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아주 특별한 우표 한 장>을 읽고...

깃또리 2019. 6. 5. 09:48

<아주 특별한 우표 한 장>을 읽고...

브라이언 카바노프/ 강주현 옮김

뜨인돌

2013. 03. 25.

 

 

수년 전 이 책을 어느 중고 서점에서 구입하여 읽은 다음 내 빈약한 서가에 꽂아 두었다. 나는 십 수 년 전부터 책을 읽고 두세 페이지 독서후기를 적어 두기 시작하였다. 내게는 이제 읽은 책의 후기를 꼭 남겨야 한다는 새로운 심리적 강박관념이 자리를 잡은듯하다. 나는 이 사실을 좋아해야 할지, 아니면 나빠해야 할지 아직 판단이 서지 않는다. 즉, 이제 어느 책이든 일단 펴고 읽으면 싫든 좋든, 재미가 있던 없든지 끝까지 읽는 버릇이 생겼으며 읽은 다음 꼭 후기를 적어야 마음이 든다. 그리고 한 달에 최소 세 권을 적어야 마음이 놓인다. 이 또한 나의 강박관념이다. 다른 사람이 생각하기에 좋은 점이라고 칭찬할 수도 있지만 내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꼭 그럴 일이 아니다. 그 이유로는 첫째, 책을 읽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이제는 후기를 쓰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 주객전도가 된 것 같다. 둘째로는 책을 읽고 나서 별로 쓸 내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후기 한두 장을 남겨야 한다는 조바심, 그리고 이렇게 써 놓은 후기를 혼자 가지고 있기가 아깝다는 어줍지 않은 생각까지 발전하여 괜히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자기현시욕’까지 생겼다는 사실이다.

 

사실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이 아니고 저술에 관계도 없는 건축기술자인 형편에 매달 세권의 책을 읽고 후기를 적는 것도 그리 쉽지는 않다. 물론 어떤 때는 손쉽게 세권을 읽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그렇게 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이제는 앞서 말한 강박관념에 따라 생각 없이 어떤 책이나 세권을 손에 들고 읽고 써야 하는 상항이 되어버린 듯하다. 왜 내가 이렇게 길게 늘어놓느냐 하면 이 책 <아주 특별한 우표 한 장>을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수 년 전에 읽었지만 어떤 이유인지 후기를 쓰지 않은 몇 권의 책 중 하나라서 나는 그 동안 서가에 꽂힌 이 책을 수시로 노려보며 언젠가 저 책의 후기를 써야 할 텐대 하고 다짐을 수십 번 하였었다. 그러나 왜 그 당시 후기를 쓰지 않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이런 전후 사정으로 며칠 전 이 책을 꺼내 놓고 후기를 쓰려고 하니 내용을 모두 잊어 새 책을 보는 느낌이었다.

 

아 그럼 좋다! 다시 읽기로 마음먹고 다시 한 번 읽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1,2,3,장 64개의 소제목으로 된 이야기 중에 읽은 기억이 나는 부분은 대여섯 개 정도 즉, 열에 아홉은 다 잊어 새로운 책을 읽은 셈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몇 년 후면 다시 또 아니 나이가 더 들어 잊는 속도가 더 빨라져서 지금 하고 있는 한탄을 더욱 심하게 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니 과연 지금 내가 책을 읽어야 하는가 하는 심한 자괴감에 빠진다.

 

 

그런데,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 그리고 대부분의 성공한 사람들은 책을 읽어야 한다고 하니 이 딜레마에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엇비슷한 고민을 할 것이다. 더구나 일하고 먹고 자는 일을 빼고 남은 시간 그래도 내게는 가장 즐거운 책읽기를 무엇과 바꿀 수 없어 손에 책을 놓을 수 없고 '잊음'에 조금이라도 대항하기 위해 나는 '후기'를 쓰는 도리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 브라이언 카바노프는 가톨릭 신부로 영혼에 감동을 주는 대중 연설가이며 여러 권의 책을 쓴 저자이기도 하고 1997, 1998년 "Storytelling World"라는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다. 옮긴이 강주현은 한국외국어 대학교 불어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 석사, 박사학위를 받고 프랑스 브장송대학에 수학하고 모교와 건국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한다. 그런데 프랑스 브장송이란 곳은 내가 지금 5권 째를 읽고 있는 <레 미제라블>을 쓴 빅토르 위고의 출생한 도시이기도 하여 그곳이 어떤 곳인지 궁금하고 눈길이 다시 가기도 한다.

