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영문판)

<Who was Johnny Appleseed?>를 읽고...

깃또리 2019. 9. 23. 15:25

<Who was Johnny Appleseed?>를 읽고...

By Joan Holub

Illustrated by Anna DiVito

Grosset & Dunlap

2012.05.05.

   Who Was Johnny Appleseed?

 

우리나라와는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은 미국이지만 그래도 기록되지 않은 사실이나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세월이 흐르면서 부풀려지고 왜곡되게 전해져서 마치 전설처럼 된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 Johnny Appleseed도 바로 이런 인물 중 하나인 것 같다. 1776년 미국 동부의 13개주가 독립선언서에 서명을 하여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였고 11년 후인 1787년에는 미국 헌법이 승인되었다. 다시 2년 후인 1789년에는 조지 워싱턴이 미국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며 물론 이 해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해이기도 하다. 이런 역사적 사건이 일어나기 조금 전인 1774년 9월 Massachusetts 주 Leominster에서 John Chapman이 태어났는데 그의 집은 가난하였고 아버지 Nathaniel Chapman은 목수일과 농사를 짓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태어나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군과 벌이는 조지 워싱턴 군대에 들어가 있었고 John의 두 번째 생일을 얼마 남기지 않은 어느 날 어머니는 동생을 출산 중에 세상을 떠났다.

 

전쟁이 끝나 돌아온 아버지는 재혼하여 다시 10명의 자녀를 두어 John의 누나까지 합하여 12명의 자녀와 함께 살게 되었다. 빈약한 교육시설인 개척민 학교, Pioneer School에서 몇 년을 보낸 다음 가뜩이나 가난한 살림에 많은 식구가 기거하는 집 보다는 장남인 John은 자연히 숲과 야외에서 생활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당시 미국은 오대호 북쪽은 영국 지배지역이었고 미시시피 강 서쪽과 플로리다는 스페인 지배지역이었으며 동부해안 13개주와 미시시피 강 사이는 Northwest Territory라 불렀으며 지금 이 지역은 일리노이 주, 미시간 주, 오하이오 주 ,위스콘신 주 그리고 일부 미네소타 주에 해당한다. 지금 미국의 서부는 캘리포니아 주를 뜻하지만 당시 이 지역을 서부지역이라 하며 많은 개척민들이 새 삶터를 찾아 이주하였으며 그들의 이동수단은 필요한 가재도구를 싣고 잠도 잘 수 있었던 포장마차(covered wagon)였으며 John도 아마 이런 마차가 서부로 향하는 모습을 매일 보았을 것이라 한다. 또한 당시 생활상으로 주식은 소고기, 옥수수 그리고 사과라 하는데 소고기와 옥수수는 현재도 미국인의 주식에 해당하지만 나에게 사과는 조금 예상 밖이었다. 그러나 당시 농산물이 풍부하지 않아 사과를 구워서 파이 pie를 만들고 끓여서 버터 butter로 그리고 으깨 짜내 apple cider를 만들었다 한다. 정수시설을 거친 수도 물이 없었기 때문에 사과 cider는 아주 요긴한 음용수였고 사과는 산화작용을 거쳐 부패가 쉬워 위 세 가지 방법과 함께 또 다른 방법으로 얇게 잘라 말려서 보관했다가 필요할 때 요리에 사용하여 아무튼 지금과 달리 사과의 용도가 다양하고 중요하였던 같다.

 

 주인공 John은 어릴 적부터 이런 사과에 주목하여 대식구 속에서 힘들게 지내는 것보다 야외에서 맨발로 지내며 옷차림도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입고 다니며 사과나무를 길렀다 한다. 추운 겨울에도 땅바닥에 나뭇잎을 깔고 덮고 잤으며 어느 날에는 자신이 자려고 찾은 속이 빈 통나무 속에 어미곰과 새끼 곰이 먼저 차지하고 잠을 자고 있어 그는 그 부근 땅바닥에서 나뭇잎을 이불 삼에 잤다고 한다. 숲과 야외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 야생동물들은 자신의 친구로 알고 스스럼없이 John과 함께 지내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 할 정도였다 한다. 이런 Johnny가 처음엔 사과 씨와 사과묘목을 파는 장사로 돈을 벌다가 나중에는 개척지에 사과나무를 심기 시작하였다.

