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밤은 노래한다>를 읽고...

깃또리 2019. 6. 14. 08:48

<밤은 노래한다>를 읽고...

김연수

문학과 지성사

2013. 04. 22.

한 달 전쯤 신문에서 문학 담당기자와 문학 평론가 남진우씨의 대담 기사를 읽었다. 제목은 "문학이 죽었다고? 제대로나 쓰고 우는소리 해라"였다. 남진우씨는 소설가 신경숙씨의 남편이다. 그래서 나는 더욱 관심을 가지고 기사 전문을 읽었으나 기자가 신경숙씨의 작품에 대하여 묻자 "나도 가정을 유지해야지"로 입막음을 하였다. 그럴 것이다. 평론가로써 작품에 대하여 왜 할 말이 없겠는가! 그러나 아내의 작품을 감히 어떻게 평가 할 것인가! 사실 나는 그동안 신경숙씨의 작품 몇을 읽었으나 점점 흥미를 잃어 가던 중 몇 년 전 미국에서 영문판이 출판되어 제법 알려진 <엄마를 부탁해> 한글판을 구입하여 1/3쯤 읽다가 지금 내 서가에 꽂아두고 있다. 내가 지금까지 소설을 읽다가 중도에 그만 두고 읽지 않은 책은 이 책 말고는 거의 없다. 작년인가 어느 문학평론가가 이 책에 대하여 신랄한 비평을 담은 내용을 읽어 더욱 책에 손이 가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신경숙씨의 초기 작품을 제외하고 다른 소설이 잘 팔리는 것이 의아할 따름이다.

 

왜 내가 이런 이야기를 길게 하느냐면 바로 문학 평론가 남진우씨는 우리나라 소설가 몇 사람을 거명하며 한국 문단의 앞날을 위해서 많은 기대하고 있다는 요지의 글을 썼는데, 첫 번째가 바로 작년부터 올 초에 걸쳐 내가 인상 깊게 읽었던 소설을 쓴 김영하를 필두로 하여 김연수, 박민규, 김애란을 꼽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 그 중 한 사람인 김연수의 이 책을 골랐다. 문학평론가들도 각자 주관적 견해와 취향이 있겠지만 남진우씨의 평가가 크게 벗어나지 않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가 말한 내용을 조금 더해보면 자신은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고 높이 평가한다고 하였으며 <세계의 끝,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태엽 감는 시계>를 추천하였다. 또한 정치 발언으로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수구꼴통이라고 호되게 질타를 받는 이문열씨에 대한 의견도 있었다. 작품으로 보면 이문열씨의 <황제를 위하여>와 같은 대단한 작품을 쓴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되묻고 요즘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보다는 쓸데없는 이데올로기에 매몰되어 작품 자체보다는 이념논쟁으로 인기를 얻으려 하며 작품수준은 생각하지 않고 한국문단에 노벨문학상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우는 소리만 한다고 힐난하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작가는 작품으로 자신을 내 세워야 한다는 말에 나도 전적으로 동감한다.

 

이 소설의 형식과 내용은 올 초에 읽은 김영하의 <검은 꽃>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검은 꽃>은 우리나라 1900년대 초 '멕시코 한인이민'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에서 일어난 이민사회 이야기를 소설형식으로 쓴 작품이라면 이 소설 <밤은 노래한다>는 1930년대 초 만주 '민생단 활동'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둘 다 비슷한 시기에 젊은 남자 주인공과 젊은 처녀의 사랑 이야기가 딱딱한 역사적 사실에 양념 역할을 한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내용은 이 소설의 주인공, 스물세 살의 김해연은 <날개>,<오감도>등을 썼으며, '이상'이란 필명으로 잘 알려진 모더니스트 김해경과 경술년 같은 해에 출생하여 '경성고등공업학교' 동창생으로 나온다. 김해경은 건축과이고 김해연은 토목과로 전공이 다를 뿐이다. 그러고 보니 이름도 비슷하다. 소설에서 김해경이 건강이 안 좋아 조선총독부를 그만두게 되자 학교 스승이 그 자리를 김해연에게 추천하는 대목이 있어 소설이 아닌 실화를 읽는 기분이 들기도 하였다. 1930년대에는 중학교만 졸업해도 인텔리계층으로 인정하였고 ‘경성고등공업학교’ 줄여서 ‘경성고공’ 정도는 요즘으로 치면 서울의 최고 명문대학을 졸업한 것으로 보면 될 것 같다.

