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압록강은 흐른다."를 읽고...

깃또리 2005. 8. 22. 20:46

압록강은 흐른다. 를 읽고...

이미륵 지음

전혜린 옮김

범우사

 

2005. 08. 14.

 

 

 분명 한국사람이 지은 글을 한국 사람이 옮겼다는 일은 처음 읽는 사람에겐 좀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륵이 처음 이 소설을 독일어로 써 발표하고 책으로 출판되고 다음으로 이 글은 영어로 옮겨졌으며 나중에 전혜린이 독일어로 된 글을 우리말로 번역하였기 때문이다.

 

 옮긴이 전혜린(1934~1965.31)은 경기여중과 여고를 마치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다음 독일 뭰헨대학에서 독문학을 공부하고 서울에 돌아와 교수로 일하면서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써 장안의 지가를 올리기도 하였으나 젊은 나이인 31세에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하여 더욱 사람들에게 알려진 독문학자 전혜린이다. 전혜린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적어보기로 하고 번역본의 서문에 해당하는 '이 책을 읽는 분에게'를 쓴 동생 전채린은 얼마전 충북대학교 교수를 끝으로 은퇴하였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나도 처음에 <The Yalu Flows >라는 제목의 3 페이지 되는 짧은 영문을 수 년전에 읽어 이미륵에 대한 약간의 소개글을 읽기도 했지만 소설 전문을 읽기는 이번이 처음이어서  먼저 이미륵에 대한 소개를 하기로 한다.

 

 나라가 하루하루 다르게 기울어 가는 1899년 지주의 외동 아들로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고향 서당에서 구학문을 배우다 신식중학교에 다니며 독학으로 입학 준비를 하여 서울의 경성의학전문학교에 합격하였다.

 미륵이란 이름은 어머니가 딸 셋을 내리 낳아 아들을 낳으려고 미륵불에 치성을 드려 얻은 아들이라하여 미륵이라 이름 붙였다는데 또 다른 이름은 이의경이다.

 

 3학년이던 1919년 3.1 운동에 가담하여 파고다 공원에서 삐라를 뿌렸고 동료 학생들이 속속 체포되자 고향으로 피신하여 지내다 어머니의 권고로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출하여 상해에서 유럽행 여객선을 타고 프랑스를 거쳐 독일로 갔다.

 이미륵은 독일어를 배워 하이델베르그대학에서 동물학, 생물학, 철학을 배우고 29세에 뭰헨대학에서 동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를 받은 후 조국을 배경으로 단편과 수상을 독일 신문과 잡지에 기고하여 내면에 살아 꿈틀대던 작가적 소질을 발휘하였다. 그가 십년간 심혈을 기울려 써온 <압록강은 흐른다>가 1946년 전후 최초로 뭰헨의 피퍼 출판사에서 출간하여 독일 문단과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한 동안 독일 교과서에도 실리는 등 호평을 받기도 했으며, 작품 출간후 뭰헨대학의 동양학부에서 한국과 한국어및 중국학 강의로 동양학 학자들을 배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50년 위암으로 수술하였으나 호전 되지 않아 꿈에도 그리던 조국 땅을 밟아 보지 못하고 3월 20일 51세의 짧은 나이로 이국땅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불행 중 다행이라면 조국의 남북분단으로 이어지는 동족상쟁의 비극적 사건인 6.25를 알지 못하고 사망한 일이다.

 

 이미륵의 최초이자 단 한편의 장편인<압록강은 흐른다>는 총 24개의 소제목으로 나뉘어 전편을 이루며 20 번째 소제목을 소설제목으로 하였다. 사실 장편소설이라 부르기 보다는 이미륵의 유년시절부터 성장기, 서울에서 수학기, 3.1운동과 이후의 망명 과정과 유럽 정착 직전까지를 사실에 근거하여 서술한 자서적소설이라고 해야 옳으나 문학적 글 솜씨에 작가의 눈이 비친 사물 묘사와 인상 표현이 뛰어나 소설의 범주로 분류하는듯하다.

 

 나는 1900년대 초 우리나라 시골 풍경과 작가가 유학 생활하는 경성의 도시 풍경, 학교 공부 그리고 20세의 나이로 고향과 부모를 떠나 압록강에서 통나무 배를 타고 도강하여 만주 벌판을 횡단하는 과정이 가장 흥미로웠다. 또한 양자강 하구인 상해에 도착하여 2000여 명을 태운 여객선 포올르카에 탑승하여 긴 여정 끝에 남 프랑스 마르세이유항구에 도착하는 부분도 정말 재미 있었다.

 

 지금부터 80년 전에 국권을 침탈 당하여 외국에 나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여권도 만들 수 없는 상황 아래 상해에서 6개월 동안 기약없이 기다리다가 중국 사람의 신분으로 겨우 여권을 발급 받아 배를 타는 이야기는 민족적 비애와 슬픔을 느끼고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었다.

 여객선 안에는 미륵과 같은 처지의 한국 학생이 다섯이 있었으며 출항 3일 후 지금의 베트남인 안남의 사이공에 기항하여 안남 학생 몇이 합류하여 선실에서 중국학생, 안남학생 그리고 한국학생들이 모여 서로 한문으로 필담하는 대목은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한 모습이었다.

 배는 다시 출항하여 싱카포르를 거쳐 스마트라 해협을 지나 인도양을 항해하여 인도의 콜롬보 다음으로 북아프리카의 지브티에서 석탄을 공급 받고 시나이산을 바라보며 홍해를 항해하다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여 지중해로 들어가 그리스 남쪽의 다도해를 지나자 바로 폭풍우를 만나 고생을 하지만 드디어 유럽 대륙인 남 프랑스 마르세이유항구에 도착한다.

