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다시 쓰는 택리지>를 읽고...

깃또리 2020. 12. 5. 21:56

<다시 쓰는 택리지>를 읽고...

전라 경상편

신정일 지음

Humanist

 

 

 

우리 역사상 가장 내용이 풍부한 지리 소개서는 조선 숙종, 영조 연간의 실학자 이중환(1690~1752)이 쓴 택리지 擇理志이다. 내용은 士, , , 商의 유래 및 사대부의 역할과 사명을 적은 사민총론, 조선 8도의 위치, 역사적 배경, 지리적 특성, 지역성, 지역 인물을 논한 팔도총론, 풍수설을 원용하여 지역의 입지조건의 우열을 다룬 복거총론, 이렇게 3편으로 구성되었다. 일반인들이 <택리지>를 단순한 지리서로 간주하나 사실은 근대적 지리, 사회, 문화를 아우른 인문지리서이다.

 

저자 신성일은 문화 사학자이며 답사가로 지역문화를 발굴하는 작업의 하나로 동학과 동학농민혁명을 연구하여 재조명하고 한국의 10대 강을 도보로 답사하기로 기획하여 현재 금강, 섬진강, 한강, 낙동강, 영산강을 마치고 앞으로 압록강. 두만강, 대동강 등 북한의 강들도 도보 답사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한다. 저자의 10 대강 답사에 대한 이유는 나와 있지 않지만 나름대로 의미가 크다고 여겨진다. 왜냐면 현대의 육로에 의한 물자 수송과 달리 우리나라는 산악지대가 많아 조선시대엔 물자 및 사람의 이동이 주로 강과 바다를 이용한 방법이었다. , 당시의 강은 요즘의 고속도로와 같은 구실을 하였다. 그러다 보니 수운과 연결되는 강과 포구에 물산이 집산되고 하역이 이루어져 자연히 사람이 모이고 강을 건너는 나룻 터는 번창 하였다..

 

그래서 과거의 역사와 문화를 더듬어 보기 위해 주요 하천과 강을 따라 주변을 답사하는 방법을 저자가 택한 것 같다. 인간 삶의 역사를 기록한다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며 더구나 수천 년 켜켜이 쌓인 지역의 과거를 기록하는 일이 어디 한 두 권의 책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인가. 내가 아주 어린 시절 손에 들어온 지방의 군지 郡誌나 읍지 邑誌만 보아도 두툼한 책 한 권이 되었는데 기간으로는 삼국시대부터 지금까지 전국 각지의 지형과 수많은 인물들을 몇 권의 책으로 소개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기대 밖의 일이 리라..

 

또한 어느 지역을 몇 줄로 기록한다는 일이 사실은 많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왜냐면 면면이 이어져온 변화와 지역 사정을 어느 시기나 한 인물에 맞추어 적는다는 사실은 진실을 왜곡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글은 경상북도 예천군을 소개하는 부분에서 권문해에 대한 이야기였다. 권문해는 49세에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하여 예천군 영문면 용문산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금곡 천변에 작은 초가집을 별채로 지어 초간정사라 이름 짓고 시와 글을 적었다 한다. 왜란과 병자호란으로 불탔는데 17세기에 다시 세웠다가 1870년에 중수하여 지금에 이르는데 여기서 권문해는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이라 할 만한 <대동운부군옥>을 지었고 일상과 국정을 기록한 <초간일기><초간 일기>를 남겼다. 이러한 조선의 일반 선비들이 하였던 일보다 내가 관심을 가진 일은 권문해가 30년 동고동락한 아내를 잃고 90일장의 장사를 지내면서 지은 제문이다.

 

"... 나무와 돌은 풍우에도 오래 남고 가죽나무, 상수리나무는 아직 저토록 무성한데 그대는 홀로 어느 곳으로 간단 말인가. 서러운 상복을 입고 그대 영정 지키고 서 있으니 둘레가 이다지도 적막하여 마음 둘 곳이 없소. 얻지 못한 아들이라도 하나 있었더라면 나를 도와 성장하여 며느리도 보고 손자도 보아 그대 앞에 향화 끊이지 않을 것을, 오호 슬프다.

저 용문산을 바라보니 아버님의 산소가 거기인데 그 곁에 터를 잡아 그대를 장사 지내려 하는 골짜기는 으슥하고 소나무는 청정히 우거져 바람소리 맑으리라. 그대는 본시 꽃과 해를 좋아했으니 적막 산중 무인고처에 홀로 된 진달래가 벗이 되어 드릴 거요.

 

이제 그대가 저승에서 추울까 봐 어머님께서 손수 수의를 지으셨으니 이 옷에는 피눈물이 젖어 있어 천추만세를 입어도 해지지 아니하리다. 오오, 서럽고 슬프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우주에 밤과 낮이 있음 같고 사물의 비롯 과 마침이 있음과 다를 바 없으나 그대는 저승에, 나는 남아 어찌 살리. 상여소리 한 가락에 구곡간장 미어져서 길이 슬퍼할 말마저 잊었다오…."

 

조선 사대부들은 일반적으로 남존여비 사상에 젖어 여성과 아내에 대한 생각이 지금과 판이하게 달랐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글을 읽어보니 인간의 감정은 고금을 통하여 엇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