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김승옥, 무진기행 霧津紀行>을 읽고....

깃또리 2020. 6. 27. 10:37

<김승옥, 무진기행 霧津紀行>을 읽고....

작가와 함께 대화로 읽는/ 대담 이태동

지식더미

 

  소위 사람들은 한국 단편소설의 백미(白眉) 셋으로 황순원의 <소나기>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그리고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꼽는 사람이 많다. 더러는 김유정의 <봄 봄>이나 김동인의 <배따라기>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을 말하기도 한다. 하긴 문학작품의 우열을 가리는 일은 그리 만만하지 않은 일이며 마치 사람마다 입맛이 달라 좋아하는 음식이 제 각각이듯이 작품의 내용, 문장의 아름다움, 시대상황의 반영 등 어느 부분에 기준을 두느냐에 따라 독자들의 평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소나기><메밀꽃 필 무렵>은 교과서에 수록되어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무진기행>이나<삼포 가는 길><봄 봄>은 학생들이 읽기에 쑥스러운 정사 부분 등 어린 학생들이 읽기에 곤란한 대목이 나오기 때문에 초, 중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리지 못하였을 뿐 결코 앞의 두 작품에 비하여 뒤지지 않는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아무튼 나는 불현듯 <무진기행>을 다시 읽고 싶어 내 보잘 것 없는 서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으나 누구에게 빌려주고 되돌려 받지 못하였는지 찾지 못하여 책을 주문하여 받아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주문할 때 제목만 입력하고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은 탓에 여러 작품이 묶인 단편집이 아니고 오직 <무진기행>을 위해 한 권으로 제본된 책으로 머리말은 서강대 명예교수 이태동 선생이 쓰고 원작 소설이 실리고 다음엔 '한국소설 문학사의 정전'이란 제목으로 김승옥과 이태동의 대화(사실은 김승옥이 실어증으로 말할 수 없어 어눌한 대화와 필담을 정리한 내용)가 나온다. 이어서 소설가 김훈선생이 쓴 "작가와 함께 무진을 찾아가다"라는 문학기행이 나타나고 뒤이어 김승옥의 자전적 에세이: '어린 시절의 두 가지 이야기' 마지막으로 김승옥의 화첩, 작가 연보와 앨범으로 구성되었다. 처음엔 책에 약간 불만이 있었으나 다 읽고나서 오히려 주문이 잘 된 경우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책을 받은 날 퇴근하여 작품을 단숨에 읽었다. 그런데 읽고 나니 처음엔 왠지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너무 기대했던 것일까? 너무 급히 읽어서 일까? 예전의 감성적인 감정이 무디어져서 일까? 아니면 40년도 더 지난 오래된 작품이다 보니 새로운 감각과 화려한 문체를 자랑하는 최근의 날렵한 작품에 비해 이제 뒤로 밀려난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이 시작하는 첫 소제목 <무진으로 가는 버스>의 앞부분에 나오는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해쳐 볼 수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았다."라는 유명한 구절은 다시 읽으니 반갑기도 하고 김승옥의 표현력에 다시 감탄할 수밖에 없다. 지금도 이러했으니 45년 전 발표된 이 소설을 읽고 이 나라의 문사들은 밤새워 통음을 하며 자신들의 시대가 끝났음을 한탄하였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책 뒤의 문학기행을 적은 김훈씨의 글에 자기 아버지는 글 쓰는 재주가 있었으나 생계를 위한 호구지책으로 무협지를 썼는데 아버지는 어느 날 친구들과 김승옥의 글을 함께 읽고 경악과 질투를 섞어 "! 이놈 문장 좀 봐라, 이게 도대체 인간이냐" "걔는 인()이 아니야, 누구한테 배운 것도 아니고 그냥 저절로 된 놈일 거야."라고 부르짖으며 밤새 폭음을 하였다 한다.

