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짤츠부르크 Salzburg

깃또리 2006. 5. 5. 10:56

가장 아름다운 가게 간판이 걸린 골목길 게드레이드

 

문을 연지 300년이 된 커피 집

 

동성애 가족이라는 표시인 레인보우 깃발이 걸린 모습

 

도시 한가운데 공동묘지에 세워진 아름다운 십자가및 묘지석들

 

게드레이드 골목 중간쯤 있는 모짜르트 생가 건물

 

모짜르트 쵸콜릿을 파는 오래된 가게

 

슈베르트의 가곡 보리수의 배경이라는 호헨짤츠부르크성 안의 오래된 우물?

 

유명한 음악가들이 공부하였다는 모짜르테움

 

중국 음식점 복락반점의 야간 모습

 

300년 전에 문을 연 커피집에서 마신 커피...

 

 

짤쯔부르크 Salzburg 세째 날~여섯째 날

2006.03.22~24

 

 

 

 아침에 눈을 뜨고 창밖을 내다 보니 산허리에 걸쳐 있던 구름도 말끔히 걷히고 오늘은 좋은 날씨가 되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카메라만 들고 이른 아침 시내 중심거리를 지나 짤쯔강 쪽으로 20여분 걸어 갔다. 강은 제법 경쾌한 물소리를 내며 세차게 흐르고 유럽의 대부분 강이 그러하듯 석회석이 녹아 물빛은 맑지 않았지만 청정호수에서 흘러내리니 아마 깨끗하리라 생각했다. 강폭은 약 60 미터 정도였고 강 양안은 그동안 내린 눈이 아직 녹지 않고 그대로 쌓여 조심스럽게 눈위를 걸어 강물에 손을 담가 보니 아주 차가웠다. 눈 덮인 곳을 벗어나 강을 따라 곧게 이어진 산책로를 따라 상류쪽으로 한참을 가니 폭이 4미터 정도 되는 목재 다리가 나타났고 그제서야 개를 데리고 아침 산책을 하는 아가씨 그리고 조깅을 하는 아저씨가 스쳐 지나갔다.

 

 아침 식사를 위해 일행이 기다릴것 같아 부지런히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종탑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아직 아침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한적한 주택가를 지나 호텔로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15분마다 종소리를 울리는 것은 유럽 시골동네의 오랜 관습이라고 어디서 들은 기억이 난다. 호텔 식당 창가에서 내다본 하늘은 맑고 독일 땅을 밟은후 가장 화창한 날씨여서 어디를 가도 황홀한 하루가 되리라 생각되었다. 이런 날 케이블카를 타고 1600미터가 넘는다는 주변 산 정상에 올라 눈을 인 알프스의 끝자락 산들을 바라 보면 기가 막힐 것 같아 식당에서 만나기로 한 가이드를 조금 기다리라 하고 산에 오르자 했더니 일행들은 다음 기회로 미루자 하여 그냥 짤쯔부르크 시내로 향했다.

 지금 돌아와 생각해 보니 세상 일이란게 미루어 되는 일이 아닌데 내가 조금 고집을 부려 케이블카를 타고 눈 덮인 산봉우리를  올라가 보지 못한게 후회스럽다.

 

 바드 라이헨할에서 출발하여 시내까지는 20분쯤 걸리는데 짤츠부르크시내를 흐르는 짤츠강이 오늘은 하늘 빛을 받아서 인지 조금 푸른빛을 띄고 있었다. 중세시대에는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금값에 견줄만큼 소금이 귀하였으며 그래서 귀족이나 부호의 집 음식을 부를 과시하기 위해 소금을 충분히 사용한 짠 음식이 자랑이기도 하였다 한다.  수 억년 전에 이곳이 바다여서 곳곳에 암염광산이 있고 여기서 채취한 소금의 운반을 바로 짤츠강을 이용하였으며 그래서 우리말로 소금강이란 명칭이 붙었으며 도시 자체도 결국 소금+성, Salz+Burg=소금도시가 되었다 한다. 품삯을 소금으로 주었기 때문에 영어의 Salery 급료란 말도 어원을 따져가면 실은 소금이라는 말은 오래전부터 알았다. 소금의 교역과 지나가는 배들로 부터 통행료등이 원천이 되어 도시가 융성하여 많은 건물이 세워지고 문화가 꽃 피워졌다는걸 알게 되었다. 

