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공무도하>를 읽고...

깃또리 2019. 4. 26. 09:11

<공무도하>를 읽고...

김훈 장편소설

문학동네

2014. 0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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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은 <公無渡河歌, 공무도하가>를 익히 알 것이다. 이 <공무도하가>는 작성 연대가 고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고 일명 공후인(箜篌引)이라고도 하며 삼국시대 작품들인 '황조가(黃鳥歌)', '정읍사'보다 연대가 빠른 우리 국문학사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로 인정받는 작품이다. 작가 김훈은 <공무도하가>에서 마지막 '가'를 제외하여 이 소설의 제목으로 삼았으며 그 이유가 자못 궁금하였으나 소설을 읽으면서 차츰 알게 되었다. 먼저 ‘백수광부(白首狂夫)’의 부인이 지었다고 알려진 <공무도하가>를 적어 본다.

 

公無渡河 (공무도하)

公竟渡河 (공경도하)

墮河而死 (타하이사)

當奈公何 (당내공하)

 

저 님아 물을 건너지 마오.

임은 그예 물을 건너셨네.

물에 쓸려 돌아가시니

가신님을 어이할꼬.    -정병욱 번역

 

이 소설의 배경은 경상남도 '창야'라는 시골마을과 경기도 해안지역 어디쯤으로 짐작되는 해방(海望)이라는 바닷가 마을 그리고 서울이다. 소설에서 해망은 신라의 젊은 중 의상과 원효가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려고 배를 기다리던 곳이 바로 해망이라고 하였다. 원효는 동굴에서 어두운 밤에 해골에 담긴 물을 마시고 깨달은 바가 있어 유학을 포기하고 경주로 돌아갔다고 전해 내려온다. 주요 인물은 30대 나이의 신문사 사회부 기자 문정수, 출판사 편집부 직원인 노목희, 특별한 직업이 없는 장철수 그리고 소방서 직원 박옥출이며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 왔다가 나이 많은 남편의 구박에 도망 나온 젊은 여자 '후에' 등이다. 노목희와 장철수는 창야가 고향이며 가까운 도시에 있는 대학의 선후배 사이로 노목희는 미술대학교 서양학과를 졸업하고 3년 동안 중학교 미술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다 적성에 맞지 않아 서울의 어느 출판사에 입사하여 편집 일을 하며 중국 사학자 타이웨이가 쓴 역사기행서 <시간 너머로>를 번역한다.

 

노목희가 중국어를 한글로 번역하는지 아니면 영문판을 한글로 옮기는지 분명히 나오지 않으며 미술대학출신으로 중국어나 영어 책을 우리말로 번역한다는 말이 조금은 어색하다. 미술 전공한 사람이 외국어를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왕이면 그 흔한 영어영문과나 영어과를 졸업하고 영어 선생을 몇 년 하였다는 설정이 더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노목희는 출판사에서 '부사/형용사 용례사전'을 편집하는 과정에 기자 문정수를 만나게 되고 문정수는 노목희가 사는 원룸에 자주 들려 늦은 밤에 라면도 얻어먹고 함께 잠을 자는 사이다.

 

해망마을은 일제시대부터 최근까지 여러 사건과 변화가 자주 일어나는 지역으로 특히 앞 바다 무인도 '뱀섬'은 미 전투기들의 폭격 연습장으로 오래 동안 사용되어 일반인들의 접근이 허가 되지 않았으나 다른 곳으로 연습장을 옮겨가고 공유수면 매립이 이루어져 더욱 많은 변화와 사건들이 일어난다. 나는 활자화 된 '公有水面, 공유수면'이란 단어를 실로 오래 만에 읽었다. 내가 20대 초반 1년 좀 안 되는 기간 일했던 비료공장이 공유수면을 매립한 곳에 지었으며 당시 아마 칠레로 기억되는 곳에서 수입되었던  인이 다량 함유된 인광석이 대형 화물선에 실려와 부두에서 공장 야적장까지 벨트 컨베이어로 운반되었으며 꽤나 긴 노선의 벨트 컴베어가 바로 공유수면 위에 가설되었었다. 그래서 당시 설계도면은 물론이고 내가 속한 건설과 직원들 입에서 공유수면이란 어휘가 수시로 튀어 나왔다. 이 소설에서 공유수면이 자주 나와 실로 오랜 만에 다시 보는 단어로 퍽 반가웠다. 또 현재 내가 일하고 있는 평택 용산미군기지이전사업 부지가 원래 미군의 폭격 연습장이 있던 대추리 마을을 포함하여 이 소설의 뱀 섬이 인상 깊게 느껴지기도 한다.

 

소설에서 여러 사람이 죽는 이야기가 나온다. 먼저 비닐하우스에 치매증세가 있는 외할머니와 살던 초등학생이 자신들이 기르던 개에 물려 죽는 이야기가 나오고 두 번째로는 해망마을에서 뱀 섬까지 방조제를 쌓아 물막이 작업을 하던 중 해망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 방미호가 크레인 무한궤도 밑에 깔려 죽는 사건이 나온다. 기자 문정수는 신문기사를 위해 취재하는 형식을 빌려 이 안타까운 일들을 서술한다. 이 어린 죽음들을 주변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기도 하여 인간은 얼마나 치졸하고 보잘 것 없는가를 작가는 새삼 일깨워준다. 그리 긴 소설은 아니지만 워낙 여러 사건들이 일어나고 더욱 등장인물들 사이는 이리저리 얼키고 설키며 중첩되어 줄거리를 조리 있게 간추리기가 어렵다. 예를 들면 창야 마을 출신 장철수가 노학연대운동과 관련하여 수배되자 고향을 등지고 해망마을에 들어와 베트남 여성 후에를 데리고 뱀 섬 해역 해저에 깔린 포탄 껍질인 탄피를 몰래 수집하여 생활하는 부분도 나오고 서울에서 소방위 계급으로 일하던 박옥출이 화재진압을 하던 백화점에서 다량의 귀금속을 몰래 숨겨가지고 나와 퇴직 신청을 한 다음 그 돈을 밑천으로 해망으로 내려와 회사를 설립하여 정식으로 탄피회수 사업을 시작하기도 한다. 그러나 박옥출은 신장을 이식 받아야 생명을 연장 할 수 있고, 이 신장이식의 제공자가 돈에 쪼들리던 장철수로 설정되었다. 이 두 사람은 같은 병원의 바로 옆방에 누웠있지만 서로는 모르는 상황이다. 기자 문정수는 얼마 후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다.