 

더욱 슬픈 일은 아버지 친구들이 다 돌아가고 김훈의 아버지는 무협지를 써서 처자식을 부양하는 자신의 신세를 서글퍼하며 머리를 담벼락에 부딪치며 엉엉 울었다 하며 어린 김훈은 아버지가 글을 안 써도 좋으니까 그냥 허클베리 핀의 아버지처럼 마음 편하게 술이나 드시고 허랑방탕하게 떠돌아다니는 사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작품<무진기행>보다 김훈 선생의 김승옥과 함께 한 문학기행을 더 재미있고 감명 깊게 읽었다. 특히 앞에 인용한 부분을 읽을 때는 김훈 선생의 아버지가 마치 우리 아버지나 되는 것처럼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사실 우리 세대의 우리 아버지들은 상황이 조금씩 다를 뿐 김훈 선생의 아버지와 모두 엇비슷한 운명이었으니........

 

이 짧은 소설의 줄거리는 대강 이러하다.

 

화자인 주인공<> 윤회중은 33살이고 첫 여인과 사랑에 실패하였으나 운이 좋아 젊고 부유한 여자와 재혼하여 장인과 부인의 지원으로 어느 제약회사 전무가 될 위치에 있으나 건강이 조금 걱정되자 그를 어머니 산소가 있는 무진에 며칠 쉬었다 오라는 부인의 권유를 받고 기차를 타고 고향 가까운 역에 내린 다음 버스로 고향 무진으로 향한다. 안개 자주 끼는 무진에 도착하여 세무서장이 된 고향 친구, 학교 후배인 무진 중학교 국어교사 그리고 서울에서 음대를 졸업하고 음악 선생으로 내려온 하인숙도 만난다. 이 대목에서 고향 후배가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피츠제럴드를 좋아한다는 말이 나오는 걸 보니 작가 김승옥도 이 작품을 쓸 24살의 그 당시 피츠제럴드를 상당히 좋아했던 것 같다. 어머니 산소에 갔다 오는 길에 자살한 술집 여자 시신도 목격하고 음악 선생 하인숙과 데이트도 하다 서로 마음이 이끌려 몸을 주고받기도 하지만 당초 계획보다 일찍 서울로 올라오라는 아내로부터 전보를 받고 버스를 타고 무진을 떠난다. 주인공은 무진을 떠나기 전 인숙에게 사랑한다는 내용이 든 편지를 썼지만 읽어보고 그리고 찢어 버린다. -이 소설의 배경은 김승옥이 자란 순천 바닷가라고 하였다.

 

내가 이 소설에서 고른 빼어난 문장은 앞에서 인용한 문장과 함께 다음과 같다.

 

윤회중과 하인숙이 세무서장 집에서 나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6월 하순의 밤 풍경을 묘사한 대목으로 "우리는 논 곁을 지나가고 있었다. 언젠가 여름밤.. 멀고 가까운 논에서 들려오는 개구리들의 울음소리를, 마치 수많은 비단조개껍데기를 한꺼번에 맞 비빌 때 나는 듯한 소리를 듣고 있을 때 나는 개구리울음소리들이 나의 감각 속에서 반짝이고 있는 수없이 많은 별들로 바뀌어져 있는 것을 느끼곤 했었다."

 

주인공이 하인숙과 몸을 주고받은 정황을 묘사한 대목으로 "나는 그 방에서 여자의 조바심, 마치 칼을 들고 달려드는 사람으로부터, 누군지가 자기의 손에서 칼을 빼앗아 주지 않으면 상대편을 찌르고 말듯한 절망감을 느끼는 사람으로부터 칼을 빼앗듯이 그 여자의 조바심을 빼앗아주었다. 그 여자는 처녀는 아니었다. 우리는 다시 방문을 열고 물결이 다소 거센 바다를 내려다보며 오랫동안 말없이 누워 있었다."

 

