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비자나무 숲>을 읽고...

깃또리 2019. 3. 4. 16:43

<비자나무 숲>을 읽고...
권여선 소설집
문학과 지성사
2014. 02. 28.


 이 책을 도서관 서가에서 집어 든 것은 권여선 작가가 몇 년 전인가 ‘이상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바로 그 해 이 작가의 몇 편의 단편을 읽었던 기억이 났고, 두 번째로는 ‘비자나무 숲’이라는 제목이 눈에 이끌렸기 때문이다. 오래 전 전라남도 고산 윤선도고택 방문했을 때 고택 뒤 산에 비자나무 숲이 있다하여 허겁지겁 올라가 본 일이 있지만 퍽 오래 된 일이기도 하여 지금 다시 보아도 어느 나무인지 구별은 못하고 있다. 아무튼 이  나무에 대한 인상이 좋게 남아 있는 이유로 이 소설집을 골랐다.


 해설 제목 <사랑의 기하학>으로 책 뒤에 나오는 ‘양윤’이란 비평가가 쓴 글의 부제목은 <非자 숲: "이름이 사라지면 불러 애도할 무엇도 남지 않아>이며 본문 중에 "비자는 '榧子'라고 표기하지만 실제로는 '非字'에서 왔다. 잎 모양이 등을 맞댄 저 글자(非)를 닮았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끝에 가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그것은 '秘姿'이기도 할 터"라는 문장이 소설 내용보다 더 머리에 남아 이런 경우는 “꿈보다 해몽이 더 낫다.” 라는 생각과 함께 내게는 소설 본문보다 해설이 더욱 마음에 든다. 이어서 "권여선이 가르쳐준 '사랑의 기하학'은 사랑의 완전연소 즉 제로지점을 향해 질주하는 소멸의 드라마다 (중략) 욕망이 죽으면 사랑도 죽는다. 권여선의 인물들은 들끓는 욕망의 힘으로 소멸의 지평선을 향해 나아간다."라는 문장도 눈길을 끈다.


 특히 '욕망이 죽으면 사랑도 죽는다.'라는 구절이 약간 식상한 표현 같지만 그래도 머리에 떠나지 않는다. 어디 사랑뿐이겠는가? 인간의 욕망은 ‘악의 뿌리’가 되기도 하지만 ‘인류구원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문명을 꽃피우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단편 일곱 중에서 두 노년 부인들의 요양소를 배경으로 이루어지는 <은반지>가 그래도 여운으로 남는다.


 "작가의 말을 정말 쓰기 싫다."로 시작하는 권여선 작가의 <작가의 말>에서 “황기와 엄나무에 찹쌀과 잡곡을 섞어 진한 죽처럼 끓인 삼계탕과 함께 곁들여 나온 오이장아찌, 갓김치, 취나물이 상에 올라온 시골 식당 점심에서 거의 종교적인 경배를 바치고 싶다”는 문장이 나온다.

 짐작컨대 전라도 어디쯤에서 만난 밥상인 듯하며 인간의 감각인 시각, 청각, 후각, 촉각 그리고 미각 중에서 미각은 다른 감각에 비하여 인간의 존재, 생존에 직접 관계가 있는 감각이기도 하여 원초적이고 가장 섬세하고 강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처음 읽을 때와 달리 조금 더 진지하게 보면 작가의 경배라는 말이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작가는 또 발터 밴야민의 '어느 여인을 보려고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그 시간에 비례하여  그 여인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를 인용하고 나서 자신은 "한 해 한 해 흘러 한 살 한 살 나이를 더 먹을수록 나는 점점 더 조급해진다."고도 했다. 그러나 삼계탕을 만드는 식당 가족들은 자신들이 만든 음식이 어떤 맛인지 알고 싶어 조바심을 내는 것 같지 않아 밴야민이나 자신은 시골 식당 사람들 보다 한 수 아래라고 하면서 신 앞에서 인간이 공평하듯, 언어 앞에서는 누구나 병자 또는 정신병자라고 하며 이 말을 하기 위해 나는 죽어도  쓰기 싫은 작가의 말을 썼다고 했다.

 인간의 조바심은 결국 욕심에서 나오는 것이며, 욕심을 버린 사람은 인생을 달관한 사람일 것이다. 이 달관이 서서히 진행하는 사람도 있고 어느 날 벼락같이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죽을 때까지 이르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대부분의 인간은 부족하고 약하다는 말에 거부하지 못한다.