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딸아, 나 괜찮은 엄마지?>를 읽고...

깃또리 2006. 5. 16. 20:45

딸아, 나 괜찮은 엄마지? 를 읽고...

제3의 인생, 그 출발선에서 -딸에게 보내는 메시지

김수자 수필집

한국문화사

2006.5. 14.

 

 

 

 한가족이 거처하는 가정집에서 하늘로 높이 솟은 고층빌딩을 막론하고 모든 건물에는 주인인 건축주, 건축가, 시공자 그리고 감리자가 있다. 이를 다시 바꿔 발주자, 설계자, 시공기술자, 감리원이란 개별 호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나는 그 동안 시공기술자로 20년 넘게 일하다 몇 년부터 건축 감리원으로 일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일반인들에게 덜 알려진 감리원이 하는 일이란 건축공사의  전문지식이 부족한 건축주를 대신하여 건축주, 설계회사, 건설회사의 의견을 조율하고 확인하며 공사가 설계도와 같이 이루어지는가를 감시, 감독하여 목적으로 하는 건물이 완성되도록 한다.

 

 책을 손에 넣는 일도 자신이 직접 골라서 사보는 방법, 다른 사람이 선물로 주어 읽는 경우, 도서관에서 서가에 꽂힌 책 중에서 골라 빌려 보는 경우등 다양하다. 제일 기분 좋은건 어느 선물보다 언젠가 보려고 마음 먹은 책이나 마음에 드는 책을 주변 사람이 선물로 주어 읽게 되면 더욱 값 있게 생각한다. 그러나 책 선물이라고 모두 기분 좋은건 아니며 자신의 관심분야의 책이면 좋은데 엉뚱하면 서가에 꽂아두는 장식품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바로 그렇다.

 사실 솔직히 고백하면 내 방 서가에는 대단히 내용이 훌륭하여 수 년전 무슨 출판문화대상을 받은 장정도 호화로운 15권으로 된 한질의 책을 선물로 받아 꽂아 놓았는데 몇 년이 지나도록 한권도 보지 못하고 지금도 눈길만 보내고 있다.-언젠가 보게 될 날이 오겠지만......

 

 이렇게 갑자기 건축에 관한 이야기와 책 구득에 대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 놓는 이유는 다름아니라 며칠전 <딸아, 나 괜찮은 엄마지?>라는 제목의 수필집을 손에 넣은 경위를 말하려고 한다.

 

 내가 일하고 있는 감리원 사무실은 앞서 말한바와 같이 업무의 성격상 시공회사 직원들과 수시로 얼굴을 맞대고 일하는데, 이제 2년이란 짧지 않은 세월이 지나다 보니 대부분 서로 성격이나 취향도 다 알고 지내는 형편이다. 그 중에는 전남 순천출신으로 서울의 명문대학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갸냘픈 체구의 황시원이라는 여성기사가 있었다.

 들리는 얘기로 어머니께서 책도 몇권 출판하였다고 하여 처음엔 어느 대학 교수거나 아니면 지방에서 활동하는 시인이나 소설가인가 했다.   그런데 요 며칠전에 황기사가 다른 현장으로 발령을 받아 떠난다하여 인사를 하러왔다. 기왕이면 얼마 남지 않은 준공기일까지 함께 일을 마치고 헤어졌더라면 본인은 물론 우리 모두 보람이 있을거라는 생각을 하며 아쉬워했는데 인사를 마치고 우리 사무실 직원 모두에게 책 한권씩을 선물하고 갔다.

바로 이 책이 황기사의 어머님께서 쓰신 책 <딸아, 나 괜찮은 엄마지?>였다.

 

 다른 때 같으면 그날 바로 펼쳐 보았을텐데 요즘 바쁜 탓으로 토요일 퇴근 전철속에서 조금 읽고 일요일인 오늘 오전에 다 읽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20여년 전쯤부터 수필이라면 심심파적으로 자신의 신상담을 정리하여 수필집이라 출판하는 경우가 많아서 나는 처음에 그저 그런 종류의 책이려니 하였으나 그래도 일단 가까이 지내던 사람의 어머니가 쓴 책이기도 하여 자세히 읽어보니 내가  처음 생각했던 것과 사뭇 다른 내용이라는 것을 알았다.

 

 책 내용은 황기사의 어머니인 김수자씨가 결혼시기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의 삶을 솔직하고 꾸밈없이 적었고 책 뒷부분에는 1990년 제26회 신동아에서 공모한 논픽션 최우수작으로 뽑힌 <우리들의 고향>이 마지막에 실렸다.

