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기사단장 죽이기 1권>을 읽고...

깃또리 2021. 2. 6. 20:40

<기사단장 죽이기 1>을 읽고...

현현하는 이데아

무라카미 하루키/홍은주 옮김

2021. 01, 02

 

  20201231, 한해의 마지막 날 스마트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하여 새로운 해, 202111일부터 읽기 시작하여 2일 오늘 읽기를 마쳤다. 최근 약 20년 동안 1년에 최소 20권에서 30권 정도의 이런저런 책들을 읽고 후기를 썼으나 출근하지 않고 평생 가장 긴 시간을 놀고 지낸 작년 한 해에 모두 12권을 읽는데 그쳤다. 돌이켜보면 그 이유가 여러가지이다. 1월과 2월에 걸쳐 한 달 조금 넘은 스페인 자동차 여행으로 두서너 달은 그렇다 할 수 있지만 그 나머지 달은 별 하는 일도 없었으나 책 읽기에 소홀하여 그렇게 되었다. 그러고보면 꼭 시간이 많아야 책을 보는 건 아니다. 지난 일을 후회하고 섭섭해할 일이 아니라 이제라도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기분으로 하루키의 소설 책부터 시작했는데 출발이 순조롭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책은 대부분 읽기 전에 제목만 보면 어떤 줄거리일지 예측하기 어려운 독특한 제목들이다. <1Q84>, <해변의 카프카>가 그렇고 <색체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도 그러하며 <기사단장 죽이기>도 역시 책을 읽고 나서야 왜 이런 제목인가를 알 수 있다. 그간 작가의 책을 여러 권 읽어서인지 소설의 내용은 새롭지만 작풍과 문체는 변함이 없다. 그래서 조금은 신선한 느낌이 없어 흥미를 잃기도 하지만 내용은 새로워 한번 손에 들면 놓기 어렵다는 점 또한 변함이 없다. 이 소설에서도 비현실, 초현실의 세계가 펼쳐진다. 일본 고대 아스카시대 복장을 한 키가 60센티미터의 유령도 아니고 영혼도 아닌 우리에겐 귀신이나 다름없으나 소설에서 본인 스스로가 말한 '이데아(관념)'라는 기사단장이 등장한다. 두번째로는 36살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인 주인공이 자주 만나는 멘시키라는 사람이 모두 서양 클래식 음악을 좋아한다. 그래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와 슈베르트의 <현악 4중주곡>일명 <로자문데>가 여러 차례 나온다.

 

 그 다음으로 모차르트의 가극 <돈 조바니>이다. <돈 조바니>는 이 책의 제목에도 나오며 소설에도 자주 등장하는 기사단장이 이 음악에 관련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오페라곡을 주인공이나 멘시키가 함께 좋아한다. 멘시키는 이 오페라를 프라하에서 초연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실제의 사실을 밝히며 프라하, , 로마, 밀라노, 런던, 파리, 뉴욕 메트로폴리탄, 도쿄에서도 이 오페라를 관람하였으며 아바도, 러바인, 오자와, 마젤 등이 지휘하는 <돈 조바니> 공연관람하였음을 자랑삼아 이야기한다.. 이 정도면 이 오페 라광이라 할만하다. 하루키 소설에서 빠짐없는 음악이야기들이며 음악 상식을 늘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지난번 <해변의 카프카>에서 나오는 베토벤의 <대공 소나타> 덕분에 나는 요즘도 이 곡을 자주 듣는다.

 

  세번 째로는 소위 항상 뒤탈이 별로 없는 남녀의 섹스 이야기가 이 소설에서도 여러 번 나온다. 먼저 주인공이 6년간 결혼하여 큰 문제없이 지내던 나이 세살 아내 유즈가 뚜렷한 이유도 없이 잠자리를 슬슬 피하다가 어느 날 불쑥 새로운 남자가 생겼다 하며 이혼하자 하여 주인공은 마음을 추스를 수도 없고 실망과 분노로 낡은 차를 몰고 정처 없이 일본 북부지역을 방랑한다. 도중에 어느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고 있는데 난데없이 어느 여자가 식탁 앞자리에 마주 앉더니 허락도 받지않고 아이스크림과 음료를 주문하여 먹은 다음 식사를 마친 주인공에게 멋진 호텔로 차를 몰도록 하고 황홀한 섹스를 하고 새벽에 아무 피해도 주지 않고 말도 없이 사라진다. 멘시키의 경우에도 친구같이 지내던 여자가 갑자기 전에 없던 결렬한 섹스를 요란하게 한 다음 아무런 이유도 밝히지 않고 절교를 선언하고 바로 다른 남자와 결혼해 버린다. 결혼 후 바로 딸을 낳았으나 집 뒤 야산 산책로에서 말벌에 쏘여 쇼크사로 세상을 떠난다.