 

여러 이야기 중에 <나를 기억하시나요>라는 실제 있었던 미담이 인상적이다. 본문을 그대로 옮겨 보았다. “오래 전, 스텐포드대학교에 장래가 촉망되는 두 청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가정형편이 곤란하여 늘 학비 마련하느라 고심하였다. 이것저것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그것 또한 그다지 여의치 않았다. 한번은 유명한 피아니스트인 페데레브스키(Ignacy (Jan) Paderewski 1860~1941)의 연주회를 학교에 개최하여 수익을 얻어 연주회 수입으로 학비와 기숙사 비를 충당할 생각이었다. 저명한 피아니스트의 메니저는 출연료로 2천 달러를 요구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액수였다. 하지만 두 청년은 연주회가 성황리에 이루어질 거란 생각에 그 요구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들은 연주회를 성공적으로 끝내기 위해서 차근차근 준비를 시작했다. 잠까지 아껴가며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그들이 벌어들인 총액은 겨우 1천6백 달러에 불과하였다. 연주회가 끝난 후 두 청년은 위대한 피아니스트에게 아쉬운 소리를 알려야 했다. 그들은 피아니스트에게 1천6백 달러 전부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남은 400달러에 대해서는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벌어서 갚겠다고 약속어음을 써주었다. 학비는커녕 빚까지 지게 된 그들의 대학생활은 이제 끝난 것처럼 보였다. 그때 페데레브스키가 말했다. "학생들, 그렇게 해서는 안 돼! 학업을 중단해서는 안 돼!" 페데레브스키는 약속어음을 찢어버렸다. 그리고 1천6백 달러마저도 그들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자, 이 1천6백 달러에서 자네들이 사용한 비용을 제하도록 하고, 그리고 남은 비용의 10%씩을 자네들의 수고비로 가지도록 하게. 나는 그렇게 하고 남은 돈을 갖도록 하겠네."

 

그 후 꽤 오랜 세월이 흘렀다.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고 끝이 났다. 예전 피아니스트, 당시 폴란드의 수상인 페데레브스키는 굶주려 죽어가는 수천 명의 국민을 위해서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녔다. 그러나 누구 하나 선뜻 나서서 도와주겠다는 단체도, 사람도 없었다. 고심 고심하고 있던 그는 마침내 자신을 도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을 찾아냈다. 미국의 식량 및 구조 사무국을 책임지고 있던 허버트 후버였다. 후버는 즉각 응답을 보냈다. 곧바로 수천 톤의 식량이 폴란드로 운반되었다. 굶주린 백성을 그렇게 구해낸 후, 페데레브스키는 파리로 향했다. 폴란드에 구호물자를 보내주었던 후버에게 진심 어린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인사를 들은 후버는 가볍게 고개를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천만의 말씀이십니다. 저를 기억하십니까? 페데레브스키 각하! 당신은 기억하지 못하시겠지만 제가 대학생이었을 때, 그리고 무척이나 곤경에 처해 있을 때, 당신은 저에게 갚을 수 없는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두 청년 중 한 사람 후버는 내가 다른 곳에서 찾아보니 미국 애리조나 주와 네바다 주 접경의 콜로라도 강을 막아 건설한 후버 댐이 바로 이 허버트 후버(Herbert Clark Hoover, 1874년~ 1964년)를 기리기 위해 이름을 지었으며 그는 미국 31대 대통령이다.

<쓸모없는 돌덩이> 이야기도 언젠가 다른 곳에서 읽었던 것 같으나 조금 자세한 내용이어서 유익하기도 하고 오래 전에 내가 이탈리아 피렌체에 들렸을 때 별 생각 없이 들어갔던 미술관에서 미켈란젤로의 걸작을 만나 감격했었는데 바로 그때 보았던 <다비드 상>에 대한 이야기여서 더욱 반가웠다. 그러나 미켈란젤로가 혹시 <다비드 상>이란 제목이 붙은 조각을 여러 개 조각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도나텔로미켈란젤로는 같은 시대에 살았던 위대한 조각가들이다. 어느 날 도나텔로느 거대한 대리석 덩어리 하나를 배달받았다. 그는 대리석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갈라진 틈도 많고 흠집도 많았다. 결국 그는 사용하기 힘들겠다며 대리석을 돌려보냈다. 당시에는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는 크레인 같은 장비가 없어 인부들은 굴대를 써서 그 무거운 대리석을 겨우 도나텔로의 집으로 가져갔었다. 그런데 도로 가져가라니, 인부들을 난감해졌다. 그때 머리가 빨리 돌아가는 인부 한 사람이 멋진 생각을 해냈다. 무거운 대리석을 도로 가져갈게 아니라 길 아래 살고 있는 미켈란젤로에게 떠넘기자는 묘안이다. 당시 미켈란젤로는 덤벙대고 건망증이 심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었으니 어쩌면 3톤이나 나가는 대리석을 주문했는지 안 했는지 조차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자신이 주문했는지도 확인하지 않고 미켈란젤로는 대리석부터 살펴보더니 도나텔로와 마찬가지로 그도 흠집과 균열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흠집 많은 대리석 덩어리를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실험해볼 좋은 기회라 하며 받아 주었다. 결코 흘려보내서는 안 될 도전거리로 받아들인 것이다. 도나텔로가 조각하기에는 흠집과 균열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거절했던 대리석 덩어리를 바로 그런 이유로 미켈란젤로는 기꺼이 받아들였다. 아무런 쓸모도 없어 보였던 대리석 덩어리로, 미켈란젤로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작품으로 평가 받는 <다비드 상>을 조각해 낸 것이다. 무릇 위대한 인물은 대부분 다른 사람들이 피하는 어려운 일을 자신의 역량을 시험할 수 있는 대상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위대한 인물이 탄생하는 것 같다.

