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조선의 뒷골목 풍경- 유쾌한 조선 풍속기행”을 읽고...

깃또리 2020. 9. 7. 09:55

조선의 뒷골목 풍경- 유쾌한 조선 풍속 기행”을” 읽고...

강변관 지음

푸른역사 펴냄

 

 

 

 

저자 강변관은 비교적 나이가 적은 편인 1958년생으로 한문학을 전공한 부산대학교 교수이다. 전공인 한문학을 공부하면서 부차적으로 얻어진 조선사회 양반과 서민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또는 잘못 알려진 흥미로운 생활상을 저자 특유의 비유를 동원하여 현대와 결부시켜 비교하고 고찰해보는 방식을 즐겨 사용하며 쉽고 재미있게 쓴 책이다. 서설에서 "역사는 현재를 이해하기 위한 방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는데 이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영국의 역사학자이며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 E. H.카 가 말한 유명한 "역사란 현재와 부단한 대화"라는 말과 같은 맥락이 나는 생각한다.

 

또한 "인간은 결정된 존재가 아니라 변화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란 말로 역사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영국의 권위 있는 방송사 BBC의 조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역사적인 인물 1백 명 선정에서 영국인들이 1위로 뽑은 사람이 자국의 영국인이 아닌 인쇄기의 발명자 독일인 구텐베르그인데 우리는 그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금속활자 인쇄술을 발명하였다고 자랑하고 있으나 사실 금속활자가 대중적, 보편적 확산에 기여하지 못하였기에 오직 최초 성이란 허울에 갇혀 있을 뿐이므로 이를 크게 내세울 일이 아니라고 지적하였다. 그 동안 막연하게 교과서를 통해 우리나라가 금속활자가 세계 최초라고 알고 있었던 나도 같은 한국인으로서 저자와 같이 아쉽다는 생각을 하였다.

 

책 내용을 정리해보면...

 

1.수 만백성을 살린 이름 없는 명의들-민중의 民衆醫

 

조선의 명의로 알려진 허준이재마가 책과 TV 드라마 그리고 영화로 일반인에게 잘 알려졌지만 실상 기록도 약소할뿐더러 임금님의 어의로 활동하다 보니 수많은 대중들에겐 실제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사실과 조선시대 의원의 신분이 중인을 벗어 날 수 없었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저자는 침으로 많은 서민환자를 살려낸 조광일과 말을 돌보던 요즘으로 치면 수의사였으나 종기치료에 탁월한 실력을 발휘하여 신분이 어의에 이른 숙종대의 백광현 그리고 떠돌이 약장수에서 정조의 종기를 사흘 만에 완치하여 일약 종 6품의 벼슬에 오른 피재길 등의 활약상을 더듬어 적고 있다.

 

2. 모이면 도적이고 흩어지면 백성이 된다.

 

저자는 탐관오리나 사악한 재산가 집을 털고 난 후에 일지매가 남긴 붉은 매화 한 가지 혈표에서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그림보다 더 진한 문자향, 文字香과 서권기, 書卷氣를 느낀다고까지 하였다. 홍길동, 임꺽정, 장길산 등을 차례로 언급하다가 무리도둑의 소굴이 된 조선시대의 사찰에 관한 상당히 신빙성 있는 자료를 열거하고 땡추와 화적단의 관계를 나열하였다.

 

3.투전노름에 날 새는 줄 몰랐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기 전 옷을 벗겨 놓고 로마 병사들이 주사위를 굴려 예수가 입었던 옷의 임자를 가렸다는 이야기를 필두로 도박을 "최적의 획득이론, 불확실한 미래에 운명론"에 맞닿아 있다고 제법 도둑 이론에 대한 그럴싸한 이론을 전개하면서 우리 조선시대의 지나친 도박 실태를 소개하고 있다. 쌍륙, 투패(투전), 강패(골패), 바둑, 장기 등 조선의 대표적인 도박놀음이 성행하였으며 도박이 주로 벌어졌던 장소와 도박을 즐겼던 인물들에 대한 각종 자료를 동원하여 밝혔으며 특히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서도 투전으로 돈을 따 득의양양 하는 대목을 상기시키고 있다. 또한 다산 정약용 선생의 글에서도 양가 자제나 고위직에 있는 인물들이 도박에 빠져 있음을 개탄하는 부분을 밝히기도 하였다.

 

 

4. 마셨다하면 대취하고 취했다 하면 술주정.