 

소설 첫 문장은 "차가운 가을바람이 불던 1932년 9월 하순, 그는 시내 십자로에 있던 요릿집 용원거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간도신보>기자들 몇 명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로 시작한다. 경상남도 통영 출신인 주인공 김해연은 졸업 후 만주철도주식회사 약칭으로 ‘만철’의 측량기수로 대련을 거쳐 용정에서 멋진 인생을 출발하였으나 서울에서 유학을 한 다음 용정에서 음악선생이 된 이정희를 사랑하고 그녀가 항일운동하는 사람들을 돕다가 죽는 것을 계기로 그의 삶이 심하게 뒤틀려지기 시작한다. 사실 이정희는 죽기 바로 전 김해연에게 여러 의문을 지닌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를 보냈었다. 이정희의 죽음으로 사랑의 절절한 상실감에서 벗어나려고 마약과 홍등가를 헤매다 결국 직장을 잃고 민족의식에 눈을 뜨기 시작하여 민생단에 합류한다. 만주지역에서 특히 조선과 인접한 지역은 조선족을 비롯하여 여러 민족이 함께 살며 지정학적으로 복잡한 지역이다. 그래서 이곳의 명칭도 오늘날 흔히 '연변'이라고 부르고 혹자는 '간도' '동만'이라고 부르는데 이렇게 지역 이름이 여럿인 경우는 그 만큼 사연이 많다는 의미이다. 이 지역은 공식적으로 중국의 영토였으나 내용적으로는 조선인들이 개척한 땅이다. 이러한 특수성에 더하여 그 당시 일본은 중국대륙 침탈의 교두보로 이곳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허수아비인 만주국을 세우기도 했으며 항일 단체들도 우후죽순처럼 나타나 '병비' '토비' '공비' '선비' 등 꽤나 다양한 그룹이 암암리에 할거하다가 명을 다하기도 했다 한다.

 

<작가의 말>을 읽어보면 작가는 1989년 성균관대학교 영문과 입학 후 선배들의 마르크시즘 설파에 귀를 기울이던 시기부터 퍽 오랫동안 이 소설의 바탕이 되는 여러 버전의 초기 작품을 썼으며 이후 다양한 사료를 섭렵하고 그 중에서 <1930년대 연변 민생단 사건 연구>라는 박사 학위논문과 성공회신학대학의 한홍구 선생의 박사학위 논문 <상처받은 민족주의-1930년대 간도에서의 민생단 사건과 김일성>을 읽은 다음 2003년 연변대에서 한동안 머물고 2004년 연길에서 이 소설의 초고를 완성했다 한다. 또한 이 글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작가 자신은 "원래 뭔가를 간절히 원하면 온 세계가 그 열망을 도와준다고 믿으며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이 글은 내가 한 번 대강 읽고 이제는 서너 달에 걸쳐 생각나면 틈틈이 몇 페이지씩 읽고 있는 코엘료의 <The Alchemist>에도 비슷하게 나오는 말 이다. 코엘료가 이 책을 내 놓은 시기가 1988년이고 김연수는 이 말을 믿고 태어났다면 김연수가 더 오래 전에 깨달았다는 말인가! <The Alchemist>에서 이집트 Faiyum에서 만난 연금술사가 소년에게 말하는 내용은 이러하다. "When a person rearly desires something, all the universe conspires to help that person to realize his dream."

 

이 책에 나오는 Faiyum은 이집트 카이로 시내에서 30분 정도 남서쪽 사막속의 오아시스이다. 내가 오래 전에 이곳을 갔었는데 평소 상상하던 오아시스와는 전혀 달라 어리둥절하였다. 대략 웬만한 우리나라의 면소재지 정도 되는 넓은 지역이었는데 좁고 지저분한 개천이 흐르고 그 양 옆에는 대추야자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으며 흙벽으로 지은 허름한 집들에서 맨발에 남루한 어린애들이 몰려 나와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아서 근사한 오아시스를 기대하고 갔다가 퍽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대개 오아시스는 사막 한 가운데 아주 조그만 면적으로 아름답게 묘사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은 이렇게 넓은 곳도 있어 원래 오아시스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곳을 오아시스라 말하는 것이 분위기에 맞지 않았었다. 아무튼 이집트가 상당히 넓은 곳인데 이곳이 소설에 나오니 퍽 반가웠다.

