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과학자의 서재>를 읽고...

깃또리 2019. 8. 6. 09:41

<과학자의 서재>를 읽고...

최재천교수와 함께 떠나는 꿈과 지식의 탐험

최재천지음

명진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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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1월 그 동안 작년에 읽기 시작했으나 마치지 못한 책들을 마저 읽고 올해 처음 도서관에서 대출받아 읽기를 마친 책이 바로 <과학자의 서재>이다. 집에서 구독하는 중앙일보 칼럼 <10년 후 세상>을 가끔 읽어 최재천 교수의 이름은 알고 있어서 도서관 서가에서 그가 쓴 이 책을 뽑아들었다. 310페이지로 약간 두꺼운 책이지만 페이지 여백과 행간이 넓어 전철과 버스를 타고 오고가며 세 시간 정도 걸려 읽은 것 같다. 이런 경우 책 한 권을 읽었다는 작은 성취감은 소득이지만 과연 이렇게 책을 만들어도 되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책에 인쇄된 글자 숫자가 책의 가치와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원 절약차원에서 조금 생각해 볼 문제이다. 중간쯤부터가 재미있었고, 앞부분은 자신이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 경기고등학교에 가지 못했으며 서울대학교에도 두 번 낙방하여 할 수 없이 동물학과를 갔다는 요지의 이야기를 길게 늘어 놓아 조금 읽기 불편하였다. 그러나 글짓기, 미술조각, 사진 등에 남다른 재능을 발휘하였으며 자연과학자로 상당한 업적을 이루면서 다른 분야의 책을 꾸준히 읽고 다른 분야 저술에서 자신의 연구 분야와 관련한 영감을 얻었다는 내용을 읽고 최교수가 주장하는 ‘통섭, 通攝’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깊은 인상을 남기는 부분을 골라보았다.

 

<방황의 늪에서 나를 건저 준 한 권의 책>이란 소제목에서 대학교 4학년 때 <우연과 필연, Chance and Necessity>이란 책을 종로 골목에 있던 외국 서적 책방에서 우연히 구해 특히 겉장 바로 다음 페이지 책머리에 인용한 데모크리토스가 했다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우연과 필연의 열매들이다.'라는 구절에 순간 매료되었다 한다. 이 책은 ‘자크 모노’라는 생물학자가 썼지만 철학적 주제를 담고 있어 생물학도 인간 본성을 파헤칠 수 있는 학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최재천 교수가 생물학에 전념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한다. 당시 대학 4학년 학생의 눈에 대단한 책이라고 생각되어 80부를 복사하여 제본한 다음 주변에 돌리기까지 했다고 하니 감동의 크기와 열정이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고 평생 단 한 순간 단 한 권이라도 이런 삶의 지표가 되는 책을 만난 사람은 무한히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육사를 졸업하고 장교로 근무하다 박태준 전 포스코 회장의 부름을 받아 포스코에서 일하던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아들 최재천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한다. 그러나 반대 하던 아들 유학을 위해 좋은 직장을 그만 두고 퇴직금을 타서 아들이 유학을 가도록 한 아버지 이야기는 퍽 감동적이다. 유학했던 펜실베니아 주립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는 과정도 퍽 재미있는데 <알래스카 바닷새의 체외 기생충 군집생태학>이란 제목의 논문이었으나 연구실적도 방대하고 내용도 훌륭하여 '해충 구제학'이란 과목만 이수하면 석사가 아닌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도록 심사위원 전원이 찬성하였다 한다. 그러나 기생충연구로 박사가 되고 싶지 않다는 단 한 가지 이유로 박사 학위를 거절하였다는데 믿어야 하는지 의심스럽다.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가서, 최재천 교수의 글을 그대로 인용해본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의 리처드 도킨스 교수가 쓴 <이기적 유전자, The Selfish Gene 1976>를 사서 읽었다. 세상을 살면서 한 권의 책 때문에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이 하루 아침에 바뀌는 경험을 하는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대부분은 아마 단 한 번도 그런 짜릿한 경험을 못 하고 생을 마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기적 유전자>를 읽으면서 그런 엄청난 경험을 했다. 그 책을 읽을 때만해도 나의 영어 실력이 그렇게 출중하지 못했다. 미국에 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니까. 그럼에도 그 책을 손에서 내려놓지 못했다. 점심 때부터 읽기 시작한 것이 다 읽고 난 뒤에 눈을 들어보니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밤을 새운 것이다. 나는 붕 떠 있는 기분을 느끼면서 밖으로 나왔다. 해가 막 뜨려는 뿌연 새벽이었는데, 내 눈에 보이는 세상은 어제 점심 이전과 완전히 달랐다. 오랫동안 의문이었던 많은 문제가 서서히 답을 보여 주는 듯했다. <이기적 유전자>는 그야말로 유전자의 관점에서 이 세상 모든 것을 재해석하는 책이다. 나에게 삶을 바라보는 전혀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도킨스에 따르면 살아 숨 쉬는 우리는 사실 DNA의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일 뿐이다.

