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못난놈들은 서로 얼굴만 보아도 흥겹다>를 읽고...

깃또리 2019. 4. 2. 13:16

<못난놈들은 서로 얼굴만 보아도 흥겹다>를 읽고...
신경림 에세이
문학의 문학
2014. 07. 29.


 참 오랜만에 신경림 시인의 글을 읽었다. 시인의 시집 <농무><민요기행1.2>을 읽은 기억은 나지만 20년, 30년 저쪽이라는 생각뿐 정확한 시기를 모르겠다. 특히 <민요기행>은 두 번을 연거푸 읽었을 정도로 당시 깊은 인상을 받았던 책이다. 내가 본시 시세계는 어두워 시인의 <농무>를 읽은 것 말고는 다른 시집을 읽은 적이 없었고 시인이 작고했다는 소식도 못 들어 조금 궁금하던 차에 소개 글을 읽어보니 동국대학교석좌교수에 대한민국예술원회원으로 나와 있어 아직 생존한 것을 확인하였으며 1935년 출생이니 이제 80세로 어언 고령의 나이에 들었다.


 책의 구성은 '그림이 있는 에세이'라는 부제로 '문단의 거목들이 들려주는 우리 시대이 자화상'이란 설명에 걸맞게 김남조, 이어령, 김주영, 신달자, 문정희씨와 같은 해방이후 문단의 앞자리에서 활동하던 시인, 소설가들의 지나온 삶과 교우관계 그리고 문단의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가볍게 쓴 시리즈 중 첫 번째 책이다. 신경림 시인이 밝힌 바에 따르면 "평소 지인들이 자서전을 써보라는 권유가 있었지만 자신의 삶이 그리 대단하거나 기록으로 남길 만큼 굴곡도 있는 것도 아니어서 사양했으나 오늘을 사는 젊은이들에게 앞서서 산 사람으로써 어떤 환경에서 공부하고 자랐는가를 알려주고 다른 또 하나는 오 십여 년 간의 문단의 풍속도를 아는 것이 문학을 이해하고 사랑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여" 글을 썼다 했다. 시인의 말처럼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전반부는 해방 전 어린 시절 이야기이다. 1945년 해방되던 해 11살이었으니 초등학교 5학년쯤이었고 1950년 한국전쟁 때는 16살로 유소년 시절에 우리나라 현대사의 격동기를 순수한 눈으로 보고 들으며 거친 셈이다. 이후 정치적 혼란기와 민주화 열정이 분출하던 시절 청년기와 장년기를 거치면서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여 큰 잘못도 없었지만 잠시 옥고까지 치르는 등 현대사의 한 증인으로 또는 문단의 원로시인으로써 시인의 이야기는 나와 같이 문학과 거리가 먼 사람에게 조차 퍽 흥미가 있는 글이었다.


 신경림 시인을 소개한 짧은 글에 "동국대학교 영어문학과를 졸업하고 첫 시집 <농무>이래 민중생활에 밀착한 현실인식과 빼어난 서정성, 친숙한 가락을 결합한 시세계로 한국시의 물줄기를 바꾸어 새 경지를 열었다. 70년대 이후 문단의 자유실천운동, 민주화운동에 부단히 참여하여 당대적 현실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시편으로 탁월한 예술적 성취를 보여주었다."라 하였다.  먼저 유년 시절 이야기는 충북 청주근처 시골 양반 집안에서 태어나 크게 부족하지 않은 환경에서 공부도 제법 잘했으나 가끔 엉뚱한 짓도 하였으나 평범한 소년이었다 한다. 해방 직전 소위 국민학교 시절의 학교생활과 일본 젊은 처녀교사 이야기와 같은 동포를 괴롭힌 일본 앞잡이 순사이야기 등이 재미있다. 특히 이 악랄했던 순사는 해방 후 잠시 나타나지 않다가 어느 날 반공투사로 변신하여 빨갱이 잡는다고 설치다가 차례로 면장, 군수, 국회의원이 되더니 전두환 정권시절에는 장관까지 했다는 사실을 이야기를 하였으나 실명은 밝히지 않았다. 한국 현대사에서 친일 행적에 대한 적절한 반성과 용서과정이 없이 유야무야 얼버무려 지금까지 논란이 되는 일은 퍽 가슴 아픈 일이다. 즉 다시 말하면 한때 친일을 했던 사람을 끝까지 앞을 가로막자는 것이 아니라 반성과 뉘우침의 기회를 주어 용서와 화해의 순서를 밟았어야 했는데 대부분 친일인사들이 6.25전쟁 과정에서 반공이라는 명분을 포장하여 친일행각을 덮고 오히려 항일운동을 했던 사람들을 탄압하고 출세를 했던 일은 역사의 크나큰 잘못으로 남아있다.


