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레 미제라블, Les Miserables>1 권을 읽고...

깃또리 2019. 8. 12. 15:56

<레 미제라블, Les Miserables>1 권을 읽고...

빅토르 위고/ 정기수옮김

민음사

2013. 02.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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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인지 갑자기 프랑스의 고전<레 미제라블>이 뮤지컬, 영화 그리고 책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사회학자나 심리학자들이 왜 이렇게 갑자기 <레 미제라블> 붐이 일어났는지 연구해 볼 일이다. 이미 오래 전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해 내용을 간추려 책으로 출판하면서 제목도 간단하게 주인공 이름 <장발장>, <장발잔>, <장발짠>등으로 하였다. 사실 나는 너무 오래되어 읽었던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장발장이 빵을 훔치다 들켜 20년 가까이 감옥에 있었다는 것 정도만 기억하고 있었다. 기왕 나온 김에 뒤돌아보면 원 제목 조차 <레미 제라블>, <레 미제라블>인지 아니면 <레미제라블>인지 궁금하기도 하였다. 왜냐면 가끔 붙이기도 하고 떼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나중에야 <레 미제라블, Les Miserables>의 의미가 '불쌍한 사람들', '비참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정도로 번역해야 되는 것을 알았다.

 

5권 뒤에 나온 <옮긴이의 말>에 의하면 해방 전부터 많은 출판사에서 초역, 축역, 번안 또는 중역으로 출판하였으며 최남선은 1914년에 <너 참 불쌍타>라는 제목으로 <청춘>지에 35페이지로 줄거리를 소개하였다 한다. 해방 후 1962년 정식 불어전공자인 정기수씨가 완전 번역을 시도하였으며 이번 민음사 번역본도 정기수씨가 반세기 전 자신의 번역본을 대조하여 새로 번역하다시피 하여 출판하였다 한다. 1962년이면 꼭 50년 전이고 정기수씨가 당시 30세라고 해도 이제 80세인 셈이다. 수많은 불문학 전공자가 있을 텐데 고령의 번역자를 다시 선택한 이유가 조금 궁금하다.

 

대부분 많은 기록에서 "장발장이 배고파 빵을 훔친 죄로 19년을 감옥에서 지냈다."라고 간단히 말하고 있으나 사실은 일곱이나 되는 아버지 없는 누이의 아들, 딸들 즉, 배고픈 조카들에게 먹이려고 야간에 총을 소지한 상태에서 빵을 훔치다 붙잡혀 중범죄자가 되어 5년 형을 선고 받고 감옥에서 지내다 4년 되던 해 1차 탈옥하다 잡혀 3년 추가, 6년 후에 2차 탈옥하다 다시 잡혀 5년 추가, 10년 째 3차 탈옥으로 3년 추가, 13년 째 네 번째 탈옥으로 다시 3년을 더하여 모두 19년을 감옥에서 지내게 되었다. 처음 '가택침입 절도죄' 5년이란 기간도 죄에 비하면 너무 형기가 무거웠으며,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빵 한 조각을 훔쳐 19년"이란 말은 거두절미한 경우여서 조금 어이없다. 왜 내가 이렇게 이 부분을 자세히 나열하는가 하면 세상의 모든 사건이나 전개를 자신의 주장에 유리하도록 하기 위해 거두절미 앞뒤 자르는 일이 너무 지나치다. 이런 경우는 현재 개인과 개인 사이는 물론 정치적인 문제 그리고 기록이 부족한 과거 역사문제까지 광범위하게 퍼져있으며 이를 교묘히 이용하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조금 과장하면 "이 세상에 믿을 게 하나도 없다."라는 다소 비관적인 탄식을 하게 한다.

내가 9년 가까이 오랜 기간 일하던 사무실에서 작별 인사를 하자 이런저런 선물을 받았는데 전에 같이 일하던 직원으로부터 <레 미제라블>1. 2권을 선물로 받았다. 이런저런 일과 연말연시도 겹쳐 펼치지 못하다 집 가까운 영화관에서 먼저 영화 <레 미제라블>부터 보았다.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 영화도 마음이 안정되고 집중력을 발휘하는 상황에서 관람해야지 여러 사정으로 그렇지 못하여 보고 나서도 별로 감흥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나름대로 후한 평가를 하는 걸 듣기도하였다. "장 발장이 불쌍하다." 팡틴이 불쌍하다." "배역들의 연기가 훌륭하다. 뮤지컬 방식이라 좋았다. 예나 지금이나 하층민의 삶이 팍팍하여 동정이 많이 간다. 약자에 대한 법치가 너무 냉혹함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등 등. 듣고 보면 다 맞기는 하지만 어쨌든 나는 한 번 더 봐야 하는지 그저 그랬다. 특히 영화가 뮤지컬 방식이라 네겐 퍽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그러고 보면 내가 새로운 것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1권과 2권을 연달아 읽고 이글을 적는다. 이 소설의 글쓰기가 고전방식이라서 그런지 읽고 나서도 전체 줄거리는 떠오르지만 세부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요즘 글쓰기와 다른 점이라 불평했는데 사실 다를 수밖에 없다. 빅토르 위고가 17년 걸쳐 썼으며 1862년 출판하였으니 지금부터 약 150년 전이며 분명 지금 글쓰기 방식과는 다를 수밖에 없으며 더구나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였으니 더욱 그러할 것이다. 3인칭 시점으로 쓴 소설로 예를 들면, "내가 아까 분석해 본 장 발장의 그러한 영혼상태는 내가 독자에게 전하려고 한 만큼 장발장에게도 완전히 분명하게 인지되었을까?"라고 소설 속의 화자가 독자에게 묻는 대목도 있다.

