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레 미제라블, Les Miserables> 5권을 읽고...

깃또리 2019. 8. 20. 13:43

<레 미제라블, Les Miserables> 5권을 읽고...

빅토르 위고 / 정기수 옮김

민음사

2013. 0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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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5권의 제목은 드디어 <장 발장>이다. 그래서 주인공 장 발장 활약이 비중을 많이 차지한다. 500여 페이지나 되는 긴 분량이지만 실재 일어나는 사건은 간단하다. 즉, 4권 마지막에서 장발장이 마리우스를 구하기 위해, 다시 말하자면 자신이 사랑하는 코제트의 남자를 위해 파리 시민들이 봉기하고 있는 장소인 바리케이트를 찾아 간다. 먼저 시민군 동태를 염탐하러 갔다가 붙잡혀 죽음을 기다리는 자베르 형사를 발견하고 혼란한 틈을 타서 그가 달아나도록 한 다음 부상으로 피를 흘리며 의식을 잃은 마리우스를 들쳐 업고 파리 지하 하수도로 피신하여 마리우스의 외조부 질 노르망씨의 집을 향해 힘들게 걷는다.

 

또한 장 발장의 도움으로 목숨을 얻어 바리케이트를 빠져 나온 자베르 형사는 그 당시에는 장 발장을 잘 알아보지 못했으며 다시 자신의 소임을 다하려고 장 발장 추적을 시작하고, 하수도를 빠쳐 나가려던 장발장은 하수도 철문 열쇠를 지니고 이곳에 숨어 지내는 테나르디를 만난다. 테나르디 역시 하수도 안이 어두워 장 발장을 알아보지 못하고 단지 어느 살인자가 시체를 센 강에 버릴 심산으로 나가려는 줄 알고 철문 열어주는 대가로 상당 금액을 받은 다음 문을 열어준다. 우여곡절 끝에 장 발장은 마리우스를 외조부 집에 들여 놓았으나 정체를 밝히지 않고 사라진다.

 

여러 달 치료 덕분에 마리우스는 건강을 되찾고 장 발장의 배후 조종으로 마리우스와 코제트는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린다. 장 발장 자신은 그 동안 잘 간직했던 60만 프랑이라는 거금을 결혼 지참금으로 내놓는다. 한편 자베르는 죽음에서 구해준 사람이 장 발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심한 딜레마에 빠진다. 즉, 법률 집행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자신이 전과자이며 거주지 이탈 죄를 범한 범법자를 잡아서 다시 감옥에 넣어야 한다는 책임감과 죽을 목숨을 구해 준 은인에게 보답을 해야 한다는 도덕심 사이의 상반된 입장 때문에 고민한다. 그래서 결국 이 소심하고 사명감이 강하며 도덕적인 인물은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고민하다가 결국 센강에 몸을 날려 자살한다.

 

마리우스는 죽은 아버지의 후광으로 남작의 지위를 물려받으며 변호사가 되었으나 60만 프랑이라는 거금과 장 발장이란 인물에 대한 석연찮은 의구심 그리고 바리케이트에서 자신이 구출된 경위와 과정이 아무래도 수상하게 생각되었으며 이런저런 의문스런 사실에 코제트와 결혼도 의심을 품고 다시 생각해 보기도 한다. 반면, 장 발장은 지금까지 자신의 지나 온 일을 되돌아보자 전과자 신분을 숨기고 남의 이름 포슐르방으로 살아가는 것도 떳떳치 못하고 코제트에게도 진실을 말하지 않은 사실도 마음에 걸려 결국 마리우스를 찾아 모든 비밀을 밝히지만 일단 코제트에게는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한 다음 집으로 쓸쓸히 돌아 온다. 이즈음 테나르디가 테나르라는 가명과 이상한 복장으로 변장하고 마리우스를 찾아온다. 사실 5권 앞부분은 지루할 정도로 장 발장이 파리 지하 하수도를 빠져 나오는 이야기를 서술하여 대체 내가 왜 이렇게 재미없고 지루한 책을 붙잡고 씨름하고 있을까 생각할 정도였는데 후반부 소제목 8 번째인 <황혼의 조락> 부터는 소설의 전개도 빠르고 특히 테나르디의 출현으로 활기가 살아난다.

