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슬픈외국어>를 읽고...

깃또리 2019. 3. 11. 11:23

<슬픈외국어>를 읽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진욱 옮김
문학사상사
2014. 03. 30.



 책 표지에 <상실의 시대>, <태엽 감는 시계>의 세계적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자전적 에세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그 동안 신문이나 각종 매스컴에서 하루키의 책을 소개할 때 항상 이 책 <슬픈 외국어>가 빠지지 않았으며 나는 별 생각 없이 소설이려니 생각했는데 막상 서가에서 뽑아보니 에세이 집이다. 아무튼 이제는 책 광고 문안이 크게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 생각될 정도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거론되기도 하는 세계적인 소설가 반열에 오른 작가이다. 이 책 출판이 좀 오래되어 국내 출판 시기만 해도 1996년이니 벌써 18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나 지금 읽어도 크게 시간적 괴리를 느낄 수 없다.  <추천의 말>을 쓴 남진우 문학평론가가 쓴 "일본문학 황무지에 하루키 열풍의 기적"이란 표현이 20년 가까이 흘렀지만 지금도 역시 유효하다는 생각에 변함없다. 즉, 유럽이나 미국의 작가에 비하여 유독 일본작가의 소설작품이 우리나라에서는 인기가 없는데 하루키만 예외이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을 뒤 돌아보아도 <해변의 카프카>, <1Q84>와 같은 책을 손에 들고 다니는 사람을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쉽게 볼 수 있었고 작년에 출간된 <색체가 없는 다자키가 순례를 떠난 해>만 해도 국내 베스트셀러에 오랫동안 올랐었고 나 역시 어떤 내용인가 궁금하여 도서관에서 대출하여 읽어보았다.


 다시 남진우의 논평을 빌려서 "'가벼움', '무국적성', '상실감' 등 신세대 정서가 비밀의 열쇠", "평이하면서도 심층적으로 다룬 광범위한 주제의 깊이" 등이 자전 에세이에만 해당되지 않고 하루키의 전 작품에 나타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그래서 <옮긴이의 말>을 쓴 김진욱은 "한국에 기적적 뿌리를 내린 하루키의 작품과 매력의 근원"이라는 말과 함께 하루키의 인기 원인을 예를 들어가며 나열하기도 하였다.
 아무튼 나 또한 하루키의 글을 읽다보면 하루키가 일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며 그가 설령 일본 이야기를 할 때조차도 일본 색깔이 지워진 상태의 일본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이리하여 하루키의 소설과 글은 인간의 심리를 관통하는 보편성을 획득하여 반일감정이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무시할 수 없는 우리들에게도 크게 거부감 없이 많이 읽히고 있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책 내용을 보자면 미국 동부 명문대학교인 프린스턴에 초청을 받아 몇 년을 지낸 내용이 가장 흥미 있었다. <미국대학사회와 계급적 속물근성>이라는 소제목의 글에서 프린스턴대학에서 학구적인 사람들은 맥주조차도 일반인이나 노동자들과 달리 좀 더 지적이고 차별화 된 맥주 즉, 광고에서 요란하게 선전하는 Budwiser, Miller보다는 유럽산 Premiear 급을 마셔야 하고 영화도 유럽영화나 실험성 영화를 좋아하고 음악은 클래식이나 재즈의 경우조차도 지적인 재즈를 그리고 자동차도 요란하지 않고 양복은 새것으로 보이지 않는 수수하지만 고급 옷이어야 분위기에 어울린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하루키는 이를 "미국 계급사회 최후의 몸부림"으로 보고 아무튼 독특한 집단이라 미국에 고립된 섬처럼 보인다 하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프린스턴 대학교 이야기가 나오면 항상 떠오르는 우리나라 초대대통령 이승만씨가 학위를 받은 학교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사실은 이승만은 1907년 조지 워싱턴대학교에서 학사학위(Bachelor of Arts)를 받고 하버드대학교에서 철학 석사 학위(Master of Arts)를 그리고 1910년 프린스턴대학교에서 <미국의 영향을 받은 영세 중립론>이란 논문으로 철학박사 학위(Doctor of Philosophy)를 받았다. 지금부터 100년도 더 된 시절이고 당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는 지금에 비하여 쉬운 과정이었겠지만 그래도 대단한 실력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미국 정치가나 장군들이 비록 초라하고 작은 나라 대통령인 이승만을 만나더라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존경심을 가지고 깍듯하게 대하였다 한다. 미국 동부의 명문대학을 모조리 섭렵한 사람은 그 당시 미국에서도 드물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승만씨가 장기집권과 부정선거에 의한 독재자로 낙인 찍혀 부정적 평가를 받지만 아무튼 초대대통령으로 어려운 나라를 위해 헌신한 점은 이제는 공과를 따져 역사적 판단으로  평가해야 할 시점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장기집권과 독재자라는 불명예가 이승만의 흠이라면 무능한 대통령으로 알려진 윤보선씨는 영국 스코틀랜드의 명문 Edinburuor대학교를 졸업하였다. 내가 어린 시절 당시 우리나라 대통령이 에딘버러대학교 출신이라 하여 에딘버러라는 도시가 미국인지 영국의 어느 도시인지도 모르고 아무튼 우리나라 대통령이 되려면 프린스턴이나 에딘버러와 같은 유명대학교에 유학해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했었다. 사실 하고많은 영국의 유명대학교 특히 런던 근처의 Oxford나 Cambridge대학교를 제처 두고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까지 왜 찾아 갔는지 퍽 궁금하다.


