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문학의 전설과 마주하다>를 읽고...

깃또리 2019. 4. 29. 12:43

<문학의 전설과 마주하다>를 읽고...

장영희외 지음

중앙books

2014.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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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 작가 25인의 가상 인터뷰"라는 부제가 붙은 책이다. 초판 인쇄가 2010년 2월이다. 내가 이 책의 초판 인쇄를 이렇게 먼저 밝히는 것은 이 책의 필자 25인 중 제일 처음 나오는 사람이 장영희씨로 2009년 5월 9일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며 추측해보면 장영희씨가 원고를 써 놓고 세상을 떠나 사후에 이 책이 출판된 셈이다. 책은 소제목 <말하지 못한 '나'를 고백하다>, <20세기가 20세기에 답하다>, <예술의 자세, 삶의 자세> 이렇게 셋으로 나뉘어졌지만 별 의미는 없어 보인다. 25명의 작가 중에서 장영희씨의 글이 앞에 나온 것은 아마도 고인에 대한 예우라 생각된다. 내가 그간 평소 장영희교수의 글을 비교적 좋아하여 대부분 그의 책을 다 읽고 칼럼도 눈에 보이는 대로 읽었기 때문에 먼저 소개해본다.

 

장영희씨는 <신에 대한, 그 기막힌 불공평에 대한 도전>이란 제목으로 허만 멜빌이 쓴 소설 <모비딕>의 주인공 에이헤브 선장을 만나 대화하는 형식의 글을 실었다. 사실 장영희씨에 대하여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안다고 생각했었으나 미국 뉴욕주립대학교 대학원 영문학 박사 학위로 <모비딕>작품에 대한 연구였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장영희교수의 <모비딕>의 에이헤브 선장과 대화 첫 인사는 이렇게 시작하였다.

"드디어 만났군요. 감격입니다. 지난 30년 동안 당신은 늘 나의 의식 언저리에 있었습니다. 대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모비딕,1851>을 읽고 당신을 만났으며 그리고 후에는 당신에 대해 박사논문을 썼습니다. 물론 지금도 매학기 당신을 학생들에게 소개하고 있지요."

사실 나는 꽤 오래 전 <모비딕> 영문판을 읽어보려고 애를 쓰다가 도저히 실력이 부족하여 두 서너 페이지를 읽고 그만 둔 일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사람은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바로 내게 해당되는 일이다. <모비딕>은 고래잡이 어선을 타고 다니는 바다 사람들에 더구나 미국 태생도 아닌 사람들까지 등장하여 거친 사투리와 은어까지 그대로 소설에 나오는 형편이라 미국사람들도 읽기를 주저하며 내용도 철학적이어서 선뜻 손에 들지 못하는 책이라 한다. 그래서 발표 당시 불경스런 신에 대한 내용까지 겹쳐서 지독한 혹평을 받았지만 지금은 현대의 고전으로 평가되고 있다.

 

장영희교수가 이 작품으로 박사 논문을 쓴 것은 자못 의미가 깊어 보인다. 그 이유로는 태어나자마자 곧바로 소아마비로 죽는 날까지 걷는 일과 타인의 시선에 불편을 감수해야 했으며 특히 젊은 시절에 그 절망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장애인이며 꿈 많은 대학생으로 흰 고래에 한 쪽 다리를 잃은 에이헤브 선장이 보여주는 불굴의 의지에 틀림없이 동병상련의 마음과 함께 깊은 인상을 받았음이 틀림없다. 그래서 이 난해한 작품을 도전의 대상으로 삼고 박사학위 주제로 삼았으리라 짐작이 간다. 잘린 다리를 고래 뼈 의족에 지탱한 채 복수심에 불타 광인처럼 모비딕을 쫒았느냐고 장영희씨는 선장에게 묻는다. 그러자 에이헤브는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나온다. "단지 개인적인 복수심이 아니라 '인간적인 도전' '신에 대한 분노' 그 기막힌 불공평함에 대해서. 신은 비겁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서 우리를 꼭두각시처럼 가지고 놉니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대로 순명하면서 살지만, 난 그렇게 하기를 거부합니다."라고 말한다. 장영희교수는 에이헤브의 입을 빌려서 자신의 의지 표명을 이어간다.

