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고...

깃또리 2019. 10. 22. 13:18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고...

알랭 드 보통 / 정영목 옮김

청미래

2012. 08.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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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뒤의 역자 후기를 보면 영국에서는 <Essays in Love>, 미국에서는 <On Love>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으며 국내에서는 1995년 <로맨스>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으나 2002년 개정판으로 다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원제: Essays in Love>라는 제목과 역자를 바꾸어 재출간하였다고 소개하였다. 그러고 보면 첫 출간으로부터 20년이 지났으며 드 보통이 23살 쯤 펴낸 책이다. 이 책을 필두로 알랭 드 보통이 쓴 사랑과 관련한 <우리는 사랑일까. 원제: The Romantic Movement, 2005년>, <너를 사랑한다는 건. 원제: Kiss & Tell, 1995년)>, <사랑의 기초. A Man’s Story>를 흔히 ‘사랑의 4부작’이라 하며 인기가 높다.

 

저자는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났지만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여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여러 권의 책을 써 세계적으로 많은 독자를 거느리고 있으며 특히 우리나라에서 많은 인기를 누리는 작가에 속한다. 사실 나는 그 동안 작가의 책을 대여섯 권 읽었으나 그의 처녀작인 이 책은 이제야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줄 곳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점으로 이 소설은 픽션의 틀을 지니고 있지만 전체적인 줄거리는 작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 이유로는 나는 두 가지를 꼽는다. 첫째 심리묘사에서 20대 초반의 작가가 실재적인 경험의 바탕 없이 연애 과정에서 일어나는 심리상황을 이렇게 치밀하게 쓸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과 둘째로는 상황 묘사에서도 작가가 직접 경험하였을 그 경험의 순간순간을 그림을 그릴 때 순간 스케치하듯이 적어 두었다가 소설에서 적용시키지 않았다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글 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젊은 남녀사이의 연애라는 진부한 주제를 조금은 현학적이지만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며 흥미 있게 다루었다. 주인공 ''는 23 살이며 건축 설계사무소에 다니며 패션잡지사의 그래픽 디자이너이기도 한 27세 쯤 되는 클로이를 출장길에 항공기 옆 자리에 앉아 만나게 되어 서로 첫눈에 마음에 들어 약 1년간 서로 몸과 마음을 주고받으며 사랑하였던 사이다. 주인공 '나'는 클로이와 사소한 일로 다투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 세상에 가장 사랑스러운 여자로 바라본다. 외모와 성격에서 여러 결점을 발견하지만 그래도 언제나 필생을 사랑해야할 여자로 마음을 정하여 부모에게도 인사도 시킨다. 그러나 둘이 만난 지 꼭 1년 후에 클로이는 주인공 친구인 ‘윌’이라는 미국출신의 남자 품으로 떠나고 주인공은 ‘나’는 레이첼이라는 다른 여자 친구를 만나는 것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소설의 대부분이 주인공과 클로이가 함께한 1년간 일어났던 소소한 일들을 그리고 있지만 이 중에는 대부분 상호이해부족이나 성격, 습관 등의 차이로 일어나는 애정싸움을 보여준다.

 

즉, 남녀사이에는 어쩔 수 없는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한 동안 사랑이라는 열병에 묻혀 지나치기도 하지만 사랑이 조금 식다보면 이 차이는 각자에게 크게 나타나게 되어 결별로 막을 내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 과거에는 남녀관계에서 결별이 일어나면 대부분 여성이 피해의식을 느끼고 심하면 자살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 남자가 실연의 아픔으로 자실을 기도하였으나 수면제가 아니라 영양제를 잘못 복용하여 죽음을 피하고 살아나 다시 새로운 인생을 길을 걷는 것으로 나온다. 다소 적은 비율이지만 서양에서도 실연으로 남자가 세상을 버리는 경우가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흥미 있던 부분은 서양 남자인 주인공이 여자 친구와 사귄지 6개월이나 지났지만 입으로 '사랑한다.'라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대목이 나온다. 그러면서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관계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형성된 것이지마는 그럼에도 그 핵심은 어쩐 일인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 같았다. 너무 분명해서 일수도 있고, 너무 의미심장하여 말로 표현 할 수 없어서 일수도 있었다. 클레이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은 그래도 이해하기가 쉬웠다. 그녀는 말을 의심하는 사람이었다. "문제를 말하면 진짜로 문제가 생겨" 그래서 그 후 주인공은 고급 식당에서 나온 마시멜로 접시를 보고 순간 클로이에 대한 감정이 일치함을 느껴서 “나는 너를 마시멜로로 한다."고 말한다. '나는 너를 사랑해'라는 진부한 말 대신'

 

한참 두 사람이 열정에 싸여 있을 때 스페인의 발렌시아의 아늑하고 아름다운 시골로 여행을 갔을 때 일어난 에피소드가 퍽 재미있다. 이 멋진 곳에 도착하자 클로이가 두통과 복통이 생겨 할 수 없이 그곳 의사를 불러 보이자 의사는 이렇게 진단하였다. 행복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갑작스런 공포가 생기면 고산병과 흡사한 안헤도리아라는 증세가 발생한다고... 스페인 이 지역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며 이곳의 전원풍경에 들어오면 갑자기 지상에서 행복을 실현하는 눈앞의 가능성으로 대두되면서 그런 가능성에 대응하기 위하여 격한 생리적 반응이 일어난다고 한다. 스페인 발렌시아가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을 주는 전원 풍경이면 이렇게 될까? 언제 한 번 가보고 싶다.

 

주인공과 클레이가 사소한 일로 다투는 부분에서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싫어한다. 나는 너를 이런 식으로 너를 사랑하는 위험을 무릅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 싫다.' 또한 결국 자살이 실패로 돌아갔지만 주인공이 자살을 결심하고 클레이에게 쓴 마지막 편지 말하자면 유서를 읽어보면 주인공은 진정한 사랑을 잃은 상심인지 아니면 강한 집착이 물거품이 되었을 때의 좌절인지 그도 아니면 아직 세상의 쓰고 단 맛을 모르는 천진한 청년의 치기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요즘 같이 경박한 세상에서 사랑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버리려 하는 순진한 사람이 과연 있을까 퍽 의아하다. “나도 네가 나를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내가 너의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도 이해해다오...”(유서의 마지막 부분)

 

아무튼 시간이 되면 언젠가 천천히 다시 읽어 보아도 좋을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