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영문판)

<Who was Harriet Tubman?>을 읽고...

깃또리 2019. 9. 30. 15:57

<Who was Harriet Tubman?>을 읽고...

By Yona Zeldis McDonough/ Illustrated by Nancy Harrison

Grosset & Danlup N.Y.

2012.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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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뒤표지에 주인공을 소개하는 세 개의 문장이 나온다.

- A former slave who risked her life to help other slaves escape to freedom.

- A nurse who saved soldiers's lives during the Civil War.

- A Civil War spy who helped the Union Army.

 

주인공은 1820년 아니면 1821년 미국 남부 Maryland 주에서 흑인 노예부모 밑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 이름은 Minty였으나 같은 흑인인 Tubman이란 사람과 결혼하여 그녀의 이름은 Harriet Tubman 이 되었다. 이 책에서는 아프리카 흑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끌려와 노예제도가 시작된 해를 1619년으로 기록하였다. 당시 미국 남부지역은 목화와 담배 재배가 수입을 이끌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노동력을 흑인 노예들이 전적으로 담당하면서 흑인 노예들은 말 그대로 말하는 짐승이나 다름없이 취급되었다. 가축과 다름없이 경매시장에서 사고 팔리며 만일 노예 주인이 파산이라도 하면 부부, 부모형제가 따로따로 떼어 팔리기도 하는 기막힌 참상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노예제도 폐지(Abolition)에 대한 주장은 영국에서 1780년부터 시작되었으며 William Wilberforce라는 사람과 그의 추종자들이 아프리카 노예무역을 반대하였고 1831년에 들어서서 미국에서도 William Loyd Garrison이 노예제도를 반대하는 'Liverator'라는 신문을 보스턴에서 발행하기 시작하였다 한다.

 

Harriet는 태어나자마자 노예 신분으로 갖은 고생을 겪고 어느 날 탈주하는 노예를 돕다가 노예 주인이 던진 쇠뭉치로 이마를 다쳐 의식불명으로 며칠을 보내다 겨우 살아나기도 하였으며 그 후유증으로 악몽에 시달리고 이마에 큰 흉터가 남았다. 20살이 조금 넘어 자유노예인 Tubman과 결혼하였지만 여전히 노예 신분을 벗어 날 수 없어 언제든지 팔려나가 근처 살고 있는 부모 형제나 남편과 헤어질지 모르는 운명이었기 때문에 당시 노예제가 폐지된 북부 펜실베니어로 탈출을 꿈꾸었다. 남편과 함께 떠나려 했으나 남편이 반대하여 혼자 죽음을 감수하고 수십 일 걸려 드디어 자유의 땅에 도착하였다. 이 과정에서 여성 Quaker교도의 도움을 받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럼 Quaker교도에 관해 조금 언급하기로 한다.

1648년 영국에서 George Fox가 창시하였으며 언제나 검소한 복장에 단순한 생활방식으로 최소한의 소유로 자족하고 전쟁과 싸움을 반대하며 교회집단 안에 특별히 종교지도자를 두지 않고 함께 모여 스스로 명상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고, 평등을 중요한 가치로 삼는다.

 

이들은 영국에서 그리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하여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기위해 신대륙에 정착하였으며 이들이 개척한 곳이 바로 펜실베니어라 한다. Pennsylvania라는 말은 Penn's woodland라는 의미로 이 지역의 개척자인 Quaker교도 William Penn(1644~1718)의 이름을 따서 그의 숲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평등사상에 따라 노예를 거느리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노예제도를 반대하며 탈주하는 노예를 적극 도와주었다. 그래서 탈주하는 흑인 노예들이 대부분 이들의 집에서 낮에는 은신하고 밤에 움직여 다시 또 다른 Quaker교도의 집에 숨어 들어가는 과정으로 탈주하여 이를 'Underground Railroad'라 했으며 이들의 집을 'Station'이라는 은어로 불렀다 한다.

 

나는 이 보잘 것 없는 이 작은 책을 읽고 그나마 그동안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Quaker교도에 관하여 다수의 지식을 얻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씨알의 소리'로 잘 알려진 작고한 함석헌씨와 전 부총리였던 한명숙씨의 남편 박성준씨도 바로 Quaker교도라는 사실도 알았으며 퍽 호감이 가는 종파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생각과 신념은 전혀 비판받을 일도 아니고 오히려 칭찬받을 정도인데 왜 기독교에서 주류가 되지 못하고 소수파가 되었는지 퍽 궁금하다. 그 이유가 있을 텐데 앞으로 알아 볼 일이다.

