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설국, 雪國>을 읽고...

깃또리 2019. 5. 28. 12:23

<설국, 雪國>을 읽고...

가와바다 야스나리 天端康成/ 유숙자 옮김

민음사

2013. 04.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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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젊은 사람들은 이 소설을 잘 알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60, 70년대 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이 소설을 읽지는 않았을 지라도 소설 제목과 작가 ‘가와바다 야스나리(川端康成, Kawabata Yasunari)’를 알고 있을 것이다. 왜냐면 인도의 시성이라는 ‘타고르’ 다음으로 아시아권에서 두 번 째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일본 작가이며 가와바다씨는 소설작가이므로 사실 소설가로는 아시아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여서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큰 관심과 부러움을 사기도 했기 때문에 아직도 기억이 새롭다. 1968년, 지금으로 부터 45년 전 거의 반세기 전 일이기도 하다. 그 후 일본은 1994년 또 한 사람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 1935~ )’를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배출하여 두 사람이나 되었다. 물론 문학상뿐만이 아니라 물리, 화학상에서도 수상자를 여러 명 배출하여 우리나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화상 말고는 수상자가 없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물론 어느 나라 어느 작가의 문학적 성취나 역량이 단순히 노벨상으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 아직 우리나라에 수상자가 없는 것이 아쉽다. 또한 건축계의 노벨상이라는 ‘프리츠커상’도 일본 건축가는 여러 명이 수상하였으나 우리나라는 한 사람도 없는 현실이 아쉽기도 하다. 최근 일본이 장기 경기침체를 겪고 있으나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의 경제적 부상으로 일본과 여러 분야에서 격차가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일본과 비교하여 보면 여러 분야에서 일본을 따라 잡으려면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나는 이런저런 외국 작가들의 소설과 몇 일본 작가의 소설을 손에 들었으나 이 소설은 이제 처음 읽었다. 무척 오래 전에 앞부분 몇 페이지를 읽다가 그만 둔 일이 기억에 있는데 왜 그 때 읽기를 그쳤는지 이유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번 늦게나마 이 소설을 읽어 작은 부담이 덜어 진 느낌이다.

 

이 소설을 말할 때 소설 첫 문장을 인용하는 경우가 많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책 뒤편 작품 해설에서도 '이 서두는 일본 근대 문학 전 작품을 통틀어 보기 드문 명문장으로 손꼽힌다.' 라고 했는데 그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아마도 해답이 될 듯하다. '일본어가 지닌 독특한 운율이 제대로 살아 있고, 독자로 하여금 마치 소설 속의 주인공과 더불어 어둑하고 긴 터널을 지나 막 눈부신 은세계로 나온 듯한 환한 기분을 맛보게 한다.' 사실 번역된 우리말로는 충분히 느낄 수 없는 일본어에 의한 '독특한 운율'일 것이다. 이게 바로 모국어와 문학작품의 상관성이 아닐까 한다.

 

 

다시 말하면, 한국 단편 소설의 白眉 백미라는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영어나 일본어로 옮겼을 때 과연 외국인들이 우리들만큼 이 소설의 정서에 와 닿을까,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소설과 언어의 상관성을 떠나 누가 읽어도 감동과 감흥을 주고 인간의 근원적인 제 문제에 문학이 어떤 답을 제시하고 세계적인 보편성을 획득하였다면 이 작품은 노벨문학상을 받을 자격과 진정한 문학의 소임에 다가 설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자신의 모국어로 글 쓰는 작가를 사랑하고 작품을 소중하게 여길 때 비로소 우리 모국어 작가들도 다른 나라에서 대접을 받을 것이며 한층 노벨상에 다가 갈 것이라 생각한다.

소설의 줄거리는 대강 이러하다. 소설에서는 정확한 나이를 밝히지 않았지만 대략 35세 쯤 되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무위도식하며 일본 전통 춤 가부키에 한 동안 관심을 기울이다 이 분야에 자신보다 뛰어나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관여한다고 생각하여 서양 춤, 무용으로 눈을 돌려 자료도 모으고 글을 쓰면서 전국 각지의 경치 좋은 명산을 찾아다니는 시마무라(島村)가 주인공이다. 어느 해 그는 폭설이 내린 겨울 온천이 있는 한적한 마을을 찾아 가는 기차 옆 자리에서 병든 청년을 간호하는 처녀를 눈여겨보았는데 마침 같은 역에서 내리게 된다. 나중에 이 처녀의 이름이 요코(葉子)라는 걸 알게 된다. 온천 여관에서 이제 막 게이샤(妓生)생활을 시작하는 19살의 처녀 고마코(駒子)를 만났으며 기차에서 본 병든 청년의 약혼자이며 그를 돕기 위해 게이샤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과 기차에서 간호하던 요코는 그 청년의 애인이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소설의 첫 부분에서 시마무라가 온천 여관에서 고마코를 처음 만난 다음 날 자신의 방으로 놀러 온 고마코에게 불쑥 게이샤 한 사람을 소개해 달라 하자 고마코는 싫다고 하며 왜 내게 그런 부탁을 자신에게 하느냐고 힐난하자 시마무라는 이렇게 말한다. "친구라고 생각해서야. 친구사이로 남고 싶으니까 당신에겐 요구하지 않는거라고."라 대답한다. 소설 속에서 시마무라와 고마코는 여러 번 한 방에서 잠을 자기도 했으며 고마코가 다른 사람들 술자리에서 잔뜩 취해 시마무라의 방에 들어와 품에 안기기도 했으나 시마무라는 어쩌면 처음 친구삼고 싶었던 고마코를 끝까지 친구로 남겨 두었을 것 같다. 시마무라는 이 온천 마을에 1년에 한 번씩 세 번 찾았으며 들릴 때마다 고마코를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정신적 유대는 깊어가지만 몸을 주고받는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고마코는 게이샤가 되기 위해서 춤, 가부키(歌舞伎)와 노래를 배웠으며 일본 전통 악기인 샤미센(三味線)을 다룰 줄 안다. 마을 잔치나 관광객들이 벌이는 연회에 불러갔다가 술에 흠뻑 취해 시마무라를 찾아오는 고마코는 언뜻언뜻 자신의 속내를 보이기도 하고 어느 날 시마무라의 청으로 샤미센을 연주하는 대목이 나온다. 처음에는 간진초(勤進帳)부터 연주하고 발목[潑木]소리, 미야코도리(都鳥), 마지막으로 무라시마(浦鳥)를 켠다. 두 사람 대화중에 도도이쓰(都都逸), 구로카미(黑髮)도 나오는데 모두 일본 전통 노래인 것 같다. 샤미센을 켜는 고마코를 시마무라가 묘사한 대목은 내가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감상적이고 애로틱한 부분이다.