 

소설 마지막 부분에 장철수는 신장을 판돈으로 불법 해저인양 때문에 내야할 벌금도 내고 남은 돈 모두를 자기가 데리고 일하던 베트남 여자 후에에게 주고 고향 창야로 빈손으로 돌아간다. 한편 노목희가 번역한 책은 예상을 뛰어 넘어 잘 팔렸으며 타이웨이 교수의 호의에 힘입어 2년 기간의 유럽 유학길에 오른다.  문정수는 노목희에게 고향 선배인 장철수이야기를 해줄 기회를 놓치고 노목희는 프랑크푸르트 행 비행기에 오르는 대목에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이 소설에서 인상 깊었던 몇 부분을 추려보면, 장철수가 노학연대 활동을 할 때 연마공 한 사람이 공장 옥상에서 투신하며 장철수는 추도사 낭독에서...

 

"......인간은 비루하고, 인간은 치사하고, 인간은 던적스럽다. 이것이 인간의 당면문제다. 시급한 현안문제다......"라 하였다. 이 문장에서 던적스럽다는 내가 처음 보는 우리말이었다. 사전을 찾아보니 "치사하고 더럽다."로 나와 있다. 나는 이런 글을 읽으면서 사람과 동물인 개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합당하지 않지만, 요즘 가끔 우리와 가까이 지내는 개와 인간을 비교해 보면서 나를 비롯한 인간들의 변덕, 이기심, 탐욕 등이 어쩌면 개보다도 더 못한 것에 깊은 절망을 느끼기도 한다.

 

다시 소설로 들어가서......

늦은 밤 아니 이른 새벽이랄 수 있는 새벽 2시 15분 노목희의 핸드폰 액정화면에 문정수의 전화번호가 뜨고 신호음이 들리면서, "서로 알게 된다는 것은 때때로 신호를 보내오는 개입을 용납한다는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노목희는 폴더를 열었다. 문정수의 목소리는 매 말랐고 자음이 모음에 잠겨 이명처럼 들렸다." 라는 문장이 나온다. 그렇다 때때로 신호를 보낸다는 것. 그리고 보낸 신호를 받는다는 것은 개입을 시도하고, 개입을 용인하는 행위일 것이다. 특히 남녀 사이에서는 더욱 의미 있는 행위일 것이다.

 

노목희가 번역한 한글판 <시간 너머로>를 문정수와 노목희가 앞에 두고 문정수가 사온 라면에 넣을 대파를 보면서 하는 대화 중에 "파는 원산지가 파미르 고원이래. 인도, 아프가니스탄 접경 카라코람 산맥 속의 산악지대야. 둔황 서쪽 8천리. 실크로드가 지나가는 설산고원. (중략) 파를 한자로 총, 蔥이라고 하잖아. 파미르 고원이 한자로 총령(蔥嶺)인데, 파가 많은 고원이란 뜻이래. 여름엔 지평선 가득히 하얀 파 꽃이 핀대. 저녁엔 노을이 내려서 파 꽃 핀 고원이 붉어진다는 거야. 혜초는 걸어서 넘었대. 혜초가 갔을 때는 사람은 안 살고 파만 널려 있었대. 겨울에도 눈 속에서 파 싹이 올라온다는군. 그래서 겨울 파가 더 달고 시원하구나 고생을 많이 해서......" 우리들이 흔히 보고 무심히 먹는 파가 저 먼 곳 파미르 고원에서 왔다는 생각을 하니 흰 눈 싸인 파미르 고원의 설산 모습과 함께 이 세상에 모든 생명의 존재가 더욱 존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이 대단한 작가가 남녀 간의 사랑을 어쩌면 이렇게도 자연스럽고 스스럼없이 서술할 수 있을까 하는 감탄이 저절로 나오는 대목을 그대로 옮기면서 글을 맺는다.

 

"노목희의 몸에서 새벽안개 냄새가 났다. 문정수는 조바심쳤다. 문정수의 조바심이 노목희의 조바심을 일깨웠다. 노목희의 몸은 깊어서 문정수는 그 끝에 닿을 수 없었다. 길은 멀고 아득했고 저쪽 끝에 흐린 등불이 하나 켜져 있는 듯도 했다. 문정수는 그길 속으로 들어갔다. 길은 멀었고, 먼 길이 조여 들어왔다. 문정수는 투항하듯이 무너졌다. 노목희의 젖가슴으로 문정수의 머리를 안았다. 문정수는 새벽안개 냄새 속에 머리를 묻었다. 문정수의 몸속으로 크고 조용한 강이 흐르는 듯했다. 노목희가 어둠 속에서 말했다." 

 

 나는 보지 않았지만, 얼마 전 국내에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영화가 개봉되어 많은 관객을 끌었는데 이 영화는 바로 <공무도하가>와 관계가 있으리라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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