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일본사를 움직인 100인>을 읽고...

깃또리 2020. 6. 9. 09:49

<일본사를 움직인 100>을 읽고...

쇼토쿠 태자로부터 미야자키 히야오까지 일본을 움직인 사람들

임은경 엮음/ 송원범. 김보한 . 신동규. 전성곤 감수

청 앙출 판사

 

 

 

 올여름은 어느 해보다 뜨거웠다. 그래서 8월 한 달은 책을 열어 볼 기회도 적었다. 그러나 600여 페이지 되는 이 책을 읽은 것은 큰 소득이다.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고대 로마 역사나 영국 그리고 미국의 역사에 대한 이런저런 책을 읽었지만 가장 가까운 일본의 역사에 대해서는 제대로 읽은 적이 없었다. 겨우 이원복 교수가 쓴 만화 시리즈인 <먼 나라 이웃나라> 일본 편을 읽은 것이 기억에 남을 정도여서 부끄럽다. 가끔 이런저런 자리에서 일본인들이 손꼽아 추앙한다는 명장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세 사람의 이름은 여러 번 듣기도 했지만 이 세 사람의 활동 연대와 상호관계도 잘 모르고 있었으며 최소한 이 세 사람에 관한 책이라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러던 차에 이 책이 눈에 띄어 일단 일본 역사를 전체적으로 개괄할 수 있어 더위 속에서 틈틈이 읽기를 마쳤다. 늦은 감이 있지만 단 한 권의 책으로 가깝고도 먼 나라 그러나 많이 알수록 도움이 되는 나라의 역사 인물들을 주마간산 격이나마 만나게 되어 앞으로 일본 역사의 심화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 기쁜 생각이 든다.

 

책은 고대, 중세, 근세, 근현대  4 시대로 나누어 역사적 인물의 생몰 년대와 출신 배경,,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업적을 간략히 기술하면서 인물의 초상 사진, 인물에 관련한 지도와 연표 등을 함께 실어 인물의 이해를 돕고 있다. 100명의 인물 중에서 특히 중요한 사람 몇을 골라 간단히 정리하여 후일 다른 일본 역사서를 읽을 때 길잡이로 삼을까 한다.

 

*일본의 건국 신

진무 천황(神武天皇 BC 711~585, 26)

기원후 7세기경 덴무 천황의 지시로 편람 된 일본 사서인  <고사기, 古史記>, <일본서기, 日本書記>에 등장하지만 역사적 사실성은 회의적이며 신화의 일부로 보는 견해가 있지만 일본 사람들은 자신들의 건국 신으로 그가 태어난 211일은 건국기념일로 지정했다 한다. 현재의 일본 천황은 진무 천황의 후손으로 그 혈통의 단절이 한 번도 끊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 아스카 문화를 꽃피우다

 

소토쿠 태자(聖德太子, 574~622, 48)

31대 천황 요 메이의 아들로 태어나 33대 천황 스이코의 섭정을 맡아 일본에 불교를 보급시키고 헌법 17조를 제정하였으며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한 인물이다. 고구려 승려 혜자, 백제 승려 혜종을 스승으로 삼고 호류지를 건립하여 고구려 승려 담징이 금당에 벽화를 그리도록 한 인물이었으며 62248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스스로 신이 된 남자

덴무천황(天武天皇631?~685)

 

1998년 나라 현에서 출토된 목간에 천황이란 단어가 나타나 677년 덴무 천황 시대에 천황이란 말이 사용되었음을 확인하였으며 즉위 축하 사절단에 탐라 사신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나온다.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기 위한 수단으로 역사서 <고사기><일본서기> 편찬을 서둘렀다.

 

*가마쿠라 막부를 개창하다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源賴朝 1147~1198)

 

무사계급이 정권을 잡은 700년 일본 최초의 무사정권 가마쿠라 막부(1185~1333. 148)를 세운 쇼군

 

*가이의 호랑이

다케다 신겐(武田信玄1521~1573,52)

 

전쟁터에서 기마대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정보를 중요시하여 전국에 닌자를 배치하고 우에스기 겐신과 15614차 전투에서 업치락 뒤치락한 전투에서 승리하였으나 두 사람이 싸우는 동안 오다 노부나가가 급성장하여 전국을 지배하였다.