 

이 테나르디라는 사람은 소설 전편에 불쑥불쑥 등장하는 인물로 다시 간단히 정리해보면 마리우스 아버지인 퐁메르시 대령과 함께 나폴레옹 휘하에서 상사 정도의 계급으로 워털루 전투에 참전하였으며 대령이 부상하여 죽을 상황에 이르자 그를 업고 마을로 내려와 그의 목숨을 구해주었다. 그래서 마리우스 아버지는 죽기 전 유언장에 아들 마리우스에게 테나르디를 꼭 찾아내 은혜를 갚도록 부탁하였다. 또한 테나르디는 워털루 전투에서 살아 돌아와 몽페르메유에 여관 겸 선술집을 운영하다 고향으로 돌아가던 팡틴으로부터 육아비를 받기로 하고 코제트를 맡아 길렀으나 마음씨가 고약하여 코제트를 부려먹기만 하고 조금만 잘못하면 매질도 하였다. 어느 날 장 발장이 나타나 거금을 치르고 코제트를 데려가고 난 다음 파리로 상경하여 다른 일을 하였으나 파산하여 불량배가 되어 마리우스가 한 동안 기거하던 누추한 가옥의 옆방에서 삶을 꾸려가며 어느 날 장 발장을 유혹하여 돈을 뜯어내려다 실패하는 것을 마리우스가 엿보기도 하였다. 이런 사정으로 마리우스는 테나르디에 대한 이중적인 생각을 품고 있었다. 즉, 아버지 유언을 따르자면 찾아내서 은혜를 갚아야 하고 장 발장과 코제트를 생각하면 사기꾼으로 고발해야 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테나르디는 마리우스의 이런 복작한 심정을 모른 채 자신이 알고 있는 비밀이라고 하며 코제트의 아버지는 포슐르방이라는 가명으로 살아가는 전과자이며 살인자이며 실재 이름은 장 발장이라고 밝힌다.

 

테나르디는 이런 비밀을 발설하여 돈을 받아낸 다음 미국으로 이민 갈 목적이었다. 그러나 사실 마리우스는 얼마 전 장 발장으로부터 이런 내용을 다 들었기 때문에 그의 말에 별로 놀라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장 발장이 긴 하수도를 통과하여 자신을 구해 준 상황을 테나르디 이야기 속에서 알게 되고 자베르 형사도 자살한 것으로 확인하며 이 불쌍한 불량배이자 자신의 아버지를 구한 은인에게 500프랑이라는 큰돈을 내 던지며 눈앞에서 사라지라고 한다. 영문을 모르는 테나르디는 웬 떡이냐 생각하고 허겁지겁 돈을 거두어 들고 마리우스의 집을 떠난다. 모든 전후사정으로 궁금한 일이 풀리자 마리우스는 아내 코제트와 함께 장 발장의 집을 찾아가지만 장 발장은 이미 탈진하여 인사불성이 되었다가 겨우 의식을 회복하여 코제트의 옷소매 자락에 입을 맞춘 다음 마지막으로 남은 기력을 다해 두 사람에게 자신의 과거 회상과 두 사람에게 부탁하는 유언을 길게 말하는 부분이 무려 2 페이지가 넘는 분량이다.

 

이 장 발장의 마지막 말에서 몇을 추려보면, 주교로부터 받은 은촛대 두 개는 코제트에게 유증하고, 자신을 매장한 다음 돌 하나를 얹고 그러나 돌에 이름을 새기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코제트의 어머니는 팡틴이었다고 알려주고 자신이 큰돈을 번 과정을 이야기 하며 60만 프랑은 정당하게 번 돈이라는 걸 재차 알려 주며 마리우스에게 코제트를 끝까지 사랑하라는 당부와 함께 숨을 거둔다. 그가 부탁한 이름 없는 돌 위에는 누군가가 연필로 사행시를 적었는데 "십중팔구 오늘 날에는 지워져 버렸을 것이다."라는 문구로 끝을 맺었으며 그 사행시는 이러하다.

 

“자고 있네. 그의 운명은 아주 기구했건만,

그는 살고 있었네, 그의 천사가 없어지자 그는 죽었네.

그것은 그저 올 것이 저절로 온 것.

