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밤으로의 긴 여로, Long day's Journey into Night>를 읽고...

깃또리 2019. 3. 22. 13:12

<밤으로의 긴 여로, Long day's Journey into Night>를 읽고...
유진 오닐 지음/ 민승남 옮김
민음사
2014. 07. 26.


헤아려 보니 벌써 15년 전이다. <밤으로의 긴 여로> 희곡작품 영문판을 손에 들어 본 적이 있다. 그러나 무모한 시도였다. 지금 기억하기로는 1막 무대설명 3페이지를 모르는 단어를 찾아 읽으면서 종이에 방 배치도를 그려보기도 했었다. 결국 1막 무대 배경만 읽고 그만 둔 셈이지만 그래도 기억에 남는 부분은 거실 천장에 매달린 전등과 창문 옆 버들고리 장식장의 배치 등이다. 나중에 한글 해설을 읽었으며 작가 유진 오닐이 부인 칼로타에서 쓴 헌사 중 "내 묵은 슬픔을 눈물로, 피로 썼다"는 대목이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잊혀 지지 않았다. 여기 다시 책 앞 헌사 전문을 옮겨 본다.


칼로타에게, 우리의 열두 번째 결혼기념일에,


사랑하는 당신,
내 묵은 슬픔을 눈물로, 피로 쓴 이 극의 원고를 당신에게 바치오.
행복을 기념하는 날의 선물로는 슬프고 부적당한 것인지는 모르겠소. 
그러나 당신은 이해하겠지.
내게 사랑에 대한 신념을 주어
마침내 죽은 가족들을 마주하고 이 극을 쓸 수 있도록 해준,
고뇌에 시달리는 티론 가족 네 사람 모두에 대한
깊은 연민과 이해와 용서로 이 글을 쓰도록 해준,
당신의 사랑과 다정함에 감사하는 뜻으로
이글을 바치오.

소중한 내 사랑, 당신과의 십이 년은
빛으로의, 사랑으로의 여로였소.
내 감사의 마음을 당신은 알 것이오.
내 사랑도!


 사실 유진 오닐은 이 작품을 부인 칼로타에게 주면서 자신의 사후 25년 안에는 발표하거나 무대에 올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였다 한다. 1939년 그의 나이 51세 되던 해에 캘리포니아 타오 하우스에서 은둔생활을 하면서 이 작품을 집필하기 시작하였는데 자신의 가족에 대한 뼈저린 슬픔과 회한으로 집필실에서 나왔을 때는 들어 갈 때보다 십 년은 늙은 듯한 수척한 모습으로, 때로는 울어서 눈이 빨갛게 부은 채로 집필실에서 나왔다고 부인 칼로타는 회상하였다 한다.


 이 작품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유진 오닐의 부모와 두 형제 사이의 가족사를 그대로 반영한 작품으로  가난하고 무지한 아일랜드계 이민 출신으로 연극배우로 성공하지만 돈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해 가정과 자신의 배우 인생을 망쳤다 생각되는 아버지 제임스 오닐, 마약 중독자였던 어머니 엘라 퀸랜, 술어 절어 방탕한 삶을 살다가 결국 알코올 중독 합병증으로 일찍 세상을 마감한 오닐의 형 제임스 오닐 2세에 대한 애증을 인간 보편적인 진실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문학의 장르는 크게 시, 소설, 희곡으로 대별하며 희곡은 원래 연극을 위한 대본이지만 읽기를 위한 희곡으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문학이 쇠퇴하고 급기야 죽어가고 있다고 하지만 소설과 시는 아직도 많은 대중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으나 희곡은 갈수록 관심에서 멀어지고 특히 우리나라에서 희곡은 제 자리를 잡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사실 희곡의 쇠퇴는 어쩌면 세계적인 현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왜냐면 한마디로 시인, 소설가 이야기는 자주 거론 되지만 전문 희곡작가 이야기는 들어 볼 수 없고 노벨상을 비롯한 문학상 어디에도 근래 희곡작가가 나오는 일이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 비교적 잘 알려진 희곡 작품으로는 테네시 윌리엄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A Streetcar named desire>와 바로 이 작품 <밤으로의 긴 여로, Long day's Journey into Night>등이다. 아마 이런 상황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이 작품 제목이 소개되어서 그럴 것이라 추측된다. 나는 수년 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희곡을 읽어보았고 동숭동에서 연극도 관람한 일이 있다.