 

*에치고의 용

우 에스키 겐신 (上衫謙信1530~1578,48)

 

무로마치 막부 말기 일본 전국을 신겐, 호조 우지야스와 함께 33 등분하여 지배하였다. 뛰어난 전술과 전투 흐름에 대한 안목, 신출귀몰한 속공 그리고 직접 전투에서 진두지휘한 명장이다. 전국시대를 종식시킨 오다 노부나가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경우 무장으로써 재능은 겐신이나 신겐에 크게 뒤떨어진다. 신겐은 히데요시와 이에야스를 패주 시켰으며 겐신은 오다 노부나가를 완패시킨 인물이다. 겐신은 장수로써 뛰어나면서도 와카와 서예에도 일가견 있는 풍류 남이었고 진언종 사찰에 출가했던 경험으로 불교에도 심취하여 전투가 없는 날에는 참선으로 지냈으며 전국에서 모여든 다이묘와 함께 막부를 재건하기 위해 기병하기 엿새를 앞둔49세의 나이에 갑자기 쓰러져 세상을 떠난 비운의 장수였다. 자신의 죽음을 예상이라도 한 듯 죽기 한 달 전 와카 한 수를 남겼는데 아래와 같다. "49년이 한순간의 꿈이더구나. 생을 모르고 죽음 또한 모르나니. 일생의 영화는 한 잔의 술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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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 에도 막부와 평화의 시대

 

*천하통일의 꿈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1534~1582. 46)

 

오와리 국 성주의 적장자로 태어났으나 어린 시절 호방한 행동으로 주변의 신임을 얻지 못하여 후계 결정기에 일족의 공격을 무력으로 막아낸 다음 직속 군사를 운용하여 여러 전투에서 승리하여 쇼군 요시아키를 교토에서 추방하여 명목상 전국의 실권을 쥐고 있던 무로마치 막부시대를 끝나게 하였다. 천하 통일을 눈앞에 두고 가신 아케치 미쓰히데가 갑자기 배신하여 최후를 직감한 오다 노부나가는 자결로 생을 마감하였는데 불과 46세의 나이였다. 소위 '혼노지의 변'이란 사건이다. '오닌의' 이후 130130여 년간 펼쳐진 혼란스러운 난을 평정한 오다의 평으로, 그의 천하통일의 대업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마무리 되었고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 막부를 열어 '오다가 쌀을 찧어 도요토미가 반죽한 떡을 도쿠가와가 먹었다."라는 말이 퍼지기도 하였다. 이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새가 울지 않으면 오다 노부나가는 칼로 베어버리고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울게 만들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울 때까지 기다린다."라는 말로 이 세 사람의 성격을 간단히 비교하기도 한다.

 

*천하를 손에 넣은 원숭이

도요토미 히데요시(豊信秀吉1536~1598, 52)

 

대부분의 일본 장수들은 좋은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이와 도요토미는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면직물과 바늘 장수를 하다 15살에 마쓰시다 유키 쓰나 가문의 재정 관리인으로 일하다 고향 오와리 국으로 돌아와 오다 노부나가 밑에서 잔심부름 하는 일부터 시작하였다. 오다의 능력위주 인재 등용에 힘입어 중앙 정치계에서 관리로 능력을 발휘하다가 성을 하사 받고 작은 성의 성주가 되었다. 자신이 받들던 오다의 사망 이후를 잘 관리하여 중앙 조정으로부터 도요토미라는 성을 하사 받고 태정 대신,, 간바쿠 등의 직책을 얻어 이를 무기 삼아 전국의 다이묘들을 여러 가지 수단과 방법으로 자신에게 싸움을 걸지 못하게 하였다.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하여 1592년 조선을 침략을 단행하여 소위 임진왜란을 일으킨 인물이 되었으나 1597년 정유재란을 일으킨 다음다음 해 세상을 떠났다. 미천한 가문 출신에 외모도 보잘것없었으나 지략과 부지런함으로 전국을 통일한 인물로 기록되는 그가 죽기 전에 남긴 편지의 한 구절을 보면 죽음 앞에서는 누구든지 같은 심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슬처럼 떨어졌다 이슬처럼 사라지는 게 인생이런가, 세상만사 모두가 일장춘몽이로세."

