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

[스크랩] 전혜린의 죽음..

깃또리 2005. 9. 4. 20:39
<<전혜린의 죽음>>
여기에서 나는 전혜린이 독일에서 귀국해서 살던 얼마간의 기간의 얘기를 생략하고 죽음에 관한 종말에 언급하면서 이 글을 마치려 한다.
전혜린은 1월 11일, 31세를 일기로 짧은 생애를 닫았다. 전혜린의 죽음은 자살이란 말도 있고 수면제 과용이라는 말도 있다. 그 무렵 전혜린은 남편 K씨와는 이혼상태(1964년 합의 이혼)였다. 딸 정화를 데리고 친정에 있었는데 공직생활로는 성균관대학 조교수로 임명된 지 얼마 안되던 때였다.
전혜린은 죽는 전날까지도 죽음에의 징조라 할만한 것이 없었다고 한다. 전날 밤 그녀와 최후까지 만났던 R여사의 회상에 다르면 <그녀는 국제 펜클럽대회에 참가할 예정이라면서 얼마 전 건강진단을 해본 결과 완벽한 상태였다는 말도 했다>는 것이다.
결국 전혜린의 죽음은 수면제과용임은 확실한데 그것이 자살의 의도가 내포된 것이었는지는 확실치 않다는 것이 가장 온당한 해석일 것이다. 다만 전혜린의 후년의 일기나 수상 등을 보면 죽음, 권태, 우울, 불안 등에 관한 어휘가 수없이 많이 나타나 있다. 그래서 그 무렵의 전혜린은 그런 극단적인 <치우친 성격>으로는 일상성을 용납하기엔 너무 부담스러웠던 나날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거의 일관적으로 <완전한 삶에의 순간>을 추구하면서도 한편 <무명으로 남을 용기>도 없었던 그녀-그것은 곧 현실에 대해서도 남다른 집착을 가지고 있었다는 모습을 노정하고 있다. 이런 모순은 삶의 어느 순간 자기파괴본능의 위협이 엄습할 수도 있다.
전혜린은 그런 의식과 무의식의 중간쯤에서 자살을 택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적극적인 의도로서가 아닌 수동적인 뜻에서의 <자살의 수용이라고나 할>결과인 것이다. 하지만 전혜린의 비극의 근본은 정신분석학적 의도로 추구해 본다면 나르시시즘의 행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된다. 즉 모든 생애를 자기인식에 바치고 싶다던 그녀의 정신성과 나르시시즘의 집착 사이에는 그만큼 뛰어넘을 수 없는 관념의 벽이 있었다. 나르시시즘적 경향은 대인관계를 어렵게 한다. 자기 외적 범주에 속하는 몇몇 사람 이외에는 <속물성에 대한 혐오>를 느끼던 전혜린으로서는 결국 자살은 나르시시즘의 파탄이었던 것이다.

작품
주요 번역 작품
F. 사강 <어떤 미소>(1956)
E. 슈나벨 <한 소녀의 걸어간 길>(1958)
이미륵 <압록강은 흐른다>(1960)
E. 케스트너 <파비안>(1960)
구드리치, 하케드 공저. 희곡 <안네 프랑크의 일기>(1960)
L. 린저 <생의 한가운데>(1961)
H. 케스턴 <에밀리에>(1963)
W. 막시모후 <그래도 인간은 산다> (1963)
H. 뵐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1964)
H. 노바크 <태양병(太陽病)> (1965)
작품집(유고집)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1966)
<미래완료의 시간 속에>(1966)
- 1981년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로 제목을 바꿈
- 내용의 일부가 다름

 

 

 
가져온 곳: [꿈깡끼꾀꼴]  글쓴이: 가인 바로 가기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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