 

  또 주인공은 친구 아버지가 살던 빈집에서 지내며 미술학원 강사로 일주일에 두 번 나가면서 그림 그리기 지도를 한다. 여기서 학원에 나오던 두명의 유부녀와 육체관계에 이르는데 역시 첫 번째 여성은 마지막 말도 없이 연락을 끊고 두 번째 여성은 상당한 기간 서로 만족한 섹스를 즐기다 별 탈 없이 자연스럽게 헤어지기도 한다. 아무튼 하루키의 소설에서는 남녀의 섹스가 무척 자연스럽고 문제없이 다루어진다. 조금 더 생각해보면 일본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이런저런 기회에 들었던 바와 같이 일본 여성들의 성적관념이 우리보다 자유롭다거나 유연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또 한편 소설이므로 미화된 면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1권의 줄거리는 대강 이러하다. 36살 동경에서 태어나 미술대학을 나와 이런저런 사정으로 원래 마음에 없던 초상화를 그려 생활하는 화가가 주인공이다. 건축설계사무소에 다니는 아내 유즈가 결혼 6년만에 앞서 말한 것처럼 일방적으로 이혼을 요구하여 정처 없이 일본 북부지역을 돌아다니다 대학 친구가 빌려준 동경에서 한 시간 거리인 오다와라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태평양 바다가 조금 보이는 야산 중턱에 자리한 집에서 혼자 생활을 시작한다. 이집은 일본화로 명성이 있는 친구 아버지 아마다 도모히코가 혼자 기거하며 그림을 그리던 곳이었으나 나이 들어 치매로 요양원에 들어가게 되어 주인공이 명목상의 집세를 내고 산다. 어느날 이 집 다락방에서 잘 포장되어 숨겨져 있던 1.5mX1m 크기의 옆으로 긴 액자에 든 일본화를 발견하였다. 그림 내용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바니>의 기사단장이 결투에서 칼에 찔려 죽는 장면이지만 기사단장은 아스카 시대의 복장으로 그림 수법은 특이하게 일본화의 형식을 따르고 있었다. 그래서 주인공은 이 그림을 <기사단장 죽이기>로 부르며 왜 그림이 다락방에 숨겨져 있었는지? 화가는 왜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 등등을 궁금해 한다. 한편 맞은편 산 등성이 저택에 살고 있는 54살의 멘시키라는 사람이 자신의 초상화를 부탁하여 그리게 되자 친하게 지내면서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난다. 특히 멘시키는 재규어 스포츠카와 재규어 V8 E Type과 다른 두대의 비싼 차를 소유하고 있어 소설에서 재규어 차종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나와 퍽 흥미롭다.

 

  이 소설은 여러 장의 소제목으로 이어져 1권은 무려 31장이고 마지막 소제목은 <어쩌면 지나치게 완벽하는지도 모른다>이며 아내 유즈가 이혼을 요구한 때가 3월이었으나 여름과 가을이 지나고 겨울에 들어서자 여섯 줄의 짧은 안부를 묻는 편지와 얼마 전에 이혼 서류에 신속하게 서명하여 보내준 일에 대한 고맙다는 답신이 나온다. 주인공의 지난날 회상 대목에서 자신이 15살 때 심장판막 수술을 받고 어느 정도 정상으로 생활하던 귀엽고 영특했던 자신의 여동생 고미치가 13살 어린 나이에 심장정지로 손쓸 시간도 없이 세상을 떠난 일을 이야기하며 안타까워하는 부분을 읽다 보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형제자매를 둔 사람들에게는 살아 있을 때 잘못했던 일들로 회한과 아쉬움에 가슴 저리게 한다. 또한 멘시키는 자신의 혈육이라 생각하는 13살 아키가와 마리에가 화가의 집 근처에 살고 있어 자신의 저택 발코니에 배율이 높은 망원경을 세우고 훔쳐보는 대목이 나온다. 결국 인간에게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자명한 순리를 일깨우고 있다. 이야기는 2권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