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존재의 증명>을 읽고...

깃또리 2020. 6. 7. 14:33

<존재의 증명>을 읽고...

2018 제42회 이상문학상 우수상

정지아

문학사상사

2020. 06. 07.

 

이제 출근하여 일하지 않고 집에서 노는 일에도 조금 적응이 된듯합니다. 뒤돌아 보면 일하는 게 제일 쉬운듯합니다. 왜냐면 일하기 시작하면 대부분 하루 중에서 많은 시간을 차지하고 금전적으로 보상도 따르며 더구나 자신이 제일 잘 아는 일이므로 시간도 잘 가고 마음도 편한가 봅니다. 가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겠지요. 출근하여하는 일 이외에 시간을 보내기로는 등산, 운동, 친구 만나기 등이 있으나 매일 줄기차게 할 수도 없고 더구나 육체적 활동만으로는 만족을 느낄 수 없지요. 그래서 책 읽기, 음악 듣기, 이런저런 글쓰기 등이 정신적 위안이 되고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되는가 봅니다. 회사 일할 때 보다 책 읽기의 속도가 나지는 않지만 그동안 읽기 쉽지 않아 밀쳐 두었던 책들을 다시 꺼내 읽어 다소의 성취감으로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주로 옛 고전 소설이나 영어로 된 책들입니다. 너무 고답적이라서 구색을 맞출 겸 최근 쓰인 글을 찾다가 이상문학상 수상집 2018년, 2019년 판을 대출하여 읽고 있어요.

 

2018년 대상 수상작인 정읍 출신 손홍규의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와 그의 자선 대표작 '정읍에서 울다'를 읽었어요. 사실 나는 내가 태어나자 부모님이 바로 이사하여 살지는 않았으나 한동안 본적 난에 정읍이라고 썼던 사람이지만 나의 취향이 아닌지 이런 소설이 왜 수상작이 되었을까 궁금할 정도입니다. 암튼 고명한 심사위원들이 평가하였기 때문에 나의 식견과 문학성 부족으로 돌리고 우수작들을 읽었습니다.

 

우수작 중 하나인 짧은 단편 정지아씨의 '존재의 증명'이 인상 깊습니다. 30대 후반, 40대 초반쯤인 서울 아파트에 혼자 사는 주인공 남자가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 사는지? 몰라서 파출소에 찾아가 경찰의 도움으로 집에 들어가는 내용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커피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 처음 알게 된 명품 의자에 대한 이야기들이 양념이지만 흥미롭고 재미있네요. 현대인은 타인에 대하여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보거나 잘 알지 못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작가는 소설 첫 부분에서 프랑스 천재 시인 랭보(1854~1991, 37)의 행적을 간단히 서술하여 이 소설이 제시하는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즉 저항과 반항의 아이콘이자 환상적인 시를 십 대에 발표하였던 시인은 자신의 삶 자체를 부정하려느지 31살에 시의 세계를 떠나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 무기상으로 돈을 벌다가 병으로 한쪽 다리를 잃고 암까지 걸려 37세라는 짧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욕심 같아선 소설 속 주인공이 자신의 존재에 대한 깊은 회의와 성찰을 덧붙였다면 더욱 깊이 있는 소설이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일지만 나만의 생각일지도 모르겠네요. 정지아 작가는 처음 만나는 소설가입니다. 1965년 구례 출생으로 1996년 조선일보에 <고욤나무>로 등단하고 운동권에서 활동하여 옥살이도 조금 하였으며 관련 소설을 썼다합니다. 1990년 발표한 <빨치산의 딸>이 잘 알려진 장편소설 같습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빨치산, 4.3 사건, 5.18. 사건, 세월호 같은 이데올로기나 소위 민주화 운동이라는 일들에 대하여 관심이 없고 알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정지아 씨의 <존재의 증명> 같은 부류의 글을 좋아합니다.

인터뷰 내용을 보니 2011년 고향 구례에 귀향하여 늙은 어머니와 개, 고양이와 함께 지내며 광주조선대학교 강의 나가는 일 말고는 "소설 쓰고 밭 일구며 지인과 술잔도 기울이며' 유유자적한다 합니다. 가까우면 들려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싶은 소설가라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