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콘스탄츠 Constanz

깃또리 2006. 5. 5. 10:58

아우토반에서 촬영한 산위의 고성

 

콘스탄츠 시내의 호텔 창문으로 내다본 모습

 

건물의 외관이 호화로운 모습

 

재미있는 벽화

 

대성당 내부의 아름다운 조각들...

 

대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

 

휘센의 조용하고 아름다운 골목길.

 

백조의 성 입장권 매표소에서 바라본 백조의 성 모습

 

백조의 성에서 바라본 계곡에 걸친 마리엔 다리.

 

백조의 성 바닥에 깔린 정교한 모자익 타일.

 

콘스탄츠 Constantz   둘째 날~셋째 날

2006.03.21.~22

 

 내가 서울에서 세웠던 일정엔 원래 하이델베르크에서 1박하고 수투트가르트 그리고 Ulm 울름과 Ausburg 옥스버그를 거친 다음 Mu"nchen 뮌헨에서 두번째 밤을 지내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일행 모두  Neuschwanstein 노이슈반슈테인성이 있는 F"ussen 휘센에 가 보지 않았다고 하여 좀 돌아가는 길이었으나 유럽에서 제일 크다는 Boden-see 보덴호수 (콘스탄츠 호수 Lake of Constantz) 아래 스위스에 접한 국경도시 콘스탄츠까지 내려가 하룻밤을 자기로 하였다.

 처음 가는 곳이지만 호수변에 알프스가 가까워 아름다운 길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작용하였다. 그러나 수투트가르트 미술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내려 가는 길에 일행중 하나가 디지틀 카메라를 잃어버려 한시간 길을 되집어 우리가 잠시 쉬었던 곳을 다시 가 보느라 시간을 소비하여 곧 저녁을 맞아 길이 아름답고 어쩌고 따질 겨를이 없이 어둑한 저녁길을 달렸다.

 

 콘스탄츠를 찾느라 길을 헤메고 겨우 도심지에 들어서서 호텔을 알아보느라 이리저리 돌아다녔는데 여기 저기에서 Zentrum 이란 표지가 나와 대체 저 말이 무슨 뜻인가 했는데 알아 보니 영어의 Center 에 해당하는 독일어로 시내 중심지 방향이라는 말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오스트리아에서는 Centrum 으로 표기 하였다 하긴 이 센트륨이란 말도 서울 집 식탁위에 놓여 매일 한알씩 먹는 비타민 이름이기도 하였다. 아는게 힘이라고 다른 나라에 가더래도 그 나라 기초적인 말을 알았을 때와 몰랐을 때는 사뭇 다르다는 걸 알았다.

 

 배가 고파 어느 행인에게 추천을 받아 작은 식당에 들어가 맥주와 저녁 식사를 하고 식당 주인이 알려준 Mercure hotel 을 찾아 가방을 푼 시간은 열시가 다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호텔 근처를 돌아다녔다.

호텔 바로 앞은 기차역이었고 200여 미터를 걸어가자 콘스탄츠호수가 눈 앞에 나타났으며 몇 백미터만 가면 스위스라고 하였으나 시간이 없어 가 보지 못하였다.

낮게 드리운 구름으로 시계는 짧았지만 한가로이 떠다니는 물새들과 상쾌한 아침 공기는 기분을 가볍게 하였다.

호수 반대편으로 도시의 골목길을 돌아 다시 호텔로 돌아와 일행들과 아침 식사를 하고 다음 일정을 상의하고 난 후에 일행들과 출근길로 제법 부산해진 시내 도로를 따라 호수로 다시 나갔다.

 

 콘스탄츠는 4세기 중반 로마제국 황제 콘스탄츠 클로레가 건설한 도시로 중세 이래 남부 독일의 종교도시로 종교관련 회의가 자주 열렸던 역사적인 도시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으로 도시 곳곳에 성당과 교회가 보이는데 이 작은 도시에 성당 하나면 될텐데 큰 성당 바로 옆에 또 다른 성당이 있는게 이상하다고 하였다. 당시에는 자신의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다리를 건설하거나 도로를 신설하고 큰 성당을 짓는 방법이었다는 걸 알면 조금 이해가 쉬워진다. 하기는 지금도 자신의 임기 중에 이름을 남길만한 건설공사를 추진하는 것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욕심은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호수 저 편에 커다란 조각상이 서 있는것이 보였다. 멀리 봐서도 알수있게 키가 큰 미인이었다. 머리위엔 풀잎처럼 너울거리는 기다란 장식을 얹고 양팔을 높이 처들고 양손엔 무엇을 올려 놓고 있었다. 일행들과 천천히 걸으며 이야기하면서 주변을 구경했다. 
우리는 조각상 가까이 갔다. 조각상은 목제 다리를 건너 물위에 세워져 한결 더 운치가 있어 보였다. 다리위에 올라 바라본 조각상의 거대함은 나를 깜짝 놀라고 위압감을 느끼게 했다. 나를 다시 놀라게 한것은 손위에 든것이 사람 형상 이었고 또 놀란것은 그것이 왕과 교회 신부의 조각상 이라는데 더욱 놀랐다. 초라한 모습의 왕과 신부는 다리를 너덜거리며 여자의 손에 얹혀 높이 들려있었다.
 그 조각상의 유래는 어느 시대인지 따져보진 않았지만 콘스탄츠라는 기생이 있었다 한다. 좋게말해 사교계의 여왕이었는데 모든 남성들이 그여자와 같이 놀고 싶어하는 대단한 미인이요 대단한 수완가로 결국 왕과 신부도 손에 쥐고 놀았단다. 그것을 풍자해 어느 대단한 조각가의 손에의해
작품이 만들어 졌는데 200여년전 그것을 세우려할 때 사회적으로 특히 종교계에서 논란이 많았지만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서 있다 한다.