 

 무궁화 식당 앞에서 30 중반으로 여기서 유학생활을 마치고 지금 11년째 살고 있다는 성악전공의 체격이 당당한 대구출신의 성격이 시원시원한 홍수미씨를 만났다. 오전은 교외로 오후엔 시내 관광으로 일정을 결정하고 먼저 모짜르트 어머니 생가가 있다는 시내에서 한시간 정도 걸리는 작은 마을에 도착하였다. 바로 옆은 꽤 넓은 호수였다. 모짜르트 어머니는 인물이 그리 뛰어나지 않아 시집을 못가고 있었는데 옥스버그 출신으로 짤쯔부르크의 궁정 바이올리니스트로 일하던 레오폴트 모짜르트를 눈여겨 본 역시 궁정 악사였던 모짜르트 외할아버지가 그를 사위로 삼았다 한다.

 

 다아는 바와 같이 레오폴드도 음악적 재능이 남에게 뒤떨어지지 않았지만 신동으로 일찍 두각을 나타낸 아들 아마데우스의 소질을 일찍 알아보고 그는 자신의 연주생활을 포기하고 아들 뒷바라지의 길로 나섰다. 혹자는 아버지 레오폴드의 과욕을 비난하기도 하지만 어찌 레오폴드만 나무랄 수 있을까? 모짜르트에게 다른 일을 시켰더라면 과연 그의 재능을 제대로 발휘 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흙속의 진주로 묻혀 이 세상에 아마데우스 이름을 드러내지도 못했을 수도 있지 않은가.

 

 모짜르트는 어머니 마리아를 끔직히 좋아했으나 그의 나이 23살에 세상을 떠나 깊은 슬픔에 잠기기도 했다 한다. 모짜르트 어머니 생가와 호수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나서 우리는 종교개혁자인 마루틴 루터가 탄압을 피해 은거했다는 작은 마을 Hallstatt 에 도착하였다. 호수가에 자리 잡은 작은 마을 뒤는 1000 미터가 넘는 흰눈 쌓인 고봉이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었고 그 어디쯤엔 암염광산도 있을 것이며 마을 전체가 UNESCO 가 정한 World Heritage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한다. 마을은 산비탈에 형성되어 호수를 따라 길게 이어지고 마을 중심부에는 교회가 있었는데 그 옆엔 여러 형태의 십자가와 묘비석으로 꾸며진 아담한 마을 묘지가 자리 하였고 그 옆 작은 동굴에는 세월이 지난 다음 묘지에서 파낸 두개골이 차곡차곡 쌓여 있어 보기에 좀 민망하였으나 우리와 다른 장례문화라고 이해하였다. 일행 한 사람이 대충 계산해보니 4천개 정도 된다고 하여 우리는 그의 빠른 어림셈에 놀라 웃기도 하였다. 바로 이 동네에서 루터가 숨어서 공부도 하였으며 아주 오래 전엔 여기에 키가 1미터 정도 되는 난장이들이 살던 마을이었다 한다.

 