 

"가늘고 높은 코는 다소 쓸쓸하게 마련인데 뺨이 활기 있게 발그레한 덕분에, 나 여기 있어요. 하는 속삭임처럼 보였다. 아름다운 윤기 도는 입술은 작게 오므렸을 때조차 거기에 비치는 햇살을 매끄럽게 어루만지는 듯했다. 더욱 이 노래를 따라 크게 열렸다가도 다시 안타깝게 바로 맞물리는 모양은 그녀의 몸이 지닌 매력 그대로였다. 약간 처진 눈썹 밑의, 눈꼬리가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고 일부러 곧게 그린듯한 눈이 지금은 촉촉이 빛나 앳돼 보였다. 화장기 없고, 도시에서의 물장사로 말쑥해진 얼굴에 산 빛깔이 물들었다고나 할 만치 백합이나 양파 구근을 벗겨 낸듯한 새하얀 피부는 목덜미까지 은근히 홍조를 띠고 있어 무엇보다 청결했다. 반듯이 몸을 가누고 앉은 모습이 그 어느 때보다 처녀다워 보였다."

 

한편 찌르는 듯한 눈빛을 지닌 요코에게도 시마무라는 관심을 두고 있었는데 병든 청년은 죽어 마을 가까이에 묻힌다. 요코는 이 마을을 떠나지 않고 매일 무덤가를 맴돌고 이를 바라보는 고마코는 요코가 미쳐가는 중이라고 말한다. 시마무라가 마지막 온천을 찾아 며칠 지내는 동안 마을 임시극장에 불이 나고 2층에서 요코가 불길 속에서 떨어지자 고마코가 달려가 가슴에 안고 울부짖으며 시마무라는 주변사람들로부터 밀려나가며 소설은 끝을 맺는다.

"이 소설은 가와바다 야스나리 문학이 정점에 도달한 근대 일본소설의 고전"이라거나 "소설의 핵심은 순간순간 덧없이 타오르는 여자의 아름다운 정열이었다."라는 문장이 책의 해설에 나와 있다. 그러나 일본의 문화와 정서 그리고 전통이 깊게 배인 작품이기 때문에 한국인 입장에서 솔직히 말해서 소설의 명성과는 달리 감동의 깊이는 그리 깊지 않다. 특히 소설이 씌어 졌던 시점이 1930년 대 쯤 이고 배경이 일본의 한촌 온천마을 여관에서 손님과 게이샤 사이에서 벌어지는 관계는 우리의 정서로 이해가 쉽지 않았다. 바로 이러한 것도 문화적 차이라고 생각한다.

 

또 하나 소설 외적으로 눈에 띠는 대목은 내가 어릴 적 어머니를 통해 여러 번 들었던 옷감의 종류인 지지미[縮み]에 대한 꽤 긴 내용이 나온다. 내 기억으로 지지미는 화학섬유였던 것 같았으나 삼[마, 麻]을 이용하여 일본의 어린 처녀들이 겨울에 짜는 천이며 색감을 내기 위해 <눈 바래기>하는 대목이 퍽 인상적이었다. 이 대목에서도 시마무라의 지지미와 고마코를 연관 지어 애상조의 글이 나온다.

 

"옷감은 공예품 가운데 수명이 짧은 편이긴 해도, 소중하게 다루면 50년 이상 된 지지미도 색이 바라지 않은 상태로 입을 수 있지만, 인간의 육체적 친밀감은 지지미만한 수명도 못 되는 게 아닌가 하고 멍하니 생각하고 있으려니,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고 엄가가 된 고마코의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다. 시마무라는 움찔하여 주변을 둘러보았다. 피곤한 탓인가 싶었다."

끝으로 작가의 연보를 이용하여 그의 행적을 적어본다.

 

1899년 의사 부친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세 살에 아버지를 네 살에 어머니마저 여의고 조부모 집으로 갔으나 조모도 여덟 살 때 돌아가시고 조부 밑에서 자라다 16살 때 조부마저 세상을 떠나 외롭게 성장하였다.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도쿄 제국대학교 영문학과에 입학했으나 2학년 때 국문과로 바꾸고 4학년 때 <文藝時代>를 창간하며 신감각파 운동에 참여하였다.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1937년 그의 나이 38살 때 <설국, 雪國>을 출간하고 이를 여러 번 손질하여 1948년 완결판을 출간하였다. 그의 대표작 하나인 <천우학, 天羽鶴>을 비롯하여 여러 작품을 발표하여 국내외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196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고 1970년 서울에서 개최한 국제 펜클럽대회 참석차 우리나라를 방문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72년 그의 나이 74세 되던 해 특별한 이유 없이 자택에서 가스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