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사랑을 생각하다>를 읽고...

깃또리 2019. 6. 17. 14:33

<사랑을 생각하다>를 읽고...

파트리크 쥐스킨트/ 강명순 옮김

열린책들

2013. 10. 07.

이미지없음

  

 

   실로 오랜만에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책을 다시 손에 들었다. 수년이 흘렀으나 이 작가가 쓴 <좀머씨 이야기>, <비들기>, <콘트라베이스>등을 읽었을 때의 감흥이 생생하다. 이번 책 <사랑을 생각하다, Uber Liebe und Tod>는 2006년도 한국판 초판 발행이니 벌써 8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이 작가의 글은 유행과 크게 상관없이 여전히 흥미롭고 재미있다. 그러나 이 책을 과연 책이라 해도 될지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면 총 102페이지에서 앞부분의 속표지, 목차, 제사가 11페이지이고 뒷부분에서 인용문헌과 옮긴이의 말이 16페이지 그리고 책 중간 중간 이유 없이 글이 없는 여백 4페이지까지 합하면 총 31페이지나 되며 이리하여 본문은 겨우 71페이지밖에 되지 않는다. 책의 가치를 단순히 페이지 분량으로 따지는 것도 적절치 않겠지만 그래도 너무 심하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나는 수백 년 전 사람인 아우구스누스의 <고백록>에서 인용한 제사의 짧은 문장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라서 반복하여 다시 읽어 보았다. "어느 누구도 그것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을 때는 나는 그것에 대하여 알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로부터 그것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것에 대해 설명을 하려하면 나는 더 이상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작가는 이 말이 특히 사랑에 관하여 더욱 유효해 보인다고 책 첫 문장에서 밝히고 있다. 이어서 인간의 사랑은 예술을 통하여 무엇인지 꾸준히 추구되었고 오르페우스 이후 시를 통하여 또는 많은 시인들도 여전히 탐구해왔다고 말하였다. 시인이란 자신이 잘 모르는 것을 쓰고 있으며 사랑에는 뭔가 수수께끼 같은 것, 즉 사람이 완벽하고 적절하게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있어 수천 년이 지나 과학이 발달한 지금도 사랑을 충분히 밝힐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난 사랑과 관련하여 보고 들었던 극단적인 사건 셋을 예로 들면서 만일 플라톤의 분류방식이라면 첫 번째 대낮 도심 한복판 도로의 차량에서 사랑을 나누었던 젊은 연인들의 행위는 '동물적 사랑', 두 번째 70대 유명 애호가 여성과 50대 무용가이자 안무가 남성이 초대 손님들의 시선을 아랑곳 하지 않고 보여주는 모습은 '에로스 사랑'이며, 세 번째 노작가와 식당 젊은 남자 종업원의 사랑은 애매하고 정의내리기 곤란하다고 하였다.

 

또한 사랑을 설명하고 분석하기 위해 소크라테스, 플라톤의 사랑에 대한 언급을 살펴보았으며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 책의 분량이 적은데도 불구하고 작가는 오르페우스 이야기를 무려 16페이지에 걸쳐 할애하였다. 여기 일부분을 옮겨 작가가 오르페우스 이야기에 얼마나 심취하고 있는지 알아보기로 한다.

 

"오르페우스 이야기는 여전히 우리들을 감동시킨다. 왜냐면 그것은 좌절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사랑과 죽음이라는, 인간실존의 수수께끼 같은 두 개의 근원적 힘을 화해시키려는 노력, 두 힘 중에서 더 강한 힘을 약한 힘과 화해시키려는 의도는 결국에는 실패로 끝이 난다. 그에 비해 죽음과 관련한 예수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비참한 최후에 이르기까지 의기양양하게 승리를 구가한다."

 

오르페우스 이야기는 서양 사람들에게는 두고두고 마르지 않는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원천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문학, 음악, 미술을 통하여 무수한 변용과 변주를 거듭하였으며 특히 사랑 이야기에서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책 뒤편의 <옮긴이의 말>에서 앞에 쓰인 제사의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른다는 것'은 사실 <시간>에 관한 것이라 한다. 그러나 사랑도 마찬 가지로 아직까지 확실하게 밝힐 수 없는 주제라 하였으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랑은 과연 무엇인가?

남녀가 사랑을 느끼는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사랑에는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 아니면 사랑은 맹목적인 것인가?

남녀 사이의 사랑은 영원할 수 있는가, 아니면 순간적인 환상에 불과한가?

성과 사랑의 관계는 무엇인가, 사랑은 성관계의 전제 조건인가?

사랑이 없는 성관계는 도덕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가, 없는가?

남녀의 사랑은 이기적인가, 이타적인가?

<너만을 사랑해>라는 말은 아름다운 낭만인가, 배타적 소유욕의 표현일 뿐인가?

사랑은 과연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는가?

사랑은 사람들을 현명하게 만드는가, 멍청이로 만드는가?"

 

과연 그러고 보니 사랑은 오묘하고 불가해한 것이기도 하다.

 

아무튼 우연히 도서관 서가에서 골라잡은 책이었는데 올해 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서 오래 기억에 남을 책이 될 것 같다. 내친 김에 이 작가의 내가 읽지 않은 책도 찾아 읽어 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