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무라카키 하루키 잡문집>을 읽고...

깃또리 2019. 10. 14. 09:48

<무라카키 하루키 잡문집>을 읽고...

무라카미 하루키

비채

2012. 0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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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업무상 지방출장이 잦아 몸은 고달프지만, 한편으로는 이동 중에 신문이나 책을 읽을 기회가 많은 것이 괜찮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출장을 일이라 생각하기보다 사무실에서 교통비를 지불하는 조금 힘든 일이라 생각하면 출장도 즐겁다. 이렇듯 모든 세상일이 마음먹기 나름이다. 지난 5월 서울역에 다른 날보다 조금 일찍 도착하여 탑승시간에 여유가 있어 간이 서점을 기웃거리다 집어든 책이다. 500페이지 되는 제법 두툼한 책이지만 ‘잡문집 雜文集’이란 책 제목처럼 이런저런 다양한 종류의 짧고 읽기 쉬운 수십 편의 글이 실려 순서에 상관없이 아무 페이지를 열어 읽어도 되는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으로 더구나 작가의 성격이나 취미, 친구관계, 결혼 및 가정생활 등 그동안 작가에 대하여 궁금했던 점들도 다수 소개되어 퍽 재미있었다. 그래도 책 내용을 크게 대별해보면 그동안 아직 활자화 되지 않은 서문과 해설, 그간 작가가 받은 문학상의 수상소감이나 인사말, 각종 언론매체에 기고한 음악 에세이, 번역과 관련한 에세이, 주변 인물평 등이다. 작가는 영문학과 출신이라 번역에도 실력이 출중하다.

 

특히 수상 소감 중에서 인상 깊은 내용은 '예루살렘 문학상 수상 인사말' 중에 나오는 <벽과 알>이라는 소제목의 글이다. 먼저 작가는 소설가란 어떤 사람인가를 밝히고 있다. '능숙하게 거짓말을 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 (중략) 그러나 도의적으로 비난받지 않으며 오히려 거짓이 크면 클수록 교묘하면 교묘할수록 사람들에게 찬사를 받고 호평을 받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뛰어난 거짓말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 안에 진실의 소재를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작가 무라카미씨가 왜 이런 소설의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였느냐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너무 지나치다는 세계적인 비난을 자신도 동조한다는 의미로 에둘러 하였으며 수상을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일을 망설였으나 침묵하기보다 뭔가 말을 건네기 위해 왔다는 말을 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자신의 마음속 깊이 새기고 있는 구절을 소개하였다. '혹시 여기에 높고 단단한 벽이 있고 거기에 부딪쳐서 깨지지는 알이 있다면, 나는 늘 그 알의 편에 서 있겠다.' 이 짧은 문장의 은유는 자신은 약자의 편에 서겠다는 의미이며 팔레스타인을 약자로 보고 있다는 의미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생각한다. 다시 '개인이 지닌 영혼의 존엄을 부각시키고 거기에 빛을 비추기 위함' 이라는 말을 덧붙이고 있다.

 

내가 이 부분에서 특별한 인상을 받은 이유는 무라카미의 작품은 비교적 인간사의 비극이나 처절한 슬픔을 다루기보다는 가볍고 짧은 남녀 간의 사랑이나 사건을 다룬다고 평소 생각하고 있었는데 작가의 내면에는 국적과 인종 그리고 종교를 넘어서는 인간 보편적인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동안 작가의 작품을 읽다보면 음악에서는 재즈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많고 다음으로 클래식컬 음악이었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오히려 작가의 클래식컬 음악에 대한 지식이 훨씬 상당하였으며 음향기기에 대한 식견도 만만치 않음을 알았다. <스테레오 사운드>라는 일본 음악 잡지에 연재한 음악관련 이야기 중에서 사람이 나이가 더해지면서 좋은 점을 언급한 부분이 나온다. 나도 평소 비슷한 생각을 하기도 하여 여기 그대로 옮겨본다.

