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기린의 날개

깃또리 2023. 5. 25. 13:00

<기린의 날개>를 읽고...

히가시노 게이고/ 김난주 옮김

재인

 

 

작년, 2021년 새해부터 책 읽기의 각오를 단단히 했으나 지나고 보니 이런저런 이유로 목표로 삼았던 30권에 훨씬 못 미치는 19권을 읽었다. 올 해도 역시 30권 정도가 목표인데 1월 보름이 지났으나 읽다 덮어 둔 책 세 권이 뒹굴고 있어 이럴 땐 우선 읽기 쉽고 재미있는 책이 좋을듯하여 히가시노의 책을 대출하여 주말 동안 읽었다. 이 작가의 책은 국내에서 번역 출판된 책만 해도 수십 권이 되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책을 골라 읽어야 하나 참고 하기 위해 추천 목록들을 검색해 보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악의>가 1위, <나미야 잡화점><용의자 X의 헌신>가 2, 3위를 다투고 <백야행>, <가면산장>, <붉은 손가락>, <공허한 십자가>, <하쿠바 산장>, <편지> 등이 뒤를 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순위는 우리와 조금 다른 걸 보면 두 나라 독자들의 추리 소설 취향이 서로 다른 듯하다.

 

이미 세 권을 읽었고 이번에 한 권, 모두 네 권을 읽었으니 올 해 잘 하면 여섯 권 정도는 더 읽을 수 있을 듯하다. 다시 읽어도 대단한 글쓰기 능력을 지닌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원래 등장인물이 여러 명 나오는 소설은 별로 좋아하지 않고 특히 외국 소설은 더욱 그렇다. 일본 소설의 경우에도 짧은 성과 이름이 있긴 해도 대부분 이름 네 자, 성 네 자의 긴 이름이 나오다 어떤 땐 성으로 어떤 땐 이름으로 나와 혼란을 더 한다. 그래서 등장인물 이름이나 성을 적어 두고 인물 사이의 관계를 적어보며 읽기도 한다. 이번 책은 대략 주요 인물이 15명이나 등장하여 더욱 복잡했으나 책을 다 읽고 나면 사실 그리 복작하지 않아 많은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책 제목 <기린의 날개>는 특이한 제목이다. 왜냐면 기린은 날개가 없는 초식 포유동물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사바나 지역에 무리 지어 서식하며 대부분의 동물원에서 빠짐없이 기르는 어린이들에게 인기 있는 동물로 기린(Giraffe, 麒麟)은 좀 복잡한 한문 이름을 지니고 있다. 기린과 용은 중국의 대표적인 상상의 동물이며 우리나라도 중국의 영향을 받아 용은 권위의 상징으로 여겨 임금을 용으로 비유하여 얼굴을 용안(龍眼), 의자는 용상(龍床), 임금의 의식 때 입는 옷은 용포(龍布)라 하였다. 기린도 중국 사람들에게 용처럼 상상의 동물이었으며 세상을 밝히는 성인이 세상에 태어나면 나타난다는 영험한 동물로 살아 있는 풀이나 생물은 먹지도 않는 어진 짐승이자 상서로운 동물로 인식했다 한다. 그래서 '기린아, 麒麟兒'라는 말은 슬기와 재주가 출중한 젊은이를 지칭하는 말로 쓰였으며 기대주, 유명주라는 말과 같은 의미로 내가 젊은 시절에 자주 썼고 들었으나 요즘은 사용 빈도가 적은 어휘가 되었다. 전해 오는 이야기로 아프리카 케냐의 고대 왕국인 멀린다에서 아시아 벵골국(현: 방글라데시)의 술탄 즉위식에 기린을 선물하였고 마침 중국의 정화 대선단이 도착하자 이 기린을 다시 중국 황제에 선물하여 중국에 기린이 도착했다 한다. 이 기린을 처음 본 중국 사람들이 자신들의 상상 속에 있던 기린과 흡사하다 생각하여 기린이란 이름을 붙였다 하다. 즉, 기린은 실존하는 동물이기도 하고 상상의 동물이기도 한 셈이다.

 

이야기가 옆길로 한참 벗어났는데, 다시 소설로 돌아가 나는 일본 동경 지명에 니혼바시(日本橋)가 있는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구글 검색에 따르면 원래 1603년 목재 다리를 세워 니혼바시라 했으며 노후 되자 다시 지금의 석조 다리를 1911년 세웠다 한다. 길이 49m, 폭 28m로 지금으로 보면 작은 다리이지만 당시엔 도쿄 중심지에 이정표가 되는 유명한 다리였다 한다. 이 다리에는 두 개의 석재 아치가 있으며 일본 전국 도로와 7개의 일본 고속도로 시작이 되는 'Point Zero' 즉, 도로 기준점이 있는 중요한 다리라 한다. 이 소설에 나오는 설명에 따르면 이 다리에 석재 조형물이 있으며 마치 날개 달린 용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날개가 달린 기린이라 한다. 원래 기린에 날개를 붙이는 일은 없으나 이 다리로부터 좋은 기운이 퍼져 나가라는 의미로 날개를 달았으리라 추측을 하였다.

 

소설의 시작은 어는 건설자재 부품재료 회사의 본사에 근무하는 55세의 본부장이 다리 근처의 짧은 지하보도에서 가슴에 칼을 맞았으나 이 다리의 기린 조각까지 걸어와 피를 흘리며 기대고 있다 젊은 경찰관에게 발견되어 병원에 이송되었으나 바로 사망한 사건부터이다. 추리 소설답게 30 대 초반 고아 출신이 사망한 본부장이 일하는 공장에서 생산부 계약직으로 일하다 조금 억울하게 해고된 사람으로 여러 정황이 소설에서 용의자로 줄 곳 상상하게 만든다. 소설 마지막에 전혀 다른 인물인 피해자 아들의 고등학교 친구가 범인으로 밝혀지는 스토리이다. 사실 이 소설을 읽고 싶은 사람에게 범인을 미리 밝히는 일은 예의가 아니지만 요즘 이런 소설을 읽을 사람조차 점점 줄어드니 크게 개의치 않는다.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작가는 니혼바시 근처를 수 없이 조사하여 등장인물들의 동선을 시간과 거리에 짜 맞추고 등장인물 15 명의 신체 조건이나 성격들을 미리 치밀하게 설정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소설에 등장하는 거리나 니혼바시 주변 건물에 대한 역사적 사실도 치밀하게 조사하여 소설 중간 중간에 끼워 넣어 나 같은 독자들에게 일본에 관한 소소한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과 흥미를 갖도록 하고 있다. 국내 작가들의 소설을 읽다 보면 소설 하나 쓰는데 보통 몇 달 또는 2~3년 걸린다는 말을 들었는데 히가시노는 일 년에 두 세 편도 발표하는 걸 보면 정말 재능이 출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모처럼 일본에 대한 흥미롭고 세세한 역사적 지식도 곁들인 추리 소설을 읽는 즐거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