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이중나선, The Double Helix>를 읽고...

깃또리 2019. 6. 24. 16:22

<이중나선, The Double Helix>를 읽고...

James D. Watson/ 하두봉 옮김

전파과학사

2013. 05.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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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두 번째 읽었다. 처음은 I.M.F.사태로 온 나라가 마치 파산선고를 받은 것처럼 모두가 전전긍긍하던 1998년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시름을 잊기로는 책 읽기가 제일이어서 당시 나는 나와 전혀 거리가 먼 이 책을 일부러 골라 읽었던 같다. 초판 인쇄는 1973년이니 올 해로 꼭 40년이 된 책이고 내가 다시 이 책을 손에 든 것도 어언 16년이란 지난 셈이다. 하루에도 수많은 책이 쏟아지는 세상이라 책이 출간되면 반짝 인기를 얻다가 이내 독자들로부터 관심이 사라지는 책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이 책은 대학신입생 권장도서 목록이나 일반교양도서 목록에 꾸준히 오르내리기 때문에 이제는 스테디셀러의 반열에 든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다시 보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인기가 꾸준한 이유는 몇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로는 DNA, 보통 유전자 또는 핵산이라고 하는 유전물질의 규명에 대하여 과학자가 쓴 주제가 다소 딱딱한 내용이지만 저자 Watson이 DNA구조를 명확히 규명하여 노벨상을 탄 대단한 업적과 함께 Watson의 글 솜씨가 출중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둘째로는 이 글을 쓸 당시 대부분 생존하여 활발하게 연구 활동을 하는 자신 주변 인물들에 대하여 개인적 성격이나 생활 태도 등을 느낀바 그대로 표현하여 독자들에게 과학자들의 일상생활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 준 용기였다. 세 번째로는 DNA 염기배열을 규명하는 여러 연구자들의 진척 상황이 엇비슷하여 누가 먼저 확실한 발표를 하느냐가 관건이었다. 그래서 연구원들끼리 보이지 않는 경쟁과 협조가 필요하였으며 왓슨이 최종 발표까지 과정은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운동경기와 같이 가슴을 졸이게 하는 순간으로 흥미를 일으키게 하였다. 결국 DNA 염기배열 최종 규명은 노벨 생리. 의학상 수상을 받을 정도의 성과이기 때문에 미국과 영국이라는 국가 간, 캠브리지대학교 킹즈대학의 케븐디쉬 연구소와 미국 칼텍의 페서디너 연구소의 경쟁 그리고 여러 연구원들 사이의 개인적 경쟁관계였기 때문에 더욱 열기가 심하였다 한다.

 

DNA의 이중나선 구조에서 정확한 최종 염기배열을 발표한 사람은 Watson지만 그 과정은 상당히 복잡하고 당시 여러 연구자들의 성과들이 축적되어 이를 바탕으로 최종 염기서열이 확정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왓슨의 독자적인 연구라고 볼 수 없으며 진화론을 발표한 찰스 다윈으로부터 시작하여 수많은 생물, 화학, 물리, 진화학자들의 피나는 연구 성과가 Watson에 이르러 종합되었음을 책을 읽으면 알 수 있다. 저자가 밝힌 당시 경쟁 또는 협력관계의 연구원만 해도 본인을 포함하여 다섯 명이나 된다.

 

 

Maurice Wilkins(1916~ 당시나이 37세/노벨상 수상 46세, 런던대학교 물리학자)

Rosalind Franklin(1921~1958 당시나이 32살, 런던대학교 여성 물리학자)

Linus Parling(1901~ 당시나이 42세/노벨화학상 수상 53세, 캘리포니아 공대 페서디너 연구소)

Francis Crik(1916~ 당시나이 37세/노벨상 수상 46세, 케임브리지 대학 케븐디쉬 연구소)

James D. Watson(1928~ 당시나이 25세/노벨상 수상 34세, 케임브리지대학 케븐디쉬 연구소)

 