 

"나이를 먹어서 좋을 일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젊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인다거나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건 기쁜 일입니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면서 전보다 전체상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혹은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디면서 지금까지 알아채지 못했던 디테일에 불현듯 눈뜨게 됩니다. 그게 나이를 먹어가는 기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경험은 인생에서 하나를 얻은 것 같은 흐뭇함에 젖어들게 합니다. 물론 반대로 젊을 때만 이해할 수 있는 음악이나 문학도 있지만요."

 

사실 나도 얼마 전 옛 직장 선배로부터 백두산 천지에 올라 직접 찍은 천지 사진과 함께 소감을 적은 메일을 받고 답을 하는 과정에 내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좋은 점도 있다는 간단한 내용을 적어 보낸 일이 있다. 또한 음악에 대하여 다음 구절도 경청할만하다.

 

"끊임없는 가치 판단의 축적이 우리의 인생을 만들어갑니다. 그것은 사람에 따라 그림일 수도 있고 와인일 수도 요리일 수도 있지만 내 경우는 음악입니다. 그런 만큼 정말로 음악을 만났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큼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듭니다." 무라키미씨는 아주 음악을 좋아하는 것 같다. '살아서 다행'이란 표현을 쓸 정도이니...

 

우리나라에서 작가의 작품이 가장 인기를 얻고 가장 판매부수가 많았던 소설이 내가 알기로는 <상실의 시대>이며 아마 나는 1998년 쯤 읽었던 같다. 노란색 표지에 <노르웨이의 숲>이란 제목이었다. 몇 년 후 똑 같은 내용의 책을 청색 표지에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판매하였는데 왜 이렇게 바꿨는지 그 이유는 모르겠다. 아무튼 일본에서 발매된 책은 <ノルウェイの森, Norwegian Wood, 1987년>이기 때문에 우리말로 <노르웨이의 숲>이라고 하는 게 적절하다. 원래 영국의 4인조 그룹 비틀즈가 부른 노래 제목이기도 하여 1998년 당시 나는 이 노래의 영문가사를 우리말로 옮겨보기도 하였다. 사실 소설 제목과 내용은 크게 관계가 없었고 더구나 노래가사에서도 소설 내용을 유추할 단서가 없었으며 가사와 노래 제목의 연관성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 책의 소제목 <노르웨이의 나무는 보고 숲은 못보고>라는 글에서 퍽 흥미 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노르웨이의 숲>이 출판되고 Norwegian Wood는 '노르웨이의 숲'이 아니고 '노르웨이산 가구'이며 미국사람은 모를 수 있지만 당시 영국에서는 북유럽 산 가구 즉, 노르웨이제품 가구를 가리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라카미는 Norwegian Wood가 정확하게는 '노르웨이의 숲'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와 마찬가지로 '노르웨이산 가구'도 아니라는 것이 작가의 개인적인 견해라고 하였다. 더하여 존 레넌이 죽기 전 1981년에 <플레이보이>지에 이렇게 말했다 한다.

 

"이 곡에 대해 나는 매우 신중하고 편집증 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당시 다른 여성과의 관계를 아내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으니까. 실제로 나는 늘 누군가와 불륜에 빠졌는데, 곡 안에서는 그런 육체적 관계를 교묘하게 얼버무려 묘사하고자 했다. 마치 연막으로 덮어씌우듯 실제 상황이 아닌 것처럼 이건 누구와의 정사였는지 잊어버렸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말이 떠올랐는지 알 수 없다."

 

 

또 하나 재미있는 이야기로는 비틀즈의 맴버 중 한 사람인 조지 해리슨의 매니지먼트를 맡아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어느 미국 여성이 '본인에게 들은 얘기'라며 뉴욕의 어느 파티에서 해 준 말로 '원래는 맨 처음 제목이 Knowing She would 였죠. 앞 뒤 가사를 떠올려 보면 그 의미를 알겠죠? (다시 말해 Isn't it good, knowing she would? 그녀가 해줄 거라는 걸 안다는 건, 멋지지 않아 라는 뜻이다.). 그런데 음반사에서 그런 부도덕한 문구의 제목으로는 녹음할 수 없다며 이의를 제기한 거죠. 그 왜, 당시에는 아직 그런 규제가 심했으니까요. 그래서 존 레넌은 즉석에서 Knowing She would를 말장난하듯 비틀어 Norwegian Wood로 바꿔버렸죠. 그렇게 하면 뭐가 뭔지 알 수 없잖아요. 제목 자체가 일종의 농담 같은 거죠."