마치 해가 지면 밤이 되듯이.”

 

이 소설 5권에서 인상 깊은 몇 부분을 정리해 보았다. 마리우스가 코제트를 한 눈에 사랑하게 되어 애를 태우던 시기에 마리우스를 대신하여 작가는 제 3자의 시선으로 아름다운 처녀 코제트의 침실을 묘사하는 대목이다.

 

"그것은 아직 오므리고 있는 꽃의 내부고, 어둠 속의 흰빛이고, 태양이 들여다보지 않은, 한 남자가 들여다보아서도 안 되는 닫힌 백합의 은밀한 독방이다. 봉오리로 있는 여자는 신성하다. 드러나는 그 순결한 침대, 저 자신을 두려워하는 그 사랑스러운 반나체, 실내화 속으로 피신하는 그 흰 발, 거울이 사람의 눈인 것처럼 그 거울 앞에서 손으로 가리는 그 가슴, 덜거덕거리는 가구나 지나가는 마차의 소리에도 얼른 추어올려 어깨를 가리는 그 슈미즈, 그 매듭진 리본, 그 당겨진 끈, 그 떨림, 추위와 수줍음에서 오는 그 자잘한 전율, 모든 움직임 앞에서의 그 섬세한 놀람, 아무것도 두려운 것이 없는 데서도 날개가 돋친 것 같은 그 불안, 새벽의 구름만큼 매력적인 의상의 연속적인 과정, 이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조금은 마땅치 않은데, 그것을 지적하는 것만도 벌써 지나치다."

 

소설에서 가장 애로틱하고 관능적인 표현을 구사한 부분이다. 빅토르 위고가 천성적으로 여자들을 찬미하는데 탁월한 재주와 평생 많은 여성과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그의 속내를 조금 들여다보는 느낌이었으며 아무튼 그 다운 글 솜씨라 생각한다.

 

"승리가 진보에 알맞게 이루어지는 때에는, 국민들의 갈채를 받을 만하지만, 영웅적인 패배는 그들의 감동을 받을 만하다. 전자는 장엄하고, 후자는 숭고하다. 성공보다도 순교를 더 좋아하는 나에겐 존 브라운이 워싱턴보다 더 위대하고, 피자카네가 가리발디보다 더 위대하다."

 

여기서 저자가 내세운 존 브라운(John Brown 1800~1859)은 링컨이 노예해방을 선포하기 훨씬 전 사람으로 백인임에도 불구하고 흑인 노예폐지운동을 하다 미국 남부에서 교수형을 받고 죽었으며 피자카네(Carlo Pisacane 1818~1859)는 나폴리 왕국 원정에서 죽은 이탈리아 애국자이다. 즉, 성공한 워싱턴이나 이탈리아 혁명가 가리발디보다 비록 비참한 최후를 마치고 실패한 위대한 인물들을 빅토르 위고는 더 존경한다는 이야기이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는 자신의 조국 프랑스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을 나타내는 대목이 이곳저곳에 자주 나온다. 그 중에 하나를 옮겨보았다. "프랑스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은 프랑스가 다른 나라 국민들보다도 배가 덜 뚱뚱하다는 것이다. 프랑스는 허리에 더 쉽게 끈을 맨다. 프랑스는 맨 먼저 깨어나고, 맨 나중에 잠이 든다. 프랑스는 앞으로 간다. 프랑스는 탐구자다. 그것은 프랑스가 예술적이기 때문이다. (중략) 예술적인 국민들은 또한 합리적인 국민들이기도 하다.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것, 그것은 빛을 원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유럽의 횃불은, 즉 문명의 횃불은 먼저 그리스가 들었고, 그리스는 그것을 이탈리아에 넘겨주었고, 이탈리아는 그것을 프랑스에 넘겨주었다. 세상을 밝히는 숭고한 국민들이여! 그들은 생명의 등불을 사람에게 전달한다." 빅토르 위고는 그리스, 이탈리아의 빛나는 전통의 계승자로 자신의 나라 프랑스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듯하다.

