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에곤 실레, 벌거벗은 영혼>을 읽고...

깃또리 2020. 6. 19. 20:22

<에곤 실레, 벌거벗은 영혼>을 읽고...

Egon Schiele Naked Soul 1890~1918

구로이 센지 지음/ 김은주 옮김

다빈치

 

 

 

 

우리 사무실 직원 한 사람이 오스트리아 화가 에곤 실레를 가장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고 관심을 두게 되었다. 작년 2010년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클림트 전시회를 다녀오면서 미술 관련 서점에서 이 책을 구입하였으나 서가에 꽂아 두고 몇 번이나 꺼내 읽다 말다를 반복하였다. 빌린 책이 아니다 보니 어느 때 읽어도 된다고 생각하다보니 게으름을 피우게 되었다. 새 해를 맞아 새로운 마음가짐도 다짐할 겸 로마 황제<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꺼내 펼쳐보았으나 솔직히 재미도 없고 지루하여 몇 페이지를 읽다 덮기를 수없이 하다 그 사이 중간중간 이 책 <에곤 실레, 벌거벗은 영혼>을 읽고 오늘 도서관에서 마지막 장을 덮었다. 사실 책이라 해도 화가의 그림이 많아 글은 두 서너 시간이면 다 읽을 수 있는 분량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사람이지만 두 살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다는 천부적으로 재능을 지녔던 화가는 사물을 보는 관점이나 사회현상을 대하는 생각이 보통 사람과 다른 인물이었다. 특히 성에 대한 화가의 시각은 100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 시점에서도 대담하고 퍽 자유로웠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이 책의 원작자로 실레의 작품과 삶을 책에 담은 일본 출신 문학 작가인 구로이 센지의 이력도 화려하며 작품 해설을 읽노라면 소위 우리들이 말하는 "꿈보다 해몽이 낫다."라는 옛말이 떠오를 지경이다. 지은이 소개 난을 보면 센지는 1932년생으로 일본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지성파 작가로 <커튼 콜>로 요미우리 문학상, <군서 群棲>로 일본 문단의 최고 영예인 다니카키 준이치로 상을 수상했으며 에곤 실레의 불안과 기묘함이 투영된 작품에 심취하여 10년이란 세월에 걸쳐 이 책을 집필하였다 한다.

 

순서가 바뀌었지만 화가 에곤 실레에 대한 소개 글을 옮겨본다.

 

에곤 실레의 아버지는 오스트리아의 어느 시골 역장이었으나 오랜 기간 성병인 매독으로 고생하다 실레 어린 시절 사망하여 대부이자 고모부가 후견인이 되었다. 고모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어머니의 도움으로 1906년 빈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하였으나 학교 미술교육에 대한 반발 하여하여 실레가 중심이 되어 13개 항목의 아카데미 개혁안을 요구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학교를 그만두었다.(1909) 빈 미술 아카데미 학생 시절35살 연상인 클림트를 만나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그러나 그의 제자라고 할 수 없다고 한다. 단지 클림트와 관련된 이야기로는 클림트가 모델로 삼으며 함께 잠을 자기도 했던 실레보다 두어 살 아래의 발레리 노이첼을 소개받아 함께 4년을 보냈다. 이 시기 실레는 남성과 여성의 성기는 감추고 부끄러워할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탄생과 존재의 원천이라고 이해하였기 때문에 자신의 누드 초상화에도 거침없이 자주 그렸으며 심지어 자위 모습도 그려 외설 시비에 휘말렸다 한다. 조금 극적인 사건으로는 발레리 노이첼과 함께 어느 시골 농가를 빌려 작품 활동을 하는 동안 13세 소녀를 유혹과 감금 그리고 외설 작품을 공개했다는 죄목으로 24일간 감옥생활을 하다 재판을 받고 석방되는 일까지 있었으며 이 사건 기간에 발레리의 헌신적인 보살핌이 있었다 한다. 아무튼 발레리와 동거하는 기간 그녀를 모델로 역동적이고 현실에 구애받지 않는 자신만의 스타일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러나 시골 사람들의 이해 부족으로 농가 아틀리에에 정착하지 못하고 다시 빈으로 돌아온 그의 나이 24세 되던 1914년 실레는 길 건너 살고 있는 하름스가의 자매 중 언니인 에디트를 좋아하여 다음 해 결혼을 하였다.

 

그러나 불안한 청춘시절 실레를 이곳저곳 따라다니며 모델이자 동반자로 어떤 때는 보호자로 헌신했던 발레리에게는 에디트와 결혼하지만 여름휴가 며칠을 같이 지내주겠다는 뻔뻔스러운 제안을 하였다 한다. 이런 황당한 제안에 실망한 발레리는 실레와 헤어진 후 두 번 다시 그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한다. 실레를 떠난 다음 그녀는 적십자 간호원으로 지원하여 일하다 1917년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달마치야 지방의 육군병원에서 성홍열로 23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한다.

 

지은이는 이 사실에 대하여 청춘 남녀 간에 있을 수 있는 일이며 발레리는 애초부터 실레의 부인의 위치는 아니었고 친밀한 모델이었을 뿐이라고 실레를 옹호하지만 같은 남자의 입장에서도 아무튼 썩 듣기 좋은 말은 아니다. 결혼을 하고 나서 실레의 그림은 차분해진 모습이며 주제 자체도 평범해진 경향을 보인다. 결국 나의 의견으로는 그의 그림은 발레리 이후와 이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당시 실레의 인기는 치솟았으며 특히 1917년 클림트가 뇌출혈로 급서 한 다음 빈 화단을 이끌 유망한 작가로 부상하여 부와 명성을 얻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호사다마라는 말이 있듯이 1918년 그 시절에 치명적이었던 유행병 에스파니아 인플엔저(스페인 독감)에 아내 에디트가 먼저 죽고 3일 후 그도 같은 증세로 28세란 한창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아마 실레가 이렇게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그에 대한 신화와 같은 명성이 과연 존재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무튼 그의 짧은 생애로 말미암아 그의 그림은 더욱 강렬함을 유지하며 그의 신화가 계속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