 

또 다른 흥미 있었던 이야기로는 <잭 런던의 틀니>였다. 사실 나는 수년 전 어린이용으로 다시 고쳐 쓴 잭 런던의 <The Call of the Wild>라는 소설을 감명 깊게 읽은 적이 있고 잭 런던이 샌 프란시스코의 Oakland 출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무라카미씨는 젊은 시절부터 이 작가를 좋아하였다 한다. 무라카미씨는 잭 런던과 생일이 같기도 하지만 꼭 그래서 좋아한 것은 아니라하며 1990년에 아사히신문 석간 판에 기고한 글이라 하며 잭 런던의 작품세계가 궁금하면 어빙 스톤의 <말을 탄 선원>이란 전기를 추천하였고 그의 자전적 소설 <마틴 이든>을 읽어보기를 권하였다. 잭 런던에 관련하여 흥미 있는 내용을 여기에 옮겨본다.

 

"스톤의 <말을 탄 선원>을 읽고 특히 감탄한 부분이 한 군데 있다. 그것은 그가 러일전쟁 중에 종군기자로 홀로 한반도에 건너갔을 때의 일이다. 천성적으로 모험심이 강한 런던은 외국인은 거의 발을 들여놓은 적도 없는 한반도 북부의 벽촌에 묵었다. 마을의 관리가 숙소로 찾아와 그에게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피곤하신 와중에 매우 송구스럽습니다만, 마을 사람들 모두가 선생님의 존안을 뵙고 싶어 합니다. 혹시 괜찮으시면 광장으로 나와 모두에게 얼굴을 보여줄 수 있으신지요. 라고,

 

런던은 매우 놀랍고도 기뻤다 한다. 당시 미국과 유럽에서 그의 명성이 급속하게 높아지긴 했지만, 설마하니 이런 조선의 외딴 시골마을에까지 자신의 이름이 알려졌을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광장에는 실로 마을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런던은 대단한 인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준비된 연단에 올라서자, 관리는 이렇게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잠시 틀니를 빼서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 사람들이 보고 싶은 것은 잭 런던이라기보다는 잭 런던의 틀니였다. 마을 사람들이 그때까지 틀니라는 것을 한 번도 본 일이 없었던 것이다. 덕분에 그는 삼십분 동안 열렬한 박수를 받으며 연단 위에서 틀니를 꼈다 뺐다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때 런던은 이런 생각을 했다 한다. '인간이 제아무리 사력을 다해 뭔가를 추구해도 그 분야에서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는 좀처럼 힘들다.' 그는 마음속 깊이 그런 생각을 새기며 찬바람이 몰아치는 광장에서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틀니를 보여주었다."

 

아무튼 잭 런던이 우리나라까지 왔다는 사실이 퍽 신기한 느낌이 든다. 잭 런던이 살았던 캘리포니아의 샌프란시스코 인근 Oakland 라는 곳은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 샌프란시스코 만을 건너는 이층으로 된 다리인 Bay Bridge를 건너면 바로 닿는 곳이다. 나는 수 년 전 이곳에서 한 동안 지낼 일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잭 런던이란 작가를 알지 못하던 때이다. 어느 자료에 보니 이곳 해안에 그의 동상도 있다고 하였는데 그때 알았더라면 찾아보았을 건데 하는 아쉬운 생각도 들었다. 그동안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만 읽었기 때문에 작가의 생각이나 그동안 살아왔던 과정이 퍽 궁금하였는데 이 책을 통하여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작가가 글을 쓰면서 어떤 생각을 하는 가를 알게 되어 퍽 재미있게 읽었으며 시간이 허락하면 다시 읽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