려워 사랑을 하지 않겠다는 말은 성립이 되지 않듯이 우물쭈물하지 말고 마음 먹은 걸 시작해 보라는 말이다.

머릿속의 생각보다 행동으로 실천하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자주 느끼는 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