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김병종의 모노레터, 화첩기행 네 번째>를 읽고...

깃또리 2019. 4. 5. 16:12

<김병종의 모노레터, 화첩기행 네 번째>를 읽고...

김병종 글,그림

호형출판사

2014. 08. 09.

   

 

김병종은 서울대학교 미술교수이며 화가다. 그러나 서양미술화가인지 동양미술화가인지는 잘 모르겠다. 왜냐면 그림 방식은 서양화이고 내용은 동양화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긴 예술에서 어떤 구분이 중요하지는 않으니 내가 너무 따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또 나는 김병종의 이름을 듣거나 보게 되면 제일 먼저 <화첩기행>이란 책이 머리에 떠오른다. 꽤 오래 전에 읽은 화첩기행1과 2권은 내 기억으로 우리나라 전국, 특히 전남과 경남지역의 옛 예인이나 학자들이 활동했거나 태어나고 살았던 장소를 탐방하여 글을 쓰고 독특한 화풍의 그림도 곁들여 책값이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던 책들이었다. 어린 시절 문학의 꿈을 지니기도 하여 수많은 책과 여행으로 생각이 깊고 넓은 인물이어서 나는 김병종의 글을 읽고 담박에 좋아하였고 지금까지 내가 좋아하는 우리나라 글쟁이 세 명 중의 한 사람이다. 사실 화첩기행의 글들은 신문에 먼저 실렸었고 후일 책으로 엮어졌기 때문에 오다가다 김병종의 글을 신문에서 읽고 글이 마음에 들었었다.

 

그래서 책이 나오자마자 읽었다. 세월이 흐르고 먹고사는 일에 매달려 세 번째와 네 번째 책이 나온 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도서관 서가를 훑어보다 우연히 네 번째 권을 만나 뽑아들고 마치 오래 전 헤어졌던 친구를 다시 만난 듯한 기분으로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출퇴근 시간에 읽었다. 감수성도 떨어지고 세상을 보는 관점도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피할 길 없었으며 김병종의 열정 또한 예전과 똑같지 않아서 지난 1권과 2권에서 필력을 너무 소모한 탓인지 네 번째는 아무래도 주장도 약해졌고 활력도 예전만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탐방지가 국내와 해외 그것도 바다와 대륙을 넘어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녀 일관성이 결여된 느낌이 들어 글을 읽는 집중도도 떨어지는 일이 나만의 경우인지모르겠으나 아무튼 아쉽다.

 

그래서 책은 제일 먼저 쓴 책을 뛰어 넘는 경우가 드물다는 말이 조금 수긍이 간다. 편지라는 것이 일방적으로 보내는 경우도 많지만 그래도 쌍방통행이라야 편지의 기능을 제대로 하는데 이 책에서 김병종은 받는 일을 기대하지 않고 쓴 글이라서 Mono Letter라는 말을 덧붙였다.

 

서문 격에 해당하는 <편지를 보내며>에 자신의 성장사의 일면을 간단히 밝혔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를 여의고 20년 나이 차이가 나는 형의 훈육을 받은 이야기와 함께 객지에서 공부하는 김병종에게 써보낸 형의 편지에 대하여 소회를 적고 있다. 빠르고 편리한 e-mail을 받는 것과 종이에 직접 쓴 글씨의 편지를 받으면 쓴 사람의 체취와 혼이 담긴 느낌을 받아 다 읽은 편지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도 주저하게 된다. 다정도병인양 하여 이 편지들이 후일 불씨가 되는 일이 종종 일어나는 일이 있었으나 지금은 아예 종이 편지가 사라져 이 걱정만은 없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책은 크게 "미치다 赤 적' 음지 綠 녹' 바람 白' 닫다 黑 흑' 넷으로 나누었으나 끝까지 읽어보아도 큰 의미는 없다. 모두 서른 한 개의 소제목으로 제일 첫 소제목은 <육신을 허물고 혼 불로 타오른 푸른 넋 최명희>편이다. 다섯 페이지 글과 그림 두 페이지 마지막 페이지는 최명희 작가의 사진이 포함된 간단한 소개 글이다. 내가 <혼 불>을 읽지 않았으나 언젠가 시간이 허락하면 차분하게 읽어보려 한다. 18년이란 오랜 기간 매달려 전10권으로 쓴 개화기와 일제강점기 그리고 현대를 아우르는 장대한 소설이라는 단편적인 사실을 알고 있다. 특히 전라북도 남원 출신이라 지역적인 친근감도 숨길 수 없어 곧 책을 마주할 날이 있을 것 같다.

