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레 미제라블, Les Miserables>2권을 읽고...

깃또리 2019. 8. 14. 08:48

<레 미제라블, Les Miserables>2권을 읽고...

빅토르 위고/ 정기수 옮김

민음사

2013.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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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레미제라블 전 5권을 손에 넣은 후 먼저 1,2 권을 읽고 지금 이 후기를 적고 있다. 사실 5권이나 되는 많은 내용을 다 읽고 후기를 쓰려면 많은 부분이 잊혀 정리가 쉽지 않을 것 같아 하루라도 빨리 읽었던 내용을 간추리는 것이다. 어느 책이던 읽고 나서 그냥 기억만 믿고 후기를 쓰기는 어렵다. 그래서 다시 책을 열고 중요한 부분은 다시 읽기도 하고 밑줄 친 부분을 참조하기도 하는데 다시 열어 보니 더욱 이 글을 쓴 저자 빅토르 위고의 필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왜냐면 소설 배경의 세밀한 묘사, 등장인물의 심리상태와 변화, 관련 역사의 서술, 소설 내용과 연관된 그리스 로마 그리고 방대한 저술의 인용, 그 당시 확실한 세계관을 지니고 바라 본 역사의식, 소설이 전개되는 장소의 지리적 설명, 동양에 대한 편견 없는 시각, 여기에 덧붙여 화자 즉, 저자의 견해도 슬쩍슬쩍 밝히는 그러면서도 전체적인 소설의 맥락을 유지하는 글쓰기 방식은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엄청난 독서가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당시 컴퓨터도 없던 시절에 자신의 기억력만 가지고는 이 방대한 글을 쓰지 못했을 텐데 아무리 오랜 유랑기간 동안 시간이 많았다고 해도 관련 책이나 자료를 어떻게 구하고 여러 번 거주지를 바꾸면서도 유지 했는지 궁금하다. 이 긴 소설을 쓰는데 17년이 걸렸다 하니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며 저자가 오랜 기간 정치적 망명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사실 가능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중국에서 남자로써 더 할 수 없는 치욕적인 궁형을 받고 옥에 갇혀 <사기>를 편찬한 사마천, 18년 동안 강진에 유배되어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표유세>를 비롯한 수많은 저술을 한 다산 정약용 그리고 간첩죄로 영어의 몸이 되자 어려운 아랍어로 기술된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를 우리말로 번역한 정수일 박사 등은 자신의 역경을 빛나는 업적으로 바꾼 사람들이다. 한 사람을 더 꼽자면 전 대통령 김대중씨도 평생의 감옥 생활을 심신 연마와 지식 향상으로 바꿔 대통령까지 오른 사람이다.

 

2권의 전체 제목은 <코제트>. 즉, 팡틴이 창녀가 되기 전 파리에서 대학생과 사귀다 낳은 사생아로 자신이 키울 수 없자 어느 여관에 맡기고 공장직공과 창녀 생활하며 번 돈을 보내 키웠던 딸이다. 병에 걸린 팡틴은 죽기 전 장발장에게 코제트를 보살펴 주기를 간절히 애원하였으며 장 발장은 꼭 찾아서 돌보겠다고 팡틴의 임종 직전 약속하였다. 사실 내가 1권에서 소홀히 다룬 부분이 팡틴이다. 1권의 내용을 간추려 보면 소제목 1. <올바른 사람>은 미리엘 주교 이야기, 소제목 2는 <추락>으로 장발장 이야기, 소제목 3은 <1817년에는> 팡틴, 소제목 4는 <위탁은 때로는 버림이다> 코제트 이야기, 소제목 5는 <하강> 팡틴의 몰락이야기, 소제목 6은 <자베르>는 형사 자베르 이야기, 소제목 7은 <샹마티외 사건>은 장 발장의 법정 자수 이야기, 소제목 8은 <반격>으로 자베르의 장 발장 추적 이야기이다.