 이 작품 <밤으로의 긴 여로> 무대배경은 어느 항구 근처 티론 가족 여름 별장 거실 한 장소이며 시간도 1912년 8월 어느 날 아침 8시 30분에서 시작하여 자정으로 끝이 나는 짧은 기간이며 등장인물도 네 명 뿐이다. 주인공인 아버지 제임스 티론은 66세로 아일랜드 농군 조상을 둔 평생 단 하루도 아파 누워 본 일이 없는 강인한 체력의 연극배우 출신이다. 성장기에 혹독한 가난으로 연극배우로 얻은 수입을 헛되어 쓰지 않고 재산을 축적하고 특히 땅을 구입하는데 집착한다. 결국 돈에 대한 과도한 욕심이 가족 모두에게 불행의 길로 접어들게 하였지만 그래도 티론의 가치관은 흔들리지 않고 점점 가정은 파멸의 길로 빠진다. 티론의 부인 메리 티론은 54살로 조상 역시 아일랜드에서 왔지만 비교적 안정적이고 경제적으로 부유한 집 출신으로 여학교 시절 수녀 또는 피아니스트 꿈을 키우던 다정다감하고 미모도 출중하였다. 그러나 인기 있는 미남 연극배우 티론에 한 눈에 반하여 결혼했으나 구두쇠 티론 때문에 산후 치료시기에 싸구려 돌팔이 의사를 만난 마약 중독자가 되어 평생을 원망과 한탄으로 보내다 결국 마약환자에 우울증까지 겹치고 정신분열증에 이른다. 큰 아들 제임스 주니어는 33살로 시인 기질을 지니고 있으나 방탕하고 여자들과 어울리는 일에 몰두하여 아버지 티론의 미움을 사지만 생활 능력이 없어 집을 떠나지도 못하고 끊임없이 아버지와 갈등을 빚는다.


 특히 어린 시절 둘째 아들이자 자신에게는 동생 유진에게 부모의 사랑을 빼앗겼다 생각하며, 자신의 폐렴증세가 유진에게 옮겨 죽게 했다는 일로 가족들로부터 원망의 대상이 되고 자신도 원죄의식에 시달리는 불행한 인물로 나온다. 둘째이자 막내인 에드먼드는 23살로 1.8미터의 큰 키에 강인한 체력을 지녔지만 예민한 성격 때문에 부모와 형의 사소한 질책에도 큰 상처를 받고 불행하게도 당시 치료가 어려웠던 결핵에 감염되어 자기 연민에 빠지고 이 모든 불행이 역시 돈에 인색한 아버지 티론 탓이라 생각하여 아버지에게 대항도 하지만 그렇다고 사태가 좋아지지 않는다. 아버지와 아들 둘은 어머니 메리에게 마약을 끊도록 무언의 압박을 하지만 한 번 빠져 든 마약에서 메리는 헤어나지 못하고 자신의 중독이 남편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적개심을 품는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탈출구가 없는 상황이 더 어렵게 한다. 아버지 티론은 큰 아들의 무능과 게으름 그리고 막내아들의 소심함을 탓하고, 아들들은 아버지의 인색함을 비웃는다.