"정말 사는 게 가끔 너무 공허합니다. 가면극의 엑스트라 같은 인간, 아름답지만 변화무쌍한 탈을 쓴 기만적인 자연, 그 자연 뒤에서 오로지 인간의 파멸만을 위해 존재하는 듯한 정체 모를 힘에 대한 당신의 도전은 바로 당신을 창조한 허만 멜빌의 도전이기도 합니다."

 

나는 앞서 말한바와 같이 장영희씨의 책을 여러 권 읽고 그가 쓴 칼럼도 여럿 읽었지만 이렇게 단호하게 자신의 심경을 피력한 글은 처음이다. 아마 이 글을 쓴 시점엔 그 동안 여러 차례 죽음의 문턱에서 삶의 양지로 돌아왔었으나 이제 더 버틸 힘이 없는 상태에서 그간 신체적인 장애와 사회적 편견 그리고 병마와 투쟁으로 점철 된 지난날의 삶을 반추하며 소리 없이 외치는 절규로 나는 받아들였다.

 

원래 허만 멜빌은 처음에 평범한 고래잡이 모험소설로 <모비딕>을 쓰고 탈고까지 했으나 1850년 <주홍글씨>의 작가 너세니얼 호손을 만나 깊은 인상을 받은 일이 계기가 되어 다시 소설을 개작하여 지금의 철학적이고 인간 삶의 근원적인 물음에 다가가는 내용으로 새롭게 썼다는 이야기와 멜빌은 이 책을 호손에게 헌정했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작품 <모비딕>은 읽는 독자에 따라 여러 가지 해석으로 읽히는 현대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이다. 장영희교수는 인터뷰 말미에 "제가 삶에 주눅 들어 그냥 주저앉고 싶을 때 제 마음 속에 있는 당신은 제게 큰 힘이었습니다. 당신을 알게 된 것은 제 인생의 큰 행운이었습니다."라 하였다.

 

책 한 권이 한 사람의 인생에 이렇게 심대한 영향과 감동을 주어 삶의 등불이 되기도 한다. 아쉽게도 나에게는 젊은 시절 이렇다 할 독서 경험이 없었고 삶의 지침이나 이정표로 삼을 만 한 책을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이렇게 지금이라도 이런저런 책을 손에 들어 부족함을 채우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제 고인이 된 장영희 교수의 글을 다시 대하니 마치 아직도 밝은 미소로 씩씩한 모습을 보이는 장영희교수가 어디엔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책의 18번째는 "시와 삶은 하나의 궤도를 그리는 생명체"란 제목으로 김형수 작가가 파블로 네루다 시인과 인터뷰한 내용이다. 파블로 네루다는 1904년 칠레에서 태어나 23세에 극동주제 영사와 이후 스페인, 아르헨티나 등지에서 영사를 거쳐 칠레 공산당 상원의원으로 정치활동을 하다가 대통령 후보까지 지냈으며 프랑스 주제 칠레 대사에 임명된 시기인 1971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대 시인으로 시인이자 작가인 김형수 작가와 가상 대담을 한다. 네루다는 우리에게도 영화 <일 포스티노>를 통하여 더욱 이름이 널리 알려진 시인이며 나는 개인적으로 1994년 미국에 처음 갔을 때 네루다와 관련한 일이 기억에 남는다. 당시 로스엔젤리스 중심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여정을 풀었으며 기왕이면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여 L. A. 시내 구경을 하고 싶었다. 사실 주변에서 버스 이용은 복잡하고 조금 위험하다고 말렸으나 오히려 호기심이 발동하여 버스에 올랐는데 승객들은 대부분 흑인이었으나 나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이 버스에서 두 가지 사실이 인상 깊었다. 첫째는 버스가 서고 버스 기사가 내리고 한 참을 떠날 기미가 안보여 어디 고장이라도 났나 했더니 버스 승강대가 스르르 내려가고 장애인이 탄 휠체어가 실리고 다시 승강대가 올라왔다.