 

팡틴을 다룬 <1817년에는>은 제목과 같이 1817년에 실재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들을 장황하게 적고 있다. 루이 18세 재위 22년으로 당시 유행하였던 어린아이들의 의상 형태와 이야깃거리가 된 책과 심지어 그 기간에 인기 있던 담뱃갑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아마 이런 글을 현재 프랑스 사람들이 읽으면 퍽 흥미 있어 할 것이다. 왜냐면 예를 들어 우리들이 지금부터 100년이나 150년 전인 조선시대 말이나 일제 강점기의 사건과 생활상을 읽으면 아, 이때는 이랬구나 하고 신기해하거나 흥미 있어 하듯이 현대의 프랑스 사람들은 눈을 반짝이겠지만 아무래도 다른 나라 이야기이다 보니 조금 지루하기도 하고 각 페이지 아래 작은 글씨의 각주를 읽어도 금방 잊어버리기도 하였다. 아무튼 10여 페이지 이런 글을 읽고 나서야 드디어 팡틴의 이야기기 시작된다. 파리에서 대학을 다니는 나이 차이가 제법 다른 젊은 대학생 네 명이 각자의 여자 친구들을 데리고 파리 근교로 소풍을 간 이야기에 가장 나이가 어리며 공장에 다니는 순진한 팡틴이 끼어 있다. 그녀는 후일 장 발장이 시장이 되었던 작은 도시 몽트뢰유쉬르메르 길거리에서 태어나 버려졌으나 겨우 목숨을 부지하여 열다섯 살에 파리로 돈벌이를 하러 우리말로 치면 상경을 하였다. 이미 여러 남자 친구들을 갈아치우며 물난한 생활을 하였던 소풍에 따라 나선 세 처녀와 달리 팡틴은 아직 순결하였으나 그의 상대 톨로미스는 30살이 된 부잣집 아들로 난봉꾼이었다. 이 소제목 <1817년에는>의 마지막 페이지는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한 시간 후에 자기 방에 돌아갔을 때 팡틴은 울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는 그녀에게 첫 사랑이었다. 그녀는 이 톨로미스에게 남편을 대하듯 몸을 주었고, 이 가련한 처녀에게는 어린애 하나가 있었다." 결국 이 사랑 놀음에서 얻어진 아이가 코제트이고 20살의 팡틴은 지친 몸으로 코제트를 안고 고향을 향해 파리를 떠난다.

 

1권에 써야할 내용을 쓴 셈이지만 아무튼 팡틴 그리고 코제트는 이 소설의 주요한 등장인물이어서 다시 들추어 보았다.

 

2권의 첫 번째 소제목 1은 <워터루>로 다 알다시피 나폴레옹 1세가 영국과 프러시아가 주축이 된 연합군에 의외의 패배를 당하여 황제자리를 내놓고 엘바 섬으로 유배를 가는 빌미가 된 전투장소이다. 101페이지나 되는 웬만한 소설 책 한 권 분량이 되지만 장 발장 이름은 한 번도 나오지 않고 오로지 저자 빅토르 위고가 1861년 어느 화창한 봄날 이곳 옛 전투장을 찾아 당시의 처참하고 요란했던 전투장면과 여러 정황을 되 집어 살려보는 대목이다. 워터루 전투는 1815년 일어났고 저자가 이 책을 출판한 해는 1862년이므로 전투는 46년 전이 일어났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것은 소설 출판이 1862년인데 전투장 방문이 1861년으로 불과 1년 전인 셈이다. 내가 추측키로는 1년 전이 아니고 아마 1840년대 후반 쯤 아닐까 한다. 흥미는 있지만 아무래도 우리나라와 별 관계없는 200여 년 전의 프랑스 전쟁이야기는 그래서 지루하였다.

 

소제목 2 <군함 오리옹>은 장 발장이 다시 체포되어 죄수번호가 24,601호에서 9,430호로 바뀌어 어느 항구에 군함 오리옹호 수리 작업에 참여했다가 사고를 당한 한 선원의 목숨을 구한 다음 장발장은 바닷물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 해는 1823년으로 되어 있다. 결국 다시 탈옥한 셈이다.

 

소제목 3. <고인과 한 약속 이행>은 장 발장이 물속에서 멀리 잠수하여 사람들이 보이지 않은 장소에서 나와 파리 근교 코제트가 위탁 받아 살고 있는 몽페르메유의 여관 부부에게 거액을 주고 코제트를 넘겨 받아 팡틴과 한 약속을 지킨다.

 

4. <고르보의 누옥> 장 발장과 코제트는 파리에 숨어들어 낡고 큰 고르보 저택에 숨어 지낸다.

5. <어둠 속 사냥에 소리 없는 사냥개 떼> 자베르 형사의 추적 대목을 쓴 대목이다.