 그래도 100여 년 전에는 에딘버러가 상업 중심지로 '스코틀랜드의 베네치아'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경제적 기반이 탄탄하여 이를 바탕으로 수많은 주변 대학을 거느렸으며 에딘버러 중심 네거리에 서 있으면 순식간에 여러 명의 천재들을 만날 수 있을 정도로 학문의 도시였다고 한다. 그러나 경제적 융성이 다하자 대학들도 서서히 빛을 잃고 명성만 남았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다시 역사는 반전하여 스코틀랜드는 이제 북해유전을 바탕으로 경제력이 다시 도약하여 영국으로부터 분리 독립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렇게 되면 에딘버러는 스코틀랜드의 중심도시로써 새로운 역사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야기가 한 참 다른 길로 벗어났는데, 다시 하루키의 프린스턴 시절로 돌아가 프린스턴대학 영문과에서 여러 쟁쟁한 미국 작가들을 만났으며 특히 폴 오스터를 만났다는 이야기가 흥미를 끌었다. 왜냐면 내가 몇 년 전부터 폴 오스터의 책을 읽어 소위 팬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루키는 폴 오스터가 상당히 뛰어난 악기 연주가가 아닐까 멋대로 생각하여 "당신의 문장은 구조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매우 음악적으로 느껴지고, 뛰어난 연주가의 스타일을 연상하게 하는데요?"라고 물었다 한다. 그러자 폴은 악기는 연주하지 못하지만 소설을 쓸 때 언제나 악기를 연주하는 것, 음악을 만들어 내는 걸 생각하면서 글을 쓴다고 하였다 한다. 또한 그는 가끔 악기를 잘 다룰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한다. 사실 글이란 내용도 중요하지만 잘 쓰여 진 글은 음악을 닮아 길고, 짧게, 높고, 낮게 그리고 부드럽게 이어져야 한다. 좋은 시를 낭독하면 바로 음악이 되는 것처럼 그래서 나의 경우에도 별 대수롭지 않은 글이지만 적어 놓고 다시 읽어보다가 의미에 크게 영향이 없으면 기왕 부드럽게 연결되는 어휘나 토씨로 바꿔보기도 한다. 글쓰기를 본업으로 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중요한 일일 것이다.


 "사내아이의 동심을 언제까지나 간직하고 싶다."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언제나 운동화를 신고, 매달 한 번은 이발소에 가며, 일일이 변명하지 않는 '사내아이'이미지를 버리고 싶지 않다.라고 하였다. 하루키의 글을 읽어보면 그는 격식,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기존 굳어진 관습에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자유인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그래서 구두보다는 운동화를 양복보다는 캐주얼복장을 그리고 미장원보다는 남자들이 일하는 이발소를 선호하는 이유를 상당한 분량으로 설명하고 있다.


