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두려움과 떨림>을 읽고...

깃또리 2019. 5. 29. 08:56

<두려움과 떨림>을 읽고...

Stupeur et Tremblements

아멜리 노통브/ 전미현 옮김

2013. 10. 20.

 

저자 아멜리 노통브는 벨기에 국적의 부모를 따라 일본에서 1967년 태어나 일본, 방글라데시, 미얀마, 라오스, 중국 등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부륏셀 리브레대학교 라틴철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어로 소설을 써서 1999년 아카데미 프랑세스 소설대상을 받은 여성 작가이다. 차를 즐겨 마시며 물방울무늬 옷을 자주 입어 <미스터 백만 볼트>라는 별명을 가졌다하며 17살 때부터 글쓰기를 규칙적으로 하여 본인 스스로 <글쓰기 광>이라 소개하고 대표작으로는 <살인자의 건강법>, <적의 화장법>을 비롯하여 다수가 있다. 나는 2011년 이 작가의 소설을 집중적으로 몇 편 읽은 적이 있는데 이 작가의 소설에서는 라틴 철학전공자답게 서양고전을 필두로 엄청난 독서량을 바탕으로 자신의 지식수준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특히 현란한 어휘구사에 탁월한 재능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사실 나는 최근 출퇴근 버스에서 읽을 요량으로 가볍고 술술 읽히는 얇은 책을 고르면서 뽑아 든 책인데 생각과 달리 읽고 음미해 볼 부분이 적지 않았다. 일본회사와 주변 인물들이 실명처럼 나오는데 내용으로 짐작하기에 본인 이름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가명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왜냐면 일본회사와 일본 등장인물들이 대부분 비난받을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아무리 아멜리가 일본에서 태어났으며 상당기간 생활했다고 하지만 막상 이익을 추구하는 냉혹한 일본 회사에서 유럽감성을 지닌 사람이 적응하기 어려웠을 것이며 이에 따라 아마도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소설이지만 작가는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는 인정하지 않고 주변사람들에게 모든 잘못을 돌리는 점은 약간 불만이다.

 

<옮긴이의 말>에 따르자면 뛰어난 글재주와 관찰력, 넘치는 에너지, 구어체적인 글쓰기 리듬, 통렬하면서 가차 없는 유머, 보일 듯 말듯 숨어 있는 시적 상상력, 공들인 어휘선택 등 온갖 찬사가 줄을 잇고 있지만, 글 내용에는 전적으로 호감을 가질 수 없다. 그 이유로는 어쩌면 서양인과 동양인의 문화적 차이, 회사 시스템에 대한 견해차이 또는 아멜리 한 개인의 집단조직에 대한 적응력 결여 등이 배경으로 작용하였으며 문화적 편견도 일정부분 작용하여 작가가 일본회사생활을 도전했다 결국 좌절하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또한 제 3자인 한국 사람인 내 입장에서 아멜리의 이야기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더구나 1999년에 이 작품으로 프랑스의 유수한 문학상 중 하나인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문학대상을 수상했다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말문이 막히기도 하였다. 왜냐면 이렇게 한 작가의 개인적이고 단기간에 겪었던 일들을 일본회사의 전체인양, 더 나아가 일본사회가 다 그렇다는 식으로 활자로 펴내는 일은 아무리 소설이지만 어느 한 국가와 국민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폭거라 할만하다.

조금 더 비약한다면 서양인의 우월주의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한발 양보하여 어느 한 작가가 자신의 유명세를 떨칠 목적으로 사실을 과장하여 이런 책을 쓸 수 있다고 하더라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프랑스의 권위 있는 문학상수상 단체에서 상까지 주었다는 것은 아쉬움을 넘어 분노가 치밀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소설의 내용을 간단히 소개해 본다.

 

아멜리 노통브가 1990년 1월 8일 나이 23살 때 일본의 유미모토주식회사, 弓本株式會社의 44층에 발을 딛고 입사하는 문장으로 첫 줄이 시작된다. 즉 졸업하고 바로 첫 직장인 셈이다. 사장 하네다는 신,神으로, 부사장 오모치는 사탄, 邪嘆으로, 부장 사이토, 직속상관 미스 후부키 모리 吹雪 森 그리고 다른 부서의 부장인 덴시 天使부장 등이 주요 등장인물들이다. 회사 인원은 약 100명이며 아멜리는 이 회사에서 번역 업무를 담당하려고 했으나 吹雪이라는 멋진 이름에 보통 일본여성과 달리 180센티미터의 큰 키에 미인인 직속상관 미스 후부키 모리 양과 부사장의 미움을 받아 차 심부름을 전담하는 일을 하다 아멜리는 사무실 벽에 걸린 달력을 넘기는 일, 적성에 맞지 않는 경리업무 등을 전전하다 급기야 변소 청소하는 일까지 하게 된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아무래도 그렇지 대학교를 졸업한 외국여성을 입사시킨 다음 변소청소를 시켰을까 믿어지지 않았으며 더구나 남자 화장실까지 맡아하여 젊은 남자 직원들이 무언의 항의 표시로 아멜리가 청소하는 44층 화장실을 사용하지 않고 아래층으로 갔다는 것이 사실이었을까 의문이 든다. 또한 100명이 넘는 직원 중에 여직원이 모두 다섯이었다는 것도 그러하다. 특수 회사도 아니고 수출입을 하는 평범한 회사에서 아멜리, 모리 그리고 나머지 세 명을 합하여 여자 직원이 겨우 다섯 명이라니 이 부분도 사실성이 결여되는 부분이다. 하여튼 아멜리는 1년 계약을 지키기 위해 하루도 빠지지 않는 1년을 채운 다음 사직서를 써서 미스 모리, 부장, 부사장, 사장까지 다섯 사람에게 똑 같은 이유를 말하고 퇴사한다. 이 책의 마지막은 퇴직 후 며칠 지나서 아멜리가 유럽으로 돌아 와 1991년 1월 14일부터 바로 <살인자의 건강법>을 썼다 한다. 1992년 첫 소설 출간하였으며, 1993년 미스 모리로부터 "아멜리상 축하해요."라는 편지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말은 아멜리가 기뻐할 만한 말이 아니고 더구나 그냥 지나칠 수만은 없는 일로 일본어로 쓰여 심장이 멎는 느낌이었다는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결국 일본 사람에게 호되게 당하여 일본글에 대한 거부감, 나아가서는 일본인에 대한 심장이 멎을만한 증오가 묻어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우리들도 이웃인 일본에 대한 시각이 다양하고 이를 표현하는 쉬운 말로 “멀고도 가까운 나라”라고 하는데 이 작가의 일본에 대한 불편한 감정은 우리들을 뛰어 넘으며 아마도 영원히 변치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내용이 지극히 과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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