 

 다시 호수 반대편의 시내 골목길을 들어 서자 Mu"nster  대성당이 나타났다. 이 성당은 11세기부터 17세기에 걸쳐 교회 통일의 상징으로 지어졌는데 지금 일부는 보수 공사하느라 비계가 설치되었고 공사 관계자가 이른 시간인데 도면을 들고 부산히 움직이고 있었다. 어느 나라든 건설관련 기술자는 다른 직종의 사람들 보다 아침 일찍 일을 시작하는건 같은가 보다고 생각했다.

성당 내부를 들어 갔는데 그 웅장하고 장엄함에 압도되어 한동안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사전 조사를 하지 않아 겨우 성당 겉모습과 내부를 수박 겉핱기 식으로 보고 나오는 수 밖에 없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우리들은 길거리와 오래 된 건물들과 재미있는 벽화를 구경하고 휘센을 거쳐 짤쯔부르크까지 가는 길이 멀어 아쉬움을 남기고 차에 올라 호수를 끼고 북쪽 길을 택하여 휘센을 향하였다. 도중에 들른 도로변의 작은 간이 식당겸 휴게실에서 차를 마시는데 주인 여자가 성격이 활달하여 우리가 들고 있는 디지틀 카메라에 관심을 가져 돌아가며 함께 사진을 찍었다. 시골 분위기의 40대 후반의 여성인데 스스럼 없이 일행의 어께에 팔을 올리기도 하고 포즈를 취하여 조금 당황하였으나 사진을 꼭 보내주겠다고 약속하고 주소가 적힌 카드를 받아들었다.

kiosd-Gaststa"tte "Wo"lfele" neue B 31 zw. Uhld.-Meersberg lnh.: D. Sautter.Tel. 07556-6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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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센 Fu"ssen

 

 오후 1시경에 도착한 휘센은 아주 작은 동네였다. 아마 노이슈반슈테인성의 관광객으로 그나마 형성된 도시임에 틀림없었다.

 우리는 일단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주차를 하고 가게 앞을 청소하는 나이 지긋한 여성에게 식당을 추천 받았다. 작은 식당이었지만 뷔페스타일로 음식맛도 그런데로 괜찮았고 생맥주 맛고 좋았다. 마을에서 자동차로 5분거리에 노이슈반슈테인성 입장 매표소가 있었다. 나는 10여년전 독일에서 스위스 인스부르크가는 길에 멀리서 바라보고 지나간 곳인데 이제는 막상 가까이 보니 그리 크지도 않고 생각보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에 조금 멀리서 보고 노이슈반슈테인성이 아니라고 일행에게 말하기도 했는데  실수를 한셈이었다. 매표소에서 성까지 걷거나 이륜마차를 이용하는데 우리 일행은 마차를 탓다.

 앞 뒤 열두명을 태우고 제법 가파른 길을 힘들게 가뿐 숨을 몰아 쉬며 뚜벅뚜벅 걷는 말들이 애처로워 나는 도중에 마차에서 내려 걸어 올라갔는데 아마 일행들은 내가 뭔가 기분 상한 일로 마차에서 내렸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막상 성 입구에 다다르자 아래에서 본 것과 달리 섬세함은 부족하였지만 규모가 대단하였다.

바이에른 국왕이었던 루드비히 2세는 일찍 결혼하였으나 왕비가 바로 사망하여 다시는 결혼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내며 1869년에서 1886년 즉, 17년간 국고를 탕진해가며 성을 건설하였으나 결국 자신은 100 일정도 성에서 생활하다가 슈탈른베르크호수에서 의문의 죽음으로 생을 마감하고 당시 정치적으로 대결관계에 있던 프로이센에게 국권을 상실하였다는 아픔을 간직한 성은 오늘도 많은 관광객의 발길을 붙잡고 있었다. 국왕은 특히 바그너의 음악을 광적으로 좋아하여 바그너를 성으로 초청하고 음악회도 개최하였다하며 로엔그린, 팔시팔등 수많은 오페라에 나오는 명장면을 벽화로 그리게 하였다. 그는 또한 독서열도 대단하여 하루에 두권 이상의 책을 읽었다 한다.

 이 성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미국의 디즈니랜드의 백조의 성 모델이었고 만화영화에서 환상의 성으로 비춰져 세계의 어린이들에게 소개된 덕분이라 한다.

 

 사실 Neuschwanstein 노이슈반슈테인이라는 말은 반석위에 세워진 새로운 백조의 성 이라는 뜻이며 우리는 영어를 쓰는 가이드를 따라 내부 시설 일부를 돌아 보았는데 엄청난 대리석과 사암의 사용 그리고 성의 부지가 고지대였기 때문에 어떻게 건설자재를 운반하였는지 당시의 건설장비를 미루어 볼때 어떻게 이렇게 건설했는지 궁금하기도 하였다.

사실 백조의 성을 제대로 보려면 성 북쪽으로 난 길로 20분 걸어가면 계곡사이에 놓인 Marien 다리를 찾아가면 좋은데 우리는 시간이 맞지 않아 무료하게 근 한시간이나 성 입장 전에 무료하게 기다리면서도 다리를 성안에서 바라보기만 하였다.

 아무튼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 자신의 죽음이 어느 때 인지도 모르면서 웅장한 궁정을 짓고도 자신은 이름만 남기고 간 걸 보면 우리의 삶도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우리는 성을 구경하고 북쪽 뮌헨으로 올라 갔다가 다시 남동쪽으로 내려와 짤즈부르크를 향하는 여정을 시작하였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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