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냉정과 열정사이"(쥰세이 편)를 읽고...

깃또리 2005. 8. 10. 17:12
 

냉정(冷情)과 열정(熱情)사이를 읽고...

츠치 히토나리 지음 Hitonari Tsuji

양억관 옮김

 

2005. 07. 30.

 

 일본에선 먼저 연재소설로 인기를 얻고 이어 영화로 만들어져 국내에 수입하여 상연된 <냉정과 열정사이>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으나 직접 읽을 기회가 없었는데 한 달전 어느 유명 인사의 글에 이 소설를 언급한 대목이 눈에 띄어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근처 도서관에서  대출 담당자가 표지 색상이 다른 두 권의 작은 책을 들고 "'남자 이야기''여자 이야기' 다 빌리는 거죠?" 라고 물어 우선 대답을 하고 책을 받아 보니 두 권 모두 제목이 똑 같고 표지 색상만 청색과 오랜지색이었는데 자세히 보니 저자도 옮긴이도 달랐다.

 청색은 츠치 히토나리/양억관 이고 오랜지색은 에쿠니 가오리/김남주 였다. 어렴풋이 짐작은 가지만 궁금하여 저자 후기와 역자 후기를 먼저 읽어 보니 한 권은 남자 주인공 '아가타 쥰세이'가 1인칭으로 하여 쓴 소설이고 다른 한 권은 '아오이'란 쥰세이의 여자 친구가 역시 주인공으로 하여 쓴 소설로 두 사람의 스무살에서 서른살까지 10년에 걸친 사랑과 이별 그리고 다시 만남에 대한 이야기였다.

 

 먼저 청색의 쥰세이편의 줄거리를 보면, 쥰세이는 어릴때 일본을 떠나 뉴욕에서 자랐는데 아버지와 사이가 나쁘던 어머니는 일찍 자살인지 사고사인지 의문의 죽음을 하였고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치자 일본으로 건너와 동경의 세이죠대학에 입학하여 이탈리에서 온 귀국학생인 같은 대학의 아오이를 만나 지독한 사랑을 한다.

 해외 은행 주재원의 딸인 아오이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다니고 동경의 세이죠대학에 입학하여 같이 이탈리아에서 온 동창생 다카시의 소개로 쥰세이를 만나 첫눈에 사랑하게 된다.

아오이의 스무번째 생일날 쥰세이에게 10년 후 서른번째 자기 생일날 이탈리아 피렌체 시내 중심에 있는 두오모의 쿠폴라 위에서 만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그 뒤로 다시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쥰세이는 항상 마음 속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두 사람 깊은 연애에 빠진 2 년이 되던해 아오이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쥰세이의 아버지와 새엄마는 아오이에게 갖은 모욕을 주며 임신중절을 강요하여 이 힘든 일을 아오이는 쥰세이 모르게 혼자 처리 하고 이를 모르는 쥰세이는 아오이에게 임신중절을 자기와 상의 없이 했다고 비난하며 결국 둘은 헤어진다.

 

 학교를 졸업한 쥰세이는 이탈리아 피렌체로 건너가 오래된 유화와 템페라화의 복원공방에서 기능을 연마하여 이 분야의 권위자인 여자 스승인 조반니에게 인정을 받고 선생의 누드 모델이 되기도 하지만 주변 소문과 달리 육체 관계까지는 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밤 쥰세이가 맡아 복원하던 16세기의 유명한 화가 프란치스코 코사의 귀중한 그림이 칼로 찢겨진 사건이 발생하고 경찰이 동원된 범인 색출은 실패하여 미궁에 빠진다. 조반니 선생은 사회적 책임과 신뢰추락등을 이유로 공방문을 닫기로 결정하여 쥰세이는 갑자기 실직하고 낙망한 쥰세이는 일본에서 온 혼열아인 메리와 육체관계 탐닉에 빠져 지내며 힘든 하루하루를 보낸다.

 잠시 일하러 일본에 와 있던 이탈리아 아버지와 일본 여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메리는 뛰어난 외모를 지녔으나 죽 일본에서 자라 이탈리아어를 모르고 자기를 버린 아버지를 증오하며 아버지 없이 자란 탓인지 쥰세이를 너무나 좋아하며 결혼 상대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오이를 잊지 못하는 쥰세이는 몸은 메리와 같이 있어도 마음은 항상 아오이로 향하고 있어 이를 눈치챈 메리의 질투와 상심은 깊어진다.