이중나선의 구조 규명은 저자의 나이 25살이던 1953년에 발표되었으며 이후 9년이 지난 1962년 노벨 생리. 의학상을 받았으며 단독 수상이 아니라 당시 연구에 기여가 많은 두 연구자인 Wilkins, Crik과 함께 공동수상하였다. 어떤 획기적인 업적을 이루었다 해도 충분한 검증을 위해 노벨상은 최소한 몇 년은 지나야 하는 것 같으며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된다. 아무튼 25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다윈 이후 세기적 사건이라고도 할 만한 이중나선구조의 비밀을 풀었으며 34살에 노벨상의 영광을 얻은 것은 대단한 일이라 생각된다. 당시 유전자 연구가 유럽 특히 영국에서 활발하였으나 Watson은 미국 중북부 시카고에서 태어나 시카고대학을 졸업하고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잠시 연구생활을 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케븐디쉬 연구소에서 연구생활 2년 만에 큰 성과를 얻은 사실은 상당한 운도 함께 했다고 본다. 아무래도 유럽보다 활달한 스타일의 미국인이며 젊은 학자이다 보니 주변 인물들에 대한 평가도 솔직 담백하게 그리고 조금도 거리낌 없이 적어 독자들에게는 재미와 생생함을 더해 주어 이 책이 꾸준히 읽히는 것 같다.

 

처음 읽을 때도 글만 읽어서는 이해가 되지 않아 그림을 그려 가면서 이해하였는데 이번에도 역시 같은 방법으로 다시 그림을 그려보았다. 바이러스 또는 염색체는 핵산과 이를 둘러싼 단백질로 구성되었으며 핵산은 유전자를 영어로 DNA(De-oxyribonucleie acid, 데옥시리보 핵산)라고 부른다. 이 핵산 즉 DNA는 사다리를 비틀어 놓은 모양의 이중나선이며 이 형태는 X-선결정학, 화학 및 생물학적 연구의 축적과 최종적으로 X-선회절상 등을 통하여 모습이 알려졌으며 이는 주로 물리학자들의 도움이 컸다. Watson이 최종으로 밝혀낸 이중나선의 구조는 시토닌-구아닌/티민-아데닌의 한 쌍이 순차적으로 교차되어 나오는 비교적 간단하게 모식도에 나타나고 있다. 마치 회전계단에 염기쌍들이 발판과 같은 모습으로 보인다. 아무튼 이 DNA는 자기복제라는 능력을 발휘하여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존재의 근원이 되고 있다. 그리하여 수천 년 인간을 구원하기도(?)하고 속박하기도 하는 신을 대신하여 창조의 주인공 자리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이 DNA를 하나님, 또는 하느님이 만들었다고 우긴다면 할 말은 없지만...

 

저자 Watson은 장학금을 받아 영국에서 연구생활을 하였으나 먹고 자는 일에 상당히 고생을 하였다 한다. 어느 부유한 귀족 후예 가족에 자주 초대되어 기쁘게 지낸 일을 책에 적고 있는데 책 앞 헌정은 바로 그 가족의 안주인 나오니 미켈슨에게 하였다. 서문은 저자가 연구생활을 한 케임브리지 대학교 케븐디쉬 연구소 소장 로런드 브래그 경(1890~1971, 노벨 물리학상 수상 1915년)이 썼으며 머리말은 노벨 수상 5년 후인 1967년 하바드대학교 교수시절에 쓴 것으로 나와 있다. <서문>에 보면 유전의 기본물질인 DNA의 구조를 해명하기까지의 경위를 적은 책이라 했으며 Crik과 Watson 두 사람에 의한 구조 발견이라고 하며 20세기 과학에서 최대 업적의 하나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연구소장으로 이 두 사람의 연구과정을 지켜 본 입장에서 과학자들의 딜램마를 언급하고 있다. 즉, 당시 구조해명이 여러 사람에 의해 밝혀지기 시작하여 뚜렸이 연구 업적의 공을 누구에게 돌리기 어렵다는 의미도 있으며 그래서 두 사람과 함께 다년간 꾸준한 연구의 공을 인정하여 다른 연구소원인 Wilkins도 노벨상을 공동수상하여 기쁘다는 말을 덧붙이고 있다. 더하여 이 책은 역사적 기술보다는 한 연구자의 인상기로 보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하였다.