 

 불안과 설레임으로 항구에 닿은 미륵은 마침 동행했던 봉준이란 학생이 유럽 생활에 경험이 있어 그의 도움으로 라인강을 건너 독일의 작은 도시에 안내 되는데 자신은 프랑스에 정착 예정이라서 미륵에게 프랑스 와 독일 국민성에 대하여 세세한 부분을 알려주며 유럽 사람들에게는 말을 자주 걸기도 하고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표현하라는 충고해주고 기차를 타고 프랑스로 돌아간다.

 

 도시 이름은 나오지 않지만 봉준이 소개해준 작은 도시의 가정집 주인과 얘기가 잘되어 한동안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리며 독일어도 공부하며 집으로 편지를 보내기도 한다.

 책은 '꽈리에 붉게 타는 향수'라는 소제목이 마지막인데 편지 답장을 기다리며 매일 우체국에 가는데 어느날 가정집 정원에서 고향집 뒷마당에서 보았던 똑 같은 꽈리를 발견하고 발길을 멈추었는데 여주인이 나타나 사연을 묻자 더듬거리는 독일말로 사정을 말하자 꽈리 한줄기를 꺾어 주어 받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날 드디어 고향 맏누님으로부터 편지를 받게 되는데 지난 가을날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읽는 것으로 소설은 끝나고 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새로 알게된 사실은 미륵의 아버지가 天字文에 白髮書라는 부제가 있다는 얘기를 하는데, 그 옛날 중국 천자로부터 죄를 지은 시인이 사형 날이 가까워 신하들이 시인의 재능이 아까워 천자에게 용서를 빌었다 한다. 천자는 그럼 한자 천개를 가지고 네자씩 대구를 만든 시를 하룻밤새에 지어 올리라고 했다 한다. 다음날 천자는 죄인을 알아 보지 못했는데 왜냐면 자신의 생명이 달린 어려운 일을 하느라 밤새 머리가 하얗게 새어버렸는데 천자는 지은 시를 보고 감탄하여 죄를 사하였다하며 바로 이 책이 천자문이라 하였다. 사실인지 아닌지 몰라도 퍽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또 하나 이글을 읽으면서 느낀 점으로는 나이 어린 미륵이 당시로는 엄두도 못낼 경성의 전문대학에 가려했던 배경에는 구학문만 했지만 사려 깊고 미륵에게 다정했던 아버지의 보살핌과 글한자도 읽지 못하는 어머니였지만 자식을 위해 망명과 유럽행을 권했던 현명하고 의지력이 강한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대단한 성취를 거둔 사람 뒤에는 위대한 부모님이 있다는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님을 여기서도 알 수 있다.

 

 겁을 먹고 주춤거리는 미륵에 탈출을 권하는 어머니의 말을 그대로 옮겨 보기로 한다.

 

 내가 겪고 지내온 모든 것을 상세히 이야기 했더니 어머니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방을 나가 버렸다.

(중략)

 '너는 도망쳐야 한다."

"도망?"

"그렇다, 너는 달아나야 한다."

어머니는 거듭 말하였다.

(중략)

유럽이란 말부터가 나에게는 용기를 돋우지 못하였다. 나는 유럽에서의 공부가 얼마나 어려우며, 언어 한가지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아시아 학생에게는 만만치 않은 장애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자꾸만 반복하여 말하였고 나는 어머니를 진정시키기 위해 어머니 말씀대로 도망쳐야겠다고 결심하였다. 언젠가는 닥쳐올 위험 보다는 어머니와 헤어져 있는 것이 나으리라는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시위 운동에 참가한 것을 후회하게 되었다.

(중략)

"너는 겁쟁이가 아니다."

"어머니는 오랫 동안 잠자코 걷다가 말하였다.

"너는 자주 쉽사리 낙심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충실히 너의 길을 걸었다. 나는 너를 무척 믿고 있단다. 용기를 내라! 너는 쉽사리 국경을 넘을 것이고 또 결국 유럽에 갈 것이다. 이 에미 걱정은 말아라--. 나는 네가 돌아오기를 조용히 기다리겠다. 세월은 그처럼 빨리 가니 비록 우리가 다시 못 만나는 한이 있더라도 슬퍼 마라. 너는 나의 생활에 많고도 많은 기쁨을 가져다 주었다. 자! 내 아들아, 이젠 너 혼자 가거라."

 

 영어 원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으로 이미륵이 무사히 압록강을 건너 중국의 국경도시에 도착하여  마지막으로 고향 땅을 보기 위해 도시의 작은 언덕에 올라 압록강 건너 해가 기우는 한국의 저녁 모습을 묘사한 장면으로 아마 이 글은 이미륵이 독일 정착 후 수년이 지나고 썼을 텐데 너무나 애틋한 회상이어서 여기에 옮겨 본다.

 

 I wached the steady flow of the river which separated my homeland from this vast Manchurian country. Here everything was big, somber, and serious; over on our side all was small and gay. bright, straw-covered houses dotted the hillside. Evening smoke was already rising from many a chimney. on the horizon the chains of our mountains appeared one behind the other under the clear autumn sky. The mountains were aglow in the sunlight; then, before wrapping themselves gradually in blue mist, they shone out once and brooks of the Suyang mountain and the two-storied tower building where every night as  child I had listened to the glorious sounds carried to me all the way from home.

Steadily the Yalu flowed. Darkness fell. I descended from my hill and went to the railway st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