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제인 오스틴의 비망록, The Lost Memoirs of Jane Austen>을 읽고...

깃또리 2019. 3. 28. 14:25

<제인 오스틴의 비망록, The Lost Memoirs of Jane Austen>을 읽고...
시리 제임스 지음
이경아 옮김
좋은생각
2014. 07. 26.



 도서관 서가에서 우연히 마주한 책이다. 제인 오스틴이 비망록을 남겼다는 기록을 본 일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 책 제목을 보고 궁금하여 표지를 열어 서문에 해당하는 <제인 오스틴의 비망록 발간에 붙이는 글>을 먼저 읽어 보았다. 서문은 옥스퍼드대학교 영문학박사이며 제인 오스틴 문학재단회장인 메리 제임스 박사가 쓴 글이다.  내가 평소 알고 있던 내용과 상이한 부분이 여럿 있으며 책은 본문 다음에 역시 같은 메리 박사가 쓴 <에필로그> 그리고 부록으로 <작가의 말>과 <제인 오스틴의 명문장>을 여섯 페이지 분량으로 실었고 마지막으로 <제인 오스틴의 생애>가 덧붙여졌다. 


 서문에서  비망록 원고가 초튼 매너하우스 다락방 벽돌 벽 속에서 집수리 과정 중에 발견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책 뒤의<작가의 말>에서 초튼 매너하우스도 메리 제임스 박사도, 제인 오스틴 문학재단이나 회장도 모두 작가가 허구로 지어낸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제인 오스틴의 비망록이란 게 애초에 없었으며 단지 여러 사실들에 근거하여 제인 오스틴을 주인공으로 하여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맞게 소설형식을 빌어 비망록을 만들어 낸 셈이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읽기를 마친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베르메르가 그린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The Girl with Pearl Earring>라는 제목의 책도 작가가 베르메르가 그린 그림을 세밀히 본 다음 상상력을 부여하여 펴내 책으로 이 책과 비슷한 종류의 책이라 할 수 있다.

 사실 화가 베르메르에 대한 기록이 아주 부족하여 많은 궁금증과 흥미를 일으키고 있듯이 제인 오스틴의 경우에도 기록이 적은 편이다.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비교적 다른 형제들보다 오래까지 살았던  제인 오스틴의 언니 카산드라가 동생과 주변사람들의 사생활이 악의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우려하여 제인 오스틴이 남긴 대부분의 편지와 자료들을 불태워버려 더욱 그러하다고 한다. 이런 점이 오히려 소설 작가들이 글을 쓰는 일에는 유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이란 개연성을 지닌  잘 쓰여 진 허구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딱딱한 평전보다는 역사적인 인물이나 작가를 이해하는데 이런 형식의 책이 더욱 유익하기도 하다. 이 책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또 앞으로도 밝혀지기 어려운 제인 오스틴의 연애이야기에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어 더욱 재미있다. 


먼저 이 책의 내용을 떠나 실제 제인 오스틴의 생애를 더듬어 본다.
제인 오스틴은 1775년 영국 남부 스티븐턴에서 태어나 잠시 온천도시 바스로 이사했으나 곧 사우드햄프턴과 초튼으로 옮겨 살았으며 윈체스터에서 요양하다 1817년 42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 윈체스터 성당에 묻혔다. 큰아버지의 재정적 도움으로 옥스퍼드 대학교에 다녔다하는데 몇 년간 어떤 공부를 했는지 정확한 자료는 아직 보지 않았다. 생전 주변도시인 도싯, 라임과 같은 도시를 방문했던 일이 있다. 아버지는 교구목사를 지내다 은퇴하여 제인 30살이 되던 해 당시로는 비교적 장수에 속한 74세로 바스에서 세상을 떠났다. 7남매 중에서 여섯째로 오빠 셋, 언니 하나 그리고 남동생이 있었고 바로 위와 오빠 둘과 남동생이 해군장교로 후일 제독의 지위에 올랐으며 큰 오빠는 부유한 여성과 결혼하여 큰 영지를 물려받아 부자였고 둘째 오빠는 아버지와 같은 성직자였다. 19세기 초 영국은 당시 재산상속은 철저하게 남자들에게 한정되어 만일 친아들이 없으면 딸과 아내가 생계가 곤란해도 먼 남자조카에게 재산이 넘어가는 지금으로 보면 어이없는 일이 당연시되는 시대였다. 또한 아무리 재주가 많은 여성이라도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일이 인정되지 않는 사회여서 제인 오스틴은 처음에 남자 필명으로 소설책을 낼 정도였다. 불과 200년 전이지만 유럽사회도 남존여비사상은 동양보다 더 했으면 더했지 나을 것이 없는 비합리적인 사회였음을 알 수 있다. 제인보다 3살 위 언니 카산드라는 비교적 일찍 결혼하였으나 남편이 군복무 중에 사망하여 자식도 낳지 못한 상태에서 소위 청상과부가 되었으나 다행히 죽은 남편의 연금으로 자신의 생활을 유지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목사였던 아버지는 원래 재산을 모을 수 없는 직업도 아니고 여러 정황으로 보아 아내와 딸 제인을 위해 재산준비도 해 놓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 제인과 어머니는 재정적 걱정을 놓지 못하고 특히 제인은 노처녀로 지내는 형편이라 본인과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든지 좋은 배필을 만나 시집가기를 학수고대하였다. 제인의 연애사건은 두 번으로 알려졌는데 처음은 친구의 남동생이며 5살 아래로 옥스퍼드대학교 출신인 메니다운 파크 상속자인 해리스 빅위더의 청혼을 받고 처음에 승락하였으나 곧바로 자신과 해리스는 마땅한 짝이 아니며 사랑이 없는 결혼은 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청혼을 거절하여 주변사람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이 첫 번째 연애사건은 비교적 시실이라고 알려졌다. 두 번째 연애로는 4살 위인 역시 명문대학교출신에 미남이고 큰 영지 상속 예정자인 프레데릭 에시포드를 항구도시 라임의 유원지에서 만나 깊이 사랑하기 시작하여 제인은 결혼하고 싶어했으나 이번에는 남자 측인 에시포드가 청혼을 하지 않아 제인을 실망시키는 설정으로 소설은 이어지고 있다. 이 두 번째는 작가의 상상력이 과다하게 들어간 사실성이 부족한 면이 있는 것 같다. 왜냐면 내가 그동안 이런저런 읽은 기록에서 제인 오스틴에 관한 이야기 중에 이 부분에 조금이라도 가깝게 언급한 내용을 읽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그야말로 소설로 읽어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아무튼 그래도 당시 영국 사회상 특히 결혼과 상속, 여행, 음식, 복식, 파티 등 여러 분야에 많은 내용이 등장하여 퍽 흥미로웠다.


