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해변의 카프카, Kafka on the Shore, 하권>을 읽고...

깃또리 2020. 10. 24. 21:55

<해변의 카프카, Kafka on the Shore, 하권>을 읽고...

무라카미 하루키/ 김춘미 옮김

문학사상사

2020. 10. 05.

 

상권의 후기를 710일 썼다. 오늘이 10월 5일이니 거의 3개월이나 하권 후기 쓰기를 미루고 지낸 셈이다. 그 동안 여러 권 다른 책의 후기를 쓰면서도 차일피일 미룬 이유를 꼭 집어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상권을 다른 사람에게 읽으라 주어버렸고 하권도 곧 주어야 하기 때문에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오늘 작심하고 후기 쓰기를 시작한다. 다시 하권을 펼처보니 첫 장의 소제목이 <호시노가 나카타 노인에게 끌린 이유>이다. 나는 이미 상권 후기에서 호시노와 나카타 이야기를 해버렸다. 그 외에도 하권에 있는 이야기를 상권 후기에 쓰기도 했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쓰기로 한다.

 

<33장 난 당신의 연인이며 당신의 아들입니다>에서 다무라 카프카 군은 다카마쓰의 사립도서관 직원인 오시마 상을 만나 도움도 받고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그중에 오시마는 이런 이야기를 해 준다. "이 세상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유 같은 건 원하지 않아, 원하고 있다고 믿을 뿐이지. 모든 것은 환상이야. 만약 자유가 주어진다면, 사람들은 대부분 난감해할 걸. 잘 기억해 두라구. 사람들은 실제로 부자유를 좋아한다는 것을 말이야." (중략) 장 자크 루소는 인류가 울타리를 만들었을 때, 문명이 태어났다고 정의했지. 그의 말대로 모든 문명은 울타리로 구획된 부자유의 산물이야. 결국 이 세계는 높고 튼튼한 울타리를 만드는 인간이 유효하게 살아남게 되는 거야. 그것을 부정하면 넌 황야로 추방당하게 돼." 이 문장을 읽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부터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한편 어릴 때부터 부모, 학교 선생님 그리고 직장 상사나 선배들로부터, 이제 나이 들어서는 아내로부터 하나하나 가르침 또는 지시 또는 간섭에 따르며 살았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진정한 '자유"에 불안해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새겨 볼 내용이다.

 

다시 도서관장인 사에키 상과 나누는 대화도 흥미롭다. 다무라 군이 말한다. "도와주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습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 힘으로 살아나갈 수박에 없었어요. 그러기 위선 강해져야 합니다. 무리에서 외따로 떨어진 까마귀와 같죠. 그래서 저는 카프카라는 이름을 저에게 붙였습니다. 카프카란 체코 말로 까마귀란 뜻입니다." 그러자 사에키가 말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의 방식대로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 강함을 벽삼아 그걸로 자기를 둘러쌀 수는 없지. 강함은 더욱 강한 것에 의해 깨어지는 법이거든. 윈리적으로." 그러자 다무라는 공격하기 위한 강함이 아니라 방어를 위해서 필요한 강함이라 한다. 하긴 이 세상이 강하다고 모두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 대개 부드러움이 강함보다 훨씬 세상을 사는데 유효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말에도 내유외강이란 말도 있으니.

 

책 중간 못미쳐 <제 34<제34장 나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라는 소제목이 나온다. 여기서 트럭 운전사인 호시노가 나카타 상을 데리고 다카마쓰에 도착하여 나카타 상이 몸이 불편하다고 하자 여관에 쉬도록 하고 자신은 영화를 한편 보고 저녁을 먹은 다음 커피가 마시고 싶어 고풍스럽고 아담한 찻집이 보여 푹신한 소파에 앉아 커피를 주문하였다. 이때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생각하지만 생각할수록 자신의 실체가 없는듯하게 느껴진다. 문부성 관리로 일하다 퇴직하여 소일거리로 찻집을 열었다는 백발이 성성한 카페 주인이 선곡한 음악을 듣는다. 호시노는 지금까지 클래식 음악을 진지하게 들어 본 일이 없으나 이 날은 달랐다. 주인에게 무슨 음악이냐고 묻자 기다렸다는듯이 루빈스타인과 하이페츠 그리고 포이어만 트리오가 연주한 오래 전인1941년 발매된 베토벤의 <대공 트리오>라 한다. 이 연주자 세 사람을 '백만 달러 트리오'라 소개하며 자신은 마음 편히 음악을 듣기 위해서도 찻집을 운영하고 있다 했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마땅한 일이 없어 재즈 카페를 꽤 오랫동안 직접 운영하여 재즈에 남다른 지식을 지녔다. 그러나 서양 클래식 음악도 무척 좋아하여 그가 쓴 소설이나 에세이에는 언제나 클래식 이야기가 나온다. 사실 나는 젊은 시절 베토벤의 <대공 소나타>를 몇 번 들었으나 연주시간이 40분이 넘는 긴 연주시간이라 진득하게 들을 시간이 없어 그간 잊고 지냈었다. 소설에서 이 부분을 읽고 연주곡을 다시 찾아 들었다. 젊은 시절과 또 다른 감흥으로 다가왔다. 특히 요즘 한강변 산책하며 하루에 서너 번을 반복하여 들으며 특히 제3악장3 안단테 칸타빌레는 이 시대 상처 받고 힘든 영혼들을 위로하는듯하여 누구에게나 들려주고 싶은 기분이다. 이 음악을 다시 듣게 해 준 공만으로도 이 소설을 읽은 보람과 가치가 있다 생각한다.

 

다무라 카푸카군이 다카마쓰를 이유 없이 찾아가는듯했으나 실은 자신이 어릴 때 가출했던 어머니가 다카마쓰에 있다는 확실하지는 않았으나 어떤 본능적 상상으로 15살 생일날 집을 떠난 것이다. 물론 소설에는 이런 내용을 밝히지 않았지만. 즉 사립도서관장인 사에키 상이 어머니이지만 사에키 상은 자신의 과거를 밝히지 않고 단지 다무라 군에게 '해변의 카프카'라는 제목의 그림을 주고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그러나 나카타 노인이 다카마쓰에 왜 왔는지는 나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도 이곳에서 의문의 죽음을 한다. 짧지만 여러 경험과 만남을 통하여 훨씬 성숙하고 자아에 대한 확신으로 다무라 카프카는 집으로 가기 위해 신칸센 열차에 오르는 것으로 이 소설은 끝을 맺는다. 이 소설에서 자주 보이는 단어를 몇 열거하면, 산딸나무/말하는 고양이/즈크 자루/즈크 가방 그리고 "시간이란 게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세계는 메타포이다."라는 말이 인상 깊다. 산딸나무의 꽃을 나도 좋아하는데 일본 남부 지방에 자생하는 나무로 자주 나온. 하루키가 아마 좋아하는 꽃 나무인가? 주요 등장인물들이 갑자가 죽는다. 카프카의 아버지 다무라 고이치씨(조니 워커)/사에키 상/나카타 등이 그렇다. 또한 하루키 작품에서 자주 나타나는 섹스도 산뜻하게 처리하는 그의 솜씨가 여전하다. 모처럼 하루키의 소설을 오랜만에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