 

 피렌체에서 허송세월을 보내던 쥰세이는 일본으로 돌아와 화가이고 재산이 많은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그럭저럭 시간을 보내던 중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메리와 재회하여 또 다시 동거 비슷한 관계로 지내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날 같은 공방에서 일하던 이탈리아에서 귀국한 일본 남자 친구로부터 프란치스코 코사의 그림을 찢은 범인은 다름 아닌 조반니 선생이고 그 이유는 제자인 쥰세이가 자기 보다 뛰어난 솜씨에 질투심과 자괴감에 휩싸여 일을 벌리고 결국 얼마전 자살했다는 놀라운 소식을 전한다.

 

 또한 대학시절 아오이를 소개하였던 다카시가 방문하여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마빈이란 미국사람과 살고 있는 아오이를 만났다는 이야기와 함께 주소와 전화번호를 건네 준다. 망설이던 쥰세이는 국제전화를 걸었지만 신호를 확인만 하고 차마 통화할 용기를 내지 못하고 송수화기를 내려 놓으며 갈등에 쌓인다.

 

 이제 세월이 흘러 아오이의 서른번째 생일이 다섯달 정도 남은 어느날 쥰세이는 어쨋든 자기의 실력을 인정해주고 기술을 전수해주었고 자신을 사랑했던 스승 조반니의 무덤도 찾아 보고 시간이 흘러도 잊을 수 없는 아오이의 잔영을 그리며 마빈과 잘 지내고 있는 아오이가 오지 않을게 분명하지만 자기 혼자라도 두오모의 쿠폴라에 오르겠다는 생각을 굳히고 메리와는 헤어져 이탈리아 피렌체로 향한다.  

 

 피렌체에 도착한 쥰세이는 뒤이어 따라온 메리와 함께 밀라노에 살고 있는 메리의 아버지를 만나러 갔지만 메리 아버지는 일본말을 모르고 메리는 이탈리아말을 못해 서로 의사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쥰세이의 간단한 소개만 이루어지고 헤어지는 불행한 일을 목도한다.

 

 메리의 룸 메이트인 한국 여성 인수의 서울에서 있었던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를 듣고 아오이를 다시 떠올리며 아오이에 대한 질투심을 점점 키우는 메리와 결별하며 아오이의 생일인 5월 25일 두오모에 오른다.

 

 두오모 쿠폴라 맨꼭대기에 오르자 저 멀리 아오이의 모습을 발견하고 눈을 의심하지만 아오이를 확인하고 뜨거운 포옹으로 재회하고 둘은 3일 동안 지나온 8년 세월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며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사랑을 확인한다.

 그러나 쥰세이가 표현한 것처럼 "냉정속에 열정을 숨기고 걸어가는듯한..." 아오이는 자신이 이 세상에 있어야 할 곳은 젊은 날의 꿈과 추억 그리고 낯익은 사람과 도시가 있는 밀라노 뿐이라는 생각을 하고 밀라노행 기차에 몸을 맡기고 멀어져 간다. 쥰세이는 이제 주저하지말고 결연히 아오이를 붙잡아야 한다는 각성을 하고 아오이 보다 15분 일찍 도착하는 유럽특급 기차표를 급히 구입하고 "새로운 백년 "이란 말을 되뇌이며 밀라노를 향해 떠난다.

 

 갈수록 인간관계는 묽어지고 특히 남녀간의 사랑도 인스턴트 사랑이란 말이 의미하듯 찰라적이고 경박해지는 세태에 젊은 쥰세이와 아오이의 10년에 걸친 사랑은 조금 부럽기도한 돋보이는 사랑이며 그래서 현대인은 이런 지순한 사랑에 찬탄을 보내는 것 같다. 더구나 이 소설의 배경이 르네상스의 발상지인 500년 고도 피렌체에서  사랑이 확인되고 완성되는 이야기는 읽는이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작가는 애초부터 사랑이 부활되는 도시로 재생의 의미를 담은 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를 선택하였는가 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