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김영하 산문 보다>를 읽고...

깃또리 2020. 10. 15. 16:45

<김영하 산문 보다>를 읽고...

김영하

문학동네

2020. 09. 27.

 

코로나-19로 동네 도서관이 문을 열지 않아 퍽 아쉽다. 도서관 서가 사이에서 여러 책들을 지나치다 마음에 드는 책을 꺼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렇지 않아도 집에 있는 책들도 이제 정리 할 때가 되어가는데 다시 구입하기도 망설여져 새로 책을 살 수도 없어 대출을 못해 더욱 우울하다. 그러나 얼마전 스마트 도서관제도가 생겨 아쉬움을 조금 줄여준다. 인터넷 신청도 가능하고 직접 스마트 도서관을 찾아 그 자리에서 보유한 책 중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대출하고 자동 반납도 되어 편리하다. 그러나 스마트 도서관의 보관된 책이 한정되어 있고 막상 대출하고 싶은 책이 집에서 멀리 '떨어진 스마트 도서관에 있는 경우 조금 번거롭다. 그래서 나는 일원동 동사무소의 스마트 도서관까지 간 경우도 있으나 주로 강남구청역 스마트 도서관을 이용한다. 이 책도 강남구청역 스마트 도서관에서 대출하였다.

 

소설작가마다 개성이 다르고 글쓰는 방식이 달라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가 다르다. 나는 소설가로 10여년 전부터 김영하, 김연수 작가의 소설을 많이 읽었고 좋아하며 에세이로는 김훈, 김병종씨의 글을 좋아한다. 꽤 오래 전에 김영하의 산문집 삼부작 <보다>, <말하다>, <읽다> 중에 <읽다>를 재미있게 읽었다. 지난주 스마트 도서관에 이 <보다>가 보여 주저없이 대출하였다. 역시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책은 427장으로 구성되었으나 일관된 내용이 아닌 단편적이고 개별적인 내용으로 김영하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이다.

 

소제목 <자유 아닌 자유>에서 김영하가 대학교 신입생 때 '영어회화 테이프' 세일즈 아르바이트를 했던 일을 이야기하였다. 순진한 신입대학생들의 이야기이다. 가슴이 뭉클하고 안타까운 내용도 있다. 동료 친구는 "자리보전을 할 지경인 할머니가 친구들과 오토바이만 타고 다니는 말썽쟁이 손자의 공부를 위해 영어회화 테이프를 사겠다 했다 한다." 단칸방에 근근히 살아가는 그 할머니 쌈지 돈을 차마 우려낼 수 없어서 그는 들고 갔던 테이프를 상자 그대로 들고 돌아 왔다. 사정을 전해들은 30대 초 여성 팀장의 입에서 불이 뿜어 나왔다 한다. 물건을 사는 것은 고객의 선택인데 네가 무언데 선택을 막았느냐 했다 한다. 팀장 말도 맞고 그 선량한 학생의 행동도 맞다. 세상은 이러하다. 세일즈에서 처음으로 물건을 파는 것을 아이스브레이크라 했다 한다. 김영하는 한 달이 다 되어서 불광동의 어느 아담한 단독주택에서 드디어 아이스브레이킹을 했으며 최소한 목표를 이루었다고 생각하여 다음달 그만 두었다 한다. 그러나 약속한 십만원도 안되는 수당이 오지 않아 회사 상급자에게 수차례 전화해서 받아 냈다 한다. 일련의 이야기를 하며 '선택의 자유', '헝거 게임의 승자'와 같은 표현을 섞어 자본주의사회의 돈벌이 이야기를 조금은 비판적이고 재미있게 적었다.