 

조선시대를 통틀어 과음으로 인해 폐해가 심하였다 주장하며 여러 자료를 이용하여 술집의 변천사도 보여주고 있다. 유럽에서도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금주령이 있었듯이 조선의 르네상스라고 부르는 영, 정조재위 기간 중에서 특히 영조의 화려한 치세 기간도 무려 53년이었는데 그의 통치기간 대부분 강력한 금주령을 발동하여 무려 50년 이상 애주가들의 원성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영조의 시대가 끝나고 정조 시대에도 금주령이 있었으나 그 기간도 짧고 금주령도 느슨하였으며 기근이나 국가 재난 시에 한시적 금주령이 있었을 뿐 조선시대 대부분 술의 유통이나 제조가 자유로워 술에 의한 폐단이 심하였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이러한 술 문화가 지금까지 이어져 술로 인한 사회적 병폐가 끊이지 않고 시대를 초월하여 이어져 오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상당히 일리 있는 주장이다.

 

5. 타락과 부정으로 얼룩진 양반들의 잔치- 과거제도

 

고려 광종시기에 도입된 정부 관리의 등용문인 과거시험제도가 초기의 올바른 시행에서 벗어나 조선시대엔 공정한 인재 선발 기능을 상실했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우리가 대부분 어사 박문수, 춘향전의 이도령 등이 시골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그 결과 과거시험에 급제하여 암행어사가 되어 부정한 탐관오리를 혼내주고 신분상 승하는 지극히 단순한 내용으로 과거제도의 순수하고 순기능만을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의 고찰에 의하면 낮은 신분층은 시험을 볼 형편이 되지 않아 원천적으로 응시가 어렵고 또 시험을 치르는 과장에서도 갖가지 부정한 방법이 동원되고 채점에서도 마찬가지로 공정성과는 거리가 먼 여러 부정이 횡행하였다고 한다. 아울러 현재의 고시제도도 마찬가지로 여러 문제가 있음을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6. 누가 이 여인들에게 돌을 던지는가- 감동어우동

 

만화와 영화 등으로 잘 알려진 조선시대 남성편력의 대표적 여인인 어우동은 실제 인물로 실록에도 몇 차례 등장하는데 실제는 어을우동으로 나온다한다. 이 어을우동에 앞선 여인으로 감동이란 여인이 있었는데 성이 유 씨이므로 유감동인 셈이며 세종임금 시대 여인으로 아버지도 양반이며 남편도 최충기라는 현감 지위에 있었던 사대부였다 한다. 그러나 가까운 일가친척까지 포함하여 40여 명의 사대부 남자들은 물론 심지어 신분을 넘어 중인 출신 사내들과 성적 관계를 맺어 최후에 교살형을 받고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 감동사건 53년 후 성종시대에 어을우동 역시 양반인 태강수 이동이란 인물의 아내였으나 집안에 일하러 온 은그릇 장인을 시작으로 수많은 남자들과 신분을 불문하고 성적 유희를 벌려 결국 사형에 처해졌다 한다. 여기에서 자자는 간통 여인과 간통 남자들의 형 즉, 벌을 받은 형평성에 대하여 고찰하고 있다. 여인들이 대부분 사형이라는 극형을 받았음에 불구하고 남자들은 삭탈관직이나 귀양, 또는 곤장형정도로 그 차이가 극심하여 이의 부당함을 신랄하게 지적하고 있다. 다른 스캔들도 다루기도 하며 또 조선시대에 빠질 수 없는 기생 제도에 대해서도 그 기원과 기생들의 신분상 위치와 기생들과 남성들과의 관계 등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7.서울의 게토, 도살면허 독점한 치외 법권 지대- 반촌

 

지금의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혜화동 로터리 쪽으로 북동쪽 지역 일대가 반촌이라고 불렀는데 근처에 성균관이 있어 유생들의 활동 지역이었다 한다. 요즘으로 치면 성균관이 대학교 기능을 하여 많은 기숙 유학생들의 먹거리를 주변에서 조달하다 보니 주변에 자연히 도살장도 생기고 그러다 반촌에서 서울 도성에 소비되는 도살을 맡아서 했다고 한다. 소 도살은 최하층 천민인 백정이 맡다보니 그와 비슷한 각종 천민들이 모여 살게 되고 죄수가 이곳으로 도망해도 찾을 수 없는 다른 지역과 유별난 지역이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이 지역에 대한 각종 자료를 열거하며 조선의 최하층민의 생활상을 밝히고 있다.