 

차례는 각권마다 큰 제목이 있고 다시 소제목으로 나뉘어 있다. 1권(1부)는 <팡틴>, 2권(2부)은 <코제트>, 3권(3부)는 <마리우스>, 4권(4부)은 <플뤼메 거리의 서정시와 생드니 거리의 서사시> 그리고 5권(5부)는 <장 발장>이다.

 

1권 총 521페이지는 8개의 소제목으로 나뉘어졌고 다시 더 작은 제목으로 나눠지는데 각권의 큰제목은 차례로 나와 있지만 소제목의 차례가 보이지 않는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이는 독자들에게 친절하지 못하고 다시 생각하면 출판사의 실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의 첫 페이지는 "1815년 샤를 프랑수아 비엥브늬 미리엘씨는 디뉴의 주교였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75세 되는 주교는 전과자 장 발장이 문전박대를 당하고 오갈 데 없어 추운 가을밤을 밖에서 지내려는데 지나치던 어느 친절한 노부인의 권유와 친절로 주교 집에 찾아가 잠을 재워 달라고 하자 서슴없이 저녁 식사와 잠자리를 마련해준 고마운 주교이다. 더구나 식사를 마치고 잠을 자다 도심이 발동한 장 발장이 은촛대를 훔쳐 달아나다 잡혀 와서 대질을 하자 주교는 촛대는 선물하였으며 왜 다른 은 식기는 가져가지 않았느냐고 태연히 말한 사람이다. 장 발장은 풀려난 다음 이 주교의 행동에 감화되어 근처 몽페르메유라는 작은 도시에 공장을 세워 많은 수입을 얻어 여러 선행을 하여 임명직 시장의 지위에 오른다. 그러나 이 미리엘 주교에 대한 이야기가 모두 112페이지 즉, 1권의 1/4 가까이 차지하여 웬만한 소설책 한권에 해당되는 분량이고 정작 장 발장에 대한 이야기는 154페이지부터 시작한다. 장 발장은 브리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으나 어머니는 산욕열을 잘못 치료하여, 그리고 아버지는 나뭇가지 치는 일을 하다 추락하여 사망하자 아들, 딸 일곱을 둔 과부 누나 밑에서 자랐다. 성장한 후에는 파브롤이란 작은 마을에서 그도 아버지가 하던 나뭇가지 치는 일을 하고 1795년 25살이 되는 해에 앞서 말한 '야간 가택침입 절도행위를 한 혐의'로 항구도시 툴롱에서 수인번호 24,604호로 감옥에서 지내기 시작하였다. 따져보면 장 발장은 1770년 출생한 셈이다.

 

 

장 발장이 형을 마치고 나온 해는 1815년으로 그의 나이는 계산해보면 45세이며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고 6년 후인 셈이다. 나는 프랑스 역사에서 가장 확실하게 기억하는 해는 1789년으로 바로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해이며 연도 외우기가 아주 쉽기 때문이다. 빅토르 위고는 1802년 출생, 나폴레옹이 태어난 해는 1769년, 장 발장 출생은 1970년, 나폴레옹이 황제에 오른 해는 1904년, 미리엘 주교가 디뉴의 주교가 되고 나폴레옹이 엘바 섬을 탈출하여 툴롱 항 근처 쥐앙 만에 3월 1일 나타나 황제에 올라 6월 18일 워털루 전투에서 패하여 황제 자리를 내 놓고, 같은 해 10월 장 발장이 감옥에서 나온 해도 1815년이다. 나폴레옹이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죽은 해는 1921년 그의 나이 51세 때이며 위고가 이 소설을 1845년부터 쓰기 시작하여 1862년 출판하였으며 그는 83세로 1885년 사망하였다. 이런 연대를 참조하면 위고는 자신의 나이 13살 무렵을 소설 시작하는 시기로 삼아 43살 때부터 쓰기 시작하여 60세에 출판하여 약 30년간의 시대상황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쓴 셈이다. 한 권이 대략 400~500페이지로 제법 두툼하며 다섯 권이나 되지만 누구든지 한 번 읽어 볼만한 고전이므로 배경 설명은 이 정도로 해두기로 한다.