 

다시 Herriet 이야기로 돌아와 그녀는 이들의 도움으로 긴 여정을 무사히 보내고 펜실베니아에서 자유의 몸으로 병원, 식당 등에서 일하여 번 돈으로 다시 고향으로 숨어 들어가 부모, 형제, 친척 나중에는 모르는 사람들까지 수백 명을 탈출시켜 자신을 Underground Railroad의 Conductor라고 소개하였다 한다. 이때 Harriet는 남편도 탈출시키려하였으나 남편은 이미 다른 여자와 결혼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또한 그는 탈출하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Harriet의 흑인노예 탈출이 점점 알려지자 노예 주인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그녀의 몸값으로 당시 엄청난 금액인 40,000불의 현상금을 내 걸었지만 남자복장이나 귀부인으로 변장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위기를 넘겼다.

 

당시 북부지방은 공업이 발달하였고 상대적으로 기계화가 많이 이루어져 흑인 노예제도보다는 값싼 임금지급으로 유지 가능한 정도였으나 남부지역은 앞에서 말한 농작물이 수입의 근간이 되어 노예제도 유지가 필요하였다. 사실 북부와 남부지역은 흑인노예문제 이외에도 여러 다른 문제로 대립되어 남부 11개주는 'Confederation States of America'라는 이름으로 자체군대를 결성하여 분리를 주장하였고 북부 몇 주들과 서부 캘리포니아 주를 포함한 15개주는 남부의 분리를 용납하지 않고 'Union'이란 명칭으로 전쟁을 통해서라도 이를 막아내려고 결집하여 드디어 1861년 소위 남북전쟁 Civil War가 발발하였다. 이때 Herriet의 능력을 높이 평가한 매사추세츠 주지사 John Andrew가 Union군대를 위해 스파이 활동에 참여를 요청하였다. 이제 41세가 된 Herriet는 백인 부하들까지 거느리고 남부군이 집결한 곳에 은신하여 정보를 수집하여 북군의 전투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었다. 남북전쟁 중에 에이브러햄 링컨(1809~1865.4.15.)은 1863년 노예해방 Emancipation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우리들은 링컨이 노예해방을 선언한 위대한 대통령이라고 알고 있지만 그 배경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즉, 당시 전쟁이 생각보다 길어지고 북군이 남군에게 약간 밀리는 상황이라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 링컨대통령은 노예해방을 선언하여 흑인 병사모집과 남군에 속해 있던 흑인의 대량 이탈을 꾀할 수 있는 유리한 방법이 바로 노예해방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 노예해방 선언은 Union이 점령하지 않은 남부지역에 해당하였으며 북부 총사령관 Ulysses Simson Grant 장군이 이끄는 에포매독스 전투에서 패배한 남부 총사령관 Robert Edward Lee 장군이 항복하여 남북전쟁이 종료되었다. 링컨 대통령은 미국 수정헌법 13조 통과를 주장하였는데 이 법은 링컨이 암살되고 난 다음 같은 해 12월 18일 통과되어 드디어 미국의 모든 주에서 노예해방이 전면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런 남북전쟁 상황 아래에서 Harriet는 백인부하들을 데리고 여러 전투에서 북군의 승리하도록 도움을 주었다. 그녀는 항상 치마를 입고 권총을 차고 다녔지만 Amelia Bloomer가 디자인한 작은 자켓에 짧은 스커트와 긴 바지로 된 의상을 입기 시작하며 1864년까지 2년 동안 전투장을 누비고 다녔다. 그러나 여자의 몸으로 너무 지치고 그녀의 부모들이 애타게 기다리자 집으로 돌아와 잠시 쉬다 기력을 회복하여 Washington D. C.어느 병원을 찾아 간호사 노릇을 하여 간호장으로 승진까지 하며 병사들을 돌보던 중 4년을 끌던 중 북군이 승리를 거두는 감격을 맛보았다. 노예제도가 철폐되자 Herriet는 이제부터 힘없는 흑인을 돕는 일에 나서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에 Sarah Bradford라는 백인 여성이 찾아와 Harriet의 구술을 바탕으로 1869년 <Senses in the life of Harriet Tubman>이란 책을 출판하였으며 그 수익금은 그녀가 벌이는 흑인 후원자금에 사용하였고, 20년 연하의 벽돌공 Nelson Davis라는 사람과 결혼하였으나 남편은 오래 살지 못하고 1888년 세상을 떠났다. 비슷한 시기에 부모들도 세상을 떠나 이제 혼자 남은 Harriet는 여기저기 강연요청에 응하기도 하고 특히 여권신장을 이끄는 여성들과 연대하여 활동하며 많은 여성들로부터 격려와 지지를 받았으며 당시 영국 Victoria여왕으로부터 실크 숄과 편지 그리고 메달을 받았다 한다. 17년이 흐른 1886년에 다시 그녀에 관한 책 <Harriet Tubman: The Moses of Her People>가 출판되었는데 모세가 이집트에서 자신의 동족을 이끌고 출 애급한 것에 비유하여 그녀가 많은 흑인을 구출한 일이 마치 모세와 비슷하다고 생각하여 그런 제목을 붙였다 한다.

