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을 읽고...

깃또리 2006. 5. 14. 09:47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을 읽고...

죠반니노 과레스끼

이승수 옮김

서교출판사

2006. 5. 13.

 

 

 

 책 한권을 읽는 일도 우연한 선택과 결정에서 이루어진다.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은 오래 전에 여러번 책 제목을 보아왔지만 선뜻 읽고 싶은 생각이 없었는데 얼마전 아들녀석이 읽고 서가에 꽂아 두어서 읽게 되었다.

 

 조금 읽어 보니 이탈리아라는 지역적 차이는 둘째로 소설의 시대적, 정치적 상황이 지금 우리와 너무 달라 마음에 썩 와 닿지 않았지만 한동안 Best Seller였던 책이라서 우리나라 독자들이 어느 부분에서 이 책에 마음이 끌렸는지 궁금하여 끝까지 읽었다.

 소설속 주인공 돈 까밀로 신부의 용기와 불의에 앞뒤 가리지 않고 저돌적인 행동으로 보여주는 의협심이 아마도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지 않았나 생각되었다.

 

 저자 죠반니는 북부 이탈리아 폰타넬리아에서 태어나 법학을 전공하고 신문사 기자를 시작으로 광고카피라이터, 만화가, 교사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다 우연히 신문에 <돈 까밀로 시리즈>를 자신이 직접 일러스트까지 맡아 연재하여 폭발적 인기를 얻어 일약 유명 인사가 되었다 한다.

 

 소설이 이루어지는 지역적 배경은 실제 이탈리아 북부에 거미줄 같은 지류를 거느리고 서쪽에서 동쪽으로 유유히 흘러 아드리아해로 흘러드는 뽀강을 끼고 있는 작은 농촌마을이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Po 뽀강을 이야기 하면서 이 소설의 대강을 짐작케하는 의미심장한 다음과 같은 글귀를 적고 있다.

 "강과 길은 견줄 수 없다. 길은 역사에 속하고 강은 지리에 속하니까. 그런데 왜 이런 비교를 하는 걸까? 역사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지리적 환경에 순순히 따를 수밖에 없듯 사람들은 역사에 순종하게 된다. 결국 역사는 지리적 환경의 영향 안에 있다."

그렇다 역사는 환경의 지배아래서 이루어지고 인간도 결국 환경의 동물이란 말이 새삼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소설에는 세사람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데 첫째가 돈 까밀로 신부이고, 공산당원이자 무식한 읍장 뻬뽀네 그리고 예수님이다. 물론 2000년 전에 십자가형을 받아 죽은 예수님은 아니고 성당에서 돈 까밀로와 어려운 일을 함께 상의하고 잘못에 야단도 치고 가끔 의견차이로 티격태격하기도 하는 살아 있는 예수님이다.

 돈 까밀로 신부가 자신을 놀리는 낙서로 인해 시작된 동네 공산당 사람들과 싸움에서 너무 과격한 대응으로 주교의 지시로 산골 작은 성당으로 쫒겨나고 새로온 젊은 신부가 대신 성당에 부임하게 된다. 새 신부는 자기 방식으로 일을 하는데 이 부분에서 평범하지만 인간의 특성을 잘 드러내는 대목이 특히 내 눈길을 끌었다.

 "우리네 인간이란 다른 사람의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어도 필요한 자신의 습성을 버릴 수 없는 존재다. 마치 호텔에서 하룻밤 묵을 때에도 왼쪽에 있는 탁자를 오른쪽으로 옮겨놓고 오른쪽에 있는 의자를 왼쪽으로 옮겨 놓은려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인간은 자신만의 미학과 균형 감각, 질량과 색채 감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슬리는 불균형을 바로잡지 않으면 몹시 불편해 한다." 

 맞는 말이다. 물질 문명의 풍요 속에 더욱 인간의 개성이 존중되고 각자의 취향이 우선되는 사회이기 때문에 세상은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소제목 <종>이란 부분에서 돈 까밀로 신부가 새 종 젤뜨루데를 만들려는데 큰돈을 기부하겠다는 부인을 위애 초를 사러가러 하자 예수님이 이렇게 타이른다.

"그 초는 쥬세뻬나 부인에게 돈을 벌게 해준 중개인한테나 켜줘라. 나는 사업 중개인이 아니노라."

이 말을 듣고 돈 까밀로신부는 금방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빌며 예수님께 이렇게 말한다.

 "제가 치는 종은 만인의 행복을 위해 깨끗한 종이어야 합니다. 젤뜨루데의 종소리를 다시 듣지 못하고 죽는 한이 있어도 말입니다."

 

 <옹고집 영감>부분에서 무신론자로 성당을 무척 싫어하는 마굿지아 영감과 돈 까밀로신부가 신경전을 펼치는데 여기서 예수님의 입을 빌려 정치인에 대한 신랄한 풍자가 나온다.

"정치가 관여하면 말도 안되는 얘기가 가능한 법이다. 전쟁터에선 조금 전까지 서로 죽이려 했던 사람들일지라도 적을 용서하고 빵도 같이 나눠먹을 수 있다. 하지만 정치판에선 말 한 마디 때문에 정적들을 죽이고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아버지가 아들을 죽인다."

결국 이탈리아나 멀리 떨어진 아시아의 한국의 정치인의 속성은 다름이 없다는 것을... 특히 어느 분야보다 후진성을 탈피하지 못하는 오늘날의 우리 정치현실에 이 대목이 더욱 크게 보이는 것은 비단 나 뿐만이 아닐거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이 소설은 인간사회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갈등을 어떻게 조화롭게 처리하는가를 보여주면서 인간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소설 전반에서 드러내고 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