6. <프티 픽퓌스>와 이어지는 7. <여담>은 파리 시내 변두리 픽퓌스 62번지에 있는 베르나르 교단 수녀원에 대한 이야기이며 장 발장이나 다른 등장인물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다음 8장에서 장 발장이 자베르의 집요한 추적을 피해 숨어 들어간 수녀원에 우연하게도 장발장이 시장으로 일할 때 목숨을 구해 준 마부 포슐르방이 이곳 정원사로 일하고 있어 여러 과정을 거쳐 장 발장도 정원사로 함께 일하게 되고 코제트도 수녀원에서 지내게 되는 부분에서 2권은 끝난다. 수녀원 내부를 자세히 묘사하고 수녀원의 운영이나 당시 수녀원의 인도주의적인 면의 부족에 대하여 장황히 묘사하느라 2권의 1/3을 할애하였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저자는 당시 가톨릭의 허위와 부패에 실망하여 아마 무신론에 기울어진 사람이 아니었나 생각하였다.

2 권을 처음부터 넘겨보다 보니 이 소설의 주인공 장 발장과 역사의 실제 인물 나폴레옹 황제에 대한 간단한 사실을 알자 못하고 그간 책을 읽었음을 알았다. 즉 어떤 내용이냐면 소설에서 나폴레옹과 장 발장은 한 살 차이 밖에 나지 않았다. 황제가 1769년생이고 장 발장은 책에는 정확히 명시되지 않았지만 계산해 보면 1770년생이다. 1815년 6월 워털루 전투를 지휘했던 나폴레옹은 46세이며, 같은 해 10월 툴롱의 감옥에서 19년 만에 출옥한 장 발장은 45세 이다. 하늘과 땅 만큼이나 신분이 다른 사람의 인생행로가 이 소설에 함께 그려지고 있는 셈이다. <고르보의 누옥>편에 장 발장은 53살이고 코제트는 8살로 나온다. 빅토르 위고가 수도원이나 수녀원을 보는 눈은 꽤 차갑다. "수도원의 역사적 사실"이란 부분에서 "수도원은 10세기에는 좋았으나 15세기에는 좋지 않았고, 19세기에는 가증스럽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다시 "스페인에 있던 것과 티베트에 있는 것 같은 수도원제도는 문명에 대하여 일종의 결핵이다."라는 상당히 매몰찬 표현을 쓰기도 하였다. 그럴 것이다. 인간에 대하여 따뜻한 시선을 가지고 있던 휴머니스트(이건 내가 붙인 것이지만) 빅토르 위고의 눈에 수도원, 수녀원의 신을 빙자한 가식과 인간성 매몰에 대하여 그는 또렷한 인식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수녀원은 자신이 스스로 들어가고 감옥은 이끌려 가는 차이 뿐이라고도 하였으며 종교라는 이름으로 몽매한 어린 처녀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영혼을 구속하며 육체를 시들어 가게 한다고 비난하였다. 지금은 퍽 다른 환경이 되었지만 모두 지당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후기를 위하여 책장을 훌훌 넘기다 분명 읽고 지났으나 처음 읽는 느낌이 드는 유익한 부분이 나타나면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조금 허무하고 맥이 빠진다. 그러면서 반드시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400~500 페이지 되는 다섯 권을 처음부터 다시 읽는 일도 상당한 결심이 필요하다. 그래도 나는 꼭 다시 읽을 것을 다짐한다.

 

요즘 <레미제라블>의 인기에 편승하여 오늘 2013년 2월 9일자 한국경제신문 A16면 하단에 "빅토르 위고의 50년간 인정받지 못한 위고의 정부...'레미제라블'에서 영원히 숨 쉬다."라는 꽤 긴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글을 읽어보면 위고는 '여자 문제에 관한 아들의 애인도 가로챌 정도로 걸신들린 사람'이었다 한다. 첫 부인은 위고의 소꿉친구 아델 푸세(1803~1868)였으나 위고의 바람기로 푸세도 맞바람으로 대응하여 둘은 멀어졌다 한다. 위고는 여러 여자와 염문을 일으켰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쥘리엣 드루에(1806~1883)는 죽을 때까지 위고의 반려자 역할을 충실히 했다 한다. 드루에는 고아원에서 불우하게 자랐으나 글을 배워 문학적 재능이 뛰어났으며 평균 1년에 500여 통으로 50년 동안 약 2만 통의 편지를 위고에 써 보냈으며 우아한 말씨로 위고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다. 결국 드루에는 위고의 사실상 반려자이자 헌신적 후원자였으며 <레미제라블> 탄생을 가능케 한 여인이라 한다. 위고는 소설 속에 드루에를 팡틴과 코제트로 투영하여 문학 속에서 그녀를 영원히 살도록 한 셈이며 우리들이 이 위대한 작품을 읽을 수 있는 행운을 준 여인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