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프로방스에서 1년, A year in Provence>을 읽고...

깃또리 2019. 6. 3. 10:40

<프로방스에서 1년, A year in Provence>을 읽고...

피터 메일 지음/ 송은경 옮김

진선 출판사

2013. 06. 10.

 

꽤 오랫동안 내 빈약한 서가에 자리 잡고 있던 책이다. 표지를 열어 보니 속표지에 '1997년 3월 8일. 프로방스 레스토랑'이라 내가 쓴 글씨가 보인다. 훌쩍 16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지금도 문을 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일산 자유로를 달려 통일전망대를 지난 길 끝 지점에서 조금 들어 간 곳에 레스토랑 '프로방스'가 있어 아내와 몇 차례 간 일이 있으며 그 식당 계산대 옆에 두고 팔던 책이다. 그 당시 한 차례 읽고 이번에 다시 읽었다.

 

프로방스 provence는 고대 로마시대에 지금의 프랑스 지역을 Gaul이라 부를 때 로마인들이 ‘Gallia Narbonensis의 provence’라는 라틴어 provincia에서 유래한 프랑스 남부지역 이름이다. 우리말로 설명하면 '로마통치 아래 이탈리아 밖 지역(country, territory, region)을 말하며 다른 지역에 비하여 특히 로마제국에서 중요한 전략적 지점으로 여겨 어느 다른 지역보다 특별히 이 지역을 중요하게 여긴듯하다. 로마제국의 유능한 장군 카이사르(Caesar, Gaius Julius B.C. 100~40)는 이 지역사령관으로 파견되어 Gaul지역의 야만족들을 평정하고 자신의 업적을 담은 기록 <갈리아 원정기, Commentarii de bello Gallico>를 써서 용맹한 장군이란 명성과 함께 유려한 라틴어 구사로 라틴 문학을 한 단계 높인 인물로 평가 받고 있다. 기왕에 Gaul이란 지명이 나와서 생각이 나는데, 프랑스 전 대통령 드골(Charles de Gaulle)의 조상이 아마 바로 이 지역 골이 아닌가 한다. 유럽 사람의 이름은 자기 이름 뒤에 지역을 표시하기 때문이다. 즉 골에 사는 찰스이기 때문이다.

 

근대에 이르러서는 불꽃같은 열정으로 그림을 그리다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한 빈센트 반 고흐가 문명에 찌들고 각박한 대도시 파리를 떠나 화가들의 집단 이상향으로 삼은 곳이 바로 이곳 프로방스의 ‘아를’이다. 그는 이곳으로 내려와 제일 먼저 폴 고갱을 불러 함께 잠시 같이 지내기도 했다. 그래서 반 고흐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순례하듯 찾는 곳이기도 하다. 이 프로방스 지역에는 아를을 포함하여 님, 아비뇽, 보클뤼즈, 보늬유, 오랑쥐, 엑상 프로방스, 카바이옹과 같은 중소도시가 있으며 남쪽은 지중해에 면하여 프랑스에서 제일 큰 항구도시 마르세이유가 있다. 북쪽으로 해발 1909미터의 방투산이 자리하고 동쪽으로는 해발 1060미터의 루베롱 산맥이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프로방스하면 떠오르는 기억으로 빈센트 반 고흐의 아를 다음으로 베르디의 오페라 <La Traviata>이다. 이 오페라에서 아들 알프레도가 파리에서 거리의 여자 비올레타에게 마음을 빼앗겨 헤어 나오지 못하자 시골에서 올라온 아버지 제르몽이 아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가자는 간절한 내용의 아리아를 부르는데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이 유명한 바리톤 아리아의 제목이 바로 'Di Provenza il Mar, il suol, 프로방스의 바다와 대지'로 이 오페라에서 다른 어떤 아리아보다 나는 이 곡을 좋아한다.  특히 몇 년 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우리나라 사람이 불렀을 때 더 감동 깊었다. 외국 바리톤의 음색들은 대부분 날카로웠으나 그 공연에서 바리톤은 깊이 있고 진정으로 호소력 있는 음색이었기 때문이었다. 베르디가 작곡한 이 오페라의 주인공 알프레도의 고향이 바로 프로방스의 어느 바닷가이다.

 

저자 피터 메일은 1939년 영국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를 따라 카리브 해에 위치한 바베이도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업계에서 일하다 광고 대행사를 열어 경영하며 어린이용 성교육 그림책 <나는 어디서 왔을까?>를 출판하자 의외로 호평을 받아 전업 작가로 인생의 방향을 바꾸었다 한다. 여유 있는 시간을 얻어 프로방스를 몇 번 여행하다 이곳의 매력에 빠져 아예 프로방스로 이주하여 이 책을 썼으며 속편에 해당하는 <언제나 프로방스>가 베스트셀러가 되어 이름을 날리고 프로방스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한다.

 

본문 구성은 1월에서 12월까지 월별로 나누어 프로방스의 계절과 주변풍경, 사람 사는 이야기 그리고 특히 이 지역의 음식이야기를 자주 하고 있다. 지중해를 면한 이 지역은 어디든 바람이 많이 분다. 스페인, 프랑스 남부, 그리스 모두 바람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이 책에서도 '당나귀 귀도 날려버릴 만큼 강하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바람에 맞서기 위해 이 지방에서 산출되는 돌로 집을 지으며 이런 농가를 '마스'라 부른다 한다. 프로방스 지역에는 다양한 야생화, 허브, 버섯이 자라고 있으며 라벤더, 백리향, 로즈마리, 아티초크(엉겅퀴)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런 좋은 기후와 식물이 풍부하게 자라는 지역이지만 아쉽게도 프랑스에서 가장 자살율이 높고 강도사건이 높은 곳이 파리를 제외하고 프로방스 보클뤼즈라는 글이 나오기도 한다. 사람 사는데 불편이 없고 너무 심심하다보니 삶이 지겨워서 자살을 해버리는가!