 마을 구경을 마치고 점심시간이 되어  차로 몇분쯤 달려 만년설을 머리에 인 높은 산으로 둘러 쌓인 분지에 자리한 식당에서 우리들은 포도주 물론 나는 맥주를 곁들여 무지개 송어구이로 맛있게 점심 식사를 하고 시내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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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짤쯔부르크 시내로 돌아와 지난 밤에 보았던 게드레이드거리(내가 보기엔 골목길)을 다시 들어가 모짜르트 생가를 구경하였다. 워낙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실제 사용하던 가구들은 모두 박물관으로 보내고 볼거리가 없어 이곳이 그가 태어나고 잠시 살았던 곳이구나 하는 정도에 만족해야 했다. 구시가지를 조금 걸어서 경사 궤도차를 타고 Hohensalzburg 호헨짤쯔부르크성으로 올라 갔다.  중세시대에는 적을 막기 위해 이렇게 높은 지대에 궁성을 짓고 아래에 사는 농노들을 거느렸기 때문에 자연히 유럽에는 수천개의 성이 있다고 한다. 지금은 유지관리가 힘들어 대부분 호텔, 레스토랑으로 일부는 개인소유로 넘어 갔고 그 중 몇은 이렇게 관광객에게 개방하여 입장료를 받는다는데 호헨짤쯔부르크성도 후대에 태어난 천재 음악가 모짜르트의 덕을 톡톡히 보는셈이다. 왜냐면 막상 올라 가보니 별로 볼 것도 단지 고지대여서 한눈에 짤츠부르크시내를 내려다 볼수 있었으며 저 멀리 동서남북을 조망할 수 있어서 모짜르트 고향이라서 왔던 길이라면 입장료를 주고 관광객들이 대부분 올라와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 궁성에서 홍수미씨로부터 아주 내가 평소 상상하던 생각과 다른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는 말라버려 뚜껑을 덮은 우물과 10 여미터 떨어진 곳의 키큰 나무 한그루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의 성문, 이곳이 바로 슈베르트의 연가곡 Winterreise 겨울나그네 (사실은 겨울여행이 올바른 번역이다.)에 나오는 제 5번째곡으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보리수  The Lindenbaum(영어 The Lime Tree)의 배경이란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반신반의 하였다. 왜냐면 수 없이 보리수를 듣고 가사도 읽어 보았으며 나의 감정으로는 이렇게 돌산 위 성안에 있는 우물이라고는 상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범한 시골 마을에서 어느 가까운 성문 앞의 우물일거라는 생각과 우물 바로 곁에 있는 보리수 나무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여기 보리수 나무는 성문과 우물 중간 지점으로 각각 20 미터는 떨어져 있어 그렇다면 "성문 앞 우물가에 선 보리수"가 아니라 "성문과 우물 중간에 선 보리수"가 더 정확한 표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음악전공 그것도 성악을 전공한 안내자가 겨울나그네의 작사자를 실러라 하여 처음에 내 귀를 의심하였다. 베토벤의 제9 교향곡에 나오는 <환희의 송가>의 작가는 실러이지만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처녀와 겨울나그네는 분명 Wilhlm Mu"ller 빌헬름 뮐러 이기 때문이었다. 설마 실러와 뮐러를 혼동할까 생각하였는데......

 

 시인 빌헬름 뮐러가 33세로 요절하였고 슈베르트도 다음해 31살로 세상을 떠났느데 나는 <독일인의 사랑>을 쓴 사람이 바로 빌헬름 뮐러의 아들 막스 뮐러란 사실을  얼마 전에야 알았다. 막스 뮐러는 그리스어 연구자로 명성을 얻어 그리스인 뮐러라 불릴 정도였는데 그의 혁혁한 학문적 업적보다 단 한 편의 소설로 그의 이름이 후세에 널리 알려지고 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돌아와서 곰곰히 여러 생각을 하였다.

 첫째, 여하튼 빌헴름 뮐러도 독일인 이기에 아마 여기에 왔을 수도 있기에 홍수미씨의 이야기가 사실일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둘째, 빌헬름 뮐러가 정확한 언급을 하지 않고 죽었기 때문에 비슷한 배경을 보고 후세 사람들이 지레 짐작으로 하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보았다.

 

 꼭 한국남성에게 시집을 가겠노라던 홍수미씨에게 내가 본의 아니게 무안을 주기도 했지만 이제는 다른  관광객들에게 정확한 소개를 하리라 믿으며 좋은 한국남자 만나는 그녀의 희망이 하루 빨리 이루어지길 바란다.