 

 

그래서 머리말에서 저자는 "이 책의 내용에는 일방적이고 불공정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많겠지만 인간이란 원래가 어떤 새로운 아이디어나 또는 생면부지의 사람을 만났을 때 좋고 싫고를 대개 일방적이고 불공정하게 결정해버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적으면서 이런 책 내용으로 상처받을지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걱정을 담기도 하였다.

 

저자는 연구실 방을 함께 사용한 공동연구자 Crik에 대하여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였다. 이 사람은 퍽 말이 많고 흥분을 잘하며 그러나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에서 그의 실수나 주변사람들이 그를 싫어하였다는 이야기를 쓰기도 하였기 때문에 아마 이 사람 Crik의 동의를 얻어 책이 출판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 보았다. 책을 읽다보면 노벨 화학, 물리학상을 수상한 사람들이 연이어 나온다. 케븐디쉬 연구소장 브레그 경은 1915년에, 연구주임 페루츠는 1962년에, 경쟁자였던 폴링은 1954년에 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그러나 죠셔 레더버그(Joshua Lederberg 1925~ )라는 학자는 불과 20세의 나이에 바이러스 교배와 유전학적 재조합현상 즉, 바이러스도 암수가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발표하여 당시 생물학계를 놀라게 하였으며 발표 5년 후인 1950년 25살 때 드디어 노벨상을 타기도 하였다 한다. 더구나 그는 과학 연구 발표하는 자리에서 프랑스 풍자작가들의 작품 내용까지 섞어가며 서너 시간을 쉬지 않고 이어가는 가공할만한 신동이었다 한다.

 

책 중간 부분에 이런 구절도 보인다. "Crik과 나는 밖으로 나가 폴링의 실패를 축하하는 축배를 들었다. 그것도 늘 마시는 포도주가 아니라 Crik을 졸라 위스키를 사게 한 것이다. 물론 우리에게 승산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으나 여하튼 노벨상은 아직 폴링에 가지는 않고 있었다." 25살과 33살이라는 한창 젊은 연구원들이 눈앞에 다가 온 연구 성과가 다른 사람에게 선수를 빼앗긴다면 그 기분이 어떠하리라 짐작이 간다. 그래서 경쟁자의 실패에 축배를 드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며 젊은 Watson의 솔직성이 그대로 나타나는 대목이다. Watson과 Crik은 자신들의 연구결과를 연구소장인 브래그 경에게 보여주자 이들의 연구가 유전물질의 복제 기구 해명에 중요한 의의가 있고 생명의 본질을 탐색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 하며 추천장을 첨부하여 <네이처 Nature>지에 보내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 논문 서두는 이렇다 한다.

 

"우리는 여기에 디옥시리보 핵산(DNA)염의 구조를 제창하고자 한다. 이 구조는 생물학적으로 대단히 흥미 있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후기>에는 이 연구에 관련한 여러 사람들의 근황을 소개하고 있다. 모두 유명한 연구소와 대학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으나 유일한 여성 연구원으로 X-선 회절에 대한 탁월한 식견으로 DNA구조 해명에도 큰 도움을 주었던 Rosalind Franklin은 1958년 37살이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 저자는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그녀의 업적을 기리며 본인의 안타까운 마음을 적으며 끝을 맺었다.

 

"여성을 한낱 심오한 이론에 지쳤을 때 기분을 전환시켜주는 그런 존재로만 흔히 생각하기 쉬운 과학의 세계에서 그녀와 같은 고도의 지성을 겸비한 여성이 그토록 투쟁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우리가 이해한 것은 때가 너무 늦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불리한 병을 알면서도 수주일 앞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 한탄 한마디 없이 연구에만 헌신적인 정열을 기울여온 그녀의 용기와 성실성을 우리는 너무도 뒤늦게 인식한 것이다."

끝으로 이 책이 아주 오래 전에 발간되어 외래어 표기가 지금과 달라 처음 읽을 때 무슨 말인가 했으나 나에게는 오히려 예스러운 느낌이 있어 흥미롭다. 란든/런던, 쉬카고/시카고, 일리저베드/엘리자베스, 켈리포녀/캘리포니아, 캐너더/캐나다 등

 

아무튼 이제는 현대의 고전이라 부를 만한 책을 16년 만에 다시 읽어 감회가 새롭다. 책 읽기의 기쁨을 다시 한 번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