 

DNA는 태초부터 지금까지 여러 다른 생명체의 몸을 빌려 끊임없이 그 명맥을 이어왔다. 도킨스는 그래서 DNA를 가리켜 '불멸의 나선'이라 부르고 그의 지령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모든 생명체를 '생존 기계"라 부른다. (중략) 그런데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난 다음에 그 모든 문제가 하나의 줄로 연결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내 몸속의 모든 핏줄이 하나로 꽉 몰려서 말끔히 씻겨 내려가는 듯 야릇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 책 <이기적 유전자>를 쓴 저자가 리처드 도킨스 Richard Dawkins(1941~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교수 역임, 동물학자, 진화생물학자)라 했다. 마침 내가 작년에 읽으려고 벼르다 며칠 전부터 읽기 시작한 <만들어진 신, The God Delusion 2006>의 저자이기도 하다. 한글 초판본 발행이 2007년 이며 <만들어진 신> 에는 '옮긴이의 글','저자 연보','저자 소개 글' 또는 '해설' 등이 없어 저자의 이력이 알고 싶고 시간이 되면 저자에 대하여 조사해 볼 일이다. 최교수는 2009년 리처드 도킨스를 처음 만나 <이기적 유전자>를 읽은 사람들이 방황 할 때 자신이 해주는 이야기를 했더니 리처드는 자신이 그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해도 좋으냐고 물어서 최재천 교수가 '특허'는 아니니 얼마든지 해도 좋다고 했다 한다. 그가 말한 내용을 옮겨 본다.

 

(책을 읽고 난 다음) 분명 어려울 수 있다. 혼란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 하지만 미리 결론을 내지 말고 그냥 한 번 더 깊게 들어가 봐라. 달라지는 생각들을 피하지 말고, 관련된 것들을 더 읽고 더 생각해봐라.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까도 고민하지 말고 그냥 덤벼들어서 해봐라. 그러면 어느 순간 어떤 언덕을 넘어가는 느낌이 올 것이다. 좁은 동굴을 빠져나와 탁 트인 아름다운 들판을 내려다보는 그런 느낌, 뜻밖에 마음의 평정이 오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내용을 읽어보면 마치 해탈의 과정을 말하는 듯하다. 정말 대단한 책인 듯하다.

 

<이기적 유전자> 다음으로 <사회 생물학>을 자신을 변화시킨 책으로 지목하였다. 최재천 교수는 서울대학교 동물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니아 주립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그리고 하버드대학교에서 <민벌레의 진화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미시건대학교에서 교수로 임용되고 주니어 펠로우로 선발되었다 한다. 주니어 펠로우는 명예교우회연구원으로 상당히 영예로운 자리라 한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면 최교수가 공부했던 학교의 유명한 지도교수들과의 만남이 평범하지 않다. 특히 하버드대학교 윌슨교수는 자신을 만나러 오는 사람 대부분에게 15분만 허락했다가 더 이야기해야 할지 판단한다고 하며 최교수와도 15분을 약속했다가 최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준비에 흥미가 끌려서 인지 2시간으로 늘려주었다 한다. 이후 그의 제자가 되어 7년을 기숙사 사감을 맡고 연구하면서 열심히 공부하는 하버드 학생들을 보며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고 술회하였다.

 

명예교우회의 연구원 제도는 원래 하버드대학에서 시작하였으며 미시건대학교에서도 벤치마킹하여 전공에 관계없이 그리고 신, 구세대 학자들로 구성하여 모임 때마다 한명씩 돌아가며 자신의 연구나 공부 내용을 발표도 하고 토론을 벌인다 한다. 최근 학자들은 자신의 전공분야는 심화과정을 거치지만 학문간 단절은 지식세계의 발전에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최교수는 서울대학교에서 이화대학교로 자리를 옮기면서 학문간 상호교류를 위한 일환으로 자신의 연구실을 '통섭원 通攝院'이라 이름 짓고 '지식의 대통합'을 이루고 '통섭적 인생'을 계속해서 살아가겠다고 천명하였다.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 과정의 지도교수였던 윌슨교수가 쓴 책 <Consilience: (추론한 결과 등의)부합, 일치>를 최교수는 우리말로 번역하며 제목을 <통섭>으로 부제를 <지식의 대통합>이라 지었다 한다. 또한 흔히 말하는 '과학의 대중화"가 아닌 '대중의 과학화'를 이뤄가고 싶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책 읽기는 우주와 자연과 세상을 배우는 동시에 우주와 자연과 세상과 소통하게 해주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다.'로 책의 마지막 문장을 맺고 있다. 퍽 의미 깊은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끝으로 책 뒤에 추천도서 다섯 권이 보인다.

 

최재천 교수의 책 소개를 읽으면 모두 훌륭하고 꼭 읽어야 할 책들이란 생각이 든다. 나는 이 중에서 DNA를 발견하여 노벨상을 수상한 왓슨교수가 쓴 <이중나선>을 15년 전쯤 읽었다. 시간이 되면 다른 책도 찾아 읽어 보기로 하고 특히 <찰스 다윈 평전 1, 2>를 꼭 읽고 싶다.

   

1. <희망의 밥상> 제인 구달, 게리 메커보이, 게일 허드슨 : 채식을 권하는 책

2. <오래된 연장통> 전중환 :진화심리학

3. <마지막 거인> 프랑수아 플라즈 : 고릴라와 관련한 자연보호

4. <이중나선> 제임스 왓슨 :DNA 발견 이야기

5. <찰스 다윈평전 1,2> 재닛 브라운 : 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