 기왕이면 영문판을 구해 읽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마지막으로 책 본문에서 중요한 부분의 일부를 발췌하여 보았다.

 자매가 함께 있는 경우 언니는 성으로 호칭하고 동생은 이름을 부르는 당시 관습이 있다. 즉 112페이지에서 두 자매가 거리를 걷다 만난 동네 아주머니가 언니 카산드라와 제인을 부를 때 "오스틴 양!  제인양!"이라고 하는 대목이 그렇다. 또 자주 열리는 파티에서는 남녀가 항상 짝을 이루어 참석하고 독신인 경우에는 신분에 걸 맞는 짝을 주인이 결정하는 등 퍽 까다로운 행사였음을 알 수 있다. 즉, 독신 남녀가 혼자 파티에 가는 일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없었으며 짝이 없는 경우는 주인이 미리 남녀를 잘 살펴 초청해야했던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이동수단이 중요하였으며 당시는 지금의 승용차 대신 마차가 이동수단이었기 때문에 마차의 크기와 종류에 따라 부와 사회적 지위가 가늠되었다. 그래서 "우아하게 치장한 말 네 필이 끄는 체이스(지붕이 있는 마차)" "맞아요! 귀여운 망아지 두 마리가 끄는 나지막한 페이튼(사륜 쌍두마차)""하지만 저는 긱, Gig(말 한 필이 끄는 이륜마차)이나 커리클(이륜 쌍두마차)을 더 좋아해요.""하지만 저는 무개마차가 좋아요. 특히 시골길을 달릴 때면 더 좋아요. 이럴 때는 코치, Coach(대형 사륜마차)보다 커리클이 훨씬 더 적당하죠."  내 생각으로는 모두가 만족할 만한 마차는 바로 바로슈(4인승 사륜 포장마차)입니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모두 여섯 종류의 마차가 나왔는데 아마 더 많은 종류의 마차가 있을 것 같다. 왜냐면 이들 모두가 시골 지주 출신이기 때문에 런던을 비롯한 대도시의 귀족이나 왕족의 마차는 더 크고 말의 숫자도 많아 다른 이름의 마차가 있으리라 추측된다.


 말 이야기가 나왔으므로 덧붙이자면 유럽은 말이 교통과 여가에 필수적이고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어 말에 관련한 어휘가 무척 다양하고 말에 쓰이는 마구 또한 다양하다. 마구 모두 일컬어 Harness,하네스라 하며 명사에서 동사로 변하여 마구를 채운다로도 쓰이며 여기에서 유래하여 건설현장에서 안전벨트와 같은 장구를 하네스라 부른다. 조금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원래 말에 채우는 마구인 하네스를 아무리 신분이 낮다고 해도 건설노동자를 말과 동일하게 여겨 같은 단어를 쓰는 것은 썩 기분이 좋은 일이 아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하네스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지 모르고 오늘도 매일 매일 “하네스, 하네스” 하니 조금 딱한 기분이 든다. 기왕 나온 김에 말의 걷거나 달리는 속도의 구분도 Walk <Amble <Trott <Gallop으로 나누며 여기서 춤을 추는데 알맞은 박자라는 노래라 하여 트롯이 일본을 거쳐 도롯도 또는 트롯트 가요가 우리말처럼 쓰이고 있는 실정이다. 현대 자동차에서 겔로퍼도 아마 잘 달리는 차를 연상하라 이름 붙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