 

*새가 울면 울 때까지 기다린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1543~1616, 73)

 

미카와 국 오카자키 성주의 적장자로 태어났으나 여섯 살 때 오다 노부히데 집에서 인질 생활을 하고 여덟 살 때 아버지가 암살당했으며 이마가와 요스코 토의 양녀를 아내로 맞는 정략결혼을 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부인과 아들에게 자진 명령을 내려야 했던 비참한 처지에 몰리기도 했으며 오다 노부나가와는 20년간이나 동맹관계를 맺어 신의를 지켰다. 오다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 그의 누이동생을 정실부인으로 맞이하여 히데요시 죽기 전까지 15년 동안 관계를 유지하였다.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임진왜란 참전을 여러 이유를 들어 거부하고 지금의 도쿄인 에도를 재정적 군사적으로 발전시켰다. 1598년 정유재란 와중에 히데요시가 죽자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여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미스 나리 군을 격파하여 천하를 재패한 다음 자신의 셋째 아들 히데타다에게 쇼군을 물러주고 슨푸에 머물면서 오교 쇼(大御所)라고(大御所) 자신을 칭하면서 9년간 막후 정치로 에도 막부의 기반을 공고히 하였다. 258

 

-쇼군(將軍): 최대 다이묘

-다이묘(大名): 쇼군에 복속된 11만 석 이상의 영지를 소유한 영주

 

*에도 막부 250년의 체재를 세우다

도쿠가와 히데타다(德川秀忠1579~1632, 63)

 

에도 막부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 아들로 2대 쇼군이며 무장이던 형 히데 야스에 비해 모든 면에서 떨어지지만 이에야스는 자신의 말을 잘 듣는 둘째를 쇼군으로 앉히고 가신들이 법률이나 정책을 제시하면 자신이 제가 하고 아들이 실행하는 방식으로 정치를 요리하였다. 1614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본거지인 오사카 성을 73살의 아버지 이에야스와 함께 함락시켜 최대 난적을 제거하고 이에야스 사후에는 자신의 이미지를 쇄신하여 강력한 통치력을 발휘하여 천황가와 혼인으로 막번 체제를 강화한 쇼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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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근대화와 2차세계대전)

 

*왕정복고 쿠데타의 주역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1812~1877, 65)

 

오쿠보 도시미치, 기도 다카요시와 함께 메이지 유신 33 걸로 불린다. 왕정복고 쿠데타를 일으켜 막부를 무너뜨리고 천황 중심의 정치체재를 이루게 한 인물이었다. 기존의 봉건 체재를 유지하기 위해 사쓰마 번을 중심으로 2만 명의 학생들에게 군사학을 가르치고 1877년 세이난(西南)의 전쟁도 일으켰으나 구마모토 성 공방전에서 관군에 패퇴하여 자결하였다.

 

*메이지 일본의 건설자

요시다 쇼인(吉田松陰1830~1859, 29)

 

존 왕파 사상가이며 교육자로 메이지 일본의 설계도를 그린 선각자로 宋下村塾을 세워 많은 인재를 육성하였다. 여기서 배출된 초대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 초대조선 총독 데라우찌 마사타케 등의 인물이 있고 한국인에게는 일본 우익의 원조로 여겨지는 인물이다. 1854년 미군 함선으로 밀항하려다 발각되어 14개월 수감되어 쓴 유수 록(幽囚錄)에(幽囚錄) 쓴 그의 사상은 후일 정한론과 대동아공영권 사상의 기반이 되었다.