 일반적으로 수필집이란게 자신의 삶을 미화하고 어두운면을 되도록 감추는게 대부분인데 김수자씨의 글은 조금도 부끄럼없이 자신의 지난 고단한 생활을 꾸밈없이 드러내 놓았으며 조금도 거북해보이지 않은 참으로 건강하고 담백한 농촌 삶을 그리고 있다.

 

 서문격인 '책을 펴내며'에 "프랑스에서는 30세까지를 자식으로서 인생-제1의 인생, 55세까지를 부모로서의 인생-제2의 인생 그리고 55세 이후부터가 제3의 인생이라" 하여 비로소 자신의 진정한 삶의 기간이라는 말을 인용하였는데 수긍이 가는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하였다.

아마 김수자씨가 이 글을 쓴 시기가 막 55세에 접어 들었던 시기였던 것 같다.

 

 제 1부 눈꽃을 보았느냐?에서 소제목인 <네 둥지를 찾았느냐?>-딸에게 보내는 편지(고대신문에 게제했던 글)-에는 딸이며 우리와 같이 일했던 황시원에게 보낸 편지형식의 글인데 당시 황시원은 학생신분이었기 때문에 학교 입구에서 찍은 모습의 사진이 실려 항상 보던 얼굴이 책에 나오니 색다른 느낌을 들었다.

 김수자씨는 부산 출신이지만 축산대학을 나온 신랑을 따라 전남 순천으로 시집을 오게 되며 혼수감으로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고 작업복으로 몸빼 두벌을 넣어 가지고 왔으며 신혼여행은 제주도로 갔다 한다.

 다른 사람처럼 제주도에서 신혼의 낭만을 즐겼던게 아니고 이시돌 목장을 비롯하여 여러 축산목장을 견학하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 마자 몸빼로 갈아 입고 돼지우리에 들어갔다 한다. 27살에 결혼하여 30년동안 돼지를 길러 아들, 딸을 학교에 보내고 그 동안 틈틈이 글을 쓰기도 하고 방송국에 나가 프로그램을 진행을 하는등 힘든 노동 속에서도 항상 긍정적인 사고와 희망을 품고 삶을 꾸려 나간 것 같다.

 

 <돼지꿈>편에서는 돼지를 오래 키우다 보니 자연히 알게 된 돼지의 여러가지 습성과 돼지에 얽힌 재미 있는 이야기를 적었고 특히 돼지를 멸시하는 말을 들으면 열이 오른다는 대목에서는 나오는 웃음을 참기 힘들었으며 이유없이 돼지를 천대하던 사람들도 돼지꿈을 꾸고 싶다거나 고층건물 기공식, 상량식 고사상에 돼지머리를 올려 놓고 넙죽 절을 하는 일은 얄미운 일이라고 적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인공위성 무궁화1호가 실패했던 것이 돼지머리고사를 지내지 않았다고 소문이 나돌아 다음번 미국의 항공우주국에서 무궁화호를 쏘아 올릴 땐 돼지머리고사를 지냈다는 이야기도 흥미있게 읽었다.

 

 남편이 축협조합장으로 일한 탓에 더욱 가사와 돼지 키우는 일에 힘이 들었을텐데 그래도 주변 사람들의 요청을 물리치지 못하고 남편이 재선에 출마하도록 했던 대목은 안쓰럽기까지 하였다.

그 동안 돼지를 키우면서 구제역이라든가 돼지고기 수입으로 인한 가격 폭락등 여러차례 큰 시련의 고비를 겪었던 이야기는 우리나라의 전 분야가 대개 그러하긴 해도 특히 농축산물의 가격 불안과 수급의 불안정이 얼마나 농촌사람들의 근로 의욕을 잃게 하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깨를 볶다가>에서 '여성농업경영자 과정' 해외연수로 중국을 다녀 오게 되어 원래 목적인 연수는 간데 없고 관광만 해서 실망을 하였으며 돌아오는 길에는 가격이 싸다하여 남들과 함께 참깨를 사가지고 온 일에 대해 후회하는 대목은 한푼이라도 생활비를 아끼려는 주부의 솔직한 심정과 함께 글의 진실성을 돋보이게 하는 부분이었다.

 김수미씨의 말대로 이제 양가 부모님도 돌아가시고 자식들도 장성하여 제 몫을 다하고 있어 이제부터 마음과 몸을 여유롭게 하여 여학생시절부터 좋아하던 글쓰기와 함께 꽃밭 가꾸며 제 3의 인생을 아름답게 펼쳐나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우리에게 어머니의 책을 선물한 딸 황시원씨에게도 한마디 덧붙인다면 어머니 김수자씨는 괜찮은 엄마를 뛰어넘어 훌륭하고 위대한 어머니라고 말해주고 싶으며 어디에 가서 일하더래도 항상 건강하고 앞날에 언제나 행운이 따르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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