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영문판)

<Boy tales of childhood>를 읽고...

깃또리 2019. 3. 12. 12:47

<Boy tales of childhood>를 읽고...
Roald Dahl
Puffin Books
2014. 03. 30.


 2014년 초 Roald Dahl의 <Going Solo>를 읽었다. 사실은 이 책 <Boy tales of childhood>이 전편에 해당하고 <Going Solo>는 후편인데 나는 순서를 바꿔 읽은 셈이다. 전편은 부모님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1916년 자신이 태어나서 유치원부터 사립 고등학교를 다녀 졸업하기 바로 직전 석유회사 ‘Shell’에 입사가 확정되어 별로 즐겁지 않았던 학교생활을 홀가분하게 마치는 부분까지 이다.


 원래 성인을 위한 창작 이야기책으로 미국에서 이름을 알렸으나 고향 영국에 돌아와 지신의 어린 시절과 청년시절을 회상하여 이 두 권의 책을 썼다. 나는 창작 이야기 못지않게 이 두 권의 책을 흥미 있게 읽었다. Dahl이라는 Family name에서 영국사람 같지가 않았는데 알고 보니 아버지는 노르웨이 사람으로 십대 후반에 노르웨이 어느 마을에서 청운의 꿈을 안고 프랑스를 거쳐 영국의 웨일즈지역으로 돈벌이를 하러 왔었다. 아버지의 첫 부인은 프랑스 여성이었으나 두 번째 아이를 출산하고 후유증으로 사망하고 두 번째 부인으로 고향 노르웨이 처녀를 아내로 맞아 Dahl과 누이동생 셋을 낳았다. 결국 Dahl은 순수한 노르웨이 혈통으로 웨일즈에서 태어나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그리고 사립 고등학교까지 영국에서 졸업하여 문화국적으로는 영국인이다. Shell직원으로 동아프리카 탄자니카(현, 탄자니아)에서 근무하다 세계1차 대전이 발발하여 영국공군에 전투기 조종사로 활약을 하다 부상병으로 제대한 다음 주미 영국대사관에서 근무하면서 우연히 글쓰기를 권유받은 일이 계기가 되어 명성을 얻고 장년에 다시 영국으로 돌아와 정착한 인물이다. Dahl의 글을 읽어보면 어린 시절 대부분 어른들이나 선생님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그 중 몇 몇 선생들에게는 상당히 나쁜 감정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학창시절의 어른과 선생님들에 대한 불만이 평생 지워지지 않은 탓인지 창작 이야기에서도 대부분 어른들은 어린이들의 적으로 묘사되었다.


 내가 재미있게 읽었던 <Matilda>에서도 어린 천재소녀 Matilda가 젊은 아버지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아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는 날 부모를 따라가지 않고 처녀 선생님인 Miss Honey와 함께 지내는 부분이 나온다. 어린 딸을 떼어 놓고 가는 부모나 그렇다고 부모를 버리고 선생님을 따라 가는 딸이나 우리들의 정서상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다. Dahl 자신은 아버지가 갑자기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후 이사하였으나 같은 웨일즈의 작은 도시 Llandaff의 Kindergarten 2년, Preparatory school인  LIanaff Cathedrel School 2년, 웨일즈에서 좁은 바다 건너 England Somerset지역인 Weston-Super-Mare란 작은 해변도시에 있는 Prep school이며 기숙학교인 St. Peter's에서 4년 그리고 1929년 13살이 되던 해 영국 북부지역 Derby에 있는 공립이자 역시 기숙학교인 Repton Public School에서 5년을 공부하였다. 다 합하면 우리나라 고등학교를 마친 셈이다.

 학교를 마칠 즈음 어머니는 Oxford나 Cambridge대학교로 진학하기를 권하였으나 이를 따르지 않고 바로 취직하였다. Dahl의 글에 의하면 당시 이 두 학교는 경제적 뒷받침만 충분하면 공립학교 출신으로 어렵지 않게 입학할 수 있었다 한다. 아마 그 시절에는 그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Dahl의 학교생활은 대부분 장난이 심하고 선생님의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아 대부분 선생님들로부터 미움을 받았던 것 같다. 자신의 입장에서 선생님들을 비난했지만 과연 모든 선생님들이 Dahl 처럼 나쁜 사람들이었을까 의심스럽다.


 특히 Repton school의 교장은 인품과 실력이 형편없는 사람으로 묘사했으며 3학년 때 Chester의 대주교, 다음엔 London대주교로 승진하였으며 후일 영국 국교회의 수장인 Canterbury 대주교가 되어 1952년에는 웨스터민스터 사원에서 현재의 엘리자베스 영국여왕이 즉위 할 때 대관식을 주제하여 전 세계 T.V. 시청자의 반이 이 사람을 보았을 것이라 했다.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영국교회 수장까지 지낸 사람이 Dahl이 말한 것처럼 인품이 문제가 있었다는 것은 조금 생각해 볼일이다. 아무튼 인간관계는 상대적이므로 Dahl에게는 못 된 어른들이었고 선생이었다는 것을 우선 인정하기로 하자.


 Dahl의 아버지는 혈혈단신 두 주먹만 쥐고 낯선 이국땅에서 짧은 기간에 큰돈을 벌어 넓은 정원과 하인들의 살림집까지 딸린 대 저택을 구입하여 호사를 누리다가 사랑하는 딸이 병들어 죽자 식음을 전폐하고 애통해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남겨놓은 재산으로 어머니는 전처소생 아들 딸 두 명과 자신의 아들 딸 네 명 그리고 가정부와 딸 친구들까지 열 명이나 되는 대식구를 이끌고 이틀씩이나 걸리는 기차와 증기선과 자동차를 이용하는 긴 여행으로 노르웨이 고향으로 매년 여름휴가를 떠났다. 또한 Dahl보다 12살 위인 21살의 의붓딸에게 De Dion-Bouton이라는 프랑스제 승용차를 사주고 운전하게 하여 온 식구가 나들이 떠났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작은 사고를 일으켜 Dahl의 코가 떨어져 나가는 대목에서 Dahl 어머니의 통 큰 마음 씀씀이를 알 수 있고 축적된 재산 상태를 가늠할 수 있었다.      당시 의료시설이나 치료약이 미미하여 Dahl의 아버지가 어린 시절 팔 하나를 절단해야 했던 일, 의붓 누이 맹장수술을 집 식탁 위에 깔개를 덮고 주변에 커튼을 두르고 하였던 일, 바로 위 누나는 7살 때 맹장염으로 죽고, Dahl의 큰 딸 또한 홍역으로 일찍 죽었다. 그리고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Dahl의 아버지는 사랑하는 딸의 죽음에 애통해 하던 중 폐렴으로 57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는 일 등이 자세히 나와 있다. 만일 그 당시에 페니실린만 있었어도 홍역이나 폐렴은 쉽게 고쳐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Dahl은 애석해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