 

1953년생인 김병종씨 보다 6살 위인 최명희의 친분관계를 엿 볼 수 있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고 1998년 51살이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작가에 대한 애뜻한 심정을 밝힌 대목이 읽는 사람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가수 김민기씨 편에서는 '나의 60년대는 김승옥이라는 창을 통해서 바라보이는 세계였다.'라고 어느 문인이 말했다는데, '1970년대야말로 김민기라는 창을 통해 바라보이는 세계였다.'라고 김병종은 말하고 있다. 김병종은 전북남원 출신으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이며 김민기는 같은 전북 익산출신으로 1953년생이며 서울대하교 미술대학교 회화과이다 같은 학교 교정에서 자주 만난 선후배 사이였다. 더구나 동향 출신이라 더욱 심정적으로 가까웠지 않았을까 유추해본다.

 

'강릉에서 보낸 마지막 편지 권오철' 강원도 강릉에서 1966년 중증지체 장애아로 태어나 44살에 생을 마감한 시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김병종은 강원도 철원의 어느 분교에서 처음 권오철 시인을 만나 15년간 교우하며 형과 동생처럼 편지를 주고받으며 지냈다 한다. 휠체어에 앉아 있으나 제대로 몸도 가누지 못하는 사람 곁에서 양복과 넥타이를 맨 김병종 교수가 책을 읽어주는 사진이 나온다. 강릉교외 시골집 눈부신 햇살이 비치는 어느 해 봄이라 한다. 지금까지 이름이 알려지거나 역사적인 인물들이 주로 대상이었으나 이렇게 이름 없고 장애를 지닌 시인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지냈던 김병종씨에게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며 한 장의 사진은 열 마디 말이나 글보다 더 진실을 전해 준다는 생각을 해본다.

'진해에서 핀 남도의 화인 유택렬' '흑백다방을 감싸는 꽃잎의 추모곡 유경아' 두 편으로 나누어 썼으나 유택렬은 아버지, 유경아는 그의 딸이며 두 사람 모두 진해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의 하나인 '흑백다방' 주인들이다. 나는 1970년 대 중반 진해에서 한 동안 일하면서 이 흑백다방에 몇 차례 들어갔었다. 그러나 당시 지금과 달리 휴일도 없이 아침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건설현장에서 매달려 작업복을 벗어 던지고 한가하게 다방에서 음악을 들을 형편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당시에도 클래식음악에 대한 관심은 있어 그 집 앞을 지나칠 때에는 항상 눈길을 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김병종씨는 나보다 2살 아래로 거의 동년배이며 화가라서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진해의 흑백다방에 대하여 소상히 알고 있고 더구나 부녀 모두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어 부럽기도 하다.

 

'문학의 숲에서 온 편지 이어령, 강인숙'에서 이어령씨의 출중함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는 일이나 그 부인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는데 문학박사인 강인숙은 건국대학교 교수를 역임했으며 지금 평창동에서 이어령, 강인숙의 이름에서 한자씩 따서 지은 '영인문학관'을 지키는 관장이라 한다. 작고 문인의 원고와 유품, 현역작가의 원고와 집필자료 등을 전시하고 있다 하는데 나는 2년여 전 일 때문에 평창동에 자주 갈 일이 있었는데도 이런 문학관 소식에 어두워 가보지 못한 게 퍽 아쉽다. 일부러라도 가 볼만한 곳 같아 언제 시간이 나면 가 볼까 한다.