 

8.조용한 아침의 나라를 뒤흔든 무뢰배-검계왈자

 

조선시대 비밀 폭력조직 검계는 대개 부잣집 자제들로 구성되었다 한다. 실록에서는 숙종시대에 검계를 일망타진한 기록이 나오고 영조시대에도 장봉익이란 포도대장이 도성의 검계 조직을 무자비하게 검거하고 극형으로 처벌하여 씨를 말렸다고 한다. 다시 순조 시대에 이들의 기록이 다시 나타나 검계의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며 검계의 조직원을 왈자라 부르기도 했다는데 이들은 주로 기생의 기둥서방 노릇도 하고 사치스러운 옷을 입고 다니며 돈을 물 쓰듯이 하는 무뢰배였다 한다. 결국 이들은 요즘으로 치면 깡패나 조폭에 해당하며 우리가 어린 시절 거친 장난꾼이나 난봉꾼을 왈패라 하던 기억이 여기에 연결됨을 알 수 있다.

 

9. 조선시대 유행을 주도한 오렌지 족-별감

 

먼저 별감이란 직위는 왕의 명령전달이나 왕이 사용하는 붓과 벼루의 공급 그리고 이런 문구의 관리를 하며 궐문 자물쇠 보관관리와 궁궐 설비 유지보수 임무를 맡은 하위 육체노동계급으로 약 300여 명 정도였다고 한다. 비록 직위는 낮으나 지엄한 임금님 가까이 있다 보니 이권 개입이 쉽고 신분에 비해 의상에 각별한 주의와 사치를 하다 보니 조선시대 장안의 복식 유행을 이끄는 집단이 되었다 한다. , 요즘으로 보면 강남 오렌지 족 정도라고 저자는 비유하였다.

또한 별감들은 의상뿐만이 아니라 유흥 분야에서도 당시 최첨단의 길을 걸어 대부분 기생들의 기둥서방 역할을 하였으며 궁중에서도 이를 알고도 묵인하는 특이한 집단이었다 한다.

 

10. () 요강에 소변보고 최음제 춘화가 가득하다.

 

대부분 별감들의 실명이 기록에 나타나지 않는데 특이하게 고종연간에이원형이란 별감에 대한 기록이 있어 저자는 이를 자세히 다루었고 소설에 나타난 <이춘풍전>을 통해 조선의 유흥문화를 비교적 꼼꼼하게 언급하고 있다.

 

(보 론)

 

저자는 서울의 옛 지도를 곁들여 지역에 따라 신분계층별 인구분포 현황을 다루었는데 대강 정리해보면 지금 위치로 북악산, 남산, 낙산, 서소문 지역은 양반 거주 지역으로 종로지역은 상민 지역,다동, 청진동은 시전 상인 주거지였다고 한다.

기술직에 속하는 중인 신분인 의관, 역관, 화원 등은 청계천 가까운 장교동, 관철동, 수표교, 관수동 일대였고 내시들은 주로 효자동일대 별감들은 원남동, 원지동 일대에 터를 잡고 살았다고 한다.

 

책을 덮고 조용히 생각을 해보니 저자의 많은 노력과 해박한 지식과 자료에 의해 많은 부분이 사실임에 틀림이 없겠지만, 한편으론 저자의 일방적이고 독단적 판단에 의한 내용도 많지 않았나 생각한다. 예를 들면 과거제도만 해도 오랜 기간 제도를 시행하며 부정이 있었을 것이며 특히 세월이 지나면서 부정의 정도도 심하고 폐해가 자심했겠지만 그래도 역사적으로 수많은 조선시대 인재들이 과거시험에 의해 갈고닦은 학문을 겨루고 과거를 통하여 관리에 등용되어 고위직에 오르는 등 사회 신분 상승의 발판이 된 제도가 분명한 사실이었는데 저자는 이에 대해 일부분의 문제를 전체로 확대하여 매도하지 않았는가 생각하였다.

 

또한 허준과 이재마의 의학적 성과도 물론 처음엔 왕족에게만 혜택이 있었겠으나 시일이 지나면서 자연히 일반 서민에게도 많은 영향이 돌아가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런저런 다소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있으나 어떻든 조선시대 일반 서민의 일상생활을 감칠맛 나게 정리했다는 사실에 높은 평가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