 

장 발장은 공장을 세워 몽트뢰유쉬르메르라는 작은 도시를 경제적으로 부흥시켜 신망을 얻어 임명직 시장이 되고 ‘마들렌’이란 새로운 이름으로 행세한다. 그러나 장 발장이 툴롱 감옥에 있을 때 간수보였던 형사 자베르는 장 발장을 의심하고 뒤를 조사하여 추궁하기 시작한다. 팡틴은 마들렌의 공장에서 일하다 쫓겨나 거리에서 몸을 팔아 생활할 수밖에 없었고 병든 팡틴은 결국 장 발장에게 딸 코제트를 부탁하고 숨을 거두어 다른 시신과 함께 공동묘혈에 묻히는 부분에서 1권은 끝을 맺는다.

작곡가 모차르트를 주인공으로 한 내가 명화로 꼽으며 좋아하는 영화 <아마데우스>에서도 가난하고 돌보는 사람이 없던 모차르트의 시신이 눈보라치는 한 겨울 비엔나 근교 공동묘지의 큰 구덩이에 관도 없이 자루에 담겨 밀어 넣어지는 장면이 나온다. 유럽은 우리와 달리 가난한 사람들의 시신은 함께 한 구덩이에 묻는 것 같다. 그래서 모차르트의 무덤도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부부합장은 있어도 전쟁이나 급박한 경우를 제외하고 사람을 함께 묻는 일은 없다. 이 소설의 팡틴도 창녀에 돌보는 이가 없다보니 공동묘혈에 묻혔다고 되어있다. 무덤도 없는 셈이다. 하긴 이제 우리도 대부분 화장 신세를 져야 하는 상황이니 굳이 공동묘혈에 묻힌 일을 측은해 할 입장이 아니다.

책을 다 읽고 다시 앞장부터 넘겨보니 미리엘 주교 이야기 부분에 이런 글귀가 보인다. "단두대는 법률의 구현이고, '형벌'이라 불리며, 중성이 아니고, 사람들이 중립의 위치에 서 있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1789년 정치적으로 극심한 혼란기에 많은 사람을 간단하고 극적으로 죽이기 위해 파리의 의사이자 해부학자 기요탱(Joseph Lgnace Guillotin)이란 사람이 이 전의 장치를 개량하여 단두대를 제안하였다. 세력을 잡은 사람은 상대편을 무참히 단두대로 보내고 이 사람이 세력을 잃으면 다시 단두대에 서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이 시기에는 중도파가 설 자리를 잃었다. 기요탱 자신도 단두대에서 목이 잘리는 살벌한 시대였다 하며 혁명을 이끌었던 혁명가 당통도 같은 신세를 면치 못하였다. 나는 한동안 기요탱 자신도 단두대에서 죽었다고 알고 지냈었는데 사실은 자연사가 정설이라 한다.

 

장 발장이 고향에서 빵을 훔친 죄로 5년 형을 받고 지중해에 면한 남부 항구도시 툴롱으로 목에 쇠사슬을 차고 수레에 실려 27일 동안 갔다고 나온다. 죄수 수용하는 감옥이 프랑스 지역 도처에 있었을 텐데 거의 한 달 가까이 수송하여 먼 지역까지 이동시키는 일이 어떤 이유였는지 이해 가지 않는다. 장 발장의 고향은 아주 작은 마을이라 내가 가지고 있는 Philip's사 Atlas에는 나오지 않지만 맥락을 더듬어 보면 파리에서 아주 먼 곳은 아닌 것 같다. 짐작하기로, 팡틴의 고향이고 장 발장이 시장으로 일하였던 몽트뢰유쉬르메르도 파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팡틴이 창녀가 되기 전 처녀시절에 소풍에 따라 갔던 네 명의 대학생들은 저자는 “그들은 네 명의 평범한 오스카였다.”라고 했는데 페이지 아래 각주를 읽어보면 오스카 Oscar는 스코틀랜드 신화에 나오는 영웅 이름이며 아버지는 오시앙, 할아버지는 '핑갈'이라 하였다. 미국의 권위 있는 영화상 Academy award, 아카데미상을 예전에는 ‘오스카상’이라고도 했다. 아카데미 수상자에게 주는 트로피의 애칭이 오스카였기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웬 일인지 요즘엔 잘 쓰지 않는듯하다.

 

그런데 나는 오스카가 영화 관련하여 일하던 어느 미국사람이 아카데미 수상자에게 주는 트로피가 자기 삼촌 오스카와 얼굴과 비슷하다고 한 말이 트로피에 오스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여기서 보니 스코틀랜드 신화의 영웅이고 더욱이 그의 할아버지가 ‘핑갈’이라니 눈길이 더 간다. 내가 오래 전에 읽은 어느 글에서 실제로 스코틀랜드에 ‘핑갈의 동굴’이 있으며 부유한 유대인 아버지를 둔 멘델스존은 1829년 20세 일 때 영국 스코틀랜드 방문 길에 핑갈의 동굴과 부근 경치를 보고 감명을 받아 <핑갈의 동굴>이란 제목으로 서곡을 작곡하여 프러시아 황태자에게 헌정했다는 것을 보았다. 나는 이런 멘델스존의 핑갈의 동굴만 알고 있었지 전설상의 스코틀랜드의 영웅이 오스카이고, 그의 할아버지 이름이 핑갈이라니 퍽 재미있는 내용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