'베를린의 비밀 다락방 로호갤러리' 1970년에 독일 베를린에 정착하여 패션 디자인과 화가의 길을 걷던 1944년 생인 노수강은 베를린의 한적한 곳에 '로호 갤러리'를 열고 외국인을 포함하여 국내화가들의 전시회를 열어주는 일을 기꺼이 맡아주었다 한다. 김병종씨도 1989년 '바보 예수' 연작을 전시하기도 하고 주인 노수강은 다락방 열쇠를 김병종에게 주면서 아무 때고 필요하면 사용하도록 배려하여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한다. 그러나 십 수 년을 운영하였으나 경영이 어려워 한국의 문화영사관 역할을 감당하던 갤러리 문을 닫아 그 아쉬움이 크다 하였다.

 

베를린은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정치 외교문제로 자주 입에 올리는 도시이지만 실재로는 프랑스 파리 못지않게 세계문화예술인을 폭 넓게 껴안아주는 도시로 알고 있다. 건축부문에서도 시대를 대표할 만한 기념비적인 건물이 많은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한다. 수년 전 주마간산 격으로 독일 남부지역을 10여 일간 여행한 일이 있으나 베를린은 당시 계획에 없어 들르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니 아쉬운 점이다. 세상에 가 볼 곳도 많지만 언젠가 베를린을 꼭 가보는 것이 큰 희망 중 하나이다. '나일 강물을 먹은 사람은 언젠가 디시 카이로에 돌아온다.'는 말처럼 이 책에서 '베를린에 가방을 두고 왔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즉, 한 번 베를린을 들른 사람은 도시의 매력에 빠져 다시 가야겠다는 말을 이렇게 우회적으로 표현한다고 한다. 이런 글을 보니 더욱 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오래된 추억으로부터 초대, 장미의 숲'서울 방배동 카페 골목 저 깊숙한 곳에 "파리나 뮌헨만큼은 아니지만 내게도 젖은 날 오후 혹은 눈 내리는 날 밤이면 혼자 찾아가곤 하는 오래된 집이 하나 있습니다."라는 1976년 처음 문을 열었다는 '장미의 숲'이란 오래 된 레스토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서양에서는 오래된 호텔이나 식당에 장미를 그려 놓는데 한 송이는 최소 십 수 년이기 때문에 여러 송이 장미일수록 명소가 되고 문화사적지 쯤 된다고 한다. 뮌헨 전혜린이 자주 갔던 카페 '제에로제'는 세 송이 째 장미가 그려진지가 오래 되었다 하였다. 이 레스토랑 '장미의 숲'을 출입한 문화 인사들은 실로 다양하다. 김주영씨 같은 소설가, 시인으로는 박용환, 성악가 박인수, 가수 김수철, 화가 송범수, 조각가 신현중, 만화가 고우영, 배우 이영하, 언론인 정종헌 등 실로 셀 수가 없고 일찍이 패티 김은 이 집을 소재로 <장미의 숲>이란 노래를 불렀을 정도라 한다. 유명인사가 간 곳이니 가보야야 할 곳이라는 말은 아니지만 서울에서 수십 년을 살고 더구나 이런저런 일로 방배동을 갔으며 더구나 방배동에 게찜을 먹으러 수차례 갔으면서도 이런 레스토랑 이야기는 금시초문이다. 뒤돌아보면 문화예술인들의 삶은 일반 생활인들과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생각이 스치며 아직 그 레스토랑이 문을 열고 있으면 소슬한 가을 날 나들이 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이 글을 적으면서 첫머리에 예전 <화첩기행>에 비하여 여러 가지로 미흡하다고 불평을 하였는데 이 글을 쓰려고 다시 책을 뒤적여보니 내 생각이 조금 모자랐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 천천히 다시 읽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좋은 내용들이다. 기왕에 내가 좋아하는 김병종씨의 <화첩기행> 낙본까지 모두 구입하여 내 초라한 서가를 그림과 글로 채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