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이윤기가 말하는 쓰고 옮긴다는 것>읽고...

깃또리 2019. 3. 21. 13:40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이윤기가 말하는 쓰고 옮긴다는 것>읽고...
이윤기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2014. 05.31.


 책의 서문은 이윤기씨의 딸이며 번역 일을 하는 이다희씨가 <땀과 자유의 글쓰기>란 제목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회상하는 글이다. 이윤기씨는 1947년 경상북도 군위에서 태어났으며, 2010년 심장마비로 비교적 이른 나이인 64세에 세상을 떠나 그를 좋아하던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당시 나는 어느 설계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있던 시기였는데 같이 일하던 젊은 설계실장 한 사람이 일을 하다말고 그의 죽음을 알려주며 이 시대에 글쟁이 한 사람이 떠났다고 애통해 하던 일이 기억에 새롭다.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하여 1977년 소설가로 등단하였지만 소설작가보다는 번역가로 활발하게 활동하여 2000년 번역가상을 수상하는 등 번역 분야에서 이름을 더 알렸다. 그러나 소설가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중단편과 장편소설을 발표하여 문학상으로 '1998년 동인문학상', '2000년 대산문학상'을 수상하였고 수많은 번역 작품 중에서 푸코의 <장미의 이름, 1992>,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신화>시리즈 그리고 <그리스인 조르바>등이 특히 호평을 받았다. 매사에 부지런하고 열정이 넘치는 사람으로 알려졌었다. 내 빈약한 서가에도 <그리스인 조르바>를 비롯하여 몇 권의 이윤기씨의 책이 꽂혀 있다.


 이 책은 이윤기 지음으로 나와 있지만 이곳저곳에 실린 글쓰기와 번역에 관련한 단문들을 모아서 그의 사후에 펴낸 책이므로 기왕이면 책 표지에 편집한 사람 이름을 지은이와 밝혔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내용은 1.글쓰기는 내 몸을 가볍게 한다. 2. 옮기지 않으면 문화는 확산되지 않는다. 3. 문화의 정점에 신화가 있다. 4. 우리말 사용설명서. 5. 언어는 존재의 집. 이렇게 다섯 개의 장으로 나누어졌다. 주로 글쓰기와 번역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지만 이곳저곳에 이윤기씨 자신의 지나온 삶과 행로, 문학과 번역에 대한 견해, 집안 가족이야기 등이 소개되어 흥미로웠다. 소설가이다 보니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조차도 아주 재미있게 때로는 감동 깊게 꾸몄다.


 가장 인상 깊은 이야기로는 중학교 시절 유도를 시작하여 검은 띠를 매면서 유단자로써 몇 가지 다짐을 하였다 한다. 화장실 아닌 곳에서 오줌 누지 않기, 날씨가 추워도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지 않기, 비가와도 우산을 쓰지 않고 늠름하게 걷기 등 어린 시절 누구든지 한 번은 해 봄직한 일들이나 작가가 이렇게 늘어놓으니 역시 성공한 작가는 어려서 부터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와 관련하여 어느 가을 장대비가 내리는 날 우산도 없이 큰 길을 걷고 있는데 친구 하나가 비를 조금이라도 적게 맞으려고 처마 밑을 따라 요리조리 비를 피하며 가고 있어 비겁한 짓이라 생각했다 한다. 또 어느 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이 문학상이 유도의 검은 띠에 해당하니 문학의 유단자로써 검은 띠 유단자들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겠다고 제법 의기양양하게 떠들었다고 한다. 곧 이어서 중고등학교 동기들이 수상을 축하하는 잔치를 열어주어 나갔는데 남의 집 처마 밑을 이용하여 절묘하게 비를 피하던 친구가 그 모임의 어엿한 회장이었고 그는 당시 중학생시절에 이미 유단자였으며 문학에 대한 이해도 실로 깊고 넓었다 한다. 이런 사실을 알고 나니 그 친구는 유단자라는 이름에 갇히지 않는 진정한 유단자이며 고수였기에 스스로 부끄러움에 얼굴에 모닥불이 피는듯했다고 술회하였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나에게도 비슷한 일이 있기도 하여 쓴 웃음을 짓기도 하였다.