 그러나 이들 또한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상황은 점점 힘들어지면서 희곡은 끝을 맺는다. 책 뒤의 작가연보를 보면 유진 오닐은 1888년 아일랜드계 연극배우 아버지와 역시 아일랜드계인 어머니를 두었으며 어머니가 뉴욕 어느 호텔에서 지내다가 세 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비교적 연극배우로 성공하여 경제적인 뒷받침이 이루어져 프린스턴대학교에 입학까지 하였으나 일 년 만에 자퇴하고 철학자 니체에 심취했다고 한다. 21살에 케슬린 젠킨스와 가족 몰래 결혼을 하고 함께 이곳저곳을 떠돌다 뉴욕으로 돌아와 자살도 기도하는 등 어지러운 삶을 살고 3년 후 케슬린과 이혼하고 단역배우로 잠깐 몸담았다가 어느 신문사의 기자 겸 기고가로 입사하여 일하다 결핵으로 요양생활을 하면서 진정한 자아에 눈을 뜨고 스웨덴 극작가 스트린드베리에게 강한 영향을 받아 희곡작품을 쓰기로 결심하고 평생 그를 존경하였다 한다. 이 스웨덴 극작가에 대한 인연이 1936년 48세 되던 해에 그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는데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며 <밤으로의 긴 여로>가 미국이 아닌 스톡홀름 왕립극장에서 유진 오닐 사후 3년 뒤인 1953년 초연되었던 사실도 스트린드베리와 전혀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조금 재미있는 일은 첫 번째 부인 케슬린이 희곡에서는 조금 푼수 없는 하녀 이름으로 나오며 메리의 넋두리를 받아주는 역할을 맡기도 한다.


 아무튼 내가 새롭게 알았던 사실은 유진 오닐하면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밤으로의 긴 여로>지만 노벨상은 이 작품과 무관하게 발표 3년 전에 수상했으며 다시 말하면 <밤으로의 긴 여로>말고도 다수의 역작을 썼다는 말이 된다. 1920년 최초의 장막극 <지평선 너머, Beyond the Horizon>로 첫 번째 퓰리처상을 수상하였고,1922년 <안나 크리스티, Anna Christie>로 두 번째 퓰리처 상 수상, 1928년 <기묘한 막간극 Strange Interlude>로 세 번째 수상, 그의 사후 3년째인 1956년 <밤으로의 긴 여로>로 네 번째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1923년 미국 국립예술원회의, 1926년 예일대학교 명예문학박사 학위 등 사회적으로도 생전에 인정을 받았으며 1936년 노벨상으로 그의 이름을 더욱 빛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가정생활은 성장기는 물론, 평생 평탄치 않았다. 1929년 여배우 칼로타 몬트레이와 세 번째 결혼하여 비교적 긴 기간 지내기도 하였으나 사망 직전 사이가 크게 벌어져 오닐은 1953년 보스턴 어느 호텔방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았다. 일설에 의하면 폐렴으로 죽기 직전에 마지막 말로, "빌어먹을 호텔방에서 태어나 호텔방에서 죽게 되는 구나."였다고 한다. 또 다른 가정적 불행으로 아들의 자살, 딸 우우나가 반대하던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과 어린 나이에 결혼을 감행하여 의절한 일 등이 그의 불행을 더하였다 한다.


  이 세상에 완벽한 가정은 흔치 않다. 원래 인간은 완전하지 않으며 가정이란 가장 이질적인 남자와 여자, 나이든 사람과 어린 사람이 함께 하는 구성체로 많은 시간을 같은 장소에게 지내기 때문에 조화로운 동거가 쉽지 않아서 티론의 가정뿐만이 아니라 그 불화의 정도만 다를 뿐 완벽한 가정은 없다. 그래서 동양의 선현은 오래 전 "가화만사성 家和萬事成"이란 말로 가정의 화목을 중시하지 않았을까 한다.

 나 역시 이 작품을 읽으면서 지난날을 뒤돌아보며 많은 회한과 반성을 하였다. 아마 누구든 이 작품을 읽게 되면 자신을 한 번쯤 뒤 돌아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