 

그가 35살 되던 해는 상당한 재산을 모아 오하이오에 넓은 과수원을 운영하였고 이 시기 즈음하여 그의 이름 대신 ‘Johnney Appleseed’라는 별명이 서서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하였다. 1793년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에서 신문이 발행되었지만 개척자들이 신문을 읽을 형편이 되지 못하여 사과 씨와 묘목장사를 하는 John은 개척자들의 집을 방문하면 자신이 알고 있는 새로운 소식과 숲에서 일어나는 재미있는 일 그리고 신앙심이 깊은 그는 성경 이야기를 재미있게 해주어 더욱 그의 인기가 높았다 한다. 더욱이 그는 따뜻한 마음씨를 지녀 서부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다치거나 병든 말을 버리고 가면 그 말들을 거두어 보살폈다 한다. 그러나 풀을 베다 말벌에 쏘여 자신도 모르게 말벌을 죽이고 나서 후회하며 다시는 어떤 야생동물을 다치거나 죽이지 않았다 한다. 또한 주변 인디언들과도 친하게 지내며 개척자들과 인디언들의 갈등이 발생하면 가슴 아파하였다 한다. Johnney Appleseed가 사과나무를 심고 활동한 지역은 펜실베니어 주, 오하이오 주, 인디에나 주 3개주에 걸친 방대한 지역으로 그가 사망할 시기에는 미국은 27개주로 늘어났으며 1845년에는 텍사스가 주로 편입되었고 1849년에는 캘리포니아에서 골드러시가 일어났으며 아직은 멕시코에 속해 있었으나 곧이어 1850년에는 켈리포니아도 미국의 주가 되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1845년 3월 18일 70세의 나이로 인디에나 주의 Fort Wayne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하며 그의 무덤이라 생각되는 곳도 있지만 확실치는 않다고 한다. 역사가 짧은 미국은 그래도 Johnney Appleseed와 같은 사람을 널리 알리기 위해 그의 행적을 추적하여 오하이오 주 Urbana에 Johnney Appleseed Museum을 세우고 그가 태어난 곳에는 그의 이름 딴 Johnney Appleseed School을 세웠으며 북 매사추세츠 에는 Johnney Appleseed Trail, 매년 9월에는 Johnney Appleseed festival 그리고 인디에나 주 Fort Wayne에는 Johnney Appleseed Memorial Park도 있다고 한다. 책 뒤에는 사과에 대한 상식을 적은 글이 나온다. 몇 가지 추려보면...

 

사과는 25%가 공기 그래서 사과는 물에 뜬다고 하며, 7,500 종류의 사과가 있으며 사과는 장미과에 속하고 과일 재배학은 영어로 pomology, 사과를 가끔 '겨울의 바나나"로 부르기도 한다고 했다. 내가 전혀 모르던 많은 이야기를 알게 되어 퍽 재미있게 읽었다.

 

* 이 책에도 역시 모르는 단어가 많았다.

 

minuteman, 3단계 대륙 간 로켓/ (미국 독립전쟁)긴급 응모 병/ round hand , 엇대어 쓰지 않고 동글동글한 글씨체(제도용)/pollinate, pollination, 수분하다. 수분 /pollen ,꽃가루/graft, grafting 접붙이기, 접목, 눈접/ knack, 요령, 숙련된 기술(버릇)/ catnip, 개 박하/ lucky break/ get over, 넘다, 이겨내다, 회복하다. 용서하다/ crap apple, 야생사과/ pomology, 과수재배학/pomona, 과일(나무)의 여신/ primrose, 앵초, 새침떼기 꽃, 얌전빼는 꽃/ prim, 꼿꼿한, 딱딱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