 

 우리 일행은 1705년 문을 열어 이제 300년이 되었다는 Caf'e Tomaselli 에 관광객들로 자리가 없어 겨우 자리를 잡고 3.2 유로하는 Einspa"nner 한잔씩을 마시고  Bad Reichenhall 의 초콜릿 가게 보다 더 오래 된 가게라는 Doppler(1803~1853)가 세웠다는 모짜르트초콜릿을 파는 F"urst 가게 앞에서 진열장을 구경하였는데 모짜르트가 살아 생전 정말로 초콜릿을 좋아했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차로 5분 쯤 이동하여 시내 외곽에 있는 Hellbrunn 헬부른 궁전에 갔는데 이곳엔 영화 The Sound of Music에 나오는 작은 정자가 있었는데 원래 있었던 위치에서 옮겨왔을 뿐 아니라 관광객도 별로 없고 아직 겨울 끝자락이라 곳곳에 눈까지 쌓여 저녁나절의 을씨년스러운 모습에 우리는 곧 자리를 떴다.

 

 저녁 식사는 홍수미씨가 소개하여 중국식당 Happy Chinese (한문:복락반점)로 가서 중국요리와 함께 볶음밥을 먹었는데 맛이 좋았다. 원래 중국인들 식사 시간은 떠들석한데 건너편 탁자의 중국인으로 보이는 남녀 열두어명은 너무나 조용하게 식사를 하여 이상할 정도였다. 오스트리아에 오래 사는 사람들인지 아니면 중국 관광객이지만 교양 높은 사람들인지 아무튼 우리나라 사람들도 이젠 어느 나라를 가든 교양있는 처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식당 입구 벽에 낯익은 사진이 붙어 있어서 식사를 마칠 즈음 잠깐 나가 확인해 보았더니 일본의 세계적인 지휘자인 세이지 오자와였으며 너무 젊어서 마치 딸같은 부인과 함께 우리가 들른 중국 식당에서 식사하는 사진이었는데 아마 이 식당을 찾아와서 식사를 한 모양이었다.

 

 홍수미씨의 이야기에 의하면 1922년 부터 이어져온 모짜르트음악 축제 기간에는 세계 저명 음악가들이 이곳에 운집하여 길거리에서도 식당에서도 유명 음악가를 쉽게 만난다 한다. 홍수미씨의 음악에 관한 이야기는 끝이 없었는데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Mirabell 미라벨 궁전의 음악회장으로 갔다. 연주회장은 바닥과 네 벽면이 온통 대리석으로 섬세하게 치장하고 높지막한 천장엔 엄청나게 큰 샹들리에가 전기 촛불을 밝히고 있었다. 바로 이 곳에서 어린 모짜르트는 누나와 함께 국왕 앞에서 바이올린 연주 솜씨를 뽐냈다 한다. 아버지 레오폴드는 아들의 재능을 널리 알리고 수입을 위해 일찍 짤쯔부르크를 떠나 유럽 곳곳을 연주여행을 하였고 짤쯔부르크는 모짜르트에게 특별히 잘해 준일도 없지만 지금은 그의 고향이라 하여 비엔나와 함께 모짜르트를 여기저기에 내세워 그야말로 모짜르트가 없으면 금방 빛을 바랠 지경이었다.


 여기서도  나에겐 귀에 익은 연주곡이 아니어서 큰 감흥을 얻지 못하여 아쉬웠고 두 사람의 연주자 중 한사람은 홍수미씨와 사이가 나쁜 교수라 하여 그의 연주 모습을 눈여겨 보기도 하였다.  짤쯔부르크에서 세명의 유명인이 태어났다고 알려지고 있는데 모짜르트, 헤르베르트 반 캬라얀 그리고 아돌프 히틀러 이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면 아돌프는 여기서 한시간 정도 북쪽으로 올라가 독일 국경에 맞붙은 오스트리아 작은 도시 부라우나우 인데 경우에 따라서는 이곳 짤쯔부르크 태생으로 말한다 한다.