 

1913년 봄 그녀의 나이 92세 되던 해에 남동생과 몇몇 친구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그녀는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하였다. 그녀가 살았던 Auburn 도시에서는 조기를 달아 그녀의 죽음에 조의를 표시하였고 법원청사 정문에는 그녀의 이름이 새겨진 동판에 "With rare courage, she led over three hundred Negroes up from slavery to freedom."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한다.

 

* 마침 이 책을 막 읽고 난 다음 20여 년 전에 캐나다에 이민 간 후배의 메일이 도착하여 답장을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적다가 오늘 읽은 이 책의 내용에 생각이 미쳐 아래와 같은 글을 적어 보내기도 하였다.

 

"초여름 더위가 성큼 다가왔습니다.

조금 이른 점심을 하고 낙산에 올랐다가 내려와 이 글을 적습니다. 화요일에는 포천 차의과학대학교 생활관 현장, 수요일에는 KTX 타고 경주대학교 출장 그리고 어제는 잠실병원과 월곡동 KIST에서 회의 참석으로 한 주를 분주하게 보내느라 답장이 늦어졌네요. 누군가가 카메라에 빠지면 집안 살림살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다고도 하던데 그런 가 봅니다. 수 백 마일을 시간 들여 달려가는 걸 보면... 아무튼 뭔가에 열중한다는 일은 보람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최근 일본의 유명한 작가인 무라카미 류 라는 사람이 쓴 <무취미의 권유>라는 작은 책에서는 취미보다는 일을 권유하는 글도 보입디다. 나 같은 경우에 내 세울 취미가 없어서 뭐라 말하긴 곤란하지만 이 책을 읽고 쓴 독서후기를 보낼 테니 시간 될 때 읽어 보세요.

 

도서관에 갔더니 미국 초등학교 상급학생 정도가 읽을 만한 내용의 책들이 시리즈로 나와 몇 권을 퍽 재미있게 읽었는데 짧은 기간에 어렴풋이 알고 지내던 미국의 역사를 개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며 특히 <Who was Harriet Tubman?>이라는 책을 읽고 나니 그간 미국의 역사라는 것이 참으로 수치스럽고 야만의 역사라는 생각에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대략 크게 나누어 보면 미국 개척시대에 원주민으로 그 땅의 주인이었던 인디언 아니 Native American(사실 이 단어도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지만, 더구나 인도 사람인 줄 알고 Indian이라고 하는 말은 어불성설이고,)을 어떻게 살상하고 씨를 말렸는가를,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납치하여 짐승만도 못하게 부려먹고 사고, 팔아먹었는지를 알면 과연 신을 믿는 다는 자칭 문명인이라는 인간들이 할 짓이었는지? 그리고 이런 악독한 일을 하는 인간들을 그냥 내버려 두는 신이라면 그게 정말 신인지?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동기는 리처드 도킨스라는 생물학자가 쓴 <만들어진 신, 원제: The God Delusion>이란 책을 한 달 전에 읽어서 더 이런 생각이 드는 가 봅니다. 사실 평소 신의 존재를 믿지 않아서 나는 소위 불가지론자라는 생각 무신론자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이런 문제에 이제 나름대로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기왕이면 신을 믿는 게 좋을 것 같았고, 없는 것 보다 있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 적이 있었으나 이제는 생각을 바꾸어 인류에게 크나큰 해악을 끼치는 것이 서양 사람이 믿는 신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 생각과 달리 주제가 벗어난 것 같은데 아무튼 최근 이런저런 책을 읽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약간의 양심적인 사람들이 지난 미국의 추악한 과거를 돌아보고 반성하며 어린 학생들에게 이런 책을 읽게 하는 것이 조금은 다행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직 멀었다는 생각도 떨칠 수 없고...

 

세월은 쏜 살 같이 흘러 벌써 여름입니다.

지난 토요일 가까운 곳에 나들이 하여 찍은 사진들입니다.

 

* 찾아본 단어들...

 

racetrack 경마장

fuss and lint 야단법석, 소음이 가득하고 먼지투성이

shuck 껍데기를 벗기다. 꼬투리를 따다

husk 껍데기를 벗기다. 쓸데없는 외비를 벗기다

bandanna 무늬 있는 큰 비단 손수건

bale 짐짝, 가마니/ 재앙, 악, 고통, 슬픔

vigilance 경계, 불침번

vigilance committee 자경단

dysentery 이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