 

 다시 소설로 돌아가 김연수 작가는 몇 페이지 뒤에 "열망으로 이루어지는 일은 하나도 없다. 열망은 결코 원인이 아니다. 열망은 그 자체로 결과이리라. 열망은 단지 열망하는 그 순간에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뿐이다. 과연 이것이 해답이 될 수 있을까?"라고 다시 반문하고 있다. 작가들의 뛰어난 레토릭이다. 소설의 마지막은 세월이 흐른 9년 후인 1941년 주인공 김해연은 용정으로 다시 돌아와 옛 이정희와 같은 학교를 다녔으며 한동안 이정희를 짝 사랑했으나 사상적으로 변절한 최도식을 만나 그 동안 품었던 많은 의문이 풀리게 된다. 그러나 최도식을 죽이려고 준비해 간 권총을 꺼내려고 호주머니에 손을 넣는 순간 마침 그때 최도식의 어린 아들 둘이 최도식이 먹을 것을 사서 넣은 가방을 보고 환호성을 지르며 빨리 집에 들어가자고 바지 가랑이를 붙잡고 있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차마 어린 아들 앞에서 최도식을 죽이지 못하고 그들을 뒤로 하고 비가 내리는 용정 시내를 하염없이 걷는다. 이윽고 이정희와 함께 자주 오르던 언덕에서 멀리 해란강의 잔물결을 보며 주머니 속에서 이정희의 편지를 꺼내는 대목에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이렇게 좋은 소설을 읽고 나서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 항상 같은 생각이 떠오른다. 아! 이 책을 서점에서 한 권 산 다음 언젠가 다시 읽어야겠군. 아니! 혼자 읽기 아까우니 한두 권 더 사서 누군가에게 선물을 해야지. 그러나 막상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이런 감정을 바래진다. 그래도 서점에 가게 되어 이런 좋은 책을 기억해낸 다음 가방에 넣어 집에 들어오는 날은 행복하다. 이 소설과 관련한 몇 가지를 덧 붙여 본다. 이제 국내 작가들도 외국 특히 서양 작가들의 소설형식을 따라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이 책에서도 다섯 개의 소제목 아래 각각 시인, 소설가들의 짧은 서너 줄의 글을 인용하였다. 루쉰, 니체, 단테, 하이네, 보들레르의 글이다. 이런 짧은 글을 무엇이라 하는지 궁금하다. 그러나 아직 국내 작가에게 일반화 되지 않은 형식으로 책 앞에 두는 헌사이기도 하다. 소설에서 주인공 김해연은 비록 지배자와 피지배자 입장으로 다르지만 동경제국대학교를 졸업한 일본인 만철조사부 직원 니시무라 히데하치와 일본육사 출신 나카지마 중위와 비교적 인간적인 교감을 주고받는데 나카지마 중위는 하이네 시를 좋아하여 소설에서 하이네의 시가 몇 편 나온다. 미루어 짐작하건데 작가 김연수는 하이네의 시를 좋아하는 것 같다. 또 소설 초반부에 이정희는 용정에서 대련으로 출장 가는 김해연에게 대련 미쓰비시 백화점 도서부에서 보들레르의 <파리의 우울>을 구입해 달라고 부탁한다. 보들레르가 중국 남경을 방문했던 것 같다. 아니면 상상의 글인가? 주인공 김해연은 이정희의 죽음 이후 폐인생활을 하다 민생단에 들어가기 전에 용정에서 가까운 소읍 사진관에 잠시 일하는 중 '여옥'이란 처녀를 만나 사랑하게 된다. 바다를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여옥은 통영출신 해연에게 바다를 보여 달라고 조르는 대목이 나온다. 그 어름께에 내가 이 소설에서 가장 눈을 크게 뜨고 읽은 대목을 옮겨보았다.

 

 "여옥이는 가슴살이 빨갛게 홍조를 띌 정도로 가쁘게 숨을 몰아쉬다가 바다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여줄 수 있느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물기로 축축한 여옥이의 검은 몸을 어루만지며 여름 땡볕을 받아 마른 돌들이 흐느껴 잠들면서 꾸는 꿈이라고 말했다. 내 말에 여옥이는 몸을 뒤척이면서 우리는 서로 다른 지방에서 자랐기 때문에 서로의 말을 이해하기는 어렵다고, 그런 말로는 바다를 떠올릴 수 없으니 물결 하나만 보여 달라고 말했다. 한 줌의 달빛이면 보름의 밤을, 한 닢 꽃잎이면 봄날의 바람을 볼 수 있으니 어서어서 이랑이 긴 물결 하나를 보여 달라고, 나는 어둠 속에서 미끈거리는 여옥이의 몸 안으로 남해 푸르른 물결 하나를 밀어 넣었다. 우리는 둘이서 함께 모든 맨몸의 물고기들을 따뜻하게 덮어주는, 세상에서 가장 큰 푸른색 이불이 됐다. 우리는 지치지 않고 서로 밀려왔다가 또 밀려갔으며, 우리는 쉬지 않고 아래위로 출렁거렸다. 낸 안의 작은 물결로부터 파도 소리가 들려오더니 온 방 안으로 남해가 밀어닥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