책 뒤의 작가연보와 앨범을 보면 김승옥은 일본 오사카에서 동경 유학생이던 김기선과 한약방을 하던 외할아버지 밑에서 자란 여학교 출신 어머니 윤계자의 장남으로 1941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3살까지 자랐다. 해방으로 1945년 전남 진도로 귀국하여 광양을 거쳐 1946년 전남 순천에 정착하여 순천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살았으며 고등학교 시절 김학길이라는 어린 시절 아명을 필명 삼아 단편 <서점 풍경>을<서점풍경> 써 <학원>지에 발표하였다. 1960년 서울대학교 불어불문과에 입학,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생명 연습>이<생명연습> 당선되었고 1964년<무진기행>을 <사상계>에 발표하고 1965년 서울대학교 졸업하였다. 그림 그리는 재주도 있어 김이구라는 이름으로 학원지, 잡지, 신문 등에 만평과 삽화도 그렸는데 이구라는 이름은 그의 고향집 29번지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졸업 후 영화 시나리오도 집필하여 <무진기행>을 원작으로 영화 <안개>를<안개> 만들어 1967년 개봉하고 각본을 쓴 영화 <어제 내린 비>, <영자의 전성시대>가 개봉되었으며 틈틈이 작품을 발표하였다. 이 당시 어느 모임에 김승옥과 함께 찍은 사진에서 문우들의 면면을 보면 가히 이 시대의 문사들의 총집합이라고 할 만하다. 조선작, 김광규, 최인호, 오규원, 김화영, 김현, 김주연, 정현종, 오생근, 권영빈, 황동규, 김치수, 황인철, 김원일, 홍성원, 이기웅, 김병익 등으로 나 같은 문단과 거리가 먼 사람도 18명 중 이름을 처음 보는 사람은 황인철, 이기웅 두 사람 정도일 뿐 나머지는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원로급에 해당하는 시인, 소설가, 평론가 들이다. 작고한 김현씨가 특히 눈에 띄기도 하다.

 

그러나 1981년 무신론자였던 아내 백해옥의 권유로 여의도 순복음교회에 나가다가 종교적 계시를 받는 극적 체험으로 김승옥은 책 어디엔가 "신의 세계를 알고 난 뒤에는 이 세상에 도대체 펜을 들어서 소설로 써야 할 문제란 없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라고 말하며 그러나 또 "예수님이 꿈속에서 나타나 원고지를 펼쳐 보이며 소설을 쓰라는 몸짓을 나에게 해 보이시곤 한다."라는 말도 하였다. 아무튼 창작 의욕을 잃었으나 세종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일하다가 2001년 성결신학대학교에서 신학공부를 시작하고 목사의 길로 나아가 인도로 가서 선교활동도 꿈꾸다가 2003년 문우 이문구의 부음으로 장례식에 가려고 승용차 운전석에 앉았으나 뇌경색으로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으나 후유증으로 실어증이 남아 지금 요양 중이라 한다.

 

<무진기행>에 얽힌 여담으로 소설 발표 후 당시 성균관대학교 조교수로 재직하던 전혜린이 김승옥을 동생처럼 유난히 아끼고 혜화동 학림다방 근처 주점에서 각종 모임에 데리고 가 여러 친구들에게 소개하기도 하였으나 몇 달 후 자살하여 김승옥은 퍽 놀랐게 했다 한다. 그리고 김승옥의 어린 시절 가슴 아픔 기억을 적은 글이 내 마음까지도 아프게 한다.

내용은 이렇다. 김승옥이 열한 살 때 혜경이라는 네 살 된 여동생이 있었고 여순반란사건 때 사망한 아버지 얼굴도 보지 못한 아이였다 한다. 6.25 전쟁 직후라서 모든 것이 부족한 상태라 어머니는 바느질 품삯으로 일하고 일하는 어머니 대신 승옥이 여동생을 노상 업어 주고 지내며 무척 귀여워했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먼 해안지방으로 무명을 바꾸어 오려고 감 한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다음 날 오기로 하고 떠났다 한다. 아침부터 보채기 시작한 동생을 등에 업고 하루 종일 시달리다가 밤이 오자 울음을 그치고 신음하다가 까무러쳤으며 파드득 파드득거리다 새벽 3시에 승옥과 할머니가 보는 앞에서 숨을 거두었다 한다. 승옥이 진실로 사랑한 것은 그 애 뿐이라 하며 그 애는 사람을 사랑하는 능력을 일깨워준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사람이었다고 술회하였다.

 

"그 애가 나에게 가르쳐 준 사랑. 그것은 '사랑' 이라는 말에 대하여 내가 가지고 있는 개념이다. 즉 내게는 사랑이란 연민(憐憫)을 뜻하는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니 이 책을 구입한 것은 잘한 일 있은듯하다.. 왜냐면 천천히 다시 읽어 보니 처음에 읽었을 때 느끼지 못했던 소설의 배경이 눈에 보이는듯하고 소설의 인물들의 성격이 가깝게 다가온다. 시간이 흘러 다시 읽고 싶을 때 꺼내 읽기로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