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Paul Auster의 왜 쓰는가?>를 읽고...

깃또리 2019. 6. 25. 09:40

<Paul Auster의 왜 쓰는가?>를 읽고...

폴 오스터 지음/ 김석희 옮김

열린책들

2013.10.19.

이미지없음

   

 

작가 폴 오스터의 이름은 익숙하였으나 정작 그의 소설 읽기는 올 해 2013년 봄 <달의 궁전 Moon Palace>부터이며 그의 대표작이라는 <뉴욕 3부작>은 반쯤 읽다 조금 지루하여 밀쳐 두었는데 어느 덧 몇 달이 지났다. 지난 일요일 동네 도서관 서가를 훑어 출퇴근 버스에서 가볍게 읽을 크기가 작고 두껍지 않은 책을 골랐다. 아메리 노통브의 <두려움과 떨림>, 빌 발랭의 <포옹> 그리고 이 책까지 세권을 찾았다. 모두 포켓판으로 한 두 시간이면 읽을 분량인데 이 책은 총 101페이지이며 본문은 마치 일기장 형식처럼 빨간 가로줄 위에 인쇄체가 아닌 손으로 쓴 수기 체 즉, 손 글씨여서 독특하다.

 

첫 페이지를 열면 " 미국 시사주간지인 <뉴욕>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는 반 페이지의 짧은 글이 나온다. 작가가 네, 다섯 살 때쯤 자기 할아버지가 살던 뉴욕 맨하탄의 센트럴 파크 남쪽 60층 아파트에서 창밖을 내려다 볼 때 할머니가 했다는 이야기를 쓰고 있다. 오스터의 조부모가 뉴욕에 살았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꽤 형편이 좋은 사람들이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60층 아파트에 살았다니 그렇다. 예나 지금이나 뉴욕에 거주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 지위가 괜찮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다닌 예일대학교도 공부만 잘해서 다닐 수 있는 학교가 아니고 경제적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 학교다.

 

 책 제목이 된 소제목 <왜 쓰는가?>는 작가 폴 오스터 자신의 어린 시절 겪었던 일들을 적었다. 그러나 앞부분은 글쓰기와 별 상관이 없어 보이는 내용들이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여덟 살 때 생전 처음 부모와 함께 뉴욕 자이언츠 프로 야구팀의 경기를 관람한 이야기가 퍽 흥미 있고 제목에 걸 맞는 이야기이다. 1879년 창단되어 청소년들은 물론이고 뉴요커의 사랑을 받던 뉴욕 자이언츠와 밀워키 브레이브스 팀이 경기를 하던 날 운 좋게도 경기가 끝나고 로커 룸에서 운동복에서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나오던 당시의 우상이었던 윌리 메이스와 마주쳤다 한다. 어린 오스터는 용기를 다하여 "메이스씨, 사인 좀 해 주시겠습니까?"라고 하자 윌리스는 좀 퉁명스러운듯하면서도 상냥하게 "물론이지, 꼬마야. 해 주고말고, 연필 가지고 있니?"라 물었다 한다. 그러나 자신과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주변에 있던 어른 누구도 필기도구가 없어 꾸물대자 그 당시 23살이던 젊은 선수는 "미안하다. 꼬마야, 나도 연필이 없어서, 사인을 해줄 수 없구나."라 하고 어둠이 내리는 야구장을 총총히 빠져나갔다 한다. 다시없던 기회를 놓친 어린 폴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내내 울었으며 사실 실망도 했지만 그 보다는 눈물을 억제하지 못하는 자신이 미웠다 한다. 그날 밤 이후 오스터는 어디를 가든 연필을 가지고 다니기 시작하였으며 외출 할 때는 주머니에 반드시 연필이 들어 있는가를 확인하는 버릇이 들었다 한다. 하긴 나도 다른 이유에서 가방에 항상 가죽으로 만든 필통을 넣어 다닌다. 요즘 스마트 폰에 각종 기록 장치가 있긴 해도 책을 읽다가 밑줄을 그으려 하는데 연필이 없으면 뭔가 허전한 생각이 들기도 하여 수년 동안 가죽으로 된 필통을 지니고 다니다 보니 이제는 없으면 괜히 허전하다.