 

프랑스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음식 욕심이 많고 그래서 요리에 관심이 많다고 하는데 사실 동양에서는 중국이 그렇다. 모든 식재료가 풍부하고 풍요로운 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다보니 음식을 포함하여 문화생활에 눈을 돌릴 수 있는 여유가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프랑스에서는 지역마다 최고를 자랑하는 식재료로 올리브는 니옹산을, 겨자는 디옹, 멜론은 카바아옹, 크림은 노르망디 그리고 송로버섯은 페리고라 하였다. 금값보다 비싸다는 송로버섯에 대한 이야기가 길게 나온다. 프로방스를 소개하는 글에는 '연중 밝고 화사한 태양'이란 말이 자주 나오며 특히 빈센트 반 고흐는 수백 통의 편지에서 프로방스의 기후와 풍경을 자랑하는 내용을 많이 썼으나 사실 그가 도착한 첫날 무척 많은 눈이 내렸다는 편지도 있고 프로방스가 항상 좋은 날씨를 보이는 것은 아니라 한다. 물론 프랑스 북부나 독일지역에 비해서 훨씬 일사량이 많고 기후가 좋은 것은 사실이다. 이 책 6월 부분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기온은 극단적이어서 최고 37~38도 이상도 올라가고 영하 7도까지도 내려간다. 비 얘기를 하자면, 도로가 유실되고 고속도로가 패쇄 될 정도로 대책 없이 퍼붓는다. 겨울엔 모진 추위를, 여름엔 불쾌하고 건조한 날씨를 가져오는 미스트랄은 잔인하고 진 빠지게 하는 바람이다."

 

장님이 코끼리 일부를 만져보고 단편만을 말하듯 잠깐 프로방스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겪은 단 며칠만의 날씨를 전체인양 말하는데 저자는 상당한 기간 여러 번 방문하고 난 다음 정착하여 오래 살았기 때문에 가감 없이 이곳의 변화무쌍한 날씨를 묘사하고 있다. 책을 읽다보니 '프레데릭 미스트랄'이란 이 고장 출신 시인이 1904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고 마을회관에서 열리는 와인 축제에서 이 시인이 프로방스 방언으로 쓴 권주가를 제창하는 이야기도 나온다. 나는 노벨문학상이 100년도 넘었다는 사실에 호기심이 일어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1901년 ‘쉴리 프뤼돔’이란 역시 프랑스 시인이 1회 수상자였다. 지금으로부터 112년 전 일이다. 초창기에는 여러 이유로 건너뛰기도 하였으며 2차 세계대전 중인 1940에서 1943년까지 4년은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하지도 못했다.

 

노벨문학상 홈페이지에 역대 수상자 중에서 인기 있는 일곱 명이 보이는데 조금 의외이다. 1위가 인도의 시성이라는 라빈드라나르 타고르(Rabindranath Tagore 벵골어 Rabῑndranāth Ṭhākur. 1861~1941), 그는 우리나라는 한 번도 오지 않았지만 일제 강점기에 일본을 방문하였으며 당시 동아일보 기자의 요청으로 <동방의 등불>이라는 4줄의 글을 지어 주어 우리들에게는 퍽 친숙한 인물이다. 2위는 어네스트 훼밍웨이, 3위는 존 스타인벡, 4위는 윈스톤 처칠, 5위는 윌리엄 포크너, 6위는 T.S. 엘리옷, 7위는 가브리엘 마르케스이다. 미국에서 태어나 영국에 귀화한 T.S. 엘리옷 까지 합하면 미국인이 4명이나 되지만 사실 처칠은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경우 가 많아 제외하면 기라성 같은 유럽 시인, 소설가는 한 명도 없는 셈이라 퍽 의외라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가 다소 엉뚱한 곳으로 흘렀다. 프로방스는 일사량이 많지만 기온이 낮은 지방에 속하며 프로방스 사람들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먹는 마늘을 좋아하고 또 저자의 관찰에 의하면 영국인들은 술잔을 들면 다 마실 때까지 술잔을 놓지 않지만 프로방스 사람들은 술을 마시면서도 큰 소리로 떠들며 두 손을 자주 쓰기 때문에 술잔을 바로 내려놓는다 한다. 그 만큼 다혈질이라는 이야기이다.

 

대부분의 여행기에서 그 곳의 밝은 면을 강조하고 어두운 면은 이야기 하지 않는 경우가 많으나 이 책의 저자는 프로방스의 양면을 자신이 느낌과 통계를 참고하여 가감 없이 소개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비평가들은 그가 현실도피를 조장하며 전원생활의 과도한 낭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하는데 이 점 또한 크게 틀리지 않는 것 같다. 아무리 프로방스가 낙원 같은 곳이라 해도 몇 주나 한 두 달의 여행이나 체류는 즐거울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태어나서 자란 기후나 풍토가 몸에 배인 고향보다 더 좋은 곳이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그래도 나는 프로방스에 가고 싶은 생각을 버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