 "나는 사물을 머리로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다" 에서는, 대단한 창의력으로 독자들을 감탄하게 하는 작가가 머리로 생각하지 않고 몸을 움직여 생각한다고 주장하니 조금 의아하다. 그러나 하루키의 지난 삶을 더듬어 보면 조금은 이해가 간다. 와세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생계를 위해 약 7년간 재즈카페를 운영하였다. 종업원을 거느린 어엿한 사장노릇이 아닌 직접 가게바닥을 빗질하며 청소하고 직접 음식도 만들어 팔기도 하며 이때 양파 껍질 벗기는 일에 달인이 되었다고 자랑하였다. 어찌나 빨리 벗겼으면 양파 껍지을 벗기다 눈물이 나면 어떻게 대처했느냐 묻는 프린스턴 대학생들 질문에 눈물이 나오기 전에 빨리 해치웠다는 농담도 했다고 한다. 보스턴 마라톤을 여러 번 완주했으며 다른 곳에서 열리는 마라톤에도 수 없이 참가한 마라토너이기도 하다. 더구나 그리스, 이탈리아, 프랑스 등지를 전전하며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그곳 생활과 문화를 이해하고 몸으로 체득했다 하며 여러 나라 사람들의 정신을 이해하기 위해 일곱 개의 나라말을 배우기도 했다고 하였다. 일곱 개의 나라말로 그리스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터키어, 스페인어, 독일어, 영어 등인데 특히 영어는 아무리 많은 시간을 공들여도 원어민 수준에 이르지 못하여 그 ‘비애와 슬픔’을 <이윽고 슬픈 외국어>라는 제목의 에세이로 표현했으며 결국 이 에세이 집의 한글판 제목이 <슬픈 외국어>가 되었다.


 하루키는 외국어 배우기의 어려움과 아무리 외국어를 잘 번역해도 모국어가 담고 잇는 미묘한 의미와 뉘앙스를 따라 갈 수 없다는 것을 실례를 들어 설명하기도 하였다. 음악연주를 예를 들어 연주 실력이 다소 떨어져도 심금을 울리는 연주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을 하였다. 그럴듯한 말이다. 바꿔 말하면 아무리 영어가 유창해도 내용이 보잘 것 없으면 듣는 사람을 감동시킬 수 없다. 이는 비단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말에도 마찬가지이다. 하루키는 클래식음악에도 상당한 아니 대단한 지식이 있지만 재즈는 대단함을 넘어서는 경지에 이른 사람이다. 대학시절부터 재즈를 좋아하여 그래서 재즈카페를 7년이나 열어 재즈곡, 재즈뮤지션, 재즈그룹들이 책에 줄줄이 나온다. 나는 재즈 곡명은 분간도 못하고 재즈뮤지션 몇 명의 이름을 알고 있을 뿐이다. 특히 수년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한 달 정도 지내는 동안 Bans &Nobles라는 서점에 자주 구경을 갔다. 말 그대로 당시 우리나라와 다른 넓고 한적하고 품위 있는 서점의 서가 사이를 걷는 일만해도 기분이 좋았다. 그 때 생각으로 이렇게 손님이 없는데 장사가 되는지 의문이 들었고 내가 돌아다닌 시간이 모두들 일하는 시간이어서 그런지 그 큰 매장에 두 서너 명의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애들이 서가 사이 카펫에 눕기도 하고 앉아서 책을 보는 모습이 인상 깊었고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책방에서 내가 겨우 산다는 것이 재즈뮤지션 중의 전설이라는 마일즈 데이베스이 자서전 <마일즈>였는데 집에서 읽어보려고 펼치니 너무 어려웠다. 그 때 안 사실로 재즈를 하는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통하는 말이 별도로 있었으며 각종 비속어, 욕설에 가까운 어휘가 줄줄이 나와서 사전을 찾아보다가 이내 읽기를 포기하고 덮고 말았다.


 내가 왜 이 마일스를 이야기 하느냐면 "쇼핑 철학-양복에서 파워북까지"라는 에세이 중에서 하루키가 미국 체류 당시 물건을 구입한 일들을 이야기를 하면서 존 F.케네디, 동생 로버트 케네디 그리고 마일스 데이비스의 양복을 입은 맵시가 부러웠다는 대목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재즈뮤지션들은 대개 옷차림도 개성이 있고 요란스러웠으나 마일스는 다른 재즈뮤지션과 달리 거의 말쑥한 아이비스타일의 옷을 입었다고 나와 있어 새삼 마일스 자서전 생각이 떠올랐다. 특히 그는 Brooks Brothers라는 브랜드를 좋아했다는데 내가 요즘 입고 다니는 자켓이 부룩스 어떤 것 같아서 양복 안감을 살펴보니 Brooks Hills였다. "학력과 지위가 뭐 길래"라는 글에서는 자신이 일본 명문에 속하는 와세다에 입학한 과정을 비교적 자세하고 솔직하게 적었는데 재미있고 유익하였다. 특히 와세다대학교 입학시험에 국어, 영어, 세계사만 선택 하면 되었다는 이야기가 의외였다. 즉 와세다라 해도 몇 과목에 출중하면 입학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내가 여기에 옮기지  않은 글도 흥미 있고 하루키의 문학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어 관심  있는 사람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