 

나는 생활하면서 시간을 퍽 소중하게 생각한다. 결국 시간은 우리의 삶 자체이기 때문이다. 하루가 8만 6천 4백 달러라는 정확한 수치까지 제시하여 시간의 소중함을 새삼 강조한 글도 눈길을 끈다.

 

<젊은 사람> 이라는 글은 새무얼 울먼의 <Youth>라는 글에 대한 내용이며 더글라스 맥아서 장군이 자신의 집무실 의자 뒤 벽면에 워싱턴 대통령과 링컨 대통령 사진 사이에 붙여 놓았다는 글인데 마치 더글라스 맥아서 장군이 쓴 것처럼 소개 하였고 내용도 이상하게 줄여서 실망스럽다.

 

<낡은 우물의 비밀>은 나도 어릴 적 동네 우물물을 여러 사람이 퍼 올려 써야지 오래 사용하지 않거나 조금만 퍼 올려 쓰면 우물물이 말라 버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 이상하게 생각하였는데 여기의 글을 읽고 이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으며 이와 비슷한 이야기로 집에 사람이 살지 않으면 곧 무너지고 사람의 뇌도 이와 비슷하여 머리를 써야 된다고 한다.

 

“소년은 낡은 농가에서 방학을 보냈다. 소년의 부모님이 그 농가를 처음 샀을 때 그 농가는 무려 150년이란 세월을 살아온 낡은 집이었다. 그러나 부모님은 현대식으로 보수하지 않았다. 그래서 모든 것이 옛날식 그대로였다. 현관 앞에는 낡은 우물이 하나 있었다. 그 우물은 신기하게도 어떤 경우에도 마르지 않았다. 극심한 가뭄이 계속되던 여름에도 그 우물물은 맑고 차가운 물로 어김없이 채워져 있었다. 몇 년 후, 소년은 부모님은 낡은 농가를 현대식으로 다시 짓기로 하였다. 농가에서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새 우물도 팠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낡은 우물에는 덮개를 덮었다. 그 후로 여러 해가 지났다. 이제 어엿한 청년으로 성장한 소년은 옛날 그 농가를 다시 찾았다. 이곳저곳을 거닐 며 옛 추억에 젖어 있던 청년은 옛날의 그 우물을 발견하고 한번 열어보기로 하였다. 덮개를 벗겨내면서 청년은 어렸을 때 그 시원하고 맑은 물을 만날 수 잇을 거란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우물은 바싹 말라 있었다. 청년은 우물이 그렇게 변한 이유가 너무도 궁금하였다. 청년은 책이란 책을 모두 뒤진 끝에 그 이유를 알아냈다. 그런 우물은 지하로 흐르는 수많은 실개천에서 끊임없이 스며드는 물로 채워지는 것이었다. 우물에서 물을 퍼내면 실개천에서 더 많은 물을 우물로 공급해주기 때문에 그 통로로 계속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우물이 덮여지고 물을 사용하지 않게 되면서, 작은 실개천들과 연결된 통로가 닫혀 버리고 자연히 우물은 말라버렸던 것이다. 물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물이 죽어버린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주 특별한 우표 한 장>은 미국의 만화가로 ‘딜버트 Dilbert’라는 우스꽝스런 캐릭터로 유명한 스코트 아담스(Scott Raymond Adams, 1957~ )의 이야기이다. 스코트는 1986년 당시 유명한 TV프로그램 사회자 잭 케시디에게 어떻게 풍자 만화가가 될 수 있느냐는 편지를 보냈다 한다. 잭 케시디는 이 편지에 답장을 해주었고 스코트 아담스는 고맙다는 답장도 보내지 않았는데 다음 해 1987년 잭은 다시 격려하는 편지를 보내주었다 한다. 스코트는 이 편지를 받고 심기일전하여 벽장 속에 넣어 둔 화구를 꺼내 만화 그리기를 다시 시작하여 인생의 전환을 이루었다 한다. 그래서 우표 한 장의 힘이 자신을 성공으로 이끌었다는 이야기이다. 마침 내 서가에도 오래 전 선물 받은 그의 만화책이 2권 있는데 한 번도 열어보지 못했는데 이 기회에 펼쳐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