그런데 이 과정을 버스기사가 모두 도와주고 버스에 휠체어가 잘 고정되었는지 확인하더니 운전석에 돌아와 다시 차를 몰기 시작하였다. 꽤 오랫동안 정차하였으나 누구하나 불평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아 역시 미국은 다르구나 하였다. 두 번째로는 허름한 버스 창문 위에 영문 시로 보이는 문장이 보여 당시 스마트 폰이나 디지털 카메라가 없을 때라서 배낭에서 노트를 꺼내 한 시간 정도 흔들거리며 버스가 달리는 동안 그 글을 베껴 두었다 돌아와 조사해보니 파블로 네루다의 시였다.

 

지금은 오래되어 제목조차 잊었지만 아름다운 시였으며 버스 안에 시가 붙어 있어서 퍽 인상 깊었다. 김형수씨는 대담에서 네루다 시집 세 권을 가지고 있는데 박봉우시인, 김남주 시인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현종 시인이 번역하였다 하였다. 모두 우리 모국어의 아름다움을 한 차원 확장시킨 시인들이다. 김형우씨가 네루다에게 정치적, 상업적 과잉주의나 결여를 극복한 모델이라고 추켜세우자 이 대시인은 "시가 생명체이기를 원했으며, 내가 소년이었을 때는 시가 어렸고, 내가 젊었을 때는 시도 청년이었으며, 내가 고통 받았을 무렵에는 시도 좌절을, 또 내가 사회투쟁에 뛰어 들었을 때는 시도 투쟁적이었다고 술회하면서 "비극을 인지하는 능력이 없으면, 행복을 꿈꾸는 능력도 부족하기 마련이다."라는 퍽 의미 있는 말을 한다. 물론 네루다의 입을 통하여 김형수 작가가 다시 옮긴 문장이지만 인간은 먹고 잠을 자며 살다 죽을 게 아니라 투명한 의식을 가지고 삶을 영위해야 한다는 내용을 달리 표현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시인은 철학자보다 위대하다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깊어가는 이 가을, 네루다의 시 한편이라도 암송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19번째는 "시인은 오로지 시로 말한다." 라는 제목으로 오명근 소설가와 시인 백석의 대담이고 20번째는 "내게 시는 모국어의 확장작업"라는 소제목으로 문학평론가이자 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인 고형진씨와 역시 백석 시인과 대담이다. 기라성 같은 많은 한국시인, 소설가 중에 백석 시인을 두 번이나 등장시킨 것은 그 만큼 백석 시인이 한국시 세계에 끼친 영향이 크다는 의미이다. 백석 시인의 평가는 실로 다양하다. 토속적이고 향토적인 방언을 사용하여 모국어 사용을 한층 높였다는 일반적인 평가와 함께 모더니즘을 자신만의 시풍으로 발전시켰다는 찬사를 받기도 한다. 또한 "내 시는 기본적으로 생활을 드러내는 것을 지향합니다."라는 문구를 고딕체로 강조하여 시인은 우리 삶에 가까운 대상에 애정 어린 눈으로 관찰하여 시 세계에 구현했다는 평가도 아울러 받고 있다. 이렇게 뛰어난 시인의 삶은 그러나 고단하여 유량과 입북, 월북이란 구설수와 함께 만년에는 북한의 어느 협동농장에서 일하다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져 그를 아끼는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기도 하였다.

 

이외에도 프란츠 카프카도 정찬 소설가와 정영문 번역가가 이 대단한 소설가를 대담한 내용들이 눈길을 끌며 박형준 시인이 "나는 시를  썼고, 그 뒤론 시들을 살았다"는 제목으로 아르튀르 랭보와 만나 이야기 하는 내용도 퍽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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