이곳은 대부분 가톨릭이었는데 아돌프 히틀러는 개신교였으며 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불가지론자였다고 한다. 어린 시절 그림에 소질이 있다고 본인이 생각하여 비엔나의 미술대학에 시험을 보았으나 면접에서 떨어져 여러가지 일을 전전하다 정치가로 성공하였는데 비엔나로 금의환향하여 한 일중에 당시의 면접교수였던 두 사람을 파면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히틀러의 그림이 발견되어 경매에 팔렸다는 신문기사를 본 적도 있다. 차라리 미술학교를 다녔더라면 수백만의 유태인을 학살하는 비극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당시의 교수들의 판단이 퍽 온당치 않았다고 생각되는 역사적 아이러니가 성립되기도 하다.

 

 물론 모짜르트와 반 캬라얀은 여기가 그의 탄생지이다. Herbert Von Carayan 헤르베르트 반 카랴안(1908.4~1987.7)을 비롯하여 많은 음악가가 공부한 모짜르테움이 밤에도 네온빛 조명을 받아 고색창연한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카랴안은 원래 조상이 그리스였으나 이곳으로 이주하여 상당한 부를 축적하여 귀족의 반열에 올랐으며 공학도인 바로 위 형을 경쟁자로 여겨 공대에 입학하였으나 적성이 맞지 않았고 피아노를 공부하였으나 재능의 부족함을 실감하고 비엔나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졸업하여 지휘자의 길을 걸어 1929년 모짜르테움 대강당에서 연주회의 지휘자로 대뷔하였다 한다.  한때 나치에 협조한 사실로 실의의 세월을 보내기도 했으나 이후 베르린 필의 상임 지휘자가 되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성공한 지휘자의 위치에 올라 부와 명예를 누리다 세상을 떠났다. 70~80년대 우리나라에 피아노가 있는 어느 집에나 대개 카랴안의 지휘하는 모습의 사진 액자가 피아노가 놓이 벽위에 걸렸던 적이 있었으며 우리집에도 한동안 그의 사진이 걸렸던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모짜르트를 좋아하지만 나는 젊은시절엔 별로 호감을 갖지 않았다. 왜냐면 그의 음악은 깊이가 없게 느껴지고 경망하다는 생각까지 하였었다. 그러나 1984년 음악상 부분을 포함하여 아카데미상 8개를 수상한 밀로스 포먼 감독의 영화 <Amadeus 아마데우스>를 보고 나의 이런 생각은 바뀌었다. 아마 그의 삶이 고단하였고 그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어려운 생활을 하였기 때문인지 모짜르트의 음악은 가벼운듯하나 실은 그의 음악 속엔 어딘가 깊은 애수가 배어 있으며 천재성이 번듯이는 경쾌함이 존재한다. 베토벤, 브람스, 차이콥스키등의 작품이 절대적이고 차원 높은 음악이라 평가했었는데 아마데우스영화를 관람하고 나의 생각이 바뀐셈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천재라 불리우는 아이쉬타인은 " 인간의 죽음이란 모짜르트 음악을 듣지 못한다는 것이다."라고 하였고 "모짜르트의 음악은 약이다." 라고 하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이다. 예를 들면 우울할 땐 교향곡 40번 을 들어라 하는 처방까지 내리는 음악 치료사도 있으며 모짜르트의 음악을 들은 학생들의 지능 검사에서 공간 추론 점수가 높았다거나 스트레스 환자 들으면 신체의 안정을 꾀하는 부교감 신경을 자극하여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 앉히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아무튼 올해는 그의 탄생 250년이 되어 우리나라에서도 KBS 1 FM 방송국에서는 모짜르트의 생일인 1월 27일 시작하여 31일까지 4일간 매일 모짜르트의 음악만 내보냈는데 분으로 환산하면 5000분 연속진행하였으며 이 행사의 이름이 <VIVA Mozart> 였다. 그러고 보니 짤츠부르크에서도 VIVA Mozart 란 표어가 여기 저기 있었는데 우리나라 방송국에서도 이를 본뜬 것이라는 걸 여기서 알았다. 아무튼 모짜르트의 탄생 250 주년을 기념하는 해에 그의 고향을 찾아 여행하였다는 즐거움을 간직하고  훗날 다시 올 것을 짤츠강에 약속하고 다음 행선지를 위해 짤츠부르크를 떠났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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