 

*평화적 정권 이양을 꿈꾼 풍운아

사카모도 료마(坂本龍馬1835~1867, 34)

 

막부 체재를 종식시키고 근대 일본의 토대를 마련하는데 자신의 짧은 정치 기간을 불꽃같이 태웠던 지사로 밝혀지지 않은 세력에 의해 암살당했다.

 

*근대화의 아버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言兪吉 1835~1901,66)

 

근대 일본을 대표하는 계몽사 상기이며 근대화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으며 제국주의적 침략과 조선과 중국의 침략을 정당화하였다. 1872년 발표한 <학문의 권유>와 <서양사정>그리고 <문명론의 개략>등은 그의 탁월한 저서로 인기가 있으며 게이오 의숙을 통하여 많은 인재를 길러내기도 하였다.

 

*조선 병탄 작업을 완성하다.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1841~1909, 68)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하급 무사의 양아들로 들어가 지내다 신분을 가리지 않고 공부를 시키던 요시다 쇼인의 宋下村塾에 들어가 1년 지내면서 쇼인의 총애를 받으며 많은 인재들과 교우를 맺어 출세의 발판을 열었다. 21세 되던 1862년 영국 런던대학에 유학하여 화학을 공부하던 중 귀국하여 관료생활을 시작하며 기생 우메코와 결혼하였다. 27세에 효고 현지사,, 외무 사무국 판사, 유럽순방, 내각의 참의, 법제국 장관 등 주요 직책을 거쳐 초대 내각 총리대신 위치에 올랐다. 1889년 이토의 주선으로 <대일본제국 헌법>을 반포하고 조선. 러시아. 중국과 관련한 외교문서에 깊숙이 관여하여 1905년 을사늑약을 체결하고 12월 조선 초대 통감 겸 주둔군 통수권자로 부임하였다. 1909년 조선 통감직을 사임하고 일본에 돌아가 추밀원 의장에 임명되어 러시아 재무장관 코크프초프와 조선 문제를 논의하고 만주 시찰 길에 하얼빈 역에 도착하여 1026일 안중근 의사의 총탄에 사망하였다. 이때 안중근 의사가 말한 그의 죄목으로는 대한제국 황제의 강제퇴위, 명성황후 시해, 대한제국 정권 찬탈, 15개 조항을 들고 동향 평화를 해친 인물로 지목하였다.

 

*일본 해군의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 八郞1848~1934, 86)

 

일본의 군신, 동양의 넬슨이라 불리는 1904,1905년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인물. 같은 고향의 사이고 다카모리의 권유로 해군사관학교에 들어가 영국 해군에 배치되어 7년간 복무하였다. 귀국 후 자신의 경험을 살려 군선 건립에 일조를 하고 고속 순양함의 지휘관이 되어 청일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대만을 수중에 넣어 전쟁영웅으로 부상하였다. 1904년 여순 앞바다에서 일으킨 러일전쟁에 승리하고 19054척의 군함으로 두 배에 달하는 러시아 무적함대를 격파한 쓰시마 해협의 전투는 완벽한 승리였다. 이러한 전과로 해군 총사령관과 백작 작위를 받았으며 1913년에는 해군 원수에 봉해지고 사후 '무사도의 화신', '호국의 신'으로 추앙받았다.

 

*메이지 일본의 상징

메이지 천황(明治天皇1848~1934, 86)

 

1867년 아버지 고메이 천황의 갑작스러운 죽으로 15세에 즉위하였다. 즉위와 함께 대정 봉환이 이루어졌으며 1865년 연호를 메이지로 에도를 도쿄로 개칭하였으며 정부 기본방침 55개 항을 천명하고 이에 따라 개혁을 착수하였다.

 

*근대 지식인의

나쓰메 소세키(夏目속石1867~1916, 59)

 

2000년 아사히신문 독자 대상 ""천년 동안 가장 인기 있는 작가'에서 1위에 오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마음>, <도련님>등을 썼으며 죽기 전 <<길 위의 생>, <명암> 등에서 가족, 부부, 타인과 관계 등을 탐구한 뛰어난 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