 후반부의 문인들에 관한 이야기로는 주로 시인을 중심으로 신경림 시인과 교우했던 인물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그러나 대부분 문단의 비주류에 해당하는 인사들이고 어떤 면에서는 어딘가 조금 부족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어느 정도 문학에 대한 열정이나 재능은 있으나 술의 절제력이 부족하거나 경제관념이 부족하여 가정을 제대로 꾸리지 못하는 등 사회적, 가정적 부적응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일수록 자기의 부족함을 스스로 알기 때문에 남의 허물에 관대하고 유유상종이라는 말처럼 서로 만나면 반가워하고 즐거워하였다 한다. 그래서 책 제목도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보아도 즐겁다.>이다. 신경림 시인 역시 지금은 원로시인으로 어느 정도 대접받고 평온하게 지내고 있지만 그동안 신산한 삶을 살았다 할 수 있다. 신경림 시인이 2부 <삶의 뒤안길에서> 밝힌 인물들은 시인으로 김관식, 천상병, 백시걸, 이현우, 임종국, 황명걸, 구자운, 이한직, 조태인, 신동문, 서정주이며 작가로는 이문구, 강홍규, 손춘익, 한남철이고 민병산 철학자가 등장한다.


 민병산이란 분은 원래 많은 재산가의 후예였으나 특이한 인생관을 지녔던 사람으로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술 한 잔을 못하면서도 술자리에 빠지는 일이 없으나 술자리를 자주 마련하였다 한다. 더구나 자신이 술자리에는 엄격한 기준이 있었는데 잘나고 출세와 돈이 많은 사람은 기피하였고 작가라면 재능은 있지만 별로 인정받지 못한 사람이며 교수라면 외국에 나가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제대로 강단에 서지 못하는 사람, 신문기자라면 출세와 담을 쌓고 뒷전에 도는 기자 또는 소위 말하여 '조금 못나고 삐딱한' 사람들을 좋아했다 한다. 어느 날 만난 자리에서 신경림 시인이 <장자>와 <노자>를 아직 읽지 않았다고 하자 기겁을 하여 시인을 부끄럽게 하여 얼마 후 <장자>를 읽은 후 <추수편, 秋水篇>의 한 대목 "세상을 제대로 보려면 멀리서도 보고 가까이서도 보아야한다."를 좋아한다고 말하자 "대지관어원근 大知觀於近"이란 글씨를 헝겊에 써서 주었다 한다.


 "계파도 무엇도 없었던 문단의 마당발 이문구 소설가" 이야기도 퍽 인상 깊은 글이어서 오래전에 그가 쓴 <관촌수필>과 <내 몸은 너무 오래 있거나 서서 걸어 왔다.>을 다시 꺼내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서울 가면 시골사람이, 시골 오면 서울사람이" 하면서 불러대던 울산의 손춘익 작가 이야기 편에서 작가는 존경하는 스승으로 김동리 선생을, 선배로는 이호철 작가, 백낙청, 송기숙이었고 친구 중에는 이문구, 염무웅, 김문수 작가, 조태일, 안종관 극작가, 홍상화 작가, 정지청 교수, 이동순 교수시인, 김창우 교수 등이라는 부분이 나온다. 이 사람들을 포함하여 이 책에 나오는 시인, 소설가, 평론가 등은 나도 젊은 시절 존경하던 분들이며 한 시대를 풍미하던 인물들이었으나 이제 대부분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어서 감회가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