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재미나는 인생>을 읽고...

깃또리 2019. 7. 2. 15:27

<재미나는 인생>을 읽고...

성석재소설

2013. 11.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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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전 이 책을 쓴 작가 성석재의 에세이집 <유쾌한 발견>를 퍽 흥미 있게 읽은 기억이 난다. 그 뒤로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장편소설을 읽고 이번엔 쉽게 읽히는 단편소설집을 골랐는데 생각보다 수확이 적은 셈이다. 재미있고 유익한 책의 경우는 읽는 동안 작가가 설정한 배경에 내가 들어가 있는 느낌을 받고 읽고 난 후에도 며칠 동안 소설 속의 무대나 인물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이번에 읽은 <재미나는 인생>같은 경우는 이 글을 쓰기 위해 표지를 다시 열고 차례를 죽 훑어보아도 떠오르는 인상 깊은 부분이 별로 없다. 한마디로 재미도 없었고 별로 유익하지도 않았다는 증거이다. 굳이 후기를 쓸 만한 내용이 없지만 그래도 일단 읽었다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 페이지를 다시 들추어 보았다.

 

<몰두, 沒頭>라는 제목의 반 페이지 글에 진드기가 머리를 짐승의 살갗을 파고들다가 아예 자신의 머리까지 파묻혀 죽는다하며 작가는 이를 몰두라고 부르려 한다고 했다. 나는 그 동안 몰두라 하면 진지한 느낌과 긍정적인 단어로 받아 들였는데 이 부분을 읽고 나자 섬뜩한 느낌의 단어로 바뀌었다.

 

<아름다운 아름다움의 아름다운 아름다움>이라는 소제목의 글에서 여성의 어여쁨에 대한 이야기로 특히 한국여성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일종의 찬탄이기도 하고 비아냥 쯤으로 볼 만한 글이다. 글은 작가의 어린 시절 어느 예쁜 소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황순원의 유명한 단편 <소나기>를 연상시키는 이야기에 이어 고등학교 시절 연애편지를 부지런히 보내다 어느 날 그 여학생의 남자 친구를 만나보니 자신의 친한 친구여서 턱이 빠질 듯 놀랐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작가도 이제 나이가 들어 서울의 웬만한 커피 전문점에라도 들어가게 되면 하나같이 출중한 외모를 지닌 여성들을 볼 수가 있어 찬탄인지 한탄인지를 쏟아내다가 급기야 아내에게 요즘 여성들이 왜 이렇게 예쁜지를 물었다 한다. 대답으로 화장술, 화장품의 발달, 대중매체의 영향력 증가, 부영양화, 페미니즘 논의, 성형외과 병원의 성업 등 몇 가지 요인으로 설명하더란다. 그러나 작가는 예쁘다는 건 다양성, 개성의 일부에 지나지 않으므로 지성과 사려, 청결함, 표현력, 열정, 헌신, 노력, 수사, 호기심, 향상욕, 정직, 진실 등이 모아져야하며 마지막으로 “아름다움이 아름다울 때 아름답다”고 덧붙이고 있다.

 

책 뒤편에 <나, 혼자서 가 본 곳>이란 소제목으로 작가가 그간 홀로 들렸던 장소들을 간단히 소개하고 있다.

 

사실 작가란 글을 써서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인데 글이란 게 그냥 술술 써지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에게 걱정이요 스트레스라 한다. 오죽하면 근래 10여 년 전 우리나라의 최고의 작가로 인정받는 김영하작가 조차도 어느 글에서 "작가라는 직업이 글만 쓰지 않으면 좋은 직업"이라고 했을까. 그러다 보니 글의 소재를 찾아 여행도 하고 부지런히 책도 읽는다 한다. 아마 작가 성석재씨도 글 사냥을 위해 홀로 여행을 자주 하는듯하다.

 

1. 별을 보면서 혼자 한숨짓기 좋은 곳

 

이십대에 네댓 번 갔던 해발 천오백미터쯤 되는 널따랗게 펼쳐진 지리산 세석평전

 

2. 양질의 광합성을 보장하는 곳

 

길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걷다가 전등사, 초지진을 둘러보고 강화 버스터미널에서 국수 한 그릇을 먹어보라고 권하고 있다.

 

3. 봄 꽃 속에 허무를 만끽한다.

 

봄꽃이 피면 옥천 인터체인지에서 국도로 빠져 영동으로 시속 50킬로미터로 달려보고, 물빛 산색의 조화가 근사한 경남 하동포구 언저리 그리고 충북화양계곡변의 적요에 빠져보기

 

4. 들길

 

사내란 독하지 않으면 쓸데가 없다고 다짐하면서도 담양에 들에 가면 헷갈리고 흥분된다 하며 명옥헌, 송강정, 식영정, 면양정, 환벽당, 취가정, 소쇄원의 등을 줄줄이 열거하였다.

 

5. 달밤에 숨어서 술 마시기 좋은 곳

 

호숫가의 저녁 경북 상주시 공검면 오태리 용머리 어느 어르신의 집 앞마당인데 바로 눈 앞에 호수가 펼쳐져

 

6. 겨울나절의 천국

 

한 겨울 눈이라도 내리는 날에 이곳에 가면 홀로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여인들을 의례 볼 수 있는 곳이 한반도 남단 해남의 토말이라고 하여 꼭 가보기를 권하고 있다.

 

어디 성석재씨가 말하는 곳뿐일까 우리나라 어디든 가면 마음을 휘어잡는 풍광이 멋진 곳이 많으며 또한 계절에 따라 그날 날씨에 따라 같은 곳이라도 색다르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꼭 멀리가지 않더라도 자기가 사는 곳에서 가까운 곳도 어느 날 가면 마음의 위안이 되고 삶의 위로가 되는 곳도 있다. 나는 가끔 아내와 함께 퇴촌에 가는데 불과 한 시간을 달려 대도시를 떠나 아늑한 시골의 느낌을 받고 경안천이 흘러오다 팔당호수와 만나는 곳에 펼쳐지는 녹색 습지를 바라보는 일만으로도 지친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