 

다섯 권으로 모두 합하여 2000 페이지가 훨씬 넘는 꽤 긴 소설책이다. 어느 부분은 지루하고 작위적 설정도 마음에 걸리기도 하였으나 1830년대 프랑스 사회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는데 도움을 주는 소설이며 특히 등장인물들의 발언을 통하여 빅토르 위고가 전달하고자 하는 인간의 보편적 가치, 세계관, 휴머니즘, 선과 악의 대결 구도에서 선의 승리, 빈자에 대한 따뜻한 애정 등이 가슴에 와 닿는 좋은 작품이다.

그러나 나는 이 소설에서 이해 할 수 없는 부분들을 다른 독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퍽 궁금하다. 첫 째, 빵을 훔치기 전까지 좋든 싫든 27년 이란 긴 기간을 살았던 고향을 형기를 마치 다음 장 발장은 찾아가지도 않고 찾아가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으며 소설 어느 곳에서도 전혀 언급이 없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둘째, 불쌍한 조카들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빵을 훔치고 감옥에 들어갔던 사람이 감옥에서 나온 다음 누나나 일곱이나 되는 조카를 찾아보지도 어떻게 지내는지 관심을 두지 않았으며 큰돈을 벌었는데도 모른 채 한 사실이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오히려 팡틴이라는 자신과 별 관계도 없는 여성의 부탁을 받고 코제트를 큰 돈을 주어 테나르디 부부로부터 구출하고 모든 정성을 쏟아 돌보는 일은 조카들에 대한 무관심과 비교하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올바른 사람이라면 조카들을 먼저 보살피고 난 다음 코제트를 거두었어야 할 일이 아닌 가 한다.

 

세 번째로는 자신에게 따뜻한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하고 훔친 은촛대를 선물로 주었다고 임기응변까지 하며 돌봐 준 비엥뷔에 주교에 대한 은혜를 갚으려는 낌새도 전혀 없었다. 더하여, 소설의 전후사정으로 보면 장 발장은 60이 넘은 나이에 마리우스를 들쳐 업고 미로 같은 컴컴한 파리 지하 하수도를 1.5킬로미터나 걸었는데 과연 이 나이에 의식을 잃고 축 늘어진 무거운 청년을 그렇게 다룰 수 있을까? 또 다른 석연치 않은 점으로는 장 발장이 19년 형을 다 치르고 단지 당시 법률로 일정 주거지에서 떠나지 않아야 한다는 주거지지정 전과자인 이 한 사람 때문에 유능한 형사 자베르가 전심전력으로 뒤를 추적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프랑스에 마치 범죄자가 장 발장 한 사람뿐이어서 그를 전담하는 형사가 필요한 것처럼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아무리 소심하고 책임감이 투철하지만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자베르 형사가 이런 일로 자살까지 하는 것도 조금 억지스럽다. 소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이런 나의 소설독법이 지나친 과민반응이 아닌 가 스스로 생각하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의 견해는 어떠할까.

 

아무튼 긴 소설을 마치게 되어 홀가분하기도 하다.

 

* 이 책의 뒷부분에 나온 빅토르 위고의 생애를 간추려 보았다.

 

1802년 프랑스 브장송에서 태어났다. 나폴레옹 황제의 휘하의 장군 아버지를 따라 이탈리아, 스페인으로 옮겨 다니다 11살에 파리에 정착하여 유년시절을 보내며 독서에 열중하여 "샤토브리앙이 되거나 아니면 아무 것도 되지 않겠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꿈을 키웠다. 정치적으로 초기에는 왕당파였으며 장편소설, 평론, 희곡, 시 등 문학 전반에 걸쳐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였다. 자신의 사랑하는 딸과 사위가 신혼으로 센 강 하류 루앙에서 익사하자 펜을 던지고 정치에 투신하였다. 1848년 2월 혁명 후 민주주의자가 되어 입헌의회의 의원에 선출되었고 이후 공화제를 지지하고 루이 나폴레옹이 대통령이 되자 국외로 망명하여 영불해협의 영국령 저지 섬, 건지 섬에서 생활하며 <레 미제라블>을 썼다. 나폴레옹 3세 제정이 무너지자 파리로 귀환하여 보불전쟁 후 잠시 국회의원을 하고 난 다음 다시 집필에 들어가 시집, 장편소설을 썼으며 1885년 83세의 일기로 긴 생애를 마치고 수많은 파리 시민들의 애도 속에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져 팡테옹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