 

<진짜 부자는 소유하지 않는다> 몇명의 세계적인 억만장자가 눈에 보이는 재산을 버리고 편히 사는 이야기를 하였다. '부자들은 이제 빈자들의 마지막 위안까지 탐내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선택의 여지없이 닥치고 받아들여야 하는 상태가, 누군가에는 선택 가능한 쿨한 옵션일뿐인 세계, 세상의 불평등은이렇게 진화하고 있다."라 하였다. 세계 어느나라 사람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금전, 재산에 대한 욕심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첫째,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극심한 빈곤시대를 지나온 세대에겐 '선택의 여지없는' 물질 욕심이 있고, 둘째, 아직도 노후보장이 확실치 않은 사회구조에 대한 불안, 셋째, 남북분단으로 잠재적인 위기의식 등이 우리들을 억누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를 탓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여행을 싫어 한다고 말할 용기> 작가 김영하도 여행을 좋아하는 것 같다. 20대 후반 혼자 배낭을 메고 유럽을 여행하고 어느 책에선 아내와 함께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에서 두 달 동안 지낸 일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독일의 귀족 가문 후예인 '폰 쇤 브르크'가 쓴 책을 예로 들어 '현대인은 어느나라나 여행사들의 상술에 여행을 과대평가하고 여행의 목적이 왜곡되었다.'는 문장을 소개하였다. 내 주변에도 여행에 무관심 한 사람이 몇 있어 그동안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글을 읽으며 여러가지 생각을 하였다. 과연 여행이 시간과 돈을 들일 진정한 가치가 있을까?

 

 

여행이 그간 지나치게 미화되고 여행의 가치가 과장되지은 않았는가? 세상의 모든 것이 그러하듯 선뜻 판단을 하기 어렵다. 그러나 아직까지 내게는 여행이 인생의 최고의 호사 중에 하나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앞에서 날아오는 돌> 작가가 대학 사학년 한 학기를 앞두고 앞날이 꽤 궁금하여 어느 여대 앞 점집에 갔었던 이야기이다. 당시 총각 점쟁이는 '도령'으로 불리며 점이 용하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한다. 한 시간이나 줄을 서서 기다렸다 한다. 앞의 손님을 단 몇 분 상대하였으나 접수 보는 누이에게 다음 손님은 잠시 받지 말하 하더니 김영하에게는 한 시간 반을 상대해 주었다 한다. 꽤 긴 이야기 중에 결론만 말하면, "운명은 앞에서 날아오는 돌이고, 숙명은 뒤에서 날아오는 돌이다. 앞에서 날오오는 돌이라고 다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힘이 들지요. (중략) 사주에 말씀 언자가 둘이나 들어 있습니다. 말과 글로 먹고 살게 될 겁니다. 그쪽으로 가면 사십 년 대운입니다." 그 도령의 이야기가 거의 적중하여 라디로 진행자, 교수, 시나리오 작가로 마침내 전업작가가 되어 이제 부러울 게 없이 살고 있다 하였다. 다시 '도령'을 찾았더니 이미 예약이 삼 년 치가 다 차있어 만날 수 없었다 한다. 나는 평소 점을 믿지 않고 앞날이 크게 궁금 하지 않아 지금까지 점집에 들어 가 본 일이 없다. 그러나 이 글을 읽으니 꼭 그렇지 만은 않을 것 같다. 하긴 이제 내가 앞날을 굳이 알고 싶지도 않고 알아 본들 뭐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점집에 갈 일은 없을 것 같다.

 

<탁심 광장> 터키의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오르한 파묵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도 이 작가의 작품에 관심이 있어 몇 권을 읽은 적이 있다. 파묵이 사업가였던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훗날 파묵이 노벨 문학상 수상을 한 뒤 아버지가 파묵에게 가방 하나를 주어서 열어보니 아버지가 젊은 시절 쓴 미 발표 소설 원고가 있었다 한다. 처음 알게 된 내용으로 흥미롭다. 파묵의 작가적 기질은 아버지에게 물려 받은 셈이다. 그래서 파묵의 어느 소설 헌사를 아버지에게 바친 책이 있어 나는 그 당시 왜 어머니가 아닌 사이가 좋지 않은 아버지에게 왜 헌사를 썼을까 했다. 이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 세상의 아들들은 아무리 아버지와 사이가 나쁘다 해도 아버지를 부정할 수 없는 것 같다. 오랜 만에 재미 있는 산문을 읽었다.

 

 

 

 

 

오늘 하루는 어제의 하루가 아니고 내일의 하루도 아닌 실제하는 현재 Present 입니다. 현재는 우리들에게 주어 진 선물 Present 입니다. 값 있는 선물, 오늘도 즐겁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