 글을 잘 쓰는 방법을 열거하였다. 먼저 생각나는 대로 쓰기, 구어체로 쓰기를 역설하며 도올 김용옥선생의 글을 예로 들었다. 그의 책은 상당히 어려운데도 술술 읽힌다는 것이다. 또 이윤기씨 보다 몇 살 위인 가수 조영남씨의 글도 구어체라 읽기가 쉽다고 했다. 구어체 현상은 영어에서 먼저 시작되었으며 미국대학교 사설조차도 그렇다 쓴다 한다. 우리나라 젊은 층 사이에서도 확산일로라 하며 구어체로 쓰면 일단 글쓰기의 '초단'이 된다고 하였다. 그러고 보니 내가 김용옥씨의 책을 몇 권 읽었는데 동서양을 아우르고 고금을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의 향연을 맛보면서도 읽기가 쉽고 흥미가 있었는데 구어체였기 때문이라는 말에 그래서 그랬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조영남씨의 글도 가끔 신문지상을 통하여 짧은 글들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역시 재미있었다. 그 당시 나는 그래도 서울대학교 성악과 합격과 한양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입학하고 끝까지 다니지는 않았지만 두 학교를 입학할 기본실력이니 글쓰기 수준도 보통이상이려니 생각했었다. 그래서 이윤기씨는 "멋있게 보이고 싶다고 생각을 비틀지 마라"고 충고하였는데 어쩌면 내게도 해당되는 말이 아닌가 가슴이 뜨끔하다.


 번역에 대한 이야기로는, 텍스트의 이해는 번역에서 기본이므로 말할 것이 없고 우리말에 대해서 첫째 '사전과 싸움'이라 하였다. 즉 영어의 경우 분명히 우리말로 바꿀 수 있음에도 어물쩍 넘어가거나 원어를 그냥 쓰는 경우 이는 진정한 번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호치키스'는 제품명이고 영어는 스테이플러 Stapler, 우리말로는 제책기, 製冊機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우리말 어구와 어절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야 한다고 하엿다. 주절과 종속절로 구성된 경우 종속절을 되도록 어구로 정리하여 단문으로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면 문장의 가독성이 높아진다고 하였다. 참고할 말이다.


 셋째로는 살아 있는 표현 그 중에서도 숙어,熟語, 잘 익은 말을 찾아 써야 한다고 하였다. 여러 예를 열거하였는데 그 중 하나로 “A little learning is a dangerous thing.”을 부족한 지식은 위험하다 보다는 속담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로  해야 한다고 하였는데 나는 과연 그런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이윤기씨의 번역문을 읽으면 너무 공격적이고 주관적인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경우가 있었는데 예를 들면 조르바가 젊은 주인공인 "나"에게 걸핏하면 '두목님' '두목'이라고 하였지만 나는 오히려 '주인님'이 훨씬 적절하다고 나는 생각하였다. 왜냐면 첫째 중국이나 일본에서 일어난 일이면 모를까 멀리 떨어진 서양 사람들 사이의 호칭으로는 정서에 맞지 않고 또한 두목은 여러 사람들 중의 우두머리이기 때문에 조르바 한 사람의 우두머리로는 적절한 호칭이 아니기 때문에 번역으로는 평범하고 무리 없는 '주인님'정도가 적당하다는 생각이다. 더구나 이윤기씨의 번역문에 가끔 경상도 사투리까지 나오는 경우는 너무 생경하고 당황스럽기까지 하였으나 이윤기씨는 오히려 생동감 있는 표현처럼 주장하였으나 나는 반대 생각이다.


 이런저런 내용으로 이윤기씨의 글에는 과도한 자신감을 자주 발견하게 되는데 한편으로는 이런 성향이 창작과 번역작업에 좋은 영향을 발휘하여 남다른 성과를 이루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본다. 이윤기씨가 특별히 존경하는 인물로 두 사람을 꼽았다. <짧은 글 긴 침묵>과 <예찬>을 썼다는 프랑스 철학자 미셀 투르니에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이 두 책을 번역하기도 한 시인이자 평론가 김화영교수이다. 글쓰기를 겨냥 하는 딸이 철학적 눈썰미나 생각이 깊어지고 문학적 감수성이나 말의 결을 다루는 솜씨가 섬세해지기를 바라서 이 두 책을 추천했다고 밝혔다.

 다른 사람들이 좋은 책이라고 하면 다른 일을 제치고 바로 구입하여 읽고 싶지만 지금도 많은 책이 기다리고 있으니 후일 천천히 골라 보기로 마음을 돌린다. 한 작가이자 훌륭한 번역가의 삶을 조금이나마 들여다 볼 수 있는 유익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