 

 폴 오스터는 그 연필로 뭔가를 하겠다는 특별한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늘 준비를 하였으며 다른 것은 몰라도 세월은 자신에게 이것 한 가지만은 확실하게 가르쳐 주었다 한다. 즉, 주머니에 연필이 들어 있으면, 언젠가는 그 연필을 쓰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힐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자기 아이들에게 즐겨 말한다 한다. "나는 그렇게 작가가 되었다." 사실 어찌어찌하여 작가가 된 사람도 있다. 어린이들이 무척 좋아하는 창작 동화를 많이 써서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생전에 유명한 사람이었던 영국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약도 했던 Roald Dahl은 미국 주재 영국대사관에서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일을 하고 있을 때 그의 군대시절 활약상을 적어주면 그 내용을 토대로 글을 쓰려는 어느 작가의 부탁으로 처음으로 자신의 무용담을 밤 세워 써서 보냈는데, 그 글이 너무 잘 썼다고 격려하는 바람에 자신의 당초 의지와 상관없이 작가가 되었다고 술회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물론 나는 그의 책이 내 영어 읽기 실력에 적절하고 재미있어서 여러 권 그의 책을 읽었고 지금도 읽고 있다.

 

또 다른 작가로 스물여덟 살에 이혼녀가 되어 정부의 빈곤층 생활보호 대상에게 주는 보조금으로 살아가던 사회의 천덕꾸러기 가난한 여자가 유모차를 옆에 세워두고 동네 카페에서 글을 쓰기 시작하여 이제는 영국여왕보다 더 돈이 많다는 <해리포터>의 작가 조엔 롤링은 순전히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원고지를 메웠다. 내가 최근 읽은 <이스탄불 에세이>의 작가 오르한 파묵은 대학시절까지 화가가 되려고 그림을 그렸으나 어머니가 화가는 배고픈 직업이고 특히 오르한이 자주 얘기한 유명한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도 화가가 되려다 건축가가 되었다고 상기시키자 "그래 그럼 나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라고 하며 작가의 길로 들어서기도 하였다.

 

또 한 사람의 예를 들면 이제는 매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단골 후보자에 오른 일본, 동양을 넘어서 세계적인 작가가 된 무라카미 하루키는 와세다 대학교 연극과를 졸업하고 이렇다 할 직업을 구하지 못하여 작은 재즈 바를 운영하다 불현듯 글을 써보겠다고 도쿄 신주쿠에 있는 문구점에서 만년필과 원고지를 구입하여 부엌 식탁에서 밤마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다. 사실 그 이전에 그는 세금 신고서나 가끔 편지를 써 본 것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글을 써 본 일이 없었으며 그래서 필기구로 만년필부터 샀다 한다. 폴 오스터는 야구 선수로부터 연필이 없어 사인을 받지 못하여 울고 항상 연필을 가지고 다닌 일이 결국 글을 쓰는 작가가 되었다 하고 하루키는 만년필과 원고지를 먼저 샀다는데 아무나 연필을 가지고 다닌다고 작가가 되거나 만년필을 산다고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그동안 수십년 연필을 가지고 다니고 만년필도 여러 개가 있으니 말이다.

 

소제목 <살만 루슈디를 위한 기도>는 같은 문학 작가로 모슬렘교 창시자인 무하마드를 모욕했다고 알려진 <악마의 시>를 쓴 인도출신으로 영국 캠브리지대학교에서 공부한 살만 루슈디에 대한 작가의 애뜻한 기원이 담긴 글이다. 1989년 이란 최고 지도자 호메이니는 그에게 죽음의 선고에 해당하는 ‘패트라’를 내려 영국 경찰은 그를 보호하고 있으며 본인의 의사에 관계없이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꾸준히 장편소설과 신문칼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글에 비평을 남기고 있어 폴 오스터는 존경과 그의 무사함을 빈다는 내용이다.

 

마지막은 <펜실베니아 주지사에게 보내는 탄원서>이다. 어느 살인사건에 관련되어 사형선고를 받은 ‘무미아 아부 자밀’이라는 사람의 사형 중지를 호소한 1995년 7월 국제펜클럽미국본부에서 발표한 폴 오스터의 기자회견 내용이다. 이글을 읽다보면 미국이란 나라가 인종차별과 인종편견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추악한 일면을 지닌 국가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다. 아무튼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을 다시 읽을 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