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거대한 괴물, Leviathan 1992>을 읽고...

깃또리 2019. 3. 7. 12:29

<거대한 괴물, Leviathan 1992>을 읽고...
폴 오스터 장편소설/ 황보석 옮김
열린책들
2014. 03. 22.


 번역자 황보석은 <옮긴이의 말>에서 "폴 오스터는 대중소설이 주류를 이루는 미국 문학계에서 진지한 소설만을 고집해온 매우 특이한 작가이다."라고 소개하였다. 나는 최근 미국작가들의 책을 읽을 기회가 많지 않았지만 황보석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이 책이 폴 오스터의 일곱 번째 소설이라 한다. 그간 나는 네 권을 읽었으며 뛰어난 작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원 제목이 <리바이던, Leviathan>으로 영국의 철학자이자 정치이론가인 토마스 홉스(Tomas Hobbes, 1588~1679)가 지은 책 제목과 같다. 토마스 홉스는 교회의 권력으로부터 해방된 강력한 국가의 성립을 논하였으며 1651년 출간되었다. 우리가 가끔 인용하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The war of all against all"이란 문구가 바로 이 책에서 유래하였다. 또 리바이어던은 구약성경 <욥기>에 나오는 거대한 괴물로 존 홉스는 기독교가 인간을 억압하는 괴물로, 폴 오스터는 현대사회가 인간의 자아를 속박하는 괴물로 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소설의 내용은 대강 이러하다.
1인칭 화자인 나, ‘피터 아론’은 1947년 출생하여 미국 동부 명문대학교인 컬럼비아 영문과와 대학원을 졸업하였고 ‘딜리아 본드’와 28살에 결혼했으나 3년 후 이혼하였으며 직업은 글 쓰는 작가이다. 여기까지는 작가 폴 오스터와 이력이 거의 같다. 이혼 후 사진작가 ‘마리아 터너’와 동거하다 헤어지고 같은 학교 후배인 ‘아이리스’와 새롭게 시작하여 딸 소냐를 낳았다.


 한편 피터 아론이 자신의 이야기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소개하고 자신과 관계를 이야기하는 역시 동부 명문대학교 출신으로 한 살 나이가 더 많은 등장인물이 ‘벤자민 삭스’이다. 피터가 결혼하던 해 독서 낭독회에서 삭스와 첫 만났으며 서로 호감을 가져 집에 초대받아 갔다가 삭스의 아내 ‘패니’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사실은 피터가 대학교 미학과 철학 강의를 들었을 때 피터는 패니와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었으나 함께 강의를 들었었으며 은근히 눈길을 준 일이 있어 쉽게 친해졌다. 남편 삭스와 패니는 성격이 대조적이었으며 임신을 할 수 없는 신체적 결함을 지닌 아내 패니를 삭스는 진정으로 사랑한다.


 그러나 역시 작가인 삭스는 기존 미국사회에 깊은 반감을 키워가고 있었으며 자신의 나이 44살이 되던 1990년 폭발물을 제조하다가 온 몸이 산산이 흩어져 시신 수습이 어려울 정도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삭스는 죽기 직전까지 미국 전역에 있는 크고 작은 '자유의 여신상' 모형을 폭발물을 사용하여 파괴하고 미국사회에 간단하지만 엄숙한 경고를 보내는 일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삭스의 행동이 1978년부터 18년 동안 사회 경고성 폭탄테러를 일으켰던 유너바머, Unabomber 사건을 연상하였다. 1996년 FBI의 집요한 추적 끝에 유너바머는 하버드를 졸업하고 버클리대학교 수학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시어도어 카지스키(당시 55세)교수로 밝혀져 체포되어 법정에 섰다.    반문명과 인간성 회복을 주장하며 과학기술문명을 저주하며 주로 대학교, University와 공항, Airport를 테러 대상으로 삼아 이 둘의 합성어인 유너바머, Unabomber 라는 별명을 얻었었다.


 소설의 지리적 배경은 뉴욕과 버몬트로 삼았으며 주제는 삭스의 행위를 옹호하는 형식으로 현대사회의 비인간성, 반문명성을 일깨우면서 한편으로는 남녀 간의 사랑 문제를 등장인물들을 통하여 다루고 있다.


 내가 가장 흥미 있게 읽은 부분은 피터와 삭스의 아내 패니 사이의 관계이다. 피터는 대학 강의실에서 한 마디 말조차 나주지 못하였지만 패니를 짝사랑하였으며 몇 년 후 삭스의 아내가 된 그녀를 만난 다음에도 패니를 동경하여 이렇게 말한다. "패니는 사려 깊고, 침착하고, 참을성 많고, 섣부른 판단이나 근거 없는 말을 하는 법이 없었다. 그녀는 작가였고 똑똑한 여자였다. 그녀는 스핑크스였고 그는 벌어진 상처였다. 그녀는 귀족이었고, 그는 서민이었다." 패니는 뉴욕 브루클린 박물관의 미술부 보조 관리자였다.


 자유의 여신상 파괴하러 다니느라 미국 이곳저곳을 전전하는 사이에 패니를 자주 찾아갔던 피터는 패니의 유혹으로 몸을 서로 주고받기도 하였고 어느 날 홀연히 나타난 삭스에게 자신의 잘못을 고백한다. 그러나 남편인 삭스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으며 다시 패니는 찰스 스펠터라는 건축설계 직업을 가진 남자와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이 세 사람들의 관계 이외에도 다른 등장인물들이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는 이야기가 자주 이어져 물론 소설이라고 하지만 미국의 남녀 관계는 우리보다 훨씬 유연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어느 편이 과연 적절한가는 논외로 하고 아무튼 인간남녀관계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자유스러워 질것이 분명하다.


 작가의 자전적 내용과 남녀 간의 사랑 그리고 작금의 피폐해지는 인간성 회복을 주제로 삼은 퍽 뛰어난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