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옥수수와 나>를 읽고...

깃또리 2019. 6. 7. 09:24

<옥수수와 나>를 읽고...

김영하 지음 / 2012 제 36회 이상문학상작품집

문학사상

 

  

    작년 12월 우연한 기회에 작가 김영하의 작품 셋 <퀴즈 쇼>, <빛의 제국> 그리고 <검은 꽃>을 잇달아 읽었다. 이중에서 <퀴즈 쇼>가 가장 흥미 있고 독특한 내용이었으며 이런 작가라면 ‘이상 문학상’을 이미 수상했으리라 기대하고 검색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2012년 바로 그해 수상자였다. 생각보다 수상이 다소 늦은 감이 든다. 그 동안 ‘이상 문학상’ 수상작품이 실리는 책 표지는 항상 똑 같았다. 즉, 전면 표지 2/3 위쪽 왼편에 소설가 이상의 얼굴이 자리하고 오른쪽에 0000년도 제 00회 그리고 이상문학작품집 대상 아무개 그리고 수상작품 제목이 배치되곤 했다. 그런데 2012년부터 수상작품 표지는 달라졌다. 표지 전체가 베이지 색으로 밝은 분위기에 글체도 달라졌지만 대상 수상작 김영하의 <옥수수와 나>와 자전 대표작 1편 그리고 우수상 작 7편 수상작가 소감, 작가론, 작품론, 심사 및 선정경위, 심사평으로 책의 구성은 예전과 다르지 않았다.

 

  수상작 <옥수수와 나>에서 주인공이 소설가이다. 작가가 소설가를 주인공으로 쓰는 작품은 어쩌면 제일 쉬울 것 같다. 수상소감에서 김영하는 작가라는 일이 '글만 안 쓰면 참 좋은 직업'이란 말을 하였다. 글을 써야 먹고 살 수 있으며 그렇다고 아무렇게 써버릴 수 없는 글을 써야 하는 숙명을 지닌 글 쓰는 사람들의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과거의 필명에 못 미치는 글을 쓸 수도 없어 자책하며 방황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어느 날 작가의 머릿속에 섬광처럼 멋진 생각이 떠오르고 문장들이 “비처럼 쏟아지는 경우”도 있다 한다. 이 소설에서도 주인공 박민수는 안 써지는 글을 쓰려고 몸부림치다 미모의 출판사 사장부인과 밤새 와인을 마시고 정사를 벌인 다음 날 아침 갑자기 글이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이 대목이 재미있어 본문을 옮겨본다. "나는 거부 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노트 북 컴퓨터를 열었다. 여태 단 한 줄도 쓰지 못한 소설을 위해 빈 워드 창을 띄웠다. 나는 자판기 위에 손가락을 얹었다. 내가 한 일은 오직 그 것 뿐이었다. 그런데 손이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손가락 끝에 작은 뇌가 달린 것 같았다. 미친 듯이 쓴다. 라는 말은 이런 때를 위해 예비 된 말이었다. 문장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타자 연습게임 같았다."

 

  사실 나는 수상작보다 김영하의 자전 대표작 <그림자를 판 사나이>가 더 마음에 들었다. 1987년 서울의 어느 남녀 공학 고등학교에 다니며 주일학교 친구들 네 명이 각각 대학교를 졸업하고 가톨릭 신부, 라디오 PD, 작가 그리고 공인회계사가 되었으며 이들 사이에서 사랑, 결혼, 죽음 그리고 여기에 떳떳치 못한 육체의 만남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영하의 작품에는 항상 남녀의 섹스가 빠지지 않는 사실을 알았다.

 

 <퀴즈 쇼>에서는 주인공이 프로 퀴즈회사에서 같은 팀의 연상 여성으로부터 유혹에 이끌려 마음에 없는 섹스를 하는 대목이 나오고, <빛의 제국>에서는 외제 승용차 딜러인 주인공의 부인이 명문대학생 두 명과 벌이는 혼음 섹스 그리고 <검은 꽃>에서도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소년이 남미 이민선에서 같이 이민을 떠나는 어느 소녀와 풋풋한 정사를 하는 대목이 나온다. 역시 <옥수수와 나>에서도 그렇고 <그림자를 판 사나이>에서는 라디오 PD의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 불행해 지자 동창이며 친구 사이였던 신부와 라디오 PD가 몸을 주고받는 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남녀의 섹스는 인간의 이성을 넘어 동물적인 본능이자 깊은 정신적 교감의 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어 무조건 터부시 할 대상은 아니지만 아직도 우리사회에서는 그리 만만하게 다룰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작가들은 소설을 통하여 섹스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 부럽기도 하다.  이 짧은 단편에서 '문학이 방황하는 젊은 청춘을 구원'이라는 말도 나온다. 어디 꼭 문학작품뿐이겠는가 감수성이 예민한 